거제북지맥 1차땜빵 (두모고개~양지암등대~능포방파제)
일자: 2015.4.11
산행코스: 두모고개~협성봉~느태고개~능포봉수대~능포꽃동산~양지암등대~능포방파제
인원: 홀로
GPS거리: 8.14㎞ 널널/3시간20분
08:10 부산.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장승포行 직행버스를 타고 옥포소방서 버스정류장에 도착,
곧바로 연계되는 10번 시내버스를 타고 두모고개에 하차,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이다.
두모고개 전경
두모동 14번국도상의 해성고등학교 앞 삼거리다.
해성고등학교 입구
정문을 지나면 우측이 고등학교 중학교는 좀 더 위쪽인데,
중학교 좌측 주차장뒤로 시멘트길이 산으로 올라간다.
뒤돌아보면 옥녀봉이 잘 조망된다.
그렇게 능선에 오르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산 사면은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상단부에서 바라본 지심도
얘 이름을 몰라서~
공동묘지 상단부에서 좌측 희미한 등로를 오르면 부서진 산불초소를 지난다.
163봉 정상부 전경
이곳 163봉에서 마루금은 우측이지만 좌측에 산 이름이 표시된 협성봉이 있어 올라본다.
협성봉 정상부 전경
사방이 막힌 아무것도 볼거 없는 그냥 그렇고 그런 봉우리다.
다시 163봉으로 되돌아와 희미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유난히도 활짝핀 진달래가 반긴다.
당나라 백거이의 "산석류(진달래)를 원구에게 부치며"라는 시에
"두견이 한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가지씩 핀다"는 구절이 전해진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고 접동새를 일명 두견새라고도 하는데~
옛날 중국 촉나라의 임금 망제는 이름이 두우 라고 한다.
위나라에 망한 후 그는 도망하여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는데, 한이 맺힌 두견새는 밤이고 낮이고 "귀촉, 귀촉
(고향-촉-으로 돌아가고 싶다)"하며 슬피 울었다고 해 이 새를 귀촉도라고도 불렀다.
죽은 망제의 혼인 두견새는 그 맺힌 한으로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셨다고 하는데~
그 한이 맺힌 피가 땅에 떨어져 진달래 뿌리에 스며들어 꽃이 붉어졌다고 하고,
또 꽃잎에 떨어져 붉게 꽃잎에 물이 들었다고 한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슬피 우는데 특히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우지 진다 하고, 한 번 우짖는 소리에 두견화는 한가지씩 핀다고 한다.
그렇게 내려서서 뚜껑 덮인 시멘트 수로길을 따라간다.
느태고개 전경
성수아파트 옆 2차선 아스팔트 고개다.
좌측에는 “대우조선해양”’이 쓴 대형 크레인이 지척에 보이고,
우측은 성수아파트와 우성빌라트 건물이 있다.
노랑색 하현달 형상의 “능포봉수대” 안내판
밭 사이로 올라서니 좋은 길이 이어진다.
체육시설이 있는 공터를 지나고~
잠시 오르면 우측으로 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인데, 잡목이 빽빽해 뜷고 내려갈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능포봉수대와 178.3봉 삼각점을 보러 올라간다.
룰루랄라~
178.3봉 정상부 전경
능포만을 내려다보는 곳에 팔각정이 있고
더 위쪽에 돌담을 둥글게 쌓은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 한가운데에 삼각점이 있는데 번호 식별은 안된다.
팔각정에 오르니 가야할 능선이 잘 보인다.
양지암등대를 땡겨보고~
한참 조망을 즐긴후 다시 되돌아 내려와 마루금 꺾이는 지점을 지나고,
체육시설이 있는 공터로 되돌아오니 우측 옥명마을 쪽으로 난 묵은 길이 보인다.
내려서니 급경사 내리막길인데 옥수교회 뒤로 떨어진다.
제비꽃
옥수교회 앞마당으로 해서 정문으로 나오고~
마을길로 내려가니 고개에서 남쪽으로 150m 가량 내려선 지점이다.
도로를 건너 고갯마루로 올라 “가이드낚시” 뒷길로 올라간다.
뒤돌아본 마루금
능선에 올라 바라본 83봉 정상부 전경
잠시후 영산신공묘 좌측 틈으로 들어가 지도에 표기된 83봉에 오르니 더 이상 길이 없다.
그대로 잡목을 밀고 내려간다.
잠시후 등로는 공원길 안쪽으로 떨어지고~
여러 가지 조형물을 설치하고 잘 단장된 양지암 조각공원이다.
멋진 조형물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 진행하면 늘푸른공원이 시작된다.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물들이 눈에 띄고~
한참동안 공원길을 따라가니 넓은 길은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정면은 산길은 양지암등대로 가는 길이다.
사방이 막혀있어 전망대구실을 못하는 정자를 지난다.
최근 조성해 놓은 능포산림욕장인데 지역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숲속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평상과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 가는길
전망테크에서 바라본 능포앞바다
이곳역시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인데,
과연 몇 사람이 이곳까지 운동하러 올지 의문이다.
양지암 주위 전경
양지암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옥포대첩이 일어난 날(5월 7일) 정오무렵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거제도 남단을 돌아 옥포만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때 양지암에서 망을 보던 왜의 초병이 안개로 조선 수군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옥포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양지암 부근은 대한해협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지형상으로 중요한 곳이다.
양지암으로 가는 군부대 입구
양지암 가는길
군부대를 우회하는 길이다.
양지암등대가 지척으로 다가오고~
가파른 경사의 철제계단이 양지암등대로 가는 암벽에 설치되어 있다.
양지암등대 전경
거제도에서 가장 먼저 햇볕을 받는다는 양지암에 위치하고 있는
양지암등대는 1985년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한 무인등대다.
높이는 15.5m 정도로 거제 동부해안의 곶에 설치된 중요한 연안표지로
옥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해 설치되었다.
2008년 정비를 통해 등대주변에 나무데크와 전망대를 갖춘 친수공간이 조성됐다.
더 이상 갈데가 없어요.
내려다 본 양지암 일대
아침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양지암에는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1964년에 발행된 거제읍지에 따르면 300여 년 전 한양에서 상서벼슬을 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무남독녀 외동딸 국화와 하인 삼돌이를 데리고 유배를 왔다.
그들은 능포 주변에 초막을 짓고 생활을 하였다.
국화는 사서삼경을 다 배울 정도로 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름달 같이 아름다웠기에
마을의 청년들은 국화를 마음속으로 좋아하였다.
삼돌이도 국화를 은연중에 사모하게 되었지만
상전을 사랑하는 것이 큰 죄인지라 고백을 할 수가 없었다.
연민의 정이 너무 깊고 종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다가
삼돌은 상사병으로 자리에 눕게 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결국 삼돌은 죽게 된다.
삼돌이 죽은 지 삼일째 되는 날 이상한 실뱀 한 마리가 국화의 몸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뱀을 떼 놓으려고 하여도 뱀은 떨어지지 않았다.
죽은 삼돌의 영혼이 상사뱀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상사뱀 때문에 고생을 하던 국화는 결국 양지암 앞의 바위에 떨어져 죽게 된다.
그후 국화가 떨어져 죽은 양지암 앞의 바위는 상사바위로 불려졌고,
처녀 총각들이 혼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이곳에서 고사를 지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거제북지맥 산줄기
능포앞바다 뒤로 국사봉과 옥녀봉이 잘 조망된다.
해무가 끼어 희미하게 보이는 거가대교
예전 낚시에 심취해 있을때 감시치러 몇번이나 출조했던곳인데
올때마다 재미봤던곳이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한참을 휴식후 다시 군부대입구로
되돌아나와 능포방파제로 이어지는 임도길을 따라간다.
거제시의 나무는 사계절 푸름으로 변치 않는 시민의 기상을 나타내는 곰솔이다.
곰솔은 소나무(육송, 적송)와는 다른 종류인데,
주로 바닷가에 자라므로 해송이라 하고,
수피의 색깔이 검은색이라 흑송이라고 하는데
일반소나무보다 성장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 특징이다.
양지암 근처는 큰 키의 곰솔군락이 거제도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늘푸른공원 입구
능포항 도로 끝이다.
능포방파제
능포항 동쪽 끝단 바닷가에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유채꽃이 활짝피었다.
능포항
길 -천 상병-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잠시후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여 편하게 장승포터미널로 이동하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땀냄새 제거후, 곧바로 연계되는 부산行 직행버스를 타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하여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