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허 원조(碧虛 圓照)선사
벽허 원조(碧虛 圓照1657~1734)선사
선사의 법명은 원조(圓照), 법자는 한영(寒影), 법호는 벽허(碧虛),
속성은 한씨(韓氏)다.
평양에서 아버지 응백(應白)과 어머니 최씨(崔氏)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선사의 어머니께서 금까마귀 한쌍이 날다가 한 마리가 떨어져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효종 9년(1675) 10월 10일 선사를 낳았다.
선사는 10세에 평양 태청산 석수암에 주석하고 계신 각형 장로에게 축발하였다.
선사는 삼장(三藏)의 법을 구하며 이교(二敎)도 익혔다.
선사의 수학이 깊고 깊어 가르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은로(恩老)께서
“월나라 작은 닭은 큰 흰 새의 알을 부화시킬 수 없다.
너에게 던져 줄 능력도 없지만 너는 구름도 헤쳐 나갈 운이 있으니
하루빨리 의남(宜南)의 큰 장로(匠老)에게 가르침을 받아라”고 하였다.
선사는 은로(恩老)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출가하여 지금까지 공부하던
석수암을 떠나 의남 월저(月渚禪師)선사를 찾아 법을 구했다.
월저 문하에서 수참 몇 해만에 월저선사께서 또 이르시기를
“나는 이미 늙었다. 용의 새끼를 기를 수 없으니
너의 비늘이 돋아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곳은 바로 남명 설암(南溟雪巖)선사가 주석하고 계신 묘향산 내원운사이다.
설암선사 회상에서 수참 4년째 정월 초하루 날이었다.
스승 설암선사께서는 떡국을 드시다가 선사에게
“법성원융(法性圓融)이란 무슨 뜻인고”라고 물었다.
이에 선사는 “적일(赤日: 붉은 햇빛)입니다” 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다.
斜日遷主閣 (사일천주각) 지는 햇빛은 붉은 누각에 비치고
斷雲基玉奉 (단운기옥봉) 끊어진 구름은 옥봉을 의지하네
鈴搖天古塔 (영요천고탑) 천고의 탑에서 방울소리 흔들이고
回百年松 (회백년송) 백년뒤 소나무에 바람소리 윙윙 거리네..
선사의 깨달음은 바로 붉은 햇빛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주는 햇빛이 있어야 영위하는 것이다.
그 햇빛도 생명이 있는 붉은 햇빛이다.
이것이 선사의 깨침이자 가르침이었다.
스승 설암께서 선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호남 징광사(澄光寺)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선사께서 선불장(選佛場)을 여시게 되었다.
선사께서 참활(參喝)하신다는 현응지영(縣鷹之鈴) 이 전국 곳곳으로 울렸다.
(현응지영(縣鷹之鈴): 사냥을 하는 매의 꼬리부분에 달린 방울,
매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이 울려 그 매의 소재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선사께서 은거하여 살아도 소재를 알아 찾아온다는 뜻)
이에 사방에서 찾아오는 중생들과 수좌 대중들이 바닷물이 밀려오듯 구름이
몰려오듯 찾아와서 “원하옵니다. 선열(禪悅)을 베푸시어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깨달음을 일깨워 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
이에 선사께서 크게 가르침을 허락하시여 천엽잡화(千葉雜花)의 도량을 여니
보광명전(普光明殿)처럼 방불하였다.
선사의 덕은 사생(四生 :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도와
이것저것 따질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자비는 삼라만상을 덮었다.
또한 선사의 가르침에는 사생(四生)과 만유(萬有)가 하나 되어 삼여(三餘)가 없었다.
(삼여(三餘): 겨울은 년(年)의 나머지, 밤은 날(日)의 나머지,
흐리고 비가 오는 것은 시(時)의 나머지이다.
학문은 남는 시간에 하여도 충분하다는 옛 위략독서(魏略讀書)편의
마땅히 세 가지 남음으로써 해야 한다. 는 당이삼여(當以三餘)라는 뜻)
영조11년(1753) 묘향산 동산사(東山寺)에서 세수 78세, 법랍 67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