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8 함양.마천/ 삼정산
일자: 2016.5.28
산행코스: 함양.마천 삼정리/영원사∼빗기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
∼삼불사∼약수암∼남원.산내 입석리/실상사
인원: 홀로
GPS거리: 9.45㎞ 널 널~/5시간40분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함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고…
백무동行 함양군내버스를 타고 인월을 지나 마천에서 하차. 마천면 개인택시를 타고 곧장 영원사로 올랐다.
영원사(靈源寺)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청허 휴정(淸虛休靜),
청매인오(靑梅印悟), 사명송운(四溟松雲), 환성지안(喚惺志安), 설파상언(雪坡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만 해도 100칸이 넘는 아홉 채의 전각이 있었던 영원사는 1948년 여순사건 때 소실되고
또 6,25때는 지리산 빨치산과 국군 토벌대 간의 격전지가 되면서 완전히 빈 터만 남게 되었다.
1971년 상무주암에서 십여년 동안 용맹정진 하시던 김대일 스님이 어느 날 조사님의 말씀이 있는 선몽을 하고
큰 원을 세워 초막을 짓기 시작하여 40여년을 단신으로 불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는데 원당형의 둥근 석탑이 5기가 있으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도들은 영원사의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 등 이름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들이 있다.
그리고 매년 음력 9월18일 지장재일에는 109명 조사님들의 영재를 봉행하는 사찰로 유명한 곳이다.
두류선림
영원사 안내석
응윤스님은 <경암집-영원암 설회 사적기>에서
영원암은 1722년 화재로 소실되어 고찰할 수 있는 사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절의 유래를 옛날 조사 영원이 이 암자에 주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만수동 가장 깊은 근원에 있다 하여 “영원암”이라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만력연간(1573~1619)에 부용영관, 청허휴정, 청매인오 세 분 조사께서
서로 이어 주석하며 득도했다고 덧붙이며 이로 인해 영원암의 이름이 더욱 드러났다고 했다.
법당 뒤 복주머니란 자생지
복주머니란
이미 개화된 꽃은 시들기 시작하며 많이 상한 모습이다.
늦둥이들이 한두개채 보이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멀찌감치 바라만 보았다.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불룩한, 세장의 꽃잎이 불룩한 배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포대화상을 연상케 한다.
빗기재 들머리
이정표는 상무주암까지 1.8km를 가르킨다.
허걱!
산행시작한지 10분도 안됐는데 고도는 1.019m를 가르킨다.
물참대
풀솜대
빗기재를 향한 마지막 오름길이다.
영원사에서 빗기재로 오르는 길은 너덜바위길을 한참이나 올라야 하는,
"된비알"이라 숨이 깔딱깔딱 차오르는 길이지만 잠시나마 신록의 숲이 가픈 숨을 멈추게 한다.
빗기재
완전히 룰루랄라 길이다.
첫번째 전망대 오르막길
경남도계상에 있는 1.290.5봉
지리주능선…
벽소령에서 연하봉까지… 가슴이 뛴다.
갈림길
등산로에서 우측 샛길로 오르면 영원산이다.
단풍취
영원산 정상부
잡목에 가려 조망이 안 되지만 우측으로 몇 발자욱 내려가면 조망이 열린다.
촛대봉에서 하봉까지…
상봉 땡겨보고…
토끼봉에서 촛대봉까지…
벽소령
부자(父子)바위 땡겨보고~
옛날 지리산 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부락에는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사냥 길목 인걸령에서는 하루에 꼭 3차례씩 무지개가 섰다가 꺼지곤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무지개 아래 소(沼)에서 어여쁜 3선녀가 정성껏 밥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옥황상제의 시녀들이 날마다 내려와 밥을 짓는데 그러던 어느날 더위를 못 참았는지 선녀들이 소에서 멱을 감게 되었다.
이때 인걸은 선녀들의 날개옷만 입으면 자기도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날개옷을 훔쳐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날개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옷 찢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선녀들은 놀란 나머지 각자 자기의 옷을 찾아 입었는데 아미(阿美)라는 선녀만은
옷이 없어 인걸이 가져다 준 어머니의 옷을 입고 결국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인걸의 집으로 와서 몇 날을 지냈다.
그 후 하늘나라에서는 아미선녀를 인걸과 같이 살도록 허락하고 비단옷과 쌀이 나오는 바위를 하사해 주었다.
(이 쌀바위는 작전도로 공사 때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인걸과 아미는 그로부터 1남 2녀를 낳아 하늘아래 첫동네에서 정자.
지금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선유정를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걸이 장난삼아 옛날 찢어진 아미의 날개옷을 기워서 입혔는데 그만 아미가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인걸과 세 자녀가 문바위에 올라가 아미가 다시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내려오지 않자 4부자는 그만 지쳐 죽고 말았다.
그 다음날 아침 벽소령에는 부자바위가 솟아올랐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 인걸과 아미가 세 자녀를 데리고 걷는 상(像)이라고 한다.
벽소령에 있는 부자바위를 보면 영락없이 아버지와 세 자녀가 걷는 모습이다.
함박꽃
영원산 정상에서 좌측 샛길로 내려와 등로와 합류하고…
묘한 형상의 선바위를 지나고…
또, 이런 바위를 옆으로 지난다.
친절한 이정표
이후 능선길도 있지만 예전에 한번 가본길이라 뺀질뺀질한 우측 사면길을 따른다.
소나무가 묶여있는 전망대
삼정산능선…
반야봉과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을 지나 삼각고지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삼정산. 상무주암 갈림길
삼정산으로 가는 길은 좌측능선 오르막길이고,
상무주암 가는길은 직진하는 사면길인데 오늘은 삼정산을 올라갔다 다시 여기로 도로 내려와야 된다.
급경사 오르막길
헬기장
멋진 전망대
배낭을 내리고 전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하며 점심 해결하고…
언제봐도 가슴이 뛰는…지리주릉
반야봉 땡겨보고…
삼정산 정상부
삼정산 (三丁山 1.225m)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도계 선상의 삼정산은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능선상의 주봉이다.
뱀사골의 동쪽 산록에 해당되며, 만수천(川)과 덕전천(川)의 분수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산세가 부드럽고, 곳곳에 기암과 고사목, 노송들이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함양군지에는 한자가 삼정산(三丁山)이라고 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삼정산(三政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정산이란 이름은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하정, 음정, 양정이란 세 마을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고도 한다.
삼정산은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봉우리이면서 '봉(峰)'이 아닌 '산(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산'으로 표시된 곳이 더 있는데 백무동의 오송산(669.4m), 창암산(923.3m)이 있으며,
만복대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나간 줄기에 있는 세걸산(1,207m), 덕두산(1,114.9m) 등
유독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 산자락의 봉우리만 '산'을 달고 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나오고,
지척에 있는 상무주암으로 가는데, 옳은 말씀…
금낭화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상무주암(上無住庵)
지리산 영원사의 말사(末寺)인데 상무주암이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보조국사 지눌이 1198년부터 1200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은 상무주암에서 〈대혜어록〉의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 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는 구절을 보고 적극적인 보살 행을 지향했다.
고려 고종(1213~1259)때 각운스님 역시 상무주암에서 〈선문염송설화〉 30권을 저술했다.
진리의 등불’이 면면히 이어진 현장에 상무주암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비명>에는 상무주암을 "경치가 그윽하고 고요함이 천하에 으뜸(甲)이니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라고 적고 있다.
법당의 “상무주(上無住)” 편액은 '신필(神筆)'로 소문난 원광 경봉스님의 작품이다.
'무주(無住)'는 <금강경>의 '장엄정토분'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에서 따온 말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는 뜻이다.
달마 이후 선불교의 중흥조로 숭앙받고 있는 육조 혜능선사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주막에서 나무를 팔고 문을 나서다 어느 객승이 외는 금강경의 이 구절을 듣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출가하여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가게 된다.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찰나마다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찰나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한 찰나라도 얽매이게 되면 모든 찰나에 얽매이게 되니, 이것을 속박이라 한다.
모든 것에서 어떤 찰나에도 얽매이지 않으면 속박이 없으니, 그래서 무주를 근본으로 삼는다."
-돈황본 육조단경-
별다른 부속건물이 없는 참선 수도 암자인 상무주암
예부터 지리산에서 장엄하고 화려함은 화엄사가 제일이고, 맑고 깨끗함은 금대암과 벽송암이 제일이고,
기이하고 빼어남은 칠불암, 불일암, 무주암이 제일로 알려져 왔다.
이처럼 기이하고 빼어남이 으뜸인 상무주를 풍수가들은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했다.
'형체를 잊고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거처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천하제일의 참선하기 좋은 곳이 상무주암이다.
샘터에서 보는 지리주릉…
경계를 지은 듯 짓지 않은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주능선을 보는 맛이 그윽하니 깊다.
스님 울력장소…
상무주암 아래 비탈진 산을 개간하여 멋진 다랭이 텃밭으로 조성해 놨다.
천남성
이정표
쉼터를 지나고…
상무주암에서 문수암으로 가는데, 문수암 0.8km이다.
지리주능선…
물참대
샘터
지리산자락은 항상 물이 풍부하여 참 좋다.
문수암 요사채
문수암(文殊庵)
옛 이름은 천인암 이었으며, 지금의 문수암은 1960년대에 지어졌다.
전하는 얘기로는 선학원 소속의 암자로 1965년 혜암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도봉 스님이 1984년부터 32년째 수행하고 있는 절이라고 한다.
도봉 스님은 1982년부터 도솔암에 있다가 1984년쯤 이곳으로 왔다고 하는데,
이 오지 암자에 전기가 들어온 때는 1991년이었다.
산 아래 도마 마을에서 견성골 골짜기를 거쳐 삼불사, 상무주암까지 전기가 들어왔다.
문수암 편액 또한 '신필(神筆)'로 소문난 원광 경봉스님의 작품이다.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인용굴)
이 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데,
아직 굴의 크기나 전설, 생성 유래에 대해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도봉스님은 이 굴에 대한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 굴은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 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문수암 도봉스님이 권하는 마가목차 한잔을 마시며
쪽마루에 앉아서 보는 천인굴 표면은 마치 사람 얼굴을 닮았다.
창암산…
문수암에서
삼불사로 가는데, 여기도 삼불사 0.8km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폐암자터 흔적???
삼불사 직전안부 바위에서 한숨 돌리고…
삼불사
조계종 총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등록된 절로써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 도랑으로 고지대에 있는 절인데, 사찰이라기보다는 암자라 해야 더 어울리는 곳이다.
삼불사의
석탑
다른 것은 후대의 것인 듯 하지만 석탑 앞의 용머리상 한 쌍은 연대가 좀 있어 보이고 예사롭지가 않다.
삼불사 화단의 복주머니란
삼불사 돌계단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려설 때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든다.
삼불사 아래
계곡은 견성골이고, 발 아래 마천면 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정면으로 왕산, 필봉이고 우측 능선에 함양독바위가 보인다.
애기수영
금낭화
삼불사에서 약수암으로 가는데, 이정표가 2.2km를 가르킨다.
걷기 불편한 너덜길이 10분가량 이어진다.
경남도계를 만나고, 삼정산능선(지리산 중북부능선)을 따라 약수암으로 간다.
조망이 확 트이는 진주강씨 묘를 지나고…
묘지 비석에 실리봉 아래 정승재라고 표시하고 있다.
바래봉…
산내면 일대…
삼봉산. 백운산…
지리상봉…
쭉쭉 뻗은 송림숲이 이어지는데, 완전히 웰빙 숲길이다.
이런 소나무 울창한 숲길에서는 더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힐링이 되겠지…
은난초가 끝물이다.
떼죽나무꽃
767.9봉 정상부
배낭을 내리고 남은 막걸리 한잔에다 와이프가 사준 맛 좋은 단팥빵을 먹고 간다.
산딸나무꽃
약수암 안부 경고판
좌측 바로 아래 약수암 지붕이 보이는데 줄을 쳐놓고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들어오면 안되는 이유 세 가지에다, 기어이 내려오면 다시 기어이 되올려 보낸다고…
미나리아재비 군락지
약수암(藥水庵)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에 속한 작은 암자인데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1724년(경종 4)에 천은스님이 처음으로 세웠고, 서영대사가 중수 하였다.
1901년(광무 5)에 지월대사는 일당을 중수하였고,
1918년에 예암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1937년에 함양(咸陽)의 불자 한정희(韓貞熙)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의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현재 화엄학림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 겸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약수암은
마당이 엄청나게 넓고 보광전이 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이 보광전은 채색은 운치가 있지만 후대작품이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목조탱화가 보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각 탱화는 천이나 종이 대신 나무에 조각한 불화로, 전국적으로도 흔하지 않는데,
아쉽게도 진품은 도난 방지를 이유로 본사인 금산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약수암에서 나오고…
넓은 임도가 기다리지만 뜨거운 햇볕이 싫어…
우측 샛길로 룰루랄라~
붓꽃
백운산…
조계암터…
산행종료지점인 실상사가 이제 지척이다.
지나온 삼정산능선…
실상사(實相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다.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다.
증각대사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켜 이른바 실상학파(實相學派)를 이루었고
그의 문하에서 제 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스님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신라 불교의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조선 세조때(1468)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실상사의 승려들은 숙종 5년(1680)까지 약 200년 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다.
또 순조 21년(1821) 의암대사가 두번째 중건을 했으며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 고종 21년(1884)에 월송대사가 세번째 중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실상사는 6. 25를 맞아서는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의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 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범종각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37호)
실상사 석등(보물35호)
보광전
실상사의 주법당으로 1883년(고종 20)에 방화로 조선 제일이라던 대적광전이 소실되자
1884년(고종 21)에 월송대사(月松大師)가 옛터에 지금의 보광전을 건립했다.
법당 내에는 본존불과 관음보살, 대세지 두 보살이 그 좌우에 봉안되어 있고,
본존불 뒤에는 아미타회상도가 걸려 있다.
약사전內 약사여래철불
광배는 없고 대좌만 갖추고 있다.
두 손은 나중에 만들어 붙인 것인데, 약사전에 봉안하기 전
근처 전야에 방치되어 있을 때 훼손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약사여래라 하면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것이 통례이나 이 불상은 약함을 들고 있지 않다.
명부전
원래 장육전 동편에 있던 것을 의암대사(義庵大師)가 길선당(吉禪堂) 터인 현 위치로 옮겼다 한다.
불전 안에는 명부시왕도가 걸려 있으며, 지장보살삼존상, 시왕상 10구, 판관상 6구, 인왕상 2구가 있다.
세월호천일기도단
돌솟대
친환경해우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자세가 편해야 근심이 술술 풀리는데 이리 불안해서야 나오던 근심이 도로 들어갈라고 한다.
해탈교 주변 여러개의 목장승
돌장승
해탈교
산행마무리를 하고, 잠시만에 도착한 함양군내버스를 타고 함양터미널로 이동하고…
주변에 있는 목욕탕에서 하룻동안의 땀냄새 제거후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하여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