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21 밀양/ 억산
일자: 2016.7.21
산행코스: 밀양.산내 원서리~석골사~새암터골~합수점~무지개폭포
~주능선~억산~팔풍재~대비골~석골사~원서리
인원: 홀로
GPS거리: 12.6km 널 널/7시간
07:00 사상서부터미널에서 밀양으로 이동
08:05 얼음골行 버스를 타고 원서리/원당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석골사로 들어가는 굴다리
석골교
운문남릉…
좌측 중앙에 흰바위봉…
무지개폭포는 그 좌측 골짜기에 숨어있다.
임진왜란 창의유적기념비
수리봉 들머리
석골폭포
석골사
오늘산행은 날머리가 석골사로,
원점회귀산행이므로 석골사는 오후에 들리기로하고 패스다.
새암터골 들머리
석골사 외부 화장실 맞은편 산불감시간판을 지나
10m가량 전진후 좌측으로 올라서야 된다.
갈림길
우측 오르막길은 흰바위봉으로 오르는 능선이라 계곡으로 향하는 좌측길로 내려간다.
가는로프가 걸려있는 바위
비탈진 바위벽에 가로줄로 가는 로프가 걸려있는데 새암터골로 들어가는 관문같다.
새암터골
계곡과 가까이 붙어가던 등로는 오르막길로 바뀌면서 계곡과 잠시 떨어져서 이어진다.
고마리
활량나물
이끼가 끼어있는 청정계곡인데, 수량이 없는게 흠이다.
계곡합수점
좌측계곡 작은 물길을 지나 갈림길에서 우측 급경사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너덜지대
이후 등로는 희미하게 끊어졌다 이어지고…
우측 물없는 계곡으로 치고 올라간다.
잠시후 물소리가 들려오며 물길을 만나고…
무지개폭포 입구다.
무지개폭포
바위벽을 타고 한줄기로 쏟아지는 폭포가 아니라,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폭포인데,
장마철 수량이 많은 맑은날에는 햇빛각도에 따라 무지개가 서릴 것 같기도 하다.
폭포우측 급경사 오르막길을 따라 폭포상단에 오르고…
건너편 산은 정각산인가???
선녀폭포
경사진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인데,
수량이 많을때는 볼만 하겠다.
이후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니 나무꾼폭포는
좌측아래에 떨어져있어 배낭을 내리고 내려가서 살펴본다.
나무꾼폭포
그렇게 계곡을 따라 오르다 평평한 암반지대를 만나고…
배낭을 내리고 션한 막걸리 한잔하며 한참을 쉬었다 간다.
이후 주능선을 향한 급경사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오를수록 입에서 곡소리가 난다.
비비추
여로
각시원추리
단풍취
그렇게 수리봉에서 억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오르고…
누군가 나무기둥에 석골사, 무지개폭포로 내려서눈 길목임을 표시해 놓았다.
숨 한번 고르고 우측 억산으로 간다.
개갈퀴
비비추
여로
땡겨보고…
흰바위봉 갈림길
우측 아래길은 석골사에서 흰바위봉을 거쳐 올라오는 길이다.
인제 부터는 룰루랄라~
헬기장
마타리
깨진바위
*승천 못한 이무기가 쪼갰다는 억산 “깨진바위”의 전설
옛날 대비사에는 고승 한 분과 동자승이 함께 살고 있었다.
스님과 동자승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어느날 밤 잠에서 깬 스님은
옆에 누워 있는 동자승의 몸이 마치 냉수목욕을 한 것처럼 차갑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다음날 자는 척하면서 동자승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을 빠져나간 동자승이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밤 살며시 동자승의 뒤를 밟은 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절 가까운 곳에 있던 연못으로 간 동자승이 옷을 벗고 들어가서는
이무기로 변신하여 유유히 헤엄을 치며 노는 것이 아닌가.
이무기는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모른 채 연못에서 나와
산 너머 이무기못안골로 가서는 빗자루를 들고 주변을 쓸어댔다.
결국 스님은 "네 이놈. 상좌야. 네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에 놀란 이무기는 슬픈 울음을 터뜨리며 날아올랐다.
이무기는 "아, 하루만 더 있으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 1000년 동안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는데…"라며
절 뒷산의 정상 바위를 꼬리로 내려친 뒤 그 너머의 호박소로 들어가버렸다.
억산의 명물인 깨진바위는 바로 이 이무기의 꼬리가 만들어낸 자국이며,
운문사 위 이무기못안골에 마치 빗자루로 쓸어 댄 것 같은 자국이
바위에 많은 것도 모두 그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억산(×953.6m) 정상부
억산(億山)은 억만지곤(億萬之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억만건곤(億萬乾坤)은 “수많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의 뜻으로
풍수지리적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명산 가운데의 명산'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억만산(億萬山) 혹은 덕산(德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범봉, 그리고
운문산은 구름에 가려…
대비지를 중심으로 좌측 개물방산(귀천봉), 중앙 해들게봉…
천황산…
물 한잔하며 숨 한번 고르고 깨진바위를 우회하여 내려간다.
대비골…
팔풍재
션한 바람이 불어와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해결하며 한참을 쉬었다가 간다.
마타리
각시원추리
참취
개갈퀴
산짚신나물
여로
하늘말나리
대비골 갈림길
도라지모시대
등골나물
대비골 상류
산죽지대
내려설수록 차츰차츰 수량이 많아지고…
너무더워 옷입은채로 머리박고…
알탕소
상운암계곡 갈림길
이후 이곳에 오면 항상 들리는 전용 알탕소로 이동하여
알
식히면서 한참을 쉬었다 간다.
억산 갈림길
아침에 올라갔던 새암터골 들머리다.
석골사(石骨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석골사는 본래 석굴사(石堀寺, 石窟寺)였으나 후대에 와전돼 석골사(石骨寺)가 되었으며,
석동사(石洞寺)라는 이름도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삼국유사에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을 도운
보양(寶壤)선사가 석굴사의 비허(備虛)선사와 더불어 형제가 되어
봉성, 석굴, 운문 등의 세 절을 왕래하면서 서로 교분을 가졌다는 내용을 통해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보양선사와 비허선사는 법형제(法兄弟)로서 같은 시기의 인물이다.
따라서 비허선사가 주석했던 석굴사는 적어도 왕건이 당시 후백제의 견훤을 치기 위해
원정을 나간 927년(신라 경순왕 1) 이전에 창건됐음을 알수 있다.
또한 석굴(石堀)이란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절은 큰 가람이 아니라
도가 높은 선승이 개창한 산중의 조그마한 기도 암자였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1735년(조선 영조 11)에 함화당(含花堂) 의청(儀淸)스님이 중건했다고 하며
이때 상운암(上雲庵)도 함께 중수했다고 한다.
운문산 정상 서쪽의 산을 함화산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인데,
상운암은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더울텐데, 물이나
한잔하고 가게…
무소유의 참뜻
가슴에 와 닿는 글귀
참나리
운문서릉 들머리
석골폭포 상단
사위질빵
참나리
원서리/원당마을
버스정류장
산행마무리를 하고…
잠시후 얼음골에서 나오는 밀양行 버스를 타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