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1 부산/ 금정산
일자: 2016.9.1
산행코스: 호포역~희망공원~임도~하늘릿지~고당봉~장군봉아래습지~임도~호포역
인원: 홀로
GPS거리: 14.15㎞ 널 널~/6시간30분
지하철2호선 호포역 2번출구로 나와 호포새마을로 향하는
지하도를 따른다.
호포새마을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진행한다.
금호사(金湖詞)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연안이씨 사당이다.
연안이씨(延安李氏) 중시조(中始祖) 판소부감공(判小府監公) 이현려(李賢呂)의 15세손인,
금호공(琴湖公) 이수생(李秀生)의 향사를 봉행하기 위하여 1810년(순조 10) 연안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1810년 건립된 후 1860년 금산리로 이축하여 향사를 올려왔으나,
당시 전국적으로 서원, 향사에 대한 철폐가 확산되자 잠정적으로 철향하였다.
1945년 문중의 결의에 의하여 다시 향사를 봉행하게 되었으나,
1993년 사당 부지가 도로 확장 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1994년 2월 가산리에 이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둘째 일요일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실질적인
산행들머리다.
마타리
등로는 호포마을희망공원을 가로질러 올라간다.
독사바위약수터
고추나물
철탑갈림길을 지난다.
계요등
이후 등로는 계곡을 우측에 두고 이어진다.
금정산둘레길 임도
좌측은 마애불로 올라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10m가량 진행하면 하늘릿지로 올라가는 길이다.
산박하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후 계곡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바위지대를 좌측으로 우회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반겨준다.
로프가 걸린 큰 바위지대
올라서니 다시 떨어지고…
지나온 바위지대는 직접 오르지말고 우측의 우회길로 진행하는게 더 나아보인다.
여래입상갈림길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철사다리
누가 설치했는지… 복 많이 받으십시요. ㅎ
참취
바위전망대
낙동강 너머 동신어산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
낙동강. 물금. 양산신도시. 오봉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분재같은 소나무
바위지대로 올라서고…
일명: 통천문
하늘릿지가 열리는 문이다.
좁은 바위 틈새를 통과하면 좌우측으로 큰 바위군이 계속된다.
잠시후 산죽길로 내려서고…
다시 올라서면 들쑥날쑥한 바위군을 만나는데, 이러한 길이 몇 차례 반복된다.
지나온 하늘릿지…
로프지대
로프를 잡고 몸을 바짝 당긴후 엉덩이를 바위틈에 올리면 쉽게 올라설수 있다.
올라와서 바라본…
지나온 하늘릿지…
그렇게 하늘릿지는 계속 이어진다.
일명: 개뼉따귀바위맞제???
지나온 하늘릿지…
하늘릿지 정상부
다방리에서 올라오는 금정산 북릉…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이 음각된 벼랑
청아하게 울리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지나온 하늘릿지…
금정산 고당봉
금정산 산사면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기암괴석들이 멋진데…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으로 불리는 기암괴석이다.
마지막 릿지를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더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이 음각된 바위벼랑을 살펴보고…
-가산리 마애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높이 12m.
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둥글고 봉긋한 육계(肉髻)가 표현되었으나 희미하다.
눈썹은 깊이 새겨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눈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작고,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어깨는 약간 각지게 나타내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어깨로
가로지르는 한 단의 옷섶이 비교적 둥근 사선을 그리기 때문에 가슴이 많이 드러나 보인다.
무릎 아래쯤에는 두 줄의 완만한 V형을 그리는 법의 끝단이 남아있으나
불상을 표현한 각선(刻線)이 매우 얕고 가는데다 마모가 심하고
바위 여러 곳에 균열까지 있어 천의(天衣)의 형태나 세부 주름 표현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없다.
수인(手印) 또한 명확히 알아볼 수 없는데 오른손은 가슴부근까지 들어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뜨린 표현으로 짐작된다.
광배(光背)는 알아볼 수 없으나 대좌는 단판의 꽃잎을 선각한 연화대좌로 추정된다.
표현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여 분명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상호의 표현이나 각진 어깨선 그리고 거구의 신체에 생략된 선들과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표현들에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낙동정맥 주능선으로 올라서고…
오이풀
개여뀌
짚신나물
사상자 맞나???
산형과식물은 너무 어려워…
지나온 하늘릿지
금정산 고당봉이 지척이다.
금정산은 부산의 시작이며 끝이다.
그리 크지 않은 산세지만 곳곳에 울창한 숲과 골이 이루어져 있어, 부산시민들의 모태가 되는 산이기도 하다.
화강암의 풍화가 격렬했던 탓인지 곳곳에 기암절벽이 절묘하고, 크고 작은 금정의 봉우리들이
능선을 따라 연결된 곳에는 넓은 분지를 형성해 자리한 금정산성 마을이 있다.
산성마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축조된 금정산성안 촌락으로 해발 8백10m의 산 정상에 서서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왜 국내 최대규모의 산성을 쌓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서쪽으로 낙동강 하류 대저 땅과 북의 양산지계까지 내려다 보이고, 동으로 수영강과 회동저수지,
온천천, 동래읍성지역 등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탓에 왜구의 움직임을 소상히 알 수 있었으니
금정산성과 마을의 역사와 전설은 곧 호국의 이념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상바위???
고당봉정상부가 지척이다.
금정산 고당봉
"부산의 진산(鎭山) 금정산 정상 고당봉에 세워진 표석이 낙뢰를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고당봉 표석이 망가진 것은 1994년 12월 건립 이후 처음이다.
고당봉 표석이 파손된 날은 지난 1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부산 전 지역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면서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801.5m)에 세워진 표석이 낙뢰를 맞고 부서졌다.
사고 당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정상으로 향한 등산객이 없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금정산 고당봉 표석은 가로 60㎝ 세로 40㎝ 높이 1.2m 규모로 1994년 12월 세워졌다.
표석 앞면엔 고당봉 이름과 해발 높이를,
뒷면엔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 선생의 시 '금정산'을 새겼다."
-부산일보(2016.08.02)-
금정산성 북문. 원효봉, 의상봉…
낙동강. 물금. 양산신도시. 오봉산…
금정산 북릉일대…
계명봉. 희미한 천성산…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고, 되돌아 내려간다.
개여뀌
개쑥부쟁이
가산리 마애여래입상 갈림길
습지보호지역
오늘 목표한 곳이 고산습지라 부득히 줄을 넘어 좌측 습지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금정산 북쪽능선 고산습지/ 좌측
금정산 북쪽능선 고산습지/ 우측
금정산 북문 습지와 남문쪽 수박샘 인근 습지는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크게 훼손돼 있지만 이곳 습지는 아직까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후 습지를 지난후 산죽터널이 시작되고…
다시 계곡을 2차례 건너 진행하게 된다.
멋진바위를 지나고…
호포와 사송을 연결하는 금정산누리길 임도 상단부
무슨(?) 터를 다지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그냥두면 좋을걸…
며느리밑씻개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 금정산누리길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이곳에서 점심묵고가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대는 이곳 정자에 배낭을 내리고 막걸리 한잔하며
점심까지 해결하고 한참을 쉬었다 간다.
수까치깨
나중에는 이런데서 살고싶은데. 그꿈이 실현될려나…
금산마을갈림길/ 임도차단기
가산마을 주민식수원 계곡
계곡을 건너는데 두 개의 경고판이 서 있는데 “사유지로서 무단 출입을 삼가해 달라”,
“가산마을 주민 식수원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냇가의 출입을 금한다”라고 적혀있다.
박주가리
개쑥부쟁이
이후 자갈 임도와 시멘트 임도를 번갈아 밟으며 다시금 서서히 고도를 올리고…
금정산누리길/ 가산임도삼거리
우측으로 진행하면 아침에 올라온 가산리 마애석불입상갈림길이 있는 임도가 지척이다.
무릇
가산리 마애석불입상 갈림길
계곡으로 내려서고…
계곡에는 물이 너무없다.
아쉬우따나 이곳에서 족탕으로 더위를 식히고…
남은 막걸리 떨이하며 한참을 쉬었다 간다.
계곡우측습지…
주름조개풀
개맥문동
개쑥부쟁이
호포마을희망공원內 정자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데 눈이 절로 감긴다.
30분 낮잠자고…
금호사를 지나고…
호포새마을 새동네
-호포리(湖浦里)의 유래-
금정산에서 낙동강쪽으로 여러 능선을 이루며 밀려나와 있는 지세로 볼 때,
풍수상의 요수다의복호망월(妖獸多疑伏狐望月)형이라,
즉 요사하게 의심을 품은 여우가 김해 월촌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여우 호(狐)자가 붙게 되었고, 낙동강변 포구(浦口)로서 포(浦)자가 붙었다고…
마을의 형성은 신라 초기부터 가야와의 국경지대로 방어 군대가 주둔하면서 군인이 점령한 곳이고,
그 취중 보급관계로 인한 사람들이 가산 중리 마을 부근에 거주하였으며,
그 후 호포진(弧浦津), 원(院)등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해상 교통의 거점으로서
가산리 도요지가 국영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때 호포원(弧浦院)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곳의 도자기가 먼 곳까지 수출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성촌의 내력은 신라 초기 경주설씨(慶州薛氏)가 먼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그 후손이 없다.
본격적인 성촌은 1905~1930년까지 경부철도 공사 때 호포 철교공사 인부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1925년 행정구역 명칭 변경 때 지금의 호포(湖浦)로 변경되었다.
지하철2호선 호포역
산행마무리를 하고…
호포역 화장실에서 땀냄새 제거후 옷 갈아입고, 개금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