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8 영남알프스/시살등
산행일자: 2012.7.8
산행코스: 태봉/배내골버스종점~청수골입구/파래소2교~631봉~705봉~장선리갈림길~707봉~883봉~폐헬기장
~신동대굴갈림길~신동대굴~신동대굴갈림길~시살등/981봉~949봉~통도사임도갈림길~임도~410봉~356.7봉
~안부갈림길~자장동천~자장암~통도사~통도사매표소
GPS 거리:14.35㎞
산행시간: 7시간30분/ 중식시간포함. 널널~산행
06:40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목포行 무궁화열차를 타고 원동역에서 내리고~
07:40 원동역에서 배내골/태봉行 버스를 타고, 08:20 배내골 버스종점에서 하차후 곧바로 출발이다.
원동방향으로 100m정도 진행하여 좌측으로 태봉교를 건너고~
옛날의 배내골/ 배내천이 아니다.
태봉교를 건넌뒤 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지구 방향의 도로를 따르고~
08:32 청수골 건너 청수골가든·펜션이 보이는 파래소2교 앞에 도착한다.
청수우골
청수좌골
이곳에서 파래소2교를 건너지 않고 다리 앞에서 우측 쇠사슬 차단 줄을 지나 축대가 쌓인 길로
100m 정도 오르면 넓은공터 끝지점 위쪽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뭘(?) 또 만들려는지 온 산을 깍아 놓았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08:45 출발하여 정면의 완만하고 뚜렷한 길 대신 좌측의 오르막길로 진행한다.
초반부터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08:57 등로 좌측으로 어른 두사람이 감싸야 할 만큼 덩치 큰 소나무가 나타나고~
곧바로 경주이공묘를 지난후부터 등로는 잠시 완만해진다.
송이모듬터 인가???
이후 등로 좌우로 보기좋은 굵은 소나무가 수시로 나타나면서 밋밋한 631봉을 지난다.
09:17 산죽밭이 시작되고~
좌측 멀리 나무가지 사이로 구름을 끼고있는 신불산과 영축산이 언뜻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705봉은 오르지않고 등로는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우회하도록 되어있다.
또 다른 즐거움(1)
09:30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갈림길에 도착하고~
우측은 장선리(1.5㎞)로 가는 길이고 시살등(1.9㎞)은 능선 따라 직진이다.
잠시후 온갖 잡초들이 점령한 폐헬기장을 지나고~
서서히 시작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한동안 올라서니 정면으로 큰 바위가 등로를 막고있다.
09:50 그렇게 바위 우측 옆으로 돌아 오르니 배내골 건너편으로 향로산이 잘 조망된다.
09:55 큰 소나무 옆 바위전망대에 도착하고~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향로산과 재약산의 전경
이 좋은곳에서 그냥 갈수있나? 막걸리 한잔하며 타국으로 떠난 친구를 생각한다.
10:15 배낭갈무리후 다시 출발하고, 완만한 등로를 따라 룰루랄라하며 진행하고~
10:22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며 블록으로 만든 헬기장을 지난다.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등로는 928봉으로 곧장 오르지않고 좌측 사면으로 진행하도록 되어있고~
10:27 Y자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고~
10:30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갈림길인데~
이정표에는 진행 방향으로 “장선팜스테이마을” 시살등 방향으로 “양산 통도사” 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누군가 이정표 위에 화살표와 함께 신동대굴이라고 표시해 놓았다.
이곳에 배낭을 두고 GPS와 디카만 소지한체 우측길로 들어서니 조금전 직전의 삼거리에서
갈라진 우측길과 만나고~
좌측으로 구름이 오룡산 방향의 능선길을 온통 가둬놓고 있다.
10:34 전방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나타나고~
잠시 뒤 바위 아래 깊숙이 들어선 제법 넓은 동굴이 나타나고, 일반 동굴처럼 안으로 깊어지는것이 아니라
폭이 40~50m로 넓고 높이는 2m 정도, 안쪽으로 10m 이상 들어가 있다.
바위틈으로 떨어지는 물맛이 직이삔다.
10:45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오고~
배낭 둘러메고 다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가팔라졌다 완만해지를 반복하고~
10:57 시살등 정상부가 가까워지면서 숲 그늘을 벗어난다.
또 다른 즐거움(2)
그렇게 오르니 좌측으로 구름이 쇼를 시작하고~ 흡사 산불이 난 것 같잖아?
뒤돌아본 신동대굴이 있는 928봉과 그뒤의 영남알프스 전경
11:03 시살등 정상에 도착하니 구름이 온 산을 감싸기 시작한다.
날이 맑으면 기가막힌 조망을 연출하는곳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11:10 우측 오룡산 방향의 능선길을 걷다보니 이넘들이 수시로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하고~
그렇게 진행하다 949봉을 지나고~
11:22 배내골 방향으로 확 트인 조망을 바라볼수있는 바위전망대를 만나고~
아침에 산행시작한 태봉교옆 파래소리조트 유스호스텔이 저 아래에 보인다.
건너편으로 바라본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영축지맥 마루금
하늘을 향해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다.
또 다른 즐거움(3)
11:30 이정표가 있는 안부삼거리 갈림길인데, 직진하면 오룡산으로 이어지지만 오늘은 요만큼,
하산로는 이정표가 가르키는 “통도사 임도(1.3㎞) 방향 좌측 내리막길이다.
근처 적당한 공터에 자리잡고 휴식하던차에 아예 점심까지 해결하고, 12:15 다시 출발이다.
이후 시작되는 내리막길은 초반부터 가파른데 어제 비가 내려 흙길이 습기찬데다가
돌이많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이다.
12:26 약한 물소리가 나는 계곡상류을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길인데 중간중간 등로가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다.
서서히 수량이 많아지고~
12:45 작은 폭포(?)를 만나고~ (올해 첫 알탕소)
한참을 물속에서 노닥거리다가 의관정제(衣冠整齊)하고 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내려가니
돌길이 잘 허물어져 내리고 조심, 또 조심이다.
13:10 임도와 만나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능선을 타고 넘어 금수암으로 이어지는데 가야할 길은 우측이다.
13:14 비포장 임도로 등로가 바꿔지고~
13:20 임도가 180도 가까이 휘는 지점에 넓은 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이후 완만한 등로를 따라 410봉, 356.7봉을 차례로 지난후에 갑자기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13:42 안부에 내려서니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진다.
13:45 자장동천 계곡상류에 내려서니 맑은 계류가 암반을 타고 흐르고~
이후 자장동천 아지트(?)에 도착후 알탕으로 열을 식히고 한참동안 휴식이다.
14:30 다시 출발하여 넓고 편안한 길을 따르고~
14:45 자장암(慈藏庵)의 전경
관음전 뒤로 돌아가면 바위벽에 자장스님이 신통력으로 뚫었다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신라 진평왕 때 승려인 자장이 이 바위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할 때 두 마리 개구리가 곁을 떠나지 않자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이 들어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4:55 자장암을 내려서서 도로를 따르다 바라본 영축산과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15:05 표전교를 건너기 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차단봉이 있는 길로 들어서고~
통도천
15:10 통도사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모든이의 성불을 기원한다.
통도사(通度寺)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 대국통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欄袈裟) 대장경을 봉안한 불보사찰이라 한다.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는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모셔온 것이다.
이때 당나라 황제가 하사한 막대한 양의 비단과 채색옷감, 대장경 400권, 불교용 깃발(幡幢),
꽃으로 장식된 가리개(花蓋) 등을 함께 가져와 통도사를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며 왕실과 대중의 비호속에 한국 불교의 구심처로 자리 잡았고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서 사신이나 귀족들이 고려에 올 적에는 가장 먼저 통도사에 참배하였다.
조선시대의 억불과 임진왜란에도 굴하지 않고 중창을 통하여 면면히 법등(法燈)을 이어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전국 16개 대표사찰가운데 경상남도의 대본산(大本山)이 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 본사(本寺)로 국내 최대의 사찰을 형성하여 구하(九河) · 경봉(鏡峰)대선사와 같은
고승이 계셨으며, 이후로는 대한불교 조계종 9대 종정을 역임하신 월하대종사(月下大宗師)를 배출하였다.
현재는 원명지종스님께서 방장으로 중생들을 제접하고 있다.
이처럼 대국통 자장스님의 원력과 혜안에 의하여 창건된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는
면면이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진가가
잘 드러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제1적멸보궁이기에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는 사찰로 유명하다.
정자형(丁字形) 법당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將舍利條)에 의하면
“선덕왕때인 정관(貞觀) 12년 계묘년(癸卯 643)에 자장율사스님께서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두골(佛頭骨),
부처님의 치아(佛齒)등 사리(佛舍利) 100립과 부처님이 입으시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3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皇龍寺塔)에 두고 일부분은 태화사탑(太和寺塔)에, 일부분은 가사(袈裟)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라고 하였다.
계단은 2층으로 상층(上層) 가운데에 범종 모양을 하고 있는 석개(石蓋)를 안치하였다.
이는 통도사의 불사리 금강계단과 함께 부처님의 친착가사(親着袈裟) 봉안 사실을 전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본래 금강계단이 축조되기 이전 통도사는 큰 못이었다.
창건주 자장스님께서는 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통도사를 창건하셨다.
자장스님께서 당나라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除寺)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문수보살은 승려로 화하여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 알,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등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와 손가락 뼈이다.
그대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沙門)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이후 신라대국통 자장스님께서 귀국하여 선덕여왕과 함께 축서산을 찾아서 독룡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한후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계단을 설치 하셨다.
위의 기록을 통하여 통도사가 창건되기 이전의 그 땅은 매우 큰 연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경내 상로전 구룡지와 하로전 못의 수면을 보면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에 의하면 스님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인데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한다.
이후 오랜만에 통도사 경내를 관람하고~
영축총림
15:50 통도사 입구에 도착후 산행마무리를 하고~
신평터미널로 이동, 곧바로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