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갈맷길3코스-1구간 (오륙도-부산진시장)

제이제이 2013. 7. 15. 09:55

일자: 2013.7.14

답사코스: 오륙도~신선대~동명오거리~UN공원~부산외국어대학교~문현동/장고개~자성대~부산진시장

gps거리: 17.8km  ~5시간20

 

부산지하철2호선을 타고 경성대.부경대역에서 지하철역에서 5번출구로 빠져나와 131번 버스 갈아타고~

오륙도에 도착, 부산의 해안을 잇는 갈맷길(263.8km)”3코스 제1구간을 걸어본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안에 있는 해파랑길 안내소

 

이곳은 갈맷길2코스와 3코스의 갈림길이지만 또 다른 해파랑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를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광역걷기길인데 아름다운 동해안에

해변길, 숲길, 마을길, 해안도로 등이 끊이지 않게 선형으로 이어지는 국내 최장거리 탐방로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각 지역단체가 뜻을 모아 조성한 동해안을 따라 걷는

10개구간, 50개코스, 770km의 길이며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조사 을 붙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 이란 뜻이다.

 

해파랑길 시작지점

 

오륙도 앞은 남해와 동해의 분기점 이기도 한데~

섬의 기준으로 좌측이 동해이고, 우측이 남해이다.

 

한가한 오륙도 선착장

 

지난구간 걸어왔던 길

 

가슴이 확 트인다.

 

갈맷길 3코스 안내판

 

보는 사람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오륙도(五六島)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24호로 지정

올망졸망 모인 6개의 섬이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5개로 보인다고 해서 오륙도라고 이름 붙여 졌는데,

방패섬과 솔섬의 중허리가 밀물 때 물이 들면 두섬이 나눠져 6개의 섬이 되고, 썰물 일때는 하나로 붙여져 5개의 섬으로 보인다.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한 나란히 서있는 섬들이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사 되어 오륙도라 한다고 기록된 것에서 비롯된다는데~

 

육지에서 가까운 섬으로 세찬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방패섬,

섬의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솔섬,

갈매기를 노려 독수리들이 모여들었다는 수리섬,

작고 모양이 뾰족하게 생긴 송곳섬,

가장 큰 섬으로 커다란 굴이 있어 천정에서 흐르는 물이 능히 한사람 몫의 음료수로 충분하다는 굴섬,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고 평탄하여 밭섬 이라고도 하였다는 등대섬으로 나뉜다.

등대섬은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불리어졌으며, 오륙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기도 하다.

 

옛날 오륙도는 육지에서 이어진 하나의 작은 반도였으나, 오랜 세월은 거치는 동안 거센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것은 육지인 승두말과 방패섬, 솔섬의 지질구성이 동일한데서 추정된다고 한다.

부산항을 드나드는 각종 선박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오륙도는 대한민국의 관문이며, 부산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륙도를 바라보면 오륙귀범(五六歸帆)이란 말이 생각하는데~

옛날 어선들이 오륙도를 지나 해운대로 귀향할 때 흰 돛과 붉은 노을, 갈매기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였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백운포고개

 

시원한 바다풍경을 보여주는 백운포의 전경

 

옛날 용호동 동쪽해안 절경지를 백운포라고 불렀다하는데, 이곳 앞바다에는 거북돌이라는 차돌이 많이났고

파도가 치면 차돌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신선대로 향하여~

 

 신선대(神仙臺,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9)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산 185번지 일대에 위치

신선대는 황령산에서 뻗어나온 산등성이가 부산만에 몰입하여 형성된 우암반도의 남단인데

이곳은 화산암질로 된 해안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 발달된 해식애와 해식동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용당동 해변 좌측에 위치한 바닷가 절벽과 산정을 모두 말하는데~

 

신라말 ‘최치원’선생이 신선이 되어 이곳에서 유람하였다고 하며,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어 신선대란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옛날에 이곳 가까이 가면 신선들이 노는 풍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동래군지(東萊郡誌, 1937)』고적조에 신선대는 “군()의 남쪽 30리 부산의 동쪽에 있으며,

산 정상에는 최천학(崔天學)의 무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오륙도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 이곳에서 신선들이 노는 풍악소리가 들려 왔다고 하며 주위는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그리고 신선대 주변의 산세가 못을 둘러싼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이 일대를 용당(龍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신선대를 절단하여 도랑을 만들 때 사토에서 혈흔이 나왔다는 말도 전해지고,

해방후에는 협소했지만, 양질의 모래사장과 수려한 경치 때문에 해수욕장으로 활용되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동명목재상사가 들어서면서 공장지대로 변했고,

현재는 신선대 컨테이너부두가 잠식하여 주변 경관이 많이 바뀐 곳이다.

 

컨테이너부두가 들어서기 이전의 신선대 전경 (퍼온사진)

 

보기좋아~ 

 

무제등 갈림길

 

무제등 정상부의 전경

 

신선대 전망대

 

태종대. 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 방향의 전경

 

영도 전경

 

북항대교 뒤로 낙동정맥상의 구덕산과 엄광산 산줄기를 바라보고~

 

역동적인 신선대부두의 전경

 

해군작전사령부

 

오륙도

 

땡겨보고~

 

영국인들의 부산방문 기념비도 있는데 1797 10월 영국해군 소속 프로비던스호가 이곳 용당포에 상륙하여

주민들과 최초의 접촉을 가졌고, 이 기념비는 ‘윌리암 부로우턴’ 함장의 부산방문 2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부산항을 정밀하게 측량 관측했던 지점에 건립했다 합니다.

 

저 멀리 장산을 바라보고~

 

오륙도. 백운포

 

나무사이에 둘러쌓인 오륙도

 

2500원이란 가격이 어울리지 않은 멋진 비쥬얼을 가진 신선대매점의 팥빙수

 

UN기념공원으로~

 

용호동 뒷산인 봉우리산의 전경

 

동명불원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를 지나고, 동명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서 UN공원 방향으로~

 

동명대학교 정문

 

평화공원

 

지금 위치는?

 

 

대연수목전시원 內에 있는 아열대식물체험관

 

무궁화 종류가 이렇게도 많을줄이야?

 

 

 

 

 

 

 

UN기념공원

 

이곳은 1950 6.25전쟁에서 싸웠던 유엔군 장병이 바친 봉사와 희생을 찬양하기 위하여 설치된 기념공원 인데,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여러나라의 영웅적인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는곳이다.

 

최연소 전사자(17) 도은트의 이름을 딴 도은트수로

 

부산문화회관으로 갈맷길은 이어지고~

 

 

부산외국어대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안내판

 

부산외국어대학교 정문을 지나고~

 

부산외국어대학교 후생관옆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외국어대학교 후문으로 빠져나와서~

 

갈맷길표시를 따라 유엔로까지 내려간후  성지고등학교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한다.

 

우암동 일신보라아파트 옆 계단을 오르고~

 

현재 위치는?

 

신연초등학교를 지나 관해암과 군부대쪽으로 진행한다.

 

뒤돌아본 우암동 전경

 

우암동 도시숲 공원

 

도시숲 공원에서 바라본 전경

 

지장사를 지나고~

 

보기좋다.

 

문현동 장고개의 전경

 

 

문현동 곱창골목

 

이 집이 영화 친구촬영장소라 카네요.

 

동천/ 예전보다는 수질이 좋아진듯 한데? 그래도???

 

부산진지성(釜山鎭支城) 안내도

 

자성대(子城臺)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99(범일동)

조선시대에 만든 부산성의 한 부분으로 공식적인 이름은 부산진지성(釜山鎭支城)이다.

 

부산포에는 내성과 외성이 있었는데, 내성(內城)인 본성(本城)은 현재 정공단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뒷산인 증산을 둘러싸고 있던 성이고, 자성대는 그 외성(外城)으로 쌓은 것인데

임진왜란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선조 26년에 왜장 모리(毛利輝元) 부자가 부산성을 헐고 왜성(倭城)으로 다시 쌓았다.

소서성 ·환산성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왜군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다.

 

왜군을 몰아낸 뒤에는 명나라 만세덕 휘하 군대가 머물러 만공대라고도 했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성과 사대문(진동문(鎭東門 : 동문), 금루관(金壘關 : 서문), 종남문(鐘南門 : 남문), 구장루(龜藏樓 : 북문)를 세우고

관아를 정비한 후 부산진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좌도수군첨절제사의 숙소로 쓰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라는 명목으로 성을 철거하고 자성대 일대 해면은 매축되어 옛모습을 잃었다가

1974년 이후 복원 작업을 거쳐 동문/건춘문(建春門이라고 고침), 서문, 장대(將臺, 鎭南臺)가 그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 남아있는 성지(城址)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고 10 미터에 최저 1.5 미터이다.

1972 6 26 부산광역시 기념물 7호로 지정되었다.

 

진동문(鎭東門 : 동문) 이후 건춘문(建春門이라고 변경

 

금루관(金壘關 : 서문)

 

서문 성곽의 양쪽에는 두개의 성곽 우주석이 서있는데~

남요인후 서문쇄약 (南徼咽喉 西門鎖鑰)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는 뜻이다.

 

영가대(永嘉臺)

 

1614(광해군 6)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이 부산진성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바다에서 퍼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겨 이곳에 나무를 심고 만든 정자이다.

1617년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출항할 때 이곳에서 용왕에게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올렸고

그후로 역대 통신사들의 출항지가 되었는데, 1624(인조 2) 선위사 이민구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원래 있었던 곳은 지금의 성남초등학교 서쪽이었는데,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철거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2003년 동구청에서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자성대의 제일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는 진남대(鎭南臺)

 

이곳이 북문인가???

 

부산진시장

 

부산을 대표하는 전국3대 재래시장으로 조선영조46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보면 조선의 문물을 일본으로 전하는

조선통신사가 영가대(永嘉臺)에서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내고 일본으로 출발하였다는데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장이 형성됨으로써 부산진시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산진성 서문 밖에 있는 미곡과 건어물의 집산지로 4일과 9일장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어

부산진시장의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수있다.

1913년 상설시장으로 개장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백년의 전통을 간직한 혼수.의류 특화 전문시장이다.

 

갈맷길 3구간 1코스종점과 2코스 시작점인 범일2동 주민센터 앞

 

시원한 냉커피 한잔으로 오늘구간 답사 마무리를 하고~

좌천동으로 이동 67번 버스를 타고 개금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