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 잎은 절로 붉다
가을산 잎은 절로 붉다 / 靑梅禪師
大朴無形一大空 [대박무형일대공]
無聲無臭有無中 [무성무취유무중]
春風何處無花發 [춘풍하처부화발]
霜灑秋山葉自紅 [상쇄추산엽자홍]
큰 박은 형상을 떠난 하나의 큰 허공
소리도 냄새도 없이, 있고 없음의 저쪽
봄바람에는 어느 곳이나 꽃 없는 데 없으나
가을 산 서리 내리면 잎은 저절로 붉다
어느 속사가 선사께 여쭈었다.
“천당이나 지옥이 있읍니까”하니
“있다”고 대답하자, 속사가 다시 말하기를
“다른 스님은 없다 합디다”했다.
그 선사는 묻기를 “너는 처자가 있느냐”
“있습니다” 하니 선사 다시 묻되
“아까 그 스님이 처자가 있느냐” 하니
“없지요” 했다. 선사는
“그러니까 그 스님은 천당지옥이 없다해야 하지 않느냐”
했다는 것이다.
위 시는 이 사실에 대해 靑梅선사가 읊은 시이다.
청매선사가 이 시를 지을 당시는
지구가 둥글다거나 스스로 구른다는 과학적 논증까지는
아직 정립되지 못한 시기이겠지만,
이미 이 우주에 있어서의 지구는 하나의 구형으로
그 무한의 거대함을 인식한 셈이다.
여기서 말한 큰박은
이 우주 내지는 지구의 짜임새를 말한 것이다.
형상이 없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관대 무변하기에
형상지을 수 있는 표현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을 허공이라 할 수도 있겠다.
불가에서 우주를 33천이라 했던 예지를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다 소리니 냄새니, 있다거나 없다거나 함은
그 존재의 실체와는 아무 의미 없는 군말이다.
그렇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잎이 지는 것이
또한 지구 존재의 실체이다.
피어 있는 꽃에서 단풍을 의식하지 못함은
꽃 그 자체에 집착된 매달림이다.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이 그 처지에서의
있고 없음이지 처지가 다르면
지옥이 천당이고 천당이 지옥일 수도 있다.
처자식이 없는 스님의 처지가
세속의 가족적 결박의 속인과 같을 수 없으니,
‘있다’의 대답은 세속을 인접함이요
'없다'의 대답은 산중의 생활일까.
봄꽃 가을 단풍의 대척이 바로 삶의 음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