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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잎은 절로 붉다

제이제이 2014. 11. 6. 07:14

가을산 잎은 절로 붉다 / 靑梅禪師

 

大朴無形一大空   [대박무형일대공]

無聲無臭有無中   [무성무취유무중]

春風何處無花發   [춘풍하처부화발]

霜灑秋山葉自紅   [상쇄추산엽자홍]

 

큰 박은 형상을 떠난 하나의 큰 허공

소리도 냄새도 없이, 있고 없음의 저쪽

봄바람에는 어느 곳이나 꽃 없는 데 없으나

가을 산 서리 내리면 잎은 저절로 붉다

 

어느 속사가 선사께 여쭈었다.

“천당이나 지옥이 있읍니까”하니

“있다”고 대답하자, 속사가 다시 말하기를

“다른 스님은 없다 합디다”했다.

 

그 선사는 묻기를 “너는 처자가 있느냐”

“있습니다” 하니 선사 다시 묻되

“아까 그 스님이 처자가 있느냐” 하니

“없지요” 했다. 선사는

“그러니까 그 스님은 천당지옥이 없다해야 하지 않느냐”

했다는 것이다.

 

위 시는 이 사실에 대해 靑梅선사가 읊은 시이다.

 

청매선사가 이 시를 지을 당시는

지구가 둥글다거나 스스로 구른다는 과학적 논증까지는

아직 정립되지 못한 시기이겠지만,

이미 이 우주에 있어서의 지구는 하나의 구형으로

그 무한의 거대함을 인식한 셈이다.

여기서 말한 큰박은

이 우주 내지는 지구의 짜임새를 말한 것이다.

 

형상이 없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관대 무변하기에

형상지을 수 있는 표현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을 허공이라 할 수도 있겠다.

불가에서 우주를 33천이라 했던 예지를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다 소리니 냄새니, 있다거나 없다거나 함은

그 존재의 실체와는 아무 의미 없는 군말이다.

그렇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잎이 지는 것이

또한 지구 존재의 실체이다.

피어 있는 꽃에서 단풍을 의식하지 못함은

꽃 그 자체에 집착된 매달림이다.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이 그 처지에서의

있고 없음이지 처지가 다르면

지옥이 천당이고 천당이 지옥일 수도 있다.

처자식이 없는 스님의 처지가

세속의 가족적 결박의 속인과 같을 수 없으니,

‘있다’의 대답은 세속을 인접함이요

'없다'의 대답은 산중의 생활일까.

 

봄꽃 가을 단풍의 대척이 바로 삶의 음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