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經) 강해(講解)를 시작하며~
-금강경(金剛經) 강해(講解)를 시작하며-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도중에 혼란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경전공부, 참선, 기도 ,염불,
천도의식(薦度儀式)등을 비롯하여 불교라는 거대한 산에 오르는 길이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경전공부 하나만을 살펴보더라도 그 종류가 너무 많다.
무엇을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지, 불교공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막막해지기 일쑤다.
그런데 “금강경”은 불교라는 거대한 산맥에 비유해 볼 때, 그 산을 향해 오르는 여러 길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가로질러가는 깨달음의 길이라 할수있다.
“금강경”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
(一切諸佛及 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제8장에서)
“금강경”을 잘 이해하면 불교를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인생과 삼라만상의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금강경”의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우리가 “금강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를 줄여서 일컫는 것이다.
범어(梵語)로는 Vajra-Prajna-Paramita-Sutra라고 한다.
그 뜻을 풀어보면 “금강(金剛)”이란 다이아몬드로서 그 성질이 견고하여 날카롭고 빛나는 것인데,
깨달음에 의한 지혜 즉 반야를 비유한 것으로서 견고하고 날카로운 지혜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잘라서 제거한다는 의미다.
삶을 살아가는데서 만나는 온갖 고통과 어둠을 쓸어버림으로써 성공적인 삶이 열어가는 것이다.
'반야(般若)'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고, 지혜는 흔히 빛으로 표현된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빛이 있으므로 사물을 분별하여 평탄한 길과 길이 아닌 곳을 분별한다.
마음속에 지혜의 빛이 있을 때 인간의 삶은 유익하고 보람되며 행복할 수 있다.
반야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런 역활을 한다.
“바라밀(波羅密)”은 제대로 말하자면 바라밀다(波羅密多)인데,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 언덕은 미혹한 중생들이 삼독(三毒))으로 인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번뇌로서
업(業)을 짓고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어두운 삶인 반면에 저 언덕은 반야의 지혜로서
모든 번뇌와 미혹이 사라진 곳이다.
번뇌와 미혹이 없으므로 어떠한 불행과 어둠이 없이 오로지 밝은 행복만이 넘치는 삶이다.
요약하자면,『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며 날카롭고
빛나는 깨달음의 지혜로서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평화와 행복만이
있는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의 지혜는 사람 사람이 모두 다같이 지니고 있다.
부처님 같은 성인(聖人)도 어리석은 범부(凡夫)도 평등하게 지니고 있다.
성인(聖人)은 그것을 찾아내어 자신의 삶에 활용하는 것이요,
범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미혹한 범부들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시려고 경전이라는 방편을 빌려서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금강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자신 속에 있는 반야를 찾아내는 것이다.
불교경전 전체를 일컬어 흔히 팔만대장경(高麗大藏經)이라고 한다.
이 팔만대장경은 양이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편집시기와 내용에 따라서
분류를 하다보면 대략 두 가지의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전통적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일생 동안 설법하신 49년간의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고 분류하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교교리가 오랜 기간을 두고
발달해 왔다는 관점에서 교리발달사적인 시각으로 분류하는 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부처님의 80생에 49년간의
교화(敎化)기간에 배정해서 팔만대장경을 분류 해오던 분류법을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깨달음의 세계를 남김없이 다 표현했다고 하는 화엄부(華嚴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인데, 그 기간은 성도(成道) 직후의 21일간이다.
둘째, 깨달음의 내용을 설해도 알아듣는 이가 아무도 없는 관계로 방편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함부(阿含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다. 그 기간은12년간이다.
셋째, 수준을 조금 높여서 방등부(方等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인데, 그 기간은 8년간이다.
넷째, 불교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금강경』을 포함하여 반야부(般若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인데, 그 기간은 21년간이다.
다섯째, 끝으로 그동안 설해진 모든 경전을 총정리하는 역할로서 법화부(法華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인데, 그 기간은 8년간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법을 전통적이니 시각에서는 교리적으로 오시교(五時敎)라고 한다.
이는 팔만대장경을 다섯 단계로 분류해서 사람들을 가르쳤다는 의미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사상의 중심이 되는 『금강경』을 포함한
반야사상(般若思想)은 가장 오랫동안 설해졌는데 경전의 분량도 무려 600권에
달하고 있으며,『금강경』은 그 중에서 제 577권에 해당된다.
금강경은 총 32편으로 16장까지가 전반부 나머지가 후반부이다.
불교경전은 모두 부처님 살아생전에 기술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 열반후 부처님제자와
500명의 비구들이 모두 모여 하나 하나 검증하듯이 토의를 거쳐 결집된 것이다.
그래서 경전은 모두 처음 시작이 여시아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여기서 나는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존자를 가리킨다.
아난존자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지자로 부처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난존자가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여 부처님 말씀을 얘기하면 500명의 비구들이 나도 들었다
나도 들었다 하여 동의를 함으로 그것은 경전으로 인가하고 이런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경전으로 인가받기 위해서는 언제 어느때 어느곳에서 누가 듣고
보았다는 것이 적혀있어야 부처님말씀으로 인정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경전이라고 알고 읽고 있는 것은 모두 후대에 적어진
대승경전이며 입으로만 암송되어 오던 경전을 소승경전 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핵심사상은 사성제와 연기와 인과이지만 이 기본 잣대를 가지고도
우리 중생은 어떤것은 지혜롭게 잘하고 어떤 것은 못하는 고로 그 모든 상황에서
어찌하고 하는 것을 자세히 설파한 것이 불교경전이다.
그래서 부처님말씀이 팔만대장경에 수록될 만큼 많은 것이다.
금강경은 공(空)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반야부 계통의 경전 가운데 『반야심경』다음으로
널리 읽히우고 있는 경이며, 특히 선종(禪宗)에서는 5조 홍인대사 이래로 중시돼온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서 불경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경이다.
경의 구성을 살펴보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식의 대화를 전개해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법회인유분』제1에서 시작하여 『응화비진분』제32로 끝이난다.
부처님이 사위국에서 수보리 등을 위하여 처음에 경계가 공(空)함을 말하고,
다음에 혜(慧)가 공함을 보이고, 뒤에 보살공(菩薩空)을 밝혀 공혜(空慧)로서
체(體)를 삼고 일체법 무아(無我)의 이치를 말한 것을 요지로 하고 있는데,
특히 이경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문구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生而生其心)이다.
6조 혜능이 어느날 『금강경』을 읽다가 바로 이 대목에서 홀연히 깨달았다고 할 만큼
특색 있는 표현이며 핵심적인 문구로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라"고
해석되는데, 달리 표현하면 "일체의 것에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활용하라"는 뜻이다.
즉 모든 것이 공하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집착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로 마음을 쓰라는 것인데 이때 비로소 평등 즉 차별,
차별 즉 평등이라는 중도의 진리를 가장 선명하게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역으로 6종이 있으나 요진(姚秦)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1권이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