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1 김해/ 돗대산.신어산.분성산
일자: 2015.2.1
산행코스: 불암역~235.9봉~돗대산~신어산~가야랜드~분성산~활천고개~김해시청역
인원: 홀로
GPS거리: 18.75㎞ 널널/7시간
일요일아침, 모처럼 집에서 아침밥 먹고 느지막히 배낭메고 집을 나섰다.
사상역에서 김해경전철로 갈아타고 불암역에서 내려 돗대산으로 오른후
신어산으로, 낙남정맥 마루금을 따라가다, 은하사도로로 내려서고,
다시 천문대 오르는 도로를 따라 분산성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경전철을 타면 매번 똑같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 든다.
불암역이다.
불암역내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돗대산들머리로 이동한다.
선암다리
예전 코흘리개시절 동네형님따라 이곳에 처음 낚시왔을때가 생각나는데~
무려42년전이다.
돗대산 들머리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아래로 성불사가 지척이다.
좌측멀리 오늘 가야할 분성산 만장대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공동묘지를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서낙동강과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마루금이 잘 조망되는데, 역광이라~
산재고개를 지난다.
235.9m봉에 오르고~
돌무덤과 항공기 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혼을 달랜다는 입간판이 있다.
이 근처가 추락지점이지만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수가 없는데,
이 돌탑마저 없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기억조차도 없어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게 흘러만 간다.
2002.4.15. 중국 국제항공공사(China Airlines) CA129편 보잉767 항공기가 중국 베이징을 출발,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다 김해시 지내동 동원아파트 뒤편 돗대산 기슭에 추락했다.
이 항공기에는 한국인 137명과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29명을 포함해 승객 155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으며, 1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했다.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 경남영묘원에 희생자들의 납골묘가 있고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내려서면 돗대산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끝부분의 쉼터가 쉬어가라한다.
잠시 임도를 따르다 등산로로 올라서고, 조은길을 따라 무작정 가다보면
돗대산을 스쳐 지나가게 되므로 갈림길에서 우측 오르막길로 진행한다.
돗대산 직전 갈림길 (좌:신어산, 우:돗대산)
우측에 있는 돗대산으로 오른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돗대산, 돛대산 (×381.0m)
봉우리 세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쪽(남쪽) 봉우리에 정상석이 있다.
지형도 표기지명은 돗대산이고 정상석은 돛대산이다.
지나온 능선과 서낙동강
까치산 뒤에 백두산이 삐쭉 고개를 내밀고~
낙남의 산그리메
신어산에서 생명고개. 장척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
돗대산에서 신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돗대산 위쪽 봉우리
원동마을 산해정을 바라보고~
땡겨본 산해정
산해정(山海亭)은 조선시대 대표적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이 기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돗대산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오고,
잠시 내려가면 아까 안부직전에서 좌측으로 질러가던 갈림길을 다시 만난다.
안동 갈림길을 지나고~
이어지는 등로는 378.6봉에 직접 오르지않고 우측으로 지나간다.
378.6봉 정상부 전경
삼각점이 있는데 새까만 기반이라 번호를 알아 볼 수가 없다.
다시 내려서서 조은길과 만나고,
잠시 진행하다 조은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오른다.
바위암릉지대가 시작된다.
멀어지는 돗대산
좌측 분성산아래 삼방동일대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는 신어산
룰루랄라~
좌측 아래 김해대학교 옆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고~
나무벤치가 쉬어가라 한다.
이후 임도가 능선따라 계속 이어지는데, 능선길도 임도못지않게 길이 좋다.
그렇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펑퍼짐한 425봉을 지나고~
내려서서 아까 헤어진 임도와 다시 만난다.
이곳에서 임도는 우측 예안리로 내려간다.
지나온 산길을 뒤돌아보고~
김해대학교 갈림길을 지난다.
동림사갈림길
제 기능을 잃어버린 샘터
철쭉보호지를 지난다.
낙남정맥을 만나고~
신어산 정상도 지척이다.
신어산 630.8m (△밀양25)
신어정 정자뒤로 낙남정맥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지나온 능선
내눈에는 부산 광안리앞바다도 보였는데. 똑딱이의 한계다.
상동면 금동산 뒤쪽으로 볼록솟은 금동산. 석룡산을 바라보고~
가야할 능선
날이 따뜻해서일까? 온통 뻘밭이다.
안부쉼터/ 영구암갈림길
신어산의 명물, 그리 출렁대지도 않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우측아래로 멋진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상동.장척 갈림길
은하사갈림길
아주 넓은 헬기장인데 좌측으로 [은하사1.3km] 이정표가 있다.
신어산이 차츰씩 멀어진다.
헬기장뒤 640.2봉/ 신어산 서봉
이곳에서 낙남정맥을 따라 ×640.2봉을 오른후 내려서면 골프장으로 떨어지는데
사유지라, 지나가면 좋은소리 하질 않을거고~
내가 지금 낙남정맥 마루금 이어가는것도 아니고 은하사방향으로 하산한다.
중간능선에 펼쳐지는 바위암봉이 참 보기좋다.
넓게 펼친 신어산 자락에 자리잡은 은하사와 동림사
가야CC
필드에는 사람이 없어도 골프장주차장은 차가 꽉 차있다.
은하사진입로로 내려서고~
충혼비를 지난다.
이곳에서 우틀하고~
정감있는 골목길을 지난다.
아! 이곳으로 연결되네~
가야저수지를 지나 김해 생림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만나고~
영운리고개쪽으로 올라간다.
가야랜드
가야랜드는 수리중이고 새단장해서 다시 뵙겠다는 대형간판이 걸려있다.
김해천문대입구
옛사람이 지나간다.
가야역사테마파크를 지나고~
천문대주차장에서 곧바로 분산으로 향하지않고 김해천문대로 올라간다.
1월~2월 별자리 안내판
천문대등산로 입구
이곳에서 도로따라 천문대로 갔다가 나중에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기로 한다.
혼천의(渾天儀) 모형물
천체관측 기구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리는데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김해 천문대
김해시가지 전체가 잘 조망된다.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모형물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주야간 시계이다.
김해천문대가 있는 봉우리 정상부에 (김해412) 삼각점과 분성산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다.
내려서서 체육시설물을 지나고~
누군가 칼로 쓱싹 잘라놓은 듯한 삼등분된 바위
어떻게 하면 단단한 바위가 자연적으로 이렇게 잘릴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해은사삼거리갈림길
김수로세트장이 잘 조망된다.
룰루랄라~
김해 분산성(金海 盆山城)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인데 해발 330m의
분산(盆山) 정상부를 감싼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산성의 대부분은 돌로 쌓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서남쪽의 험준한 지역은 뾰족하게 솟은 자연암반을 성벽으로 이용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66호로 지정되었다.
해은사(海恩寺)
경남 김해시 어방동 964번지 분산성내 해발 330m의 정상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범어사 말사로써 전통문화 보존지정 사찰이다.
김해의 진산인 분성 안에 가락국의 원찰로써 많은 전쟁과 화재로 사라지고 복원되고를 거듭했다.
현재 큰 법당인 영산전은 30년 전 다시 중건되었고 그 옆 대왕각은 한국 최고의 성씨인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 영정과 김해 허씨 시조 허왕후의 영정이 봉안돼 모시고 있으며
현존 전해지고 있는 영정 가운데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영정으로 해은사 영정을 바탕으로
표준 영정이 제작된 바 있다.
영정 앞에는 허왕후가 인도의 망산도에서 가져왔다는 봉돌이 있는데 신비한 영험이 있어
소원을 이뤄주는 돌로 전해 내려오면서 지역민들의 오랜 정신적 의지처가 되었다.
영산전 바로 뒤편 타고봉엔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실고온 탑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그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멸의 적멸보탑이 봉안돼 있다.
해은사는 인도로부터 한반도에 직접 불교가 들어온 최초의 전법도량이 되었고
분산성과 함께 고대 가락국 마지막 보루성으로써 역할을 하여 역사적 의미가 깊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불상과 영정의 옛 모습 보존과 함께 정통으로 전해진 석존의 진신사리,
국내 최초의 파사석탑을 복원하여 봉안하고 있기에 남방 근본불교의 전통 맥을 전해주는
표본의 국가지정 전통 문화보존 사찰로서 자리하고 있다.
해은사(海恩寺) 대웅전(大雄殿)인 영산전(靈山殿)
대왕전(大王殿)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곳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전각으로,
사찰의 창건과 관련된 수로왕과 그의 아내 허황후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파사석탑(진신사리탑)
1997년에 허황후가 모셔온 파사석탑(婆娑石塔)을 재현하는 의미에서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사리탑의 양식은 전체적으로 라마탑(喇摩塔)의 형식을 빌어 만들었다.
육각으로 된 3단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 역시 육각으로 각 면에 선각(線刻)으로
신장상(神將像)을 새겨놓았다.
그러나 기단의 윗부분을 덮고있는 개석(蓋石)은 원형으로, 연판(蓮瓣)을 둘렀다.
탑신부는 상하 2단으로 구분이 되는데 하단에는 여신상이 돌아가면서 새겨져 있고,
상단에는 4개의 감실을 두고 그 안에 4구의 불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분산 정상부 일대는 해은사라는 절이 몽땅 차지했고, 현재 파사석탑
(진신사리탑)이 있는 정상부는 대리석으로 도배하듯이 깔끔하게(?) 덮어버렸다.
대리석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바위 몇개가 덮히기 전 정상부의 모습을 보여주는듯 하다.
분산은 산꾼들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의미심장한 산인데
"산경표”가 기록한 낙남정맥의 끝점이면서 확장된 백두대간의 종점인 것이다.
산경표의 낙남정맥은 불모산-구지산-분산으로 마무리 되고,
대동여지도에는 불모산과 분산은 있으나 구지산은 표기가 없다.
그렇다면 낙남정맥의 끝을 매리로 보는가? 또는 녹산수문으로 보는가?
산경표는 분산으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이는 금남정맥이 부여로 간 까닭과 같이 생각하면 될 일이고,
우리나라 전체 산줄기 그림을 그리면서 매리냐 녹산이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를 함께 제작한 것도 아닌 다음에야 이 둘을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다.
해은사 지난 안부에 있는 안내판
충의각(忠義閣)
그 안에는 분산성을 수축한 내력과 흥선대원군불망비 등이 있다.
만장대로 가는 도중에~
김해 분산성(金海 盆山城)
미로 같은 바위틈를 지나고~
만장대(萬丈臺)
1丈(장)은 1尺(자)의 열 배로 약 3미터가 되니, 1만장이면 3만미터라~
그만큼 높다는 말일것이다.
대원군의 친필이라는데, 대원군이 직접 이곳에 와서 여기에다 직접 썼다는 말일까?
아니면 종이에 쓴걸 받아와서 여기에 새겼다는 말일까?
만장대 봉수대 아래에 만장대 표석이 있다.
이 글 주인은 누구인가?
봉수대 꼭대기에 올라서면 김해 시내가 전부 한눈에 들어온다.
신어산 아래 어방동. 안동 일대와 돗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렇게 볼거 다보고, 찍을거 다 찍고 한참을 휴식하다보니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조릿대 숲속으로 이어지는 미로를 따라 내려간다.
등로 좌측에 있는 멋진 전망대
산성마을 갈림길을 지난다.
고도가 뚝 떨어지고~
봉수대가 있는 만장대가 차츰차츰 멀어진다.
운동시설물이 있는 공터에 내려서고~
산길 끝지점이다.
활천고개
좌측 건너편에 시내버스정류장이 있지만 걸어서 김해시청역으로 이동한다.
산행마무리를 하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하여 개금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