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한시.법어

山居(산 살이) -서 경덕-

제이제이 2015. 2. 5. 09:30

山居(산 살이)    -서 경덕-

 

雲巖我下居 端爲性傭疎 (운암아하거 단위성용소)
林坐門幽鳥 溪行伴戱魚 (임좌붕유조 계행반희어)
閒揮花塢箒
時荷藥畦鋤 (한희화오추 시하약전서)
自外渾無事 茶餘閱古書 (아외혼무사 차여열고서)

 

 

구름 바위 밑에 내 살 곳을 점쳐서 정한 것은

게으르고 거칠은 성미를 바로잡기 위해서요

숲 속에 앉아 깊은 산에 사는 새를 벗하여

냇가 거닐며 물고기를 따라 노니네

한가하면 꽃잎 흩어진 언덕길을 쓸고 때로는 약초밭도 간다네

이 밖에는 모두 할 일 없으니 차 마시는 여가에 옛 책을 보네

 

 

서 경덕(徐 敬德, 1489~1546)

조선 중기의 학자로써, 주기파(主氣派)의 거유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 화담(花潭)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며 부친은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

 

독학으로 사서육경을 연마했으며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평생 여색을 멀리했는데,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그를 시험하고자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황진이는 그를 스승 겸 서신과

시문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다.

스승없이 독학을 한 학자로도 유명하며,

박연폭포,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힌다.

 

그는 평생을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을 즐기다가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붕당의 출현 이후 그의 제자들은 동인과 북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사후 명종 때 이 준경 등의 추증 건의로 증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추증되었다가

거듭 추증되어 선조때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지
음양이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이치는 알듯 모를 듯 오묘하다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깨우쳤는지 못 깨우쳤는지
만물의 이치를 보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
시작에서 끝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항아리 치며 노래한 뜻을 알겠고
, 인생이 약상(弱喪) 같다는 것을 아는 이 얼마나 되는가
제 집으로 돌아가듯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