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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生 찰나 死

-찰나 生 찰나 死-

 

길어야 백년, 숨 한번 몰아 쉬면 홀연히 지고 마는 우리네 인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의 통로를 잘 지나는 것이다.

 

옛날 큰 스님들은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생과 사가 다른데 어찌 둘이 아니라는 걸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스피스 일을 할수록 정말 생사가 둘이 아님을 절감한다.

 

생이 바로 서야 죽음이 바로 서고 생이 청정해야 죽음이 청정하다는

연기론적 법칙에서 보면 정말로 생사는 둘이 아니다.

육체 라는 한낱 현상이 일어났다 사라질 뿐

 

우리의 본성에 어떻게 생사가 있겠는가.

영적 차원에선 죽고 살 일이 없다.

그저 하나의 현상이 태어나서 머물다 소멸할 뿐

 

그 어디에다 생()이라 이름 붙이며 ()라고 이름 붙일 것인가.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육체가 사()로 옮겨간 후에도 자신의 본성을 지킬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오직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할 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 임종 직전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며

마음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온기를 나눴다고 생각해보라.

 

바로 그 순간 오직 그 찰나에만 존재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 순간이 모여 십 년이 되고 오십 년이 되고 팔십 년이 된다.

한 순간의 찰나 그것밖에 없다.

 

찰나 생이고 찰나 멸()이다.

순간순간 죽음 속에 삶이 존재하고, 삶 속에 죽음이 담겨 있다.

철로의 양쪽 레일을 달리는 기차처럼 삶과 죽음은

그렇게 매 순간 함께 달려간다.

 

매 순간 죽고 태어나는데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찰나 멸, 찰나 생 사이에서 너와 내가 만났으니 이 얼마나 고귀한 인연인가.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순간이 천년인양 살면서 가슴 벅차게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

 

그 순간의 한 점이 모여 수십 점, 수백 점에 이르고,

우리 인생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체로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에 살 일을 걱정하며 산다.

 

공허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간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째깍째깍 흘러가는 죽음의 소리, 생에서 멸로 향하는

그 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

 

듣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시계 초침을 타고 쉼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당신과 내가

 

오는 자가 가는 자요, 가는 자가 오는 자라.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

생사는 본래 하나인 것을.

 

인생은 교육의 장이다.

수시로 대면하는 시행착오 속에서 나는 보다 나은 인생을 배운다.

-능행 스님 < 이 순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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