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14.6.28
산행코스: (자도봉어 환종주) 경북.경주/안강읍 옥산리 옥산서원~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
인원: 홀로
GPS거리: 16.85㎞ 널널/8시간
자도봉어
낙동정맥 산줄기에서 자옥산, 도덕산, 봉좌산, 어래산 4개 봉우리를 이어가는 약 17km 정도의 산줄기다.
부산 개금집에서 출발
대동TG-경부고속도로-경주IC에서 내린후 오릉네거리에서 좌회전, 영천 방향으로 진행하고~
금장교차로에서 포항. 안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68번 지방도로를 타고간다.
안강교차로에서 영천 방면 28번 국도를 타고 6㎞쯤 진행하면 우측으로 옥산서원 입구 팻말이 보인다.
옥산2리 표지석
옥산서원 주차장
출발지에서 바라본 자옥산 전경
그리고 도덕산
옥산1리 표지석
첫번째 이정표
너럭바위 상단
건너편 어래산 일대의 전경
첫번째 전망대
안강읍내 전경
자옥산(紫玉山 563m) 정상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와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신라 때 붉은 옥(玉)이 많이 나온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다.
룰루랄라~
안부사거리
목정(木井)
보는 각도에 따라서~
집채만한 바위들이 주위에 나열해 있다.
언제봐도 이쁜넘들~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너편에 우뚝솟은 삼성산 전경
성산저수지를 땡겨보고~
지나온 자옥산 전경
도덕산(道德山 703m) 정상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와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신라 37대 선덕왕 원년에 당의 첨의 백우경이 참소를 입어 자옥산에 은거 하면서
현재 국보 제 40호 정혜사 13층 석탑이 있는 곳에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는데,
선덕왕이 다녀 갔다고 적고 있으며 이때부터 두득산(斗得山)이라 불렀으나
그후 불전탁자족에 치화원년은 고려 충숙왕15년에 중건된 것으로 유추 할 수 있다.
조선중기에 오면서 동방오현의 한 분이신 회재 이언적 선생이 1533년 사산오대를
명명(命名)하면서 도덕산이라 개명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저멀리 봉좌산을 바라보고~
건너편으로 어래산이 우뚝하다.
자도봉어, 즉 죽산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한바퀴 빙 도는 형태다.
도덕산 삼각점
언제봐도 이쁜넘들~
송전철탑 주위에 철 지난 산딸기가 수두룩하다.
자연쉼터/ 배낭을 내리고 막걸리 한잔하며 잠시 쉬어간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낙동정맥길과 만나고~
이제부터 추억의 낙동길이다.
570.7봉 정상부
영천시 임고면과 고경면의 경계봉인 545봉을 지난다.
참 걷기좋은 길이다.
건너편에 우뚝솟은 천장산 전경
임도를 만나고~
무인대피소/ 낙동정맥루
이후 작은봉 몇개를 지난후 건너편으로 522.4봉이 우뚝 솟아올라 사람 기죽이지만~
등로는 좌측사면으로 우회하는 참 좋은 길이다.
두번째 무인대피소
언제봐도 이쁜넘들~
좌측아래에 있는 이리재로 내려가는 낙동정맥 갈림길
봉좌산 전망 정자가 있는 601.3봉
이제 봉좌산도 지척이다.
봉좌산(625m) 정상부
경북 포항시 기계면과 봉계리,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봉좌산 꼭대기에는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다.
예전 천지가 개벽할 때 이지역에 물이 가득차 바다가 되었을 때 봉황이
봉좌암 바위에 앉아서 물난리를 피했다하여 봉좌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봉좌산 정상에서 추억을 한장 남긴다.
건너편에 우뚝솟은 운주산 전경
포항시 기계면 일대의 전경
지나온 산줄기들이 차례로 다 보인다.
봉좌암인가?
별 특징없는 507.6봉을 지나고~
412.3봉을 우회하여 내려서는 길에는 등로공사가 한창이다.
안부를 지나고~
지게재의 전경
지게재의 유래
배낭을 내리고 점심식사를 하며 한참동안 휴식하다 배낭갈무리를 하고~
또 다시 출발이다.
잠시 참 걷기좋은 등로가 이어진다.
포항시 경계인 389.9봉을 지나고~
지나온 봉좌산을 바라보고~
학야리 골안저수지 일대의 전경
암릉지대를 지난다.
가야할 산줄기/ 아직도 까마득하다.
포항시 경계인 455.3봉 정상부 전경
건너편으로 440.6봉이 우뚝 솟아올라 사람 기죽이지만~
등로는 우측사면으로 우회하는 참 좋은 길이다.
묘지를 지나고~
임도삼거리 갈림길
언제봐도 이쁜넘들~/물레나물
송전철탑을 하나 지나고, 묘4기가 연달아 있는곳을 지난다.
포항시 경계인 414.4봉을 지나고~
이후 570봉을 향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정면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등로를 막고있어 우회하며 몇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오르고 또 오른다.
570봉/ 헬기장
이게뭐야~/군부대 지역인가?
등로를 막고있는 바위
언제봐도 이쁜넘들~
어래산(572m) 정상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와 산대리, 포항시 기계면 학야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경주시 안강읍 일대의 전경
방화선을 따라서~
뒤돌아본 어래산 정상부의 전경
평평한 449.5봉의 전경
이후 옥산리를 향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옥산서원(玉山書院)
회재 이언적 선생이 별세한 후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선조5년에 창건한 서원으로
2010년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이다.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원래 이름은 이적(李迪)이었는데, 중종의 명령으로 '언(彦)'자를 덧붙여 '언적(彦迪)'이 되었다.
호(號)는 회재(晦齋), 자계(紫溪), 자계용(紫溪翁)이고, 자(字)는 복고(復古)이다.
경주 출생이며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그는 주자를 일생의 사표로 삼아, 아호를 회재(晦齋)라 했는데,
이는 주희의 호인 회암(晦菴)의 학문을 따른다는 뜻이다.
1531년(중종 26) 김안로 일파의 탄핵을 받았으나 왕세자의 사부라서 유배되지 않고, 파직만 당하였다.
이후 한양을 떠나 고향인 경주에 낙향하여 1532년 자옥산에 서실인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성리학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집중하였다.
그는 맹자의 진심장구 상에 나온 독락 장에서 이름을 따서 자신의 서재를 독락당이라 하였다.
맹자의 '진심장구 상'에는 "옛날 어진 선비만이 어찌 홀로(獨)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겼고(樂) 사람의 권세를 잊었다.(古之賢士何獨不然. 樂其道而忘人之勢.)"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신조로 삼아 학문에 전념하였다.
1547년 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일군 연일읍 달전리(현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에 안장되었으며
묘소근처에 신도비가 세워졌다.
첫 신도비는 기대승의 글을 1577년(선조10년)에 이산해가 글씨로 비석을 새겨 넣었으나 후에 망실되었다.
1586년(선조1-년) 손엽이 다시 신도비를 썼는데 현재까지 전한다.
이언적이 유배생활을 할때에 일찍이 책상위에다가 스스로 경계하는 말을 써 놓았는데
“하늘을 섬기는데에 미진함이 있었는가?
군친을 위하는데에 성실하지 못함이 있었는가?
마음을 가지는데에 바르지 못함이 있었는가?” 하였다.
“무불경(毋不敬), 사무사(思無邪)”라 했던가
그 마음에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그 생각에 부정한 것이 없어냐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옥산서원 정문(역락문) 이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이다.
玉山書院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이다.
안쪽 求仁堂 -한석봉이 쓴 편액이다.
※편액은 검은판에 흰글씨인데, 옥산서원처럼 흰판에 검은 글씨는 임금이 하사하는 편액이라고 한다.
한 건물안에 당대 명필인 김 정희. 한 석봉 두분의 글씨가 함께 있는 것이 참 귀한듯 하다.
옥산서원으로 흐르는 수로
옥산서원 바깥에 있는 너럭바위주위
이곳에서 오늘 하루의 땀냄새를 날려버리고~
옥산1리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여 16시40분에 나오는 경주시내버스를 타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후 곧바로 연계되는 부산行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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