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입구
두륜산도립공원 등산안내도
매표소에서 본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주차장에서 대흥사 들어가는 길은 동백나무 가로수길이다.
KBS대표 프로그램인 1박2일에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400년 된 여관 “유선관”을 지나고~
5.18민중항쟁사적지/ 대흥사 여관터
피안교를 지나고~
대흥사 가는 길에는 다리를 8개 건너야 대흥사 대웅전에 도착한다.
( 현무교, 이원교, 운송교, 홍류교, 강화교, 피안교, 반야교, 심진교)
사바세계에서 수미산으로 가려면 쇠로 된 산 7개와 바다 8개를 지나야 하는데,
금산 7개를 기둥 삼아 다리를 만들어 건너기 위해 8개 다리가 필요하고,
이는 사바세계에서 수미산에 들어감을 상징한다고~
시원한 약수물 한모금 하고~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大興寺)/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66번지
대한 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언제 누가 지은 사찰인지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신라 눌지왕 10년(426) 정관(淨觀)스님이 창건했다는 만일암 기원설을 비롯,
신라 진흥왕 5년(544)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
신라 무열왕 8년(508) 무명의 비구승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의 총본영이었던 곳이고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萬年不毁之基)”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 도량이기도 하다.
17~18세기 서산종의 종찰로 선·교 양종의 대도량역할을 한 사찰이며,
풍담스님에서 초의스님에 이르는 13인의 총사와 만화스님에서 범해스님까지
13인의 강사(불교 경론을 강의하는 승려)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서산대사 의발을 비롯,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천불전, 천불상, 표충사 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과 시도지정문화재 6점,
그리고 13대종사와 13대강사 등의 부도와 비석들이 소재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부도전/ 부도탑비
서산대사. 초의선사 등 13명의 대종사와 대강사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반야교를 지나고~
해탈문(解脫門)
특이하게 천왕문이 아닌 해탈문이라고~
아... 다시금 봐도 신비로운 두륜산 와불
두 느티나무 뿌리가 하나가 된 연리근(連理根)
심진교 아래에는 맑은물이 흐르고~
침계루
대웅보전
침계루와 대웅보전 현판 글씨는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의 글씨이다.
인근의 섬 신지도에 위리안치되어 23년이란 긴 유배생활을 하며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학자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일화가 얽혀있어 더 관심을 끄는 현판이다.
재미있는 사연인 즉~
헌종6년(1840) 제주도로 귀양가던 길에 초의선사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렀던 추사 김정희는
이광사의 글씨를 보고 “촌스러움”을 타박하며 초의선사에게 대웅보전 현판을 떼어내라고 한다.
그로부터 8년뒤 유배가 풀려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대흥사에 들러
예전에 내가 잘못보았다며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찾아 걸도록 했다고 한다.
9년에 걸친 귀양살이 끝에 인생관이 바뀐 결과였다고~
재미있는 일화와 더불어 현판을 감상하니 조금 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의 글인데 문화제를 돌아보기에는 이처럼 적절한 말이 없지않나 싶다.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
구한말 명필로 유명한 해사 김성근이 쓴 백설당(白雪堂) 현판
응진전
응진전 앞 삼층석탑
나그네 / 윤영초
탑 돌이 하는 자(者)
돌탑에 낀 이끼처럼
떨어지지 않는 인연
눈치채지 못한 손길은
부처의 자비로움
어깨 위로 쏟아지는 햇볕처럼
온 누리에 퍼져라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이여
까맣게 그을리는 얼굴
남의 탓하지 말고
향불이 타는 냄새에
영혼을 씻어라
산사에 불어오는 바람에
자화상을 말갛게 말리는 나그네여
명부전
천불전 입구 문턱이 신기하다.
아마도...이 문을 들어설 때,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서라는 뜻은 아닐까?
천불전
이 현판도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이곳 천불전에 봉안된 천불상은1813년(순조 13년)에 완호 윤우선사께서 천불전을 중건하고
화순 쌍봉사 화승 풍계대사의 총지휘로 경주 불석산에 나오는 옥석으로 10명의 대둔사 스님들께서
직접 6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완성한 천불로서 그 조각 자체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정교함과 신비스러움이 더한다.
천불전 천불(千佛) 조성 설화
완호(玩虎)대사는 초의선사의 스승이었는데, 1813년(순조 13)에 천불전을 중건한 뒤
경주의 옥석(玉石)으로 천불을 조각하게 했다.
열 명의 조각사가 6년에 걸쳐 천불을 완성하자, 모두 3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울산과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흥사를 향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장기현(長岐縣)까지 밀려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그 속에서 300여 개의 옥불(玉佛)을 발견하고,
서둘러 이를 봉안할 절을 짓기로 의논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밤 이 불상들이 그들의 꿈에 나타나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현몽하자, 하는 수 없이 해남으로 돌려보내면서
불상 밑바닥에 모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한다.
천불전에 봉안된 옥불상은 근래에도 그 영험함을 보인 바 있다.
인근지역 신도들이 꿈속에 불상들이 나타나 “가사를 입혀 달라”는 현몽을 여럿이서 꾸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 4년마다 한번씩 가사를 갈아입히고 있다.
따라서 이때 갈아입은 헌 가사를 지니고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는 속설도 함께 전하고 있다.
이곳 대흥사에는 유명 서예인들이 쓴 글씨가 너무나 많다.
용화당 현판도 그중에 하나
경내가 넓은 대흥사는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천불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서산대사의 사당과 유물관으로 구성된 표충사 구역
대명광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
그리고 일지암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선방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시는 요사채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
무염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항상 깨끗한 곳”
연꽃까지 피어있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성보박물관을 돌아서자 초의선사 동상이 있다.
“초의선사(草衣禪師, 의순 1786-1866)”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분이다.
그래서 “다성(茶聖)”이라고 부른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소치 허련(1809∼1892), 그리고 평생의 친구 되는
추사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으며 우리 토산차를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것이다.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묘한 진리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선사는 차의 달인일뿐만 아니라 선.교.율을 겸비한 당대의 선지식인 이었으며
시.화.서.음악까지 겸비한 풍류인이자 예술가였다.
장군샘
표충사
대흥사의 사격(寺格)을 말해 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공훈을 세웠던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四溟)과 처영(處英)의 영정을 봉안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위국 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1669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청허당 서산대사를 주벽으로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와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운 뇌묵당 처영 대사를 배향하고 있으며,
사찰경내에 유교형식의 사당을 겸한 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이곳은 부처의 삼보도량 가운데 하나인 승보(僧寶)를 존중하고
받드는 불가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공간이기도 하다.
서산대사께서 입적하시며 의발을 이곳 대흥사로 보내라 유언을 하시어
금란가사, 발우, 신발이 묘향산에서 이곳으로 오게됨으로
인근의 선암사나 송광사와 견줄만한 지위의 절로 커지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12년(1788)에 대사의 공을 기리기위해 정조께서 친히 표충사라는 현판글씨까지
써서 내리고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
표충사 현판은 정조대왕의 친필이라고 한다.
조사전
보련각
대도는 지극히 깊고도 넓어
가없는 바다와 같고
중생이 큰 은혜에 의지함은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는것과 같네
오묘한 이치는 밝고 역력한 것이거늘
억지로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어찌 감히 불근으로써
일찍이 해조음을 알아들어
황망히 군자의 방에 들어가
함께 진리를 말할 수 있으랴
달빛도 차가운 눈 오는 밤에
고요히 쉬니 온갖 인연이 침노하네
그대는 아는가 무생의 이치를
옛날이 곧 오늘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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