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태사상(天台思想)
천태의 교리적 핵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제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고, 실상은 참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라는 말로써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2품 방편설에 나오는 말이다.
천태학의 소의경전은 <법화경>이며, 이 경을 중심으로 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천태에서는 <법화경> 28품을 앞뒤 14품씩으로 나누어 본다.
앞은 적문(迹門)이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법실상을 중심으로 불타의 금생교설을
총괄하였고, 뒤의 본문(本門)은 시간적으로 제법의 영원성을 지시하고
불타의 과거세의 온갖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천태학의 주요전적이라 할 때 <법화경>보다는 삼대부로 불리는
법화경의 세 가지 주석서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삼대부는 천태의 강의내용을 장안 관정(灌頂)이 필수 정리한 것이다.
천태종의 개종자인 지의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만년에 학문과 수행이
원숙한 경지에서 독창적인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 강설한 주석서인 <법화문구(法華文句)>와
법화철학의 정수요 원론서인 <법화현의(法華玄義)>와 수행과 실천의 대도를 밝힌
<마하지관>을 삼대부로 불러왔다.
<법화현의>는 <법화경>과 천태학의 총론적 연구서이다.
교상문(敎相門, 교학)의 대표 저서로서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의 제목을 중심으로
경전의 요지를 해석하고 붓다 일생의 교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른바 오중현의(五重玄義)로서 법화사상을 강론한 것이다.
곧 경의 제목, 주체, 근본, 작용, 교판의 다섯 기준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모든 경전을 분석 판별하여 법화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법화문구>는 <법화경> 28품의 모든 문장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여기에서도 네 가지 기준을 설정하여 전형적인 경전 해석학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설법의 인연에 따른 해석이며, 그 둘은 듣는 이의 근기와 기호에 따른 해석이고,
다음은 불타의 입지가 법신(法身)의 본래불인가 아니면 화신불(化身佛)인가 등에 따른
차별적 해석이며, 마지막은 관심법 등 신행방법의 차이에 따른 해석이다.
<마하지관>은 천태종의 실천적 관심법을 체계화한 저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정법은 천태 이전부터 전해온 여러 경전들의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 것이어서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지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천태의 교상판석
중국에서의 교판사상의 기원을 찾아본다면 동진시대의 라집(羅什)과
보리유지(菩提流支)의 일음교설(一音敎說)이 있었고, 라집의 수많은 문하 중에서도
특히 도생(道生)의 사종법륜설(四宗法輪說)과 승예(僧叡)의 사교설(四敎說) 등이 있었다.
육조시대에 들어오면서 동진시대에 행해지던 교판사상이 점차 발달하여
‘남삼북칠(南三北七)’의 교판이 형성되었다.
먼저 남방 삼가(三家)의 교판설을 살펴보면 이들은 불교를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나누었다.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시켰으며 점교는 유상교(有相敎; 아함), 무상교(無相敎; 반야),
억양교(抑揚敎; 유마), 동귀교(同歸敎; 법화), 상주교(常住敎; 열반)로 나누었다.
북방 칠가(七家)의 교판설 가운데 광통(光統)과 혜광(慧光)의 사종판(四宗判)에서는
불교를 인연종(因緣宗; 비담), 가명종(假名宗; 戒論), 광상종(대품삼론),
상종(常宗; 열반, 화엄)으로 나누었다.
이 사종판은 후에 오시팔교(五時八敎)설 가운데 화의사교(化儀四敎)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남삼북칠’이라 하여 이전에 정한 대표적인
교판 10 가지를 열거하여 전부 비판하고 자신의 교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천태의 교판은 ‘남삼북칠’의 교판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며
종래의 교판을 종합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시(五時)와 화의사교는 비밀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명칭이 이전의 교판 가운데 있고,
지의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의는 불교의 모든 경교(經敎)를 불타가 설법한 차례와 순서에 따라
다섯 단계 즉 오시(五時)로 배열하였다.
여기에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불타의 법의 내용을 일체교리를 분류한 화법사교(化法四敎)의
팔교(八敎)를 결부시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지칭되는 교상판석을 완성시켰다.
오시란 화엄시(華嚴時), 아함시(阿含時), 방등시(方等部), 반야시(般若時),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일체의 경전을 설한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통일한 것이다.
화엄시는 불타가 <화엄경>을 설한 것을 말하고 그 시기는 성도 후 21일간이다.
<화엄경>은 불타가 직접 깨달은 법을 조금도 수식을 가하지 않고 순수한 형태로 직접 설한 것이다.
아함시는 불타가 장아함, 중아함, 증일아함, 잡아함 등의 <아함경>을 <화엄경>을 설한 직후
1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최초의 설법장소가 녹야원이었으므로 녹야시라고도 한다.
<아함경>은 이해력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경전으로 간주되며 불타 최초의 설법에 해당한다.
방등시는 불타가 <유마경> <능가경> 등의 여러 방등(方等)경전을 아함 이후
8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방등경은 소승의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엄하게 나무라면서 대승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소승불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찬탄했으며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승을 흠모한 것이다.
반야시는 불타가 각종의 <반야경>을 방등 후 2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空)의 근본진리를 해명함으로써 소승을 대승으로 길들인 것이 된다.
법화열반시는 불타가 <법화경>과 <열반경>을 반야 후 8년 동안 설하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은 통일적인 진리 내지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열반경>은 불타가
입멸할 즈음에 하루 밤낮을 설했던 것으로 내용적으로 <법화경>과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오시를 통(通)과 별(別)로 구분해서 보았는데, 통오시란 오시는 시간상 구별이 아니라
설명내용의 분류이며 오시 상호간에 오시의 설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별오시란 시간상의 차제를 분류한 것이다. 팔교는 화의사교와 화법사교이다.
화의사교는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분류한 것이고 화법사교는 불타의 법의 내용으로 일체 교리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로 분류한 것이다.
화의사교를 살펴보면
돈교는 직돈(直頓)의 의미로 점진, 유인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번에
대승의 심오한 법을 설하는 것을 말하며 화엄시에 해당한다.
점교는 점차의 의미로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점진,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소승으로부터 대승에 걸친 설법이 포함되며 아함, 방등, 반야시에 해당한다.
비밀교는 비밀부정교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이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으로 모든 경전에 지칭된다.
부정교는 현로부정교(顯露不定敎)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의미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소승과 대승의 모든 경전에 대하여 지칭할 수 있다.
화법사교는 지의의 독창적인 인식으로 지의의 불교관과 사상적 입장이 표출되어 있다.
장교는 경, 율, 론 삼장교(三藏敎)의 의미로서 소승불교를 가리킨다.
불교교리의 초보적인 단계로 특히 공(空)을 파악하는 방법에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상으로는 자기 및 세계를 요소로 분석하여 진정한 존재물은 이 요소뿐이며
이것을 법체(法體)라 하고 삼세(三世)에 항존하기 때문에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했다.
바로 사물을 요소적으로 분석해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무(空無)를
주장하였으므로 절공관(折空觀)이라고 평하게 되었다.
또 공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정체했다고 하여 편공(偏空), 단공(但空),
단공(單空)이라든가 허무공견(虛無空見)이라고 비판받았으며 장교의 공관이나
입장은 진리로 인도하는 방법이 졸렬하다고 하여 졸도관(拙度觀)이라고도 지칭된다.
통교는 공통의 교법이라는 뜻으로, 앞의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 원교에도 통하며
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즉 대승과 소승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장교가 사물의 생멸을 분석적으로 관찰하는데 비해 통교는 사물 그대로에
합치하여 전체적으로 공이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사물의 당체(當體) 그대로 공이라고 하여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체공관(體空觀) 또는 즉공관(卽空觀)이라고 불린다.
생멸에 관해서는 생(生)을 고집하지도 멸(滅)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생과 멸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간략하게 무생관(無生觀)이라 지칭된다.
장교의 졸도관에 대하여 이것은 교도관(巧度觀)이라고 지칭된다.
대승의 경전 가운데 특히 <반야경>이 통교를 대표한다.
별교는 앞의 장교와 통교, 뒤의 원교와도 구별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오로지 보살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 점이
이승(二乘)과 같지 않으며 대승에서 설한 특별한 가르침이다.
교리로서는 공(空)으로부터 가(假)로 나아가며 현실의 한량없는
모습에 대한 자유자재의 대응을 설한다.
그리하여 다시 중(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별교에 있어서 공(空), 가(假), 중(中)은 점차적이고
단계를 낮춘 것으로서 원융상즉에까지 이루지 못한다.
중(中)은 공(空), 가(假)에 대해 특별한 것이고 목적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중(但中)이라고 평해진다.
이러한 점에서도 별교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전으로 <화엄경>을 들 수 있다.
원교는 원유,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진리 내지 세계를 총합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공가중(空假中)에 대하여 말하면 별교처럼 차제의 삼관(三觀)이 아니고
원융상즉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이다.
공가중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적당함을 얻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진(眞)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사물이
본래 지녀야할 바를 얻어서 무작(無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원교에 가장 적합한 경전으로 <법화경>이 거론된다.
이상에서 천태의 교판론인 오시팔교(五時八敎)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대의 문헌고증에 의할 때 천태의 오시의 배열은 사실과 다르며,
오시팔교에 대한 역사성도 의문시된다.
그러나 오시팔교설은 천태대사의 불교관을 표명한 것으로 천태교학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불타의 설법(說法)과 설시(說時)에 의거한 것으로 보면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천태의 지관법문
천태사상은 크게 교상문(敎相門)과 관심문(觀心門)으로 나누어진다.
교상문은 이론적인 측면으로써 교학적으로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
오시팔교(五時八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심문은 수행적인 측면으로 실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지의의 실천론은 지관(止觀)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지관은 지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말로써 지(止)는 범어 samatha로 바깥 경계를 쫓아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그치고 마음을 고요히 지니는 방법으로 곧 적정(寂靜)을 뜻한다.
관(觀)은 범어 vipasyana로 어떤 대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지관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정(定)에 속하는 정도이지만
지의에게 있어서 지관은 인도에서 의미하던 것을 넘어서 보다 넓고 깊은 차원을 나타낸다.
그에게 지관은 보다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선정(禪定)적인 면과 선혜(禪慧)적인 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지관은 크게 나눠서 점차(漸次)지관, 부정(不定)지관, 원돈(圓頓)지관의 세 가지가 있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지관은 천태 지의가
남악 혜사(慧思)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점차지관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實修)하는 것을 말하고,
부정지관은 때와 경우에 따라 심천(深淺), 전후(前後)가 서로 호응되는 것을 말하고,
원돈지관은 전체적, 종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것을 말한다.
천태지의의 저서 가운데 점차지관이 중심인 것은 <차제법문(次第法門)>이며,
부정지관이 중심인 것은 <육묘법문(六妙法門)>이며,
원돈지관이 중심인 것은 <마하지관>이다.
오시팔교의 화법사교에 의하면 장교에서는 석공관(析空觀)을,
통교에서는 체공관(體空觀)을, 별교에서는 공가중(空假中)에 대한 차제삼관(次第三觀)을,
원교에서는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을 닦는다.
<마하지관>에서 말하는 원돈지관은 이 원교의 지관법으로 천태실천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지관>은 천태실천론의 궁극적인 이상인 원돈지관을
오략십광(五略十廣)의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략(五略)은 발대심(發大心), 수대행(修大行), 감대과(感大果),
렬대망(裂大網), 귀대처(歸大處)로 구성되어 있다.
발대심(發大心)에서는 열 가지의 틀린 생각을 제시하면서 사성제나 사홍서원
혹은 육즉(六卽) 등의 교설을 매개로 삼아 생각을 바르게 하며,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지관의 구극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대행(修大行)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에 관하여
사종삼매(四種三昧)의 지관 실천법을 설명한다.
감대과(感大果)에서는 지관의 성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렬대망(裂大網)에서는 지관의 달성에 의해 세간의 미혹이라는 그물이 파열되는 것을 말하고,
귀대처(歸大處)에서는 지관이 귀착해야 할 곳을 밝힌다.
오략(五略)을 확대해서 설명한 것이 십광(十廣)으로 대의(大義), 석명(釋名),
체상(體相), 섭법(攝法), 편원(偏圓), 방편(方便), 정수(正修), 과보(果報),
기교(起敎), 지귀(旨歸)로 구성된다.
대의(大義)에서는 오략(五略)의 대의를 기술하고,
석명(釋名)에서는 상대지관관, 절대지관, 천태가 의미하는
지(止)의 세 가지 뜻과 관(觀)의 세 가지 뜻을 밝힌다.
체상(體相)에서는 지관의 체와 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섭법(攝法)에서는 리혹지행위교(理惑智幸位敎)의
여섯 가지 법에 의해서 일체법을 포섭하고
다시 그 여섯 가지 법이 상호포섭되는 것을 나타낸다.
편원(偏圓)에서는 대소(大小), 반만(半滿), 편원(偏圓), 점돈(漸頓), 권실(權實)에 대해서 상술한다.
방편(方便)에서는 25방편을 설하고, 정수(正修)에서는 지관의 대상인 십경(十境)과
지관의 방법인 십승관법(十乘觀法)에 대해서 기술한다.
과보(果報)에서는 관법을 성취해서 얻는 불과(佛果)에 대해서,
기교(起敎)에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대해,
지귀(旨歸)에서는 불과(佛果)를 성취해서 모두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