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 6 (1)-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여 믿고 따르나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더 더욱 이렇게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올바른 믿음을 갖기란
참으로 힘들고 귀합니다.
부처님께서 진리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드러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희유한지도 모릅니다.
모양다리에, 법(法)에, 나아가 법 아닌 것에도 매달리지 않고 무한히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을 꽃피워 가는 보람은 진실로 즐거운 일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저 것은 부처가 아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있는 저 모든것 은 다 부처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은 정말로 기쁘고 희유(希有)한일입니다.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得聞如是言說章句하시옵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生實信不인가
생실신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서 진실한 믿음을 내오리가?"
이와 같은 말씀이란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5에서 말한 제일 사구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若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입니다.
수보리는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의식수준을 대변하여 부처님께 의문나는 점을 여쭈어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상이 분명히 있는데 허망하고 덧없다고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모양다리 너머에 부처가 있다니 그렇게 볼 안목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왜 이런 말을 수보리가 하였느냐 하면 초기 불교 당시에는 '있다'
즉'상(相)'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괴로움(苦)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集)도 있으며, 괴로움의 소멸(滅)도 있으며,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道)도 있습니다.
이렇게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사상은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과 잘 통하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아무리"모든 상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
상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부처이다."라고 하여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있다'는 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21년간이라는 긴 세월 동안
600권의 반야부를 설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그동안 하도 많이 들어와서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형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이라고 쉽게 말은 하지만
마음 깊이 공감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버젓이 우리의 육신이 있고 온갖 마음 작용이 다 있는데
"형상은 허망하고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을 누가 쉽게 믿으려 들었겠습니까.
그 당시 의식 수준으로 보아서는 혁명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다른 제자들을 위해
그 시대 사라믈의 생각을 대변하여 물은 것입니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如來滅後後五百歲에
불 고수보리 막작시설 여래멸후후오백세
有持戒修福者가 於此章句에 能生信心 以此爲實
유지계수복자 어자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여래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에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말씀에 능히 믿는 마음을 내고 이로써 실다움을 삼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진지한 구도자로서 문제를 제기하는수보리에게 안심을 시킵니다.
부처님이 생존하셨던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이 열반(涅攀)에 드신 뒤 제 오백년,
즉 25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계(戒)를 지니고 복을 닦아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라는 말을 듣고 상 너머에 있는 진실을 이해하여 청정한 신심을 내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계(戒)의 기본 원형은 불˙법˙승(佛˙法˙僧)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수행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을 따르는 스님네들에게 귀의하였으니 다른 종교,
다른 가르침,다른 무리들은 따르지 않겠습니다."하는 약속입니다.
점점 단체가 커지자 그것이 더욱 세밀해져서 5계, 10계,48계,심지어 팔만위의계(八萬威儀戒)로
확대 발전되었습니다마는 사실로 맨 처음에는 부처님을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잘 왔다. 내 제자여(善來 以丘)"라 한 것이 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부처님 열반 후 오백년 단위로 묶어 제 일, 제 이, 제 삼, 제 사, 제 오 오백년이라고 합니다.
제 일 오백년은 해탈(解脫) 견고, 제 이 오백년은 선정(禪定) 견고, 제 삼 오백년은 다문(多聞) 견고,
제 사 오백년은 탑사(塔寺) 견고, 제 오 오백년은 투쟁(鬪爭) 견고 시대로 합니다.
불교 역사를 볼 때 부처님 생존시나 열반 후 오백년까지는 마음의 해탈을 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뒤에는 선정에 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인도의 달마(達磨) 대사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고 우리 나라에도 선풍(禪風)이 들어 왔습니다.
그 다음 오백년 동안에는 학문 불교가 발전하여 불교에 관한 사상이 형성되고,
여러 종파가 생기게 되었으며, 경도 많이 간행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통일신라 시대, 고려 시대에 해당 되겠습니다.
사찰에서 간행한 사간 장경(寺刊 藏經)이나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힘을 기울여 간행한
국간 장경(國刊 裝經)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에는 불사(佛事)에 치중하여 절 건물을 크게 짓고 값나가는 것으로 장식을 하고
탑이나 불상도 으리으리하게 많이 주조하였습니다.
마지막 오백년인 후 오백세 즉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투쟁 견고 시대라 하는데
타종교아의 갈등, 불교 내부에서의 분규, 불교 사상 논쟁 등 많은 문제가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요즈음을 말세(末世)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문(緇門)」에 '만사무우 일심위도(萬事無憂 一心爲道)'라 하였는데 정말 바른 믿음을
갖고 올바르게 수행하기가 어려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 구분은 어떤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고 대개 시대별의 주류를 이루는 어떤 특징적인 현상을 말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탑사도 있었고 투쟁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종제인 제바달다는 부처님을 항상 괴롭히고 당시의 교단을 분열시키는 등
투쟁을 전문으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투쟁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선정을 닦고 해탈을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것을 흔히들 미래세에 대한 부처님의 예언으로도 간주합니다마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불교를 믿고 공부해 가는 신행(信行)의 과정으로 제 오 오백년에서
제 일 오백년으로 거슬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투쟁 견고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눈앞의 이해 타산과 오감에만 지극히 집착하여
인과 응보의 원리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삶을 말합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바람직한 나의 삶의 모습일까.또 다른 인생길은 없을까."하는
인생에 근본 문제에 눈을 뜨게 되어 절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 짓는 데 보시하면 복(福)받는다'하여 열심히 동참합니다.
기와에 이름을 써올리기도 하고 서까래를 맡기도 하는 등 거금을 기꺼이 보시하고는
복 받을 것이라고 흐뭇해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규모는 작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탑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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