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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한시.법어

본래부터 내 물건

-본래부터 내 물건-

 

 

黃花聚竹非他物   (황화취죽비타물)

明月淸風不是塵   (명월청풍부시진)

頭頭盡是吾家物   (두두진시오가물)

信手拈來用得親   (신수념래용득친)

 

 

푸른 대나무 다른 물건 아니며

밝은 달 맑은 바람 티끌이 아니네

이 모두가 본래부터 내 물건이니

손 닿는 대로 가져와 마음껏 쓰네

 

 

-백운 경한(白雲 景閑 12981374)선사-

 

전라도 고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일정한 스승이 없이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구법(求法)을 위하여 중국으로 건너갔다.

10여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지공(指空)에게 법을 묻고,

석옥(石屋)에게서 임제종(臨濟宗)의 선법을 전해 받은 뒤 귀국하였다.

 

1367년에는 보우(普愚)의 천거로 공민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였고,

1365년에는 나옹(懶翁)의 천거로 다시 공민왕의 부름을 받아 신광사(神光寺)의 주지가 되었다.

1368년에는 왕비 노국공주(魯國公主)의 원당(願堂)으로 창건한 흥성사(興聖寺)의 주지가 되었다.

1369년에는 김포 포망산 고산암(孤山庵)에서 은거하였다가, 다시 나옹의 추천으로

1370 9월에 있었던 공부선(功夫選)의 시관직(試官職)을 맡았다.

 

그의 사상은 선과 교는 이름만 다를 뿐 평등한 한몸이라는 선교일체(禪敎一體)를 주장하여,

고려만 불교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불교관을 보였다.

간화선을 넘어선 구경지적(究竟地的)인 공부를 중요시하였으며, 무심무념을 주창하였다.

, 선은 무심일도(無心一道)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화두를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여주 혜목산 취암사(鷲巖寺)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이르는 곳이 모두 돌아갈 길이요 만나는 곳이 모두 고향"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법문집인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과 프랑스 파리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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