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해 27-심무가애(心無가碍)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보리살타가 보리살타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보리살타, 보살이란 반드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야 한다는 속뜻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면 어떠한 공능,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가 이어서 나타납니다.
우선 첫째로,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되며, 둘째로, 걸림이 없기에 일체의 공포가 없고,
셋째는, 뒤바뀐 허망한 생각, 즉,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멀리 여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괴로움, 공포,
잘못된 생각 등의 잘못들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공덕이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마침내 모든 괴로움의 뿌리를 끊어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에 이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공능은 한량없이 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공능인,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부분부터 살펴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의 세계에 무슨 걸릴 것이 있겠습니까?
나와 너 모든 일체가 스스로의 자성이 없어 무아이고, 그 존재 속에서 벌어지는
선악, 빈부, 귀천, 이 모든 것이 공(空)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걸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 크나큰 장벽이 나를 가로막고 서 있다고 느끼는 적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나를 막아서고 있는 장벽은, 실은 나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되어 인연따라 잠시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장벽을, 장벽으로 보면 나를 괴롭히는 장벽이 될 것이고, 공으로 본다면 다만 고정되지 않고
잠시 왔다가 스쳐 가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허깨비이며, 꿈과 같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본시 실체가 없어 이러할진대, 여기에 걸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깨비,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진짜로 있는 것이라 착각하여 걸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장벽이 나타나고 괴로움이 실체(實體)로 나타나서 외부의 사물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 마음이 걸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그렇다고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요,
오직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임을 올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무소의 뿔처럼
도도히 걸어갈 줄 아는 삶이야말로 대장부의 삶이요, 수행자의 멋진 삶인 것입니다.
걸림 없이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이런 저런 온갖 주위의 경계에 이끌려
마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걸려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으로 진행을 하였지만, 주위에서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비난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실망하여 힘이 빠지고,
그러다가 해야 할 일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게 마련입니다.
일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칭찬과 찬양을 받으면 그 일이 잘 되고 잘못 되고를 떠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행복에 젖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위의 비난과 칭찬 어느 것에도 흔들리거나 걸리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의 중심을 잡고밀고 나아갈 수 있는 우직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느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실천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줏대를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스스로의 줏대가 없는 사람이야말로, 온갖 경계에 치우쳐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입니다.
줏대를 세운다는 말은 굳은 믿음으로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마음에 중심이 없으면 항상 주위의 경계에 끄달려 뚜렷한 자기 주장 없이
사람들의 말에 노예가 되어 늘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게 됩니다.
수행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자신이 행하고 있는 수행 정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확고한 신심으로
정진해 가야지 주위 사람들의 말에 따라 이리 저리로 왔다 갔다 한다면 안 될 일입니다.
사실 모든 수행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아닙니다.
근본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굳은 믿음만 가지고 정진 한다면 그 어떤 수행이라도 우리를 밝게 비춰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모든 수행의 목표는 똑같은 해탈, 열반의 깨달음이란 점에서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요.
정상을 오르는 자가 이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저 길이 좋다고 하니 다시 돌아와
저 길로 가기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정상에는 언제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내가 정한 수행을 끊임없이 밀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설령 그 길이 혼자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자기 줏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걸림 없이 살아가는 반야바라밀 수행의 공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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