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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여행

2016.7.24 대구 팔공총림 동화사

대구 팔공총림 동화사(桐華寺)


총림(叢林)은 선()•교()•율()을 겸비하고 학덕과 수행이 높은 본분종사인

방장(方丈)의 지도하에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종합적인 수행도량이다.

범어로는 빈타바나(vindhyavana)라고 하는데, 많은 대중이 화합해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총림(叢林)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기관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 전문교육기관인 염불원(念佛院)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러나 염불원을 별도로 갖춘 사찰이 거의 없다 보니 일반적으로 총림이라고 하면

“선원, 강원, 율원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찰”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신라와 고려시대를 통해 대가람이었으며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이다.

〈동화사사적기〉에 따르면 493(소지왕15) 극달(極達)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흥덕왕7) 왕사 심지(心地)가 중창하였는데, 그 때가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율사 진표(眞表)로부터 영심(永深)에게 전하였던 불간자(佛簡子)

심지가 다시 받은 뒤, 이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참당(籤堂)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라 제41대 흥덕왕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심지는 중악(中岳:팔공산)에서 수도하던 중,

속리산 길상사(吉祥寺)에서 영심이 그의 스승 진표로부터 계법(戒法)을 전해받고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때가 늦어 당()에 올라가서

참례할 수 없었으므로 땅에 엎드려서 참례하였다.

법회 7일 만에 진눈깨비가 심하게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10자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신기하게 여겨 당으로 안내하였다.

여기서 그는 열심히 수도하여 영심으로부터 법통을 계승하는 간자를 받았다.

그 뒤 팔공산으로 돌아와 산꼭대기에서 간자를 날려 떨어진 곳에 절을 짓고 간자를 모셔

동화사의 개조(開祖)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극달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法相宗)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寺名)이 붙여졌을 까닭이 없다는 이유로

심지가 창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많다.

 

창건 뒤 934년 선사 영조(靈照)가 중창하였고, 1190(명종20) 지눌(知訥:普照國師)이 중창하였으며,

1298(충렬왕24) 국사 홍진(弘眞)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606(선조39) 유정(惟政)이 중창을 하였고, 1677(숙종3) 상숭(尙崇)이 중건하였으며,

1732(영조8) 관허(冠虛), 운구(雲丘), 낙빈(洛濱), 청월(晴月) 등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영조 때의 중창시에 세워진 건물로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연경전(蓮經殿),

천태각(天台閣), 영산전(靈山殿), 봉서루(鳳棲樓), 심검당(尋劍堂), 칠성각, 산신각, 응향각(凝香閣),

강생원(降生院), 원음각(圓音閣), 천안문(天安門) 등이 있다.

또한 부속암자로는 금당암(金堂庵), 비로암(毘盧庵), 내원암(內院庵), 부도암(浮屠庵),

양진암(養眞庵), 염불암(念佛庵)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미륵보살이 진표에게 주었고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 전해졌다는

『패엽경(貝葉經)』이 전해지고 있고, 고려의 예종이 이 『패엽경』을 빌려보다가 일부를 잃어버리자

송나라에서 전해온 부처님 어금니 1개를 대신 보냈다는 불아(佛牙), 당나라에서 만든 요령(搖鈴),

유정이 영남도총섭으로 있을 때 사용하였던 영남도총섭 인장(印章), 그 밖에 유정이 사용하였던

금강저(金剛杵), 소라고동, 관수대(灌水臺), 별향로(別香爐), 구룡대(九龍臺) 등이 있다.

이 절은 한때 유정이 영남도총섭으로서 승군(僧軍)을 지휘하였던 곳이며, 서사원(徐思遠)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키는 등 호국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민족항일기의 31본산 시대에는 55개의 사찰을 거느렸던 대본산이었으나,

현재에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청도군, 칠곡군, 성주군의 4개군의 사암(寺庵)을 관장하고 있다.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옹호문(擁護門)


내부의 양측에 수미산의 동, , , 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으며

정면 3,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구조로 되어있다.

 

설법전(設法殿)


고승대덕(高僧大德)이 경전과 선을 설하는 법당이다.

동화사의 각종 법회와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지하에는 대중 공양간이 있다.

 

설법전 주련을 살펴보면

補陀山上琉璃界(보타산상유리계)/ 正法明王觀自在(정법명왕관자재)/ 影入三途利有情(영입삼도이유정)/ 形分六道曾無息(형분육도증무식)/ 因脩十善三祗滿(인수십선삼지만)/ 果備千華百福嚴(과비천화백복엄)/ 逈寶山王碧海間(형보산왕벽해간)/ 佩珠瓔珞白衣相(패주영락백의상)/ 無量光中化佛多(무량광중화불다)/ 仰瞻皆是阿彌陀(앙첨개시아미타)

(보타산 위의 유리세계에 머무시는/ 정법명왕이신 관자재(관세음) 보살님/ 그 그림자 삼도에 들어가 유정(중생)을 이롭게 하며/

그 모습 육도에 나누어 일찍이 쉼이 없으시네/ 삼아승지겁 다하도록 십선 인행(因行) 닦으시어/ 온갖 영화의 과보 갖추어 백복으로 장엄하셨네/ 아득히 보타산왕(관세음보살)은 푸른 바다에서/ 주옥과 영락을 차고 있는 흰옷 입은 모습이네/ 한량없는 광명 속에 화신불 많지마는/

우러러 뵈는 분 모두 아미타부처님이시네.)

 

주련의 내용에서 1구의 ‘보타산(補陀山)’은 관세음보살이 머무시는 곳으로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이다.

보타락가산은 인도에 있는 관음 성지로 중국 저장(浙江)성 보타산과 우리나라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등이 유명하다.

3구의 ‘삼도(三途)’란 중생이 살아서 지은 죄과로 인하여 죽은 뒤에 간다는 지옥도와 축생도,

아귀도의 세 악도(惡途)이며, 4구의 ‘육도(六道)’란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세계로,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을 말한다.

5구의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이란 무량겁으로 수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수 또는 시간이다.

주련의 내용은 제1구에서 8구까지 ‘관음예문영가(觀音禮文詠歌)’에서 인용하였으며,

뒤의 2구는 ‘석문의범(釋門儀範) 극락전청가영(極樂殿請歌詠)’에서 인용하였다.

설법전의 편액 글씨는 해서체로 단아하며, 주련의 글씨는 행서 기분을 낸 해서체이다.

글씨를 쓴 사람은 묵선자 박지명이다.

 

봉서루(鳳棲樓)


봉황이 깃든 누각이란 뜻으로 동화사를 대표하는 누각이다.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이며

동편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그 좌우에 영구위패를 모셨다.

 

봉서루 뒷편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현판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으로 동화사에서 승병을 지휘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현판이다.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563

동화사를 대표하는 법당으로 절의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봉서루 누대 밑을 지나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대웅전은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 건물을 조선 후기 영조 3(1727)에서 영조 8(1732)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내부 불단에는 삼세불상(三世佛像)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그리고 그 위로 닫집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정면 3, 측면 3칸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지붕을 받치는 여러개의 포가 놓인 다포식 건축이며 다포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엄당(華嚴堂)


대웅전 동편에 ㄷ자형의 건물로 강원1.2학년 학인들의 학사로 사용되고 있다.

대승시교인 화엄경에서 이름을 따왔다.

 

법화당(法華堂)


대웅전 서편에 ㅁ자 형태의 건물로 강원3.4학년 학인들의 공부하며 거처하는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강원 교과과정중 대승종교인 법화경에서 따온 이름이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산신을 모셔 놓은 당우로 한국 불교 안에 전통 민간신앙을 수용한 증거라 할수 있다.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조상하여 봉안하거나 탱화로 모시기도 한다.

대웅전 서편 뒤에 위치해 있다.

 

무위문(無爲門) 과 영산전(靈山殿)


대웅전 동편 담장에 둘러싸인 별채에 위치한 영산전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법당 안에는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여 석조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상이 좌우로 열좌해 있다.

맛배지붕에 겹처마 형식의 건축으로 1920년에 중건하였다.

영산전의 편액은 구한 말 의정부 참정과 탁지부 대신을 지냈으며 서재필 박사의 외숙인 해사 김성근의 필체이다.

 

조실채와 동별당


현재 주지스님의 처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별당이라는 뜻으로 동별당이라 이름이 붙었으며,

별당이란 한옥 양식에서 몸체에서 떨어져 따로 지은 집으로 내별당과 외별당이 나뉜다.

 

삼층석탑


이 석탑은 1965년에 도학동 논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로 옮겨와 복원한 것으로 전하며,

상층기단부 아래의 탑재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조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대구광역시 비지정 문화재다.

 

인악대사 나무


수령이 약 500년 된 느티나무로 설법전 우측에 위치해 있다.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인악대사를 기리기 위해 인악대사 나무로 명명하였다.

나무둘레 5.4m를 자랑하는 거목으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해탈교(解脫橋)


동화사 봉서루 앞마당에서 인악대사나무를 지나 큰 계단을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아치형 다리이다.

사찰에 가면 항상 사찰 경내 또는 법당에 이르기 전 다리를 만나게 된다.

각 사찰마다 나름대로의 다리 이름을 붙여 표기하지만 공통적인 이름은 세심교이다.

마음을 씻는 교량이라는 의미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속세의 번뇌와 모든 알음알이를 깨끗이 씻는다는 의미이다.

 

통일기원대전


1992년 통일약사대불 조성과 함께 지어진 전각으로 지하 1, 지상 3층의 건물이다.

지하와 1, 2층은 성보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고 하며,

3층은 동화사의 큰 법회와 행사를 대부분 이곳에서 봉행하는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통일기원대전에는 따로 주불을 모시지 않고 앞면을 유리로 시공하여

바깥의 약사여래대불이 유리를 통해 보이도록 설계하였다.

 

금강계단(金剛戒壇 )

계단의 본래 목적은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장소로서 수계자를 중앙에 앉히고

삼사(三師)와 칠중(七衆)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 곳이다.

가운데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묘탑이 있지만 단순한 묘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계단은 대승계단이라는 신앙표현의 한 조형물로 사부대중이 호계를 위해 조성되었다.

 

약사여래대불


약사여래대불(藥師如來大佛)의 본원은 우리민족 칠천만 겨레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하루빨리 성취하고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여 민족대화합을 이루며 세계평화, 인류의 행복을

간절히 염원하고자 조성한 팔공총림 동화사의 대표 불상이다.

동화사의 남쪽 산자락에 1만여 평의 대도량(大道場)을 조성하고

좌대(座臺) 높이 13m를 포함하여 전체 높이 33m로 세계최대 규모의 석불이다.

2,000t에 달하는 불상과 3,000t 무게의 좌대석은 전북 익산(益山)의 황등석(黃橙石)을 썼으며 108명의 석공들이

7개월 동안 각계 전문가들의 고증, 조언을 거쳐 만들어 조성하여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華寺鳳凰門)


동화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이다.

동화사는 그 터가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이라 일주문의 이름도 봉황문이라 부른다.

봉황문은 양쪽에 두 개의 큰 기둥과 작은 기둥으로 균형을 잡아 다포(多包)형식과 팔작(八作)지붕,

겹처마 건축 양식으로 사원의 제일 관문으로서의 위용을 드러내준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 또는 이주(二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243.

동화사 입구 주차장의 바른쪽에 있는 큰 암벽에 새겨진 불상이다.

지면에서 높이 조성되어 있으며 연화 대좌 아래로 구름무늬가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풍만하게 살이 오른 얼굴과 미소를 머금은 입가의 표정에서 깨달은 자의 자비로움이 엿보인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반가부좌한 자세로 오른쪽 다리를 대좌 아래로 자연스레 내려놓았다.

두 어깨를 덮은 법의(法衣)는 세밀하면서 유연하고 오른쪽 어깨에 달린 가사의 끈 장식과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그림을 보듯 생동감이 있다.

배 모양의 광배(舟形光背) 안에는 두 줄의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따로 표현하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불상의 머리 주위를 깊게 파내어 양각의 효과를 효율적으로 드러냈으며,

대좌로 내려갈수록 얇은 선각을 함으로써 구름의 신비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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