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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여행

2016.9.21 영남알프스/ 천황산

일자: 2016.9.21

산행코스: 울산.울주/상북면 이천리 주암마을입구~주계바위~주암쉼터~샘물산장~천황산

~한계암~표충사~밀양.단장/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인원: 홀로

GPS거리: 15.4  널 널~/7시간10

 

언양터미널로 이동하고

328번 버스를 타고 배내고개를 지나 주암마을입구/배내통하우스에서 하차한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주암마을로 간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주차시설들


며느리밑씻개


단장천


주계바위/ 일명.심종태바위다.


주암마을 주차장에서 간이화장실 좌측 계곡길로 내려간다.


주암계곡 합수지점


계곡을 건너 오르막길 초입에 울산중부소방서 401지점안내푯말이 서있다.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 묘지를 지나고


이고들빼기


등로 좌우로 듬성듬성 바위들이 나타난다.




로프가 걸려있는 주계바위 암벽하단부


암벽에 로프가 2단으로 걸려있다.


한굽이 올라서면 영남알프스의 진면목이 펼쳐지는데


배내고개. 배내봉. 멀리 고헌산


간월산. 신불산


염수봉으로 가는 영축지맥


한굽이 올라서서 내려보니 아찔하다.


꽃며느리밥풀꽃


주계바위 표지석


능동산


119구조대402지점과 구급함을 지나고


전망대가 연달아 이어진다.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암계곡


천황산


멋진 비룡송???


119구조대403지점


단풍취


이후 산죽지대를 지나 은근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119구조대404지점 옆은 전망바위다.


지나온 능선


주계바위 땡겨보고


영남알프스


개쑥부쟁이


천황산


억새능선이 잠시동안 이어진다.


재약산


그러고보니 이 바위도 참 오랜만이네


삽주


미역취


산부추


주암계곡갈림길


물매화



주암쉼터


막걸리 한잔하고 갈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다.


이넘들이


한동안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구절초


재약산갈림길


요 근래 비가 잦아서인지 천지가 물길이다.


식수 보충하고


개쑥부쟁이


사자재갈림길


물매화 보러 샘물산장 방향으로 간다.


구절초


천황산갈림길


미역취


예전 목장이 있던 곳을 지난다.


물매화






산부추


산박하


용담


범굴갈림길을 지난다.


저기도 언제고 다시 한번 더 가봐야 할텐데


억새


고마리


구절초


산비장이


물매화



샘물산장


배낭을 내리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점심 먹으면서 한참을 쉬었다가 간다.


얼음골케이블카갈림길


미역취


얼음골갈림길


사연많은나무


이후 은근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등로에 나무부스러기들을 깔아놓않는데 푹신푹신한 것이 괜찮네


조망이 트이고


남명리일대와 억산. 운문산. 백운산. 가지산


백운산 백호바위 땡겨보고


천황산 정상부가 지척이다.


쓴풀


산부추


수리취


필봉갈림길


삽주


쓴풀


천황산(1189m)


재약산 수미봉에서 바라보면 사자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봉으로도 불리운다.

그 기상이 사자처럼 힘차고 늠름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영남알프스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안으로는 목장이 들어설 만큼 부드러운 산세를 지녔지만

바깥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이 감히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기암괴석의 산수미가 뛰어난 곳이다.


간월산. 간월재.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향로산. 금오산. 천태산. 구천산. 만어산


정각산. 중산. 낙화산. 화악산


운문산. 가지산


사방으로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산그리메를 즐기고 한동안 휴식이다.


오늘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한계암(3.0)방향으로 하산이다.


개쑥부쟁이


산부추


미역취


산오이풀


삽주


수리취


구절초


긴급구조목은 '천황산 밀양 가-5'


이 등로는 예전에는 답답한 돌길의 연속이였는데 현재는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시야가 트이며 정면으로 향로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재약산


뒤돌아본 천황산


당겨본 표충사


긴급구조목 '천황산 밀양 가-4'


내리막길 우측으로 작은 묘지를 지난다.


누가 버려놓았을까?


이렇게 버릴려면 따지나 말지

산에서는 그대로 두는것이 제일 좋은 법이다.


너덜지대 시작지점의 긴급구조목 '천황산 밀양 가-3'


500m마다 긴급구조목이 설치되어 있으니 천황산에서 1.5km를 내려오면 너덜지대다.


너덜지대



너덜지대가 끝나는 지점의 긴급구조목 '천황산 밀양 가-2'


그러면 너덜지대가 약500m가량 이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까치고들빼기


꽃며느리밥풀꽃


첫번째 나무테크계단


누가 쌓아놓았을까?


너무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시큰거리고

배낭을 내리고 물한잔하며 잠시 휴식이다.


긴급구조목 '천황산 밀양 가-1'


두번째 나무테크계단


이후 내려설수록 물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리고

한계암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상수원보호구역/ 금강동천 지류다.


한계암


표충사의 산내 암자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이다.

예전 한계암 자리에는 원래 비비정((飛飛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못 쓰게 된 것을 혜각스님(慧覺, 1905~1998, 무형문화재 단청장)이 건물을 지었고,

석정스님(石鼎, 1928~2012, 무형문화재 불화장), 그리고 그들을 시봉한 동원스님과 수안스님이 같이

6년 동안 시 짓고,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묵언 참선 수행 정진했던 곳이다.

지금 한계암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3동이 있으며

한계암 법당은 전국에서 가장 작은 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법당의 불상은 금강사 유점사에 있던 철불을 혜각스님이 모셔와 개금했다고 한다.



주련에는 명시승(名詩僧) 한산자(寒山子)의 시 끝 구절 세세부지춘(歲歲不知春) 조조부견일(朝朝不見日)

“아침마다 해가 뜨나 해는 보이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봄이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겠다”가 적혀있다.


금강폭포


출렁다리를 이용하여 계곡을 건너고


한계암 앞 예전의 시멘트 다리는 지금은 위험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일광폭포


일광폭포(좌측)


일광폭포(우측)


한계암은 두 개의 폭포 사이의 공간에 그림처럼 앉은 암자이다.


한계암의 비경을 보고 있노라니 석정스님이 한계암 토굴에서 한 경계를 얻은 게송이 생각난다.

조유산색리(朝遊山色裏)   낮에는 산 경치 속에서 노닐다가,

모와수성중(暮臥水聲中)   밤에는 물소리 들으며 잠드네.

창전조어난(窓前鳥語亂)   창밖에 새소리 요란해서 일어나 보니,

경기일륜홍(驚起日輪紅)   벌써 중천에 떴네.


금강동천


암자 좌우로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장관 그 자체이며

오랜 세월에 바위가 패여 커다란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이 주변은 가을에는 주변 단풍들과 조화를 이루며 엄청난 비경을 만드는 곳이다.

금강폭포. 금강동천 모두 혜각 스님이 명명했다고 하는데

혜각스님은 한계암 계곡 바위에 “금강동(金剛洞)”이라 적을 정도로 이 계곡을 즐겼다고 한다.





시멘트도로에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다리를 통해 계곡을 가로지른다.


이후 계곡 적당한 곳에서 알탕을 즐기고


쉰 땀냄새 나는 옷을 갈아입으니 좀 살 것 같다.


사자재. 재약산갈림길


표충사는 이곳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0.5km를 더 내려서야 된다.


효봉원명선사 사리탑


효봉 원명선사(曉峯元明禪師, 1888~1966)

효봉 큰스님은 절구통 수좌로 남다르게 수행을 한 해방 후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현대의 마지막 선승이다.

일제강점 시절 죄수에게 사형선고를 한 계기로 출가하였다고 하는데

스님의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오설일절법(吾說一切法) 도시조병무(都是早騈拇)

약문금일사(若問今日事) 월인어천강(月印於千江)

“한평생 내가 말한 모든 법이 모두가 쓸데없는 군더더기

누가 오늘 일을 물어온다면 달은 저 천강에 잠긴다고 하리”


표충사(表忠寺)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654)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죽림사(竹林寺)였다.

그러다가 흥덕왕 4(829)에 영정사(靈井寺)로 바뀌었는데 나병에 걸린 왕의 셋째 아들이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완쾌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의 보우스님과 고려의 일연스님이 선풍을 일으키기도 한 곳이다.

조선 헌종 5(1839)에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가 표충서원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표충사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서산(西山), 사명(四溟), 기허(騎虛) 대사를 모신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옮겨지면서 부터다.

표충서원은 유생들을 교육하고 성현들을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래서 표충사는 유교의 표충사(表忠祠)와 불교의 표충사(表忠寺)혼재하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 사찰의 승규(僧規)와 풍기(風紀)를 감찰·단속하는 규정소가 설치됐다.

사명대사의 8() 법손(法孫)인 월파당(月坡堂) 천유(天有) 화상이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올랐던 시기였다.

근대 들어서는 조계종 종정과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曉峰, 1888~1966)선사가 주석하다가 입적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1 6월에는 전국31본산 중 하나인 통도사의 말사로 편입됐다.

전국31본산은 조선총독부가 조선불교를 체계적으로 통치·감독하기 위해 전국 사찰을 31구역으로 나눈 제도였다.


천황제일루(天皇第一樓)와 수충루(酬忠樓) 현판이 걸린 표충사


중문, 서원의 정문형태로 된 누각인 이 문을 들어서면 표충사 경내.

이후 표충사 경내 참배를 마치고


일주문


매표소를 통과하고


꽃무릇이 지기 시작한다.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산행마무리하고…

16:50 출발하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밀양터미널로 간다.


밀양터미널에서 연계되는 부산行 버스를 타고 집으로 go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