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씻는 소리/ 무용대사
休言潭水本無情 (휴언담수본무정) 못물 정없다 말하지 마소
厥性由來得一淸 (궐성유래득일청) 본성은 원래 하나의 맑음
最愛寥寥明月夜 (최애요요명월야) 사랑스럽다 요요히 밝은 달밤
隔窓時送洗心聲 (격창시송세심성) 창 사이로 때로 보내는 마음 씻는 소리
위 시는 무용대사가 삼연 김창흡(金昌翕)에게 준 시이다.
삼연은 당시 사대부로서 명성이 높던 사람이다.
당시에도 고관대작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높은 벼슬아치이면서 대표적 선비에게 주는 시 이지만,
시의 내용은 은연중 불교적 법리의 일상성을 전하고 있다.
물은 맑음이 그 자성 본체이다.
맑고 평정하다 함이 유동으로 상징될 수 있는 점이 없다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원래의 본성이요, 이러한 본성이 있기에 고요한 밤의 물소리는
정려한 자의 마음을 씻기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응용의 나름에 따라서는 정적인 맑음이 동적인 소리로 변하여
그 맑음의 본성에서 내 마음의 맑음을 배울 수도 있는 것이다.
항시 정려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 산승도 이러한 지기를 만나면,
저 물이 동적인 소리로 변하여 맑음을 전하듯이 승속을 뛰어넘어
산사를 찾아준 세속의 선비의 마음을 맑힐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처지의 다름에서 간격을 두고 사는 터이기는 하지만,
회심의 한 편의 시가 마음을 잇고, 거기에 따라 두 사람의 마음은 맑아진 것이다.
비록 심오한 교리적 표현은 아니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투영된 두 사람에게는 교리 이상의 마음의 교분이 나타나 있다.
끝 구의, 창에 가려 막혔다는 격창이라는 용어가 갖는 상징성도 재미가 있다.
어쩌면 서로 가리운 처지의 막힘으로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들려오는 물소리는 이 막힘을 뚫어 주면서 마음까지 씻어주고 있다.
여기서 두 사람의 마음은 물의 자성 맑음이듯이 청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 사람의 정의를 깨끗하게 표현하면서도, 저 속세적 의미로 끌리지 않고,
오히려 스님의 처지로 안아 법리적 자성으로 요리한 점에서,
스님의 기개를 엿볼 수 있어 아름답다.
역시 일상사를 선으로 함축하는 스님들의 자세라 여겨 더더욱 머리 숙여진다.
'선시.한시.법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書王定國所藏王晉卿畵著色山(서왕정국소장왕진경화저색산) (0) | 2017.08.30 |
---|---|
구름처럼 떠돌며~ (0) | 2017.08.17 |
푸른 산기슭에 집 지어 살지만~ (0) | 2017.07.16 |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네. (0) | 2017.05.25 |
흐르는 물은 산을 나가도~ (0) | 2017.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