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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 1코스

답사일자: 2023.6.16

코스: 남해공용터미널(시점)-남해전통시장-북변1리.마을회관-해양초등학교-남해.유배문학관

-소입현.마을회관-습지생태탐방로-해안도로.전망대-강진만.해안도로-쇠섬.스토리펜션-섬호마을회관

-남해읍에서,이동면으로-광두마을-고모교차로-이동면행정복지센터(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3.19km (남해바래길 공식기준 12.2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3시간35분

▶ 갈때 : 경남 양산.내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후,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行 시외버스를 타고 남해공용터미널에 하차,

트레킹시작

▶ 올때 : 남해바래길 1코스 마치고, 2코스 동시진행으로 인해

1코스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엄마의 길 -남해바래길 231km [남해바래길 2.0 홈페이지]

500년 전부터 ‘꽃밭(花田)’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아름다운 보물섬 남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남해 섬을 두발로 걷는 길이 ‘남해바래길’입니다.

2010년 첫 문을 연 남해바래길이 개통 10년을 맞아, ‘남해바래길 2.0’으로

리모델링되며, 남해군 10개 읍·면을 모두 경유하는 231km

(본선 16개 코스, 지선 4개 코스, 섬 지선 2개 코스, 테마 지선 2개 코스)의

중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확장되었습니다.

남해바래길 2.0을 통해 기존 노선도 조정되었고, 길 로고, 안내체계,

운영 시스템까지 고도화되었습니다.

본선 16개 코스는 섬 전체를 걷는 종주형이며,

지선 4개 코스는 자가용 이용이 편한 원점회귀 단기 코스입니다.

본선 16개 코스 중 11개 코스는 코리아 둘레길의 남해안길인

‘남파랑길’ 36~46코스와 노선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에 따라 남해바래길의 안내 사인은 남파랑길 안내체계를 이어가면서도

지역 정체성을 함께 드러내지요.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토속어입니다.

남해바래길  1코스 「바래오시다길」

▶ 총거리 : 12.2km

▶ 걷는시간 : 약 4시간 내외(쉬는 시간 포함)

▶ 난이도 : ★☆☆☆☆(아주 쉬워요)

▶ 걷는 경로(단위 km) : 남해공용터미널←0.5→남해어시장(남해전통시장)←0.7→청년창업거리

←0.6→유배문학관←1.6→습지생태탐방로←1.9→쇠섬.입구(해안길)←6.9→이동면 행정복지센터

​▶ 코스개요 : 1코스 바래오시다길은 ‘(어서) 오세요’의 토속어인 ‘오시다’로 명명되어

바래길 2.0의 첫 관문임을 알린다.

원거리 대중교통 거점인 남해 공용 터미널을 출발한 길은 활기 넘치는 남해 어시장을 거쳐

다양한 맛집과 디저트 숍이 자리한 청년 창업 거리를 지나 유배 문학관에 닿는다.

이후 아름다운 해안 습지 탐방로를 지나 평온한 바다와 조우하는 이 길은 쇠섬 입구를 지나

해안길을 따라 이동면 행정복지센터까지 간 후 마무리된다.

'남해공용터미널'의 택시승강장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남해바래길 안내도'

(08:45) '남해바래길' & 트랭글 앱 켜고, '남해공용터미널' 앞에서 우측[남쪽]으로 나서서

남해바래길 (바래오시다길) 1코스 시작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우회전하여 '화전로96번나길' 도로를 따라

읍내 방향으로 진행하고~

(08:48) 빨간화살표 바래길 방향 표시를 따라,

'남해전통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08:49) '남해닭집' 앞 '수산물 코너'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수산물시장 좌판대 앞을 지나서 끝 지점까지 진행후,

(08:51) 골목식당 우측으로 나서서, '남해전통시장'을 벗어난다.

(08:52) 사거리로 나서서 '햇님화원'을 좌측에 두고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 길게 직진해서 진행하고~

좌측편으로 '북변1리 마을회관'을 보면서 지난다.

남해읍 북변리(北邊里)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에 있는 리(里)이다.

남해읍의 중심부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반어반상마을이다.

동쪽으로 남해와 인접해 있고, 대부분의 지대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 북변, 오동, 유림 마을이 있다.

북변 마을은 군청 북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동 마을은 오동 나무가 많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유림 마을은 북변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형문화재 제 222호인 남해향교가 있다.

북변1리마을은 조선 세종 19년(서기 1437년) 남해 읍성이 축조되면서

북변동으로 칭하여 오다가 1979년 북변2동 분동과 동시에 북변1동으로

조정되었으며, 1988년 북변1리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남해읍의 중심지에 자리해 남해군의 상권이 집약해있고,

주요 관공서가 모여 있어 남해의 행정의 1번지 마을로 불리고 있다.

(08:58) 'CU편의점' 지난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좌측 편으로 '남해농협'과 '우체국'을 끼고 진행하고~

(09:00) '화전로'와 '망운로'가 갈리는 사거리에서, '남흥해외여행사'와

'베스킨라빈스' 사이 도로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좌측 '먹자골목'으로 진행이다.

(09:04) '퓨전포차 마시고 돈내고 나가자' 식당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꽃 해양화원' 꽃집을 우측에 끼고 진행하고~

(09:06) '김석년 가축병원'이 있는 도로사거리에서,

'777편의점'을 좌측에 두고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09:08) 'ㅓ'자 삼거리갈림길에서 '화전로38번가길'

도로를 따라 좌회전하고~

(0910 '화전로38번나길' 도로가 시작되는 사거리갈림길에서,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우측 골목길로 진행이다.

벽화골목 안에는 「할멈, 이쁜 것만 보고 사시게」등,

여러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있고~

(09:12) 그렇게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화전로' 도로인데,

좌회전하여 도로 건너편으로 '해양초등학교'를 두고 진행이다.

(09:16) '남변로터리'에서 남해바래길은 우측의

'남해 유배문학관' 방향으로 이어지고~

오는날이 장날이라, '남해 유배문학관'은 6월15일부터 6월18일까지

제18회 '남해 마늘한우축제' 중인데, 이른시간이라 축제준비에 한창이다.

(09:19) 조선시대 문지기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남해 유배문학관'으로 들어서고~

'서포 김만중' 좌상과 함께 남해에 유배를 왔다가 한시를 남긴 유력 인사들의

책자 형상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남해 유배문학관

국내 최초 및 최대 규모의 문학관으로, 유배와 유배문학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 습득을 위한 전문공간으로 2010년 11월 개관하였다.

주제별 전시관을 통해 유배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다양한 체험 전시 외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 입구에서 바라보면 제일 우측에 남해 유배객 중

가장 많은 한시를 남겼다는 '겸재 박성원'의 시비 바라보고~

겸재(謙齋) 박성원(朴聖源, 1697~1767)

대나무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1744년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 영조가

기로소(耆老所: 70세 이상 문관 정 2품 이상의 노인 우대소)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다가

송인명 등에 의해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의 배소에 탱자 가시 울타리를 쳐

그 안에 가두어 둠) 되었는데, 남해 유배지에서의 1년 7개월간의 생활을 한시로 남겨

남해 유배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겸재 박성원' 시비 좌측에 '소재 이이명'의 '매부' 시비 바라보고~

소재(疎齋) 이이명(李頤命,1658~1722)

세종의 아들 밀성군(密城君)의 8대손으로 조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고

부는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영해에 유배되었다가, 1692년 장인 김만중이

남해 노도에서 세상을 떠나자 남해로 이배되어, 장인 김만중의 적사에 있던

시들어가는 매화나무 두 그루를 자신의 적소로 옮겨 심고 '매부(梅賦)'를 지었다.

1694년 갑술옥사 때 풀려나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세제 연잉궁(훗날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도하다 남해로

두 번째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사약을 받았다.

이이명은 초옥 앞마당에 있는 '봉천사 묘정비(鳳川祠 廟庭碑)'의 주인이다.

'서포 김만중'상과 '사친'시비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숙부로, 한때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

높은 벼슬자리를 두루 거친 명필이었다.

1687년 숙종조 때 희빈 장씨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싼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그가 속했던 서인이 실각한 후 선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잠시 선천 배소에서 풀려났다가

1689년 초에 다시 남해 끝 앵강만 노도(櫓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다.

김만중은 노도(櫓島)에서의 유배생활 3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문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작품을 남겼다.

《구운몽》은 홀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소설로, 여덟 명의 선녀와 함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것은 결국은 덧없는 하룻밤 꿈임을 깨닫고 수도하여

마침내 극락으로 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켜 내친 일을 풍자한 내용이다.

노도에서 어머니 윤씨의 부음을 들은 김만중은 「정경부인 윤씨행장」을 쓴 뒤,

1692년(숙종 18) 56세의 나이로 노도에서 생을 마쳤다.

《구운몽》은 종전까지는 남해 유배생활 중에 쓴 국문 소설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라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자암 김구' '화전별곡 제1장' 시비 바라보고~

자암(自菴) 김구(金絿,1488~1534)

조선 초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안평대군 이용 · 양사언 · 석봉 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 서예의 4대가로 꼽힌다.

1519년 남곤(南袞) 등 훈구세력이 일으킨 기묘사화로 개령(開寧)에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뒤에 죄목이 추가되어 남해로 이배되었다.

남해에 이배된 지 13년 만에 임피(臨陂)로 다시 옮겼다가, 2년 뒤에 풀려나와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왔다.

유배 기간 중 사망한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다 4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가 지은 경기체가인 '화전별곡(花田別曲)'은 남해의 뛰어난 경치와

향촌(鄕村)의 인물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정서와 감회를 노래하였는데,

이 시비에는 남해를 '신선이 사는 섬'으로 극찬한 '화전별곡(花田別曲)

제1장'이 새겨져 있다.

'약천 남구만' '제영등금산' 시비 바라보고~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숙종 때 소론의 거두이다.

1679년(숙종 5) 한성부 좌윤일때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해 대제학,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까지 지냈다.

그는 1681년 에도 막부의 제5대 쇼군 취임을 축하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당시 대표적인 일본통이었다.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두둔하였고, 이로 인해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1710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남구만의 대표 시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청구영언》가 있다.

누구신지 여기서 낚시를??? ㅎ

유배객이 살았던 초옥에 실물 크기의 유배객 모형 바라보고~

'남해 유배문학관' 야외공원의 조각품 바라보고~

이후 야외공원을 빙 돌아 '유배문학관' 뒤편으로 진행하여,

(09:32) '남해유배문학관' 후문 도로로 나가서 좌회전이다.

'봉천'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변 보행로를 따라 진행하고~

봉천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아산리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아산리, 서변리,

남변리, 차선리 일대를 흐르다가 남해안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낙동강 권역 낙동강 남해권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하천연장은 4.37㎞,

유로연장 6.39㎞, 유역면적 16.43㎢이다.

지방하천인 평천과 소하천인 아산천·북변천 등을 지류로 포함한다.

하천은 동서와 남북의 유역 폭이 비슷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이루며,

유역의 평균폭이 2㎞에 달한다.

중류부의 좌우안으로 남해군청 및 법원, 경찰서 등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과

상업시설, 주거지 등이 밀집해 있다.

유역 내에 내금저수지·소촌소류지·아산소류지·외금소류지 등의 저수지가 있고,

19번 국도가 관통한다.

(09:37) '입현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면,

'남해읍 입현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남해읍 입현리(笠峴里)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에 있는 리(里)이다.

마을 뒤쪽에는 남해 호두산이 위치하고 바다와 접해 있는 농촌과 어촌을 겸하는 마을이다.

면적의 대부분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골짜기를 따라 일부 가다랭이 논밭이 있다.

북쪽으로는 19번 국도로 이어져 있으며 남해읍과 가까이 위치한다.

자연마을로 갓골, 대입현, 섬호 마을이 있다.

갓골 마을은 가재가 많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대입현 마을은 입현의 가장 큰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섬호 마을은 토촌 동쪽의 해변에 있는 마을이다.

 

 

 

(09:39) '남해시대신문' 대형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남해대로' 도로변으로 나가,

가드레일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의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되는데~

남해바래길 앱은 직진하여 고가다리 위로 올라가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남해대로'를 건넌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도 되는데~)

굳이 우측 사면길로 'U턴' 하여 빙 돌아서 진행하라고 한다.

할수있나???

빨간 남해바래길 화살표 방향표지기 따라 진행하여,

우측 사면길로 'U턴' 하여 내려가는데, 좀 빙 돈 셈이다.

(09:46) '소입현마을' 입구 'Y자' 갈림길에서

남해바래길은 좌측길로 내려서고~

남해읍에서 이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조선시대부터 갓을 쓴 선비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갓곡'이라 하는 마을이 있다.

마을 노인들은 지금도 소리 나는 대로 ‘까꼭’ 또는 ‘깍국’이라 부른다.

또 다른 설로, 가난하게 산 조상들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지출이 많아지므로

삿갓(옛 조상들이 비올 때 머리에 쓰는 것)을 쓰고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면

바로 집으로 왔다고 하여, 삿갓을 쓰고 다닌다는 의미에서 笠峴(입현)이라 부르게 되었고,

또한 오르막도 많고 내리막도 많은 마을이라 하여 '깍곡'과 '작은깍곡'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09:48) '봉천제방 둑길'에 올라서고~

이제부터 '남해바닷길 탐방로' 중 '에코파크길'이 시작되는데,

'에코파크길'은 '봉천제방 둑길'을 따라 '선소리조망대'를 지난후

'쇠섬'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다.

헐!!! 칡덩쿨이 등로를 잠식하기 일보직전이다.

빠른시간내 등로정비를 해야 할 듯~

(09:54) 좌측으로 '죽산교'를 바라보면서, 직진하여 진행하고~

(남해바래길은 '죽산교'를 건너가지 않는다.)

정면 우측의 '생활폐기물 전처리시설'을 바라보면서,

'봉천제방 둑길'인 '에코파크길'을 따라 계속 진행이다.

(09:58) 좌측으로 '봉천교'와 우측으로 '생활폐기물 전처리시설' 사이로

이어지는 '봉천제방 둑길'인 '에코파크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고~

그렇게 '생활폐기물 전처리시설' 건물을 지나면,

둑길 우측으로 넓은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다.

(10:04) 남해바래길 갈림길을 만나고,

'봉천' 위에 놓여있는 데크다리를 좌측으로 건너서 진행하라고 남해바래길 앱이 알린다.

그렇게 데크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봉천제방 둑길'인 '에코파크길'을 따라 진행하고~

'봉천' 좌측의 습지 바라보고~

정면 우측으로 '봉천' 수문이 조망되고,

'봉천제방 둑길'이 서서히 끝이나기 시작한다.

(10:11) '봉천제방 둑길'이 끝이나며,

'선소로' 해안도로와 합류하고~

'남해바닷길 탐방로' 안내도 바라보고~

(10:12) 갈매기 모양의 '선소리 조망대'에 올라간다.

좌측으로 '선소방파제' 바라보고~

정면 남해바다 '강진만' 건너 '창선면'의 '대방산' 바라보고~

우측으로 '쇠섬' 바라보고~

'선소리 조망대'에서 조망을 즐긴후 되돌아내려와,

우회전하여 '선소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사각정자 쉼터를 만나고~

사각정자 그늘진곳에 배낭을 내리고, 얼려서 준비해온 테라 캔맥주 큰거 1캔과

샌드위치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며 10분 쉬었다가 간다.

'쇠섬' 바라보고~

(10:24) '봉천' 수문을 지나고~

'선소리' 표지석을 지난다.

남해읍 선소리(船所里)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에 있는 리(里)이다.

남해에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서쪽에 근접한 육지에는 선소 나루터가 있어 배로 왕래가 가능한 어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 선소, 몰랑 마을이 있다.

선소 마을은 배를 만드는 곳이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몰랑 마을은 선소 마을 북쪽에 있는데

문화재로 유형문화재 제 27호인 장량상동정마애비가 있다.

(10:26) 우측으로 '봉천 산책길' 입구를 지나고~

방파제로 연결된 '쇠섬' 땡겨보고~

섬은 소도(蘇島)라고도 한다.

방파제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썰물 때 길이 열려야만 걸어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되어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언제든지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한다.

(10:37) '돈가스'로 유명하다는 '쇠섬 스토리펜션 앤 카페' 앞을 지나는데,

건물 벽면에 '문무학' 시인의 '바다'란 시가 적혀있다.

바다 -문 무학-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다시 한번 더 방파제로 연결된 '쇠섬' 바라보고~

그렇게 좌측으로 '쇠섬'을 바라보면서 S라인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섬호방파제'를 지나면 도로명이 '선소로'에서 '강진만로'로 바뀐다.

도로 갓길에 심어놓은 '수국' 바라보고~

'초양방파제' 바라보고~

(10:48) '입현리 섬호마을회관' 앞을 지나간다.

옛날에는 본 마을을 '방포'라고 불러왔으나, 방포라는 마을 이름이

바닷가에 사는 촌놈의 명칭과 같다 하여 '섬호'로 고쳐 부르고 있다.

예전부터 매년 음력 10월 15일이면 마을 주민들이 '밭무덤(옛 명칭)'에서

정성을 다해 당산제를 지내 왔는데, 6.25사변을 맞아 본 마을 주민 중

한 사람도 다치거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유래가 있는 마을로,

지금도 정성을 다해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10:49) '섬호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썰물때의 갯벌...

와~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10:53) 우측으로 '초양로' 도로가 갈리는 'Y자형'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강진만로' 해안도로로 남해바래길은 이어지고~

 

이곳에서부터 '남해읍'에서 '이동면 초음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남해군 이동면(二東面)

경상남도 남해군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8 법정리 ('다정리', '초음리', '석평리',

'무림리', '신전리', '화계리', '용소리', '난음리') 22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삼동면(三東面), 북쪽으로 남해읍·서면(西面), 서쪽으로 앵강만과

남면(南面)에 각각 접하고 남쪽은 남해에 면한다.

금산(錦山:701m)·송등산(松登山:617m)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

초천(草川)·다천(茶川), 남서쪽으로 금평천(錦坪川)·두모천(頭毛川) 등이 흐른다.

690년(신라 신문왕 10) 본 군에 전야산군을 설치한 후 신라 경덕왕 때 와서

남해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때 이동면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1885년(고종 22)에 이동면과 성남면으로 분리하여

다스리다가 1905년 다시 이 2개 면을 통합하여 이동면이라 하고 면장을 두어 다스리게 했다.

다정·초음·양아·상주 등 10개 리를 담당하였는데 1942년 상주리에 상주 출장소를 두어

상주리와 양아리를 담당케 하였다.

1957년 이를 이동면에 다시 폐합하였다가 1970년 이동면 상주출장소를 개설하였다.

또 198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삼동면 난음리(蘭陰里)를 이동면에 귀속시켜 오늘에 이른다.

『여지도서』에 이동면이 "관문에서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에는 이동면현동으로 나타난다.

고지도는 『해동지도』에 이동면이 곡포보와 상주포보 사이 해안가에 처음 기재되어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밭작물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다.

남해~하동을 잇는 국도가 면의 북부를 지난다.

문화재로는 다정리(茶丁里)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3),

보리암전(菩提庵前)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

용문사 대웅전(龍門寺大雄殿:경남유형문화재 85),

용문사 석불(경남유형문화재 138), 곡포보성지(曲浦堡城址) 등이 있다.

다정리 삼층석탑은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다천사(茶川寺)를 창건하고 탑을 건립하였으나

다천사보다 명지(名地)인 용문사에 합사(合寺)하였으므로 이 탑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재는 탑신 2매와 옥개석 2매로 된 2층탑이지만 원래는 3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식으로 보아 신라보다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용문사는 처음 원효대사가 보광사(普光寺)를 지었는데 후에 백월당(白月堂)이

이곳으로 절을 옮기고 용문사라 개칭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을 만들어

외삼출목(外三出目)의 포(包)를 쌓아 올렸다.

이동면 초음리(草陰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대부분의 면적이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 마을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바다로 둘러쌓였던 지역이었으나 간척과 경지정리사업으로

넓은 농지가 조성되었다.

에미들, 장평들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 남해와 인접해 있고 다정리와 이웃한다.

남서쪽에는 호구산(619m)이 있다.

자연마을로 초음, 새면, 초양 마을이 있다.

초음 마을은 새면 응달쪽이 된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새면 마을은 초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초양 마을은 광두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10:56) '남해 암소한마당'란 대단위 축사를 갖춘

음식점 앞을 지난다.

'초양방파제'가 지척으로 다가오고~

음~ 뭐지...

바지락 조개 세척하는 곳인가???

(11:03) 우측으로 '초음리 초양마을' 방풍림을 지난다.

(11:09) 저 멀리로 보이던 '광두머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광두머리' 땡겨본다.

'광두마을' 뒷편의 '호구산' 바라보고~

(11:19) 'T자형' 도로삼거리에서 우측 '광두마을' 방향으로 진행하고,

좌측 '광두머리'로 들어가면 '광두선착장'이 나온다.

(11:21) '광두마을'을 지나고~

초음리 광두(光頭)마을은 지형이 사람의 머리 모양이라, '빛나는 머리'라 하며

'광머리'라 하고, 한자 표기로 광두(光頭)라 한다.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에 바다가 큰 강처럼 되어 있는데, 그 바다 쪽으로

거북 머리 모양의 상끝이 나와 있는 마을이며, 반지락· 피조개로 마을 소득을 올려

주변 마을 보다 농가 수입도 높다.

해~당화 피는 내고향~ 물새우는 내~ 고향~

생전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인데, '해당화'를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멍 때리는 의자~

사용 연령이 30세 미만이라 앉아보질 못했다. ㅎ

(11:34) 수산물 직판장이란 '남해섬 영어조합법인' 앞을 지나고~

'호구산'이 상당히 가깝게 조망된다.

(11:41) 빨간 피아노 포토존을 지나고~

(11:45) 정면 좌측으로 '남해 갯마을펜션'이 나타난다.

(11:46) '다천천'을 가로지르는 '고모교'를 건너고~

그렇게 '고모교'를 건너면 '석평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이동면 석평리(席坪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평준한 지대로 이루어진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서쪽으로 송등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으로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이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제방을 쌓아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넓은 농경지가 펼쳐지고 이동면 무림리와 이웃한다.

마을 남쪽으로는 석평소류지가 있다.

북동쪽으로 남해와 인접해 있다.

자연마을로 마전촌, 아랫점골, 웃점골 마을이 있다.

마전촌 마을은 삼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랫점골 마을은 웃점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웃점골 마을은 석평리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석평리 앞으로 19번 도로가 지난다.

(11:48) '19번 남해대로'가 지나는 '고모교차로'로 나서서,

좌측 '미조/ 상주'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진행이다.

'19번 남해대로' 좌측 나무데크길 따라 진행하고~

바라보면 볼수록,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

(11:54) '보광해물탕' 앞 'T자' 삼거리에서 '19번 남해대로'를 벗어나

좌측 '죽방로'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11:58) '남해바다정원'을 지나고~

이름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정원인데,

'그리스 산토리니'가 생각나는 화이트&블루 색상이다.

 

 

 

이후 '죽방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좌측으로 '무림천' 수문이 보인다.

(12:07) '무림천' 수문 직전에서 다리를 건너기 전 '죽방로' 도로를 버리고

우측 '이동공설운동장 200m→' 방향으로 진행하고~

'무림천' 바라보고~

무림천(茂林川)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무림리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무림리 일대를 흐르다가 남해(강진해)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낙동강 권역 낙동강 남해권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소하천인 봉곡천, 정거천, 성현천 등을 지류로 포함한다.

하천연장은 1.6㎞이며, 유로연장 3.04㎞, 유역면적 5.42㎢이다.

하천의 이름은 이곳의 지명인 '무림(茂林)'에서 유래했으며,

무림은 숲이 무성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천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한 편이며,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토지이용현황은 임야가 66%, 농경지가 26%, 주거지가 5%, 기타 3%이다.

유역 내에 석평소류지, 성현소류지, 봉곡소류지 등의 수리시설이 있고,

하천을 따라 국도 제19호선이 나 있다.

(12:09) '재건이동교회' 앞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교회 앞으로 들어서면 '이동면 무림리' 관내다.

이동면 무림리(茂林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비교적 평준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농촌 마을이다.

이동면 면소재지이며 남해고등학교가 이곳에 있다.

마을 남서쪽으로 송등산이 뻗어있으며, 무림뒷들이 마을 전면에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 무림, 골안, 다리목 마을이 있다.

무림 마을은 숲이 무성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골안 마을은 골짜기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목 마을은 다리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후 '재건이동교회' 앞을 지나고,

(12:10) '19번 남해대로' 아래를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나고~

(12:11) '남해군유기동물보호소' 담벼락을 따라서 진행이다.

(12:12) '무림로' 도로를 만나고, 정면에 '남해고등학교'가 위치한다.

이후 좌회전하여 '무림로'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고~

(12:20) '남해바래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이동면 행정봉사센터' 앞에 도착이다.

'이동면 행정봉사센터'가 '남해바래길'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점이다.

오늘 1차로 목표했던 남해바래길 1코스(바래오시다길)도 무사히 도착했다.

남해바래길 &트랭글 앱 끄고~

'이동면 행정봉사센터' 화장실에 들려 고민 해결하고,

곧바로 남해바래길 (비자림해풍길) 2코스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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