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7.29
코스: 천하.버스정류장(시점)-금포리마을회관-상주은모래비치/상주해수욕장-남해수산연구소
-대량마을.공원묘원-대량마을.버스정류장-소량마을.표지석-오지방고개-두모항-두모관광교
-벽련마을/벽련항-상주면에서 이동면으로-앵강만휴게소-원천.버스정류장-원천항-신전.앵강다숲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7.79km (두루누비기준 17.6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5시간17분
▶ 갈때 : 전날 남해바래길 8코스 마치고, 현지 숙박으로 인해 41코스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도보로 금평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고,
(12:12) 금평 버스정류장에서 남해공용터미널行 버스타고
(12:28) 초음 버스정류장에 하차, 남해바래길 지선4 다초바래길을 이어간다.
개통 10주년을 맞아 2020년 새롭게 리모델링 된 '남해바래길2.0'은
총 231km로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 섬 지선 2개 코스,
테마 지선 2개 코스로 구성되었다.
본선 코스는 섬 전체를 연결하는 순환형 종주길로 11개 코스가
남해안 전체를 잇는 '남파랑길' 90개 코스 중 36~46코스와 노선이 일치된다.
지선 코스는 코스별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단거리 순환형 걷기여행길로
자가용 이용이 편하게 구성되었다.
남해바래길 09코스 구운몽길 [남해 바래길 홈페이지]
▶ 총거리 : 17.6km
▶ 걷는 시간 : 약 6시간 30분 내외(쉬는 시간 포함)
▶ 난이도 : ★★★☆☆(무난해요)
▶ 걷는 경로(단위 km) : 천하마을←1.0→금포←2.2→상주해변←4.6→대량←2.7→두모
←2.0→벽련←2.9→원천항←2.2→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 코스 개요 : 9코스 구운몽길은 소설 ‘구운몽’의 저자인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보며 걷는 구간이 많아 명명되었다.
구운몽길은 천하~금포~상주~대량~소량~두모~벽련~원천마을 같은 바닷가 마을을 잇는 길이다.
지금의 찻길이 생기기 전에 마을 주민들이 걸어서 이동하던 옛 오솔길인 것이다.
그 오솔길마저 사라진 구간은 포장된 마을길과 일부 찻길을 한 땀 한 땀 이어간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에 포함되는 만큼 매우 아름다운 경관이 내내 걷는 이들을 쫓아온다.
벽련 마을부터 원천 마을까지는 과거의 옛길이 멸실되어 찻길 가까이 걷게 되므로
반드시 한 줄로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이 길은 아름다운 앵강다숲을 지나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에서 마무리 된다.
남파랑길 남해 41코스 궤적
전날 남해바래길 8코스 '섬노래길'을 마치고,미리 예약해 놓은
'베스트호텔&펜션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7월29일 새벽4시 저절로 눈이 떠지는데, 더 자려고해도 잠은 오지않고~
세면후, 행장 둘러메고 남파랑길 남해 41코스 시점인 '천하마을 입구'로 도보 이동이다.
(05:08) 천하(내아래)마을 입구에 도착하고~
천하(川下, 내 아래)마을은 예부터 명당골, 알뱅이등, 활등, 긴등, 큰등, 뱀등, 큰골, 뱀골, 어둔골,
새신랑골, 통샘이골, 쇠돌목, 소돌목이 등 수많은 별칭을 가져 역사가 오래된 정겨운 마을이다.
상주면과 미조면의 경계마을로, 송정 솔바람해변과 상주 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한 몽돌해수욕장으로
유명하고, KBS2 TV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내아래(내~래)라고 불리고 있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명산 금산에서 뻗어 내린 쇳개골(金浦)과
내래골(川下)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천을 이루어 사철 풍부한 두 개의 수원지를 만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들 수원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미조면의 식수원이었다.
이곳 '천하삼거리'는 남파랑길 40코스 종점이자 41코스 시점이며,
남해바래길 7코스 '화전별곡길' 종점이자, 8코스 '섬노래길' 시·종점이며,
9코스 '구운몽길' 시점이다.
두루누비&트랭글&남해바래길 앱 차례로 켜고
(05:10) 남파랑길 남해 41코스 시작이다.
'천하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천하몽돌해변'으로 진행하고~
(05:17) '천하리경로당' 건물을 끼고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천하몽돌해변' 바라보고~
(05:19) 이후 '남해대로397번길' 해안도로를 따라,
천하마을야영장'을 지난다.
그렇게 '천하몽돌해변' 방조제 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고~
'언제나 진실은 슬픔이었으나 무력하지 않고
언제나 정의는 소수였으나 고독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은 무릎걸음이었으나 때늦지 않다'
(05:22) '천하몽돌해변' 방조제 위에 세워져 있는
'천하마을' 표지석을 지난다.
그렇게 '천하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미조면 송정리'에서
'상주면 상주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경상남도 남해군 남부에 있는 면이다.
동쪽은 미조면(彌助面), 북쪽은 이동면(二東面)과 접하고,
남쪽과 서쪽은 남해에 면한다.
면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남해의 3대 사찰인 보광사가 금산에 있었던 사실이나, 서불과차 등 양아리 일대의
석각군(石刻群)으로 미루어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주면은 1413년(태종 13)부터 이동면에 속해 오다가
1942년 상주리에 이동면 출장소를 두어 상주리, 양아리를 담당하였다.
그 후 1957년 출장소를 일시 폐지하였다가 1970년 다시 출장소를 개설하였고,
1986년 상주면으로 승격 독립하였다.
행정구역은 '양아리', '상주리' 2법정리와 9행정리를 관할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상주포(尙州浦)가 "현에서 남으로 45리에 있다."라고 수록된다.
『여지도서』에도 상주포가 "현에서 남으로 45리"라고 수록된다.
고지도에는 『해동지도』에서 상주포진(尙州浦鎭)이 금산봉(錦山烽)과 함께
해안가에 기재되어 나타난다.
『동여도』에도 상주포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때 평산포영에 딸린 상주포보가 있었는데 성벽의 흔적이
지금 상주초등학교 뒤편에 일부 남아 있다.
1973년 갈도가 통영시 욕지면에 편입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고구마·마늘 등이며,
근해에서는 볼락·멍게·성게·전복·미역 등이 잡힌다.
금산(錦山)·천황산(天皇山)·상주해수욕장 등 면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문화재로는 남해 상주리 석각(南海尙州里石刻:경남기념물 6),
남해 금산 봉수대(경남기념물 87),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대한중흥공덕시성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大韓中興公德視聖碑:
경남문화재자료 277) 등이 있다.
상주면 상주리(尙州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리(里)이다.
남해의 승치도 북동쪽에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숲페, 신보탄 마을이 있다.
숲페 마을은 울창한 숲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보탄 마을은 상주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형문화재 제 74호인 보리암전 삼층석탑이 있다.
지나온 '천하몽돌해변' 바라보고~
(05:25) '인피니티사우스 오션풀빌라' 건물을 지나는데,
도로명이 '남해대로495번길'로 바뀌었다.
'바람개비' 방조제 벽화를 바라보고~
'금포항' 바라보고~
(05:32)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상주리 금포(金浦, 쇳개골)마을'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상주리 금포마을
금포(金浦)라는 지명은 '백사장에 검은 쇳가루가 많이 있다' 하여 '쇳개'라고 부르던 이름이,
한자말로 '쇠 금(金)'과 '개 포(浦)'를 써서 금포라고 하였다.
금포마을은 반농반어 마을로 남해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바다물메기'가 특산물이다.
금포마을이 물메기 통발을 이용하는 우리나라의 원조이며, 최고로 많이 잡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뒷산(해운산)에는 조선시대 초 해운암(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빈대가 많아
절이 망하자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도 향일암'으로 옮겼다는 전설이 있고,
지금도 향일암에 가면 해운암에서 옮겼다는 비문이 전해오고 있다고 하며,
지금도 옛 해운암 자리에는 기왓장 조각과 절 주춧돌이 남아 있다.
남파랑길 이정표(↓시점 1.10km, 종점 14.4km→)를 지나고~
(05:35) '금포마을회관'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금포마을회관' 앞을 지난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표시를 따라가는데,
'남해대로495번가길'은 '금포마을' 골목길과 일치한다.
그렇게 '금포마을'을 벗어나고,
(05:41) 'Y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완만하게 오르고~
지나온 '금포마을'과 그너머 출발지인 '천하마을' 바라보고~
(05:44) 능선 갈림길에 올라 우측으로 내려서서,
'공산' 좌측 산허리로 이어지는 넓은 숲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이 길은 예전 '금포마을'에서 '상주면 소재지'로 가는
옛길이기도 하다.
(05:51) '바람금골' 계곡물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곳을 지나고~
좌측으로 바다가 펼쳐지는데,
'목도'가 잘 조망되는 장면이다.
예전 기록을 살펴보면 1980년도에 '목도' 인근으로 간첩선이 침투했었다고 하는데,
남한 끝자락까지 간첩선이 어떻게 왔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고 그 간첩선 때문에 군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초소를 세우고 통로를 만들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 통행로가 트레킹 경로로 사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05:53) 비탈진 해안 바위길을 지나는데,
좌측으로는 해안 절벽이라 쇠말뚝을 박아 연결한 안전로프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해안 절벽길을 진행하는데,
멀리로 '승치도', '소삼여도' 같은 섬들이 나타나고~
(05:59) '사격장 안전수칙' 패널이 세워져 있는
군부대 관내로 들어선다.
(06:01) 군부대 건물 방향 우측 능선 길로 오르는데,
'통제조 위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06:02) 군부대 진입로 도로로 내려서서,
남파랑길 이정표(↙시점 2.62km, 종점 12.88km→)를 지나
담장길을 따라 진행하고~
(06:07) '해수욕장 내려가는길' 팻말 앞에서,
군부대 진입도로를 벗어나 좌측 아래로 내려간다.
(06:10) '상주리 포구 해변도로'로 내려서고,
도로명이 '남해대로675번길'이다.
정면 멀리로 '남해금산'이 잘 조망되는 장면이다.
좌측으로 '상주해변 선착장' 바라보고~
이후 '남해대로675번길' 해변도로를 따라,
'상주 은모래비치'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06:13) 우측으로 '상주중학교'를 지나고~
(06:16) '상주 은모래비치' 해수욕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상주해수욕장'... 많이 바뀌었네!!! 예전의 '상주해수욕장'이 아니다.
'상주해수욕장'!!! 이곳은 나에게 옛 추억이 참 많은 곳이다.
젊은 혈기로 충만한 20살 무렵 친구들과 이곳에서 해마다 캠핑을 즐겼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와 우리가족, 동생네 가족이 총 출동하여
하계휴가를 몇번이나 보낸 곳인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상주 은모래비치' 포토존
'상주 은모래비치' 앞바다 '목도'와 '승치도' 바라보며,
백사장을 가로질러 진행하고~
상주마을은 동쪽으로 금양천, 서쪽으로 금전천, 북쪽으로 상주성을 경계로 형성되어 있는데,
금산 보리암을 중심으로 좌측에 주산 등이 있고 서쪽으로 천왕산이 감싸고 있어 마치 지형이
'오울 상(尙)' 자와 닮았다 하여 상주라 칭하였다고 한다.
금산과 상주 은모래비치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소유한 상주는 전국적 휴양지로서 명성이 높다.
상주해수욕장에서 개최하는 축제로는 서머 페스티벌,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
연말 물메기 축제에 이어 새해 아침 해맞이 축제가 있다.
(06:24) '상주 은모래비치 캠핑장'을 지나고~
'상주 은모래비치 소공원'
(06:28) 남파랑길 갈림길인데, '상주 은모래비치 오토캠핑장' 앞에서
우회전하여 캠핑장을 가로질러 진행하고~
(06:29) '금양천' 위에 놓인 '보행자 전용 현수교'인 '금전2교'를 건너,
'금전마을'로 들어서서 좌회전하여 진행이다.
금전마을은 상주리 서편에 위치한 마을로 예전에 밭(田)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금전리라 불렸고, 주 소득원은 벼농사와 마늘, 동초, 시금치 등이며,
어업으로는 낚싯배와 자망, 물메기 통발, 낚지 잠수기, 해녀 사업 등이고,
특산물로는 해삼, 전복, 물메기 등이 있다.
상주 은모래비치 해수욕장을 바로 앞에 두고 있어, 해수욕장과의 접근성이 좋다.
'상주방파제' 바라보고~
(06:35) 그렇게 '상주로' 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양식연구센터' 표지판와 함께 "길 없음" 표지판이 등장한다.
(06:40)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입구를 지나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고~
(06:46) '상주 하수종말처리장' 앞을 지난다.
올해 처음 보는 '해바라기꽃'...
(06:48) '상주로' 아스팔트도로가 끊어지면서,
좌측으로 '대량마을'로 이어지는 옛길이 시작되고~
'상주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끊어지는 곳에
(←상주 은모래비치 1.44km, 대량 2.3km→/ 시점 5.27km, 종점 10.23km)
남파랑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06:50) 이후 '산불암산' 좌측 산허리를 감아도는
옛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초반 움푹페인 등로가 이어지고~
(06:54) '산불암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곡을 지난다.
그렇게 '산불암산' 좌측 산허리를 감아도는 옛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1m간격으로 나타나는 '거미줄' 때문에 진행이 상당히 지체되고,
나무가지로 거미줄을 걷어가며 진행하는데도, 조금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다.
와우!!! 안그래도 더워서 열불나는데, 사람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다. ㅎ~
(06:56) 안전로프가 매여있는 급경사 오르막등로가 시작되고~
(06:58) 좌측 해안절벽 아래 갯바위와 '소삼여도' 바라보고~
(07:00) 남파랑길 41코스를 알리는 소형패널을 지난다.
그렇게 진행하면 '상주면 상주리'를 지나
'양아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상주면 양아리(良阿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리(里)이다.
면적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금전천이 흐르며, 정골들, 논두밭걸들, 큰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는 남해와 인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양아, 박촌 마을이 있다.
양아 마을은 경기도 임진강 가의 양아리에서 살던 사람이
이곳으로 이사와서 살면서 그 고향을 기리어 붙인 이름이다.
박촌 마을은 양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07:01) 돌담으로 둘러쳐진 묘지를 지나고~
(07:09) '대량마을'로 가는 옛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여전히 1m간격으로 나타나는 '거미줄' 때문에 사람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다. ㅎ~
(07:13) 그렇게 숲을 빠져나와 시멘트 임도에 도착하니,
온몸이 거미줄 투성이다. (스파이더맨~ ㅎㅎㅎ)
시멘트 임도 그늘진곳에 배낭을 내리고, 임도 중간에 퍼질러앉아
준비해온 얼음이 서걱거리는 테라 캔맥주 큰거 1캔과 햄버거로 아침을 해결하며
8분 휴식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끝자락에 외롭게 서 있는
'소치섬' 바라보고~
(07:23) '대량마을 공원묘원'을 지난다.
(07:24) 임도 'Y자' 갈림길을 만나고,
남파랑길은 우측아래 '대량마을'로 곧장 내려가지않고 좌측 임도를 따라
한바퀴 돌며 이어진다.
(07:27) 그러다가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고~
내용을 알수없는 안내판에 남파랑길 방향표시가 붙어있는 곳이다.
우측아래로 '대량마을'을 바라보며 내려서고~
(07:35) 농로 'T자'갈림길에서
남파랑길 방향 표시따라 좌측으로 진행이다.
(07:36) '대량마을' 어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고~
(07:39) '상주로560번길' 교통표지판이 붙어있는
민가 우측 뒷길 담장을 따라 진행이다.
(07:41) '대량마을 포구나무[팽나무]' 옆을 지나고~
대량(大良)마을은 약 400여 년 전 경기도 임진강가의 '양아리'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데, 이전에 살던 양아리라는 지명을 이곳에서
그대로 부르게 되었으며, 양아리에서 큰 마을이라 하여 '대양아(大良阿)'라 부르다가
대량(大良)이라고 하게 되었다.
대량마을은 9.3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데, 그 해안선을 따라 자연적으로 생긴
5개의 동굴과 기둥같이 생긴 바위인 기둥방이 있고, 천혜의 맑은 바닷물에서 톳, 미역,
청각 등 해초와 전복, 해삼, 고동, 성게 등 해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대량마을 앞바다에는 바다 한가운데 소치섬이, 서쪽에는 노도가 자리 잡고 있고,
마을 뒤편에는 덕의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해안선과 소치도 등에서는
볼락과 감성돔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뭐지???
'대량마을'의 수호석인가???
(07:42) '대량마을' 포구 바라보고~
이후 '상주로' 해안도로를 따라 우회전하여 '대량동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해안끝에서 또 다시 우회전하여 '대량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07:45) '상주로' 급경사 도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남파랑길 이정표 '시점7.64km 종점7.86km'을 지나고~
지나온 '대량마을' 포구 바라보고~
'노도' 바라보고~
(07:50) '양아바다힐링센터' 입구를 지난다.
(07:51) '상주로'와 '양아로'가 갈리는 도로 'T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는데,
도로 좌측에는 '대량마을(큰양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후 '양아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서면
'소량마을'이 조망되고~
소량마을은 약 400년 전 경기도 임진강가에 있는 양아리에서 이주하여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된 마을 주민들이 전에 살던 곳의 '양아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1953년 양아리에서 나누어진 작은 마을이 '소량'이 되었다.
농번기 때 가뭄이 심하면 양아리 주민들이 소량마을 제일 높은 천황산 상봉에 올라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소량마을' 해변 바라보고~
(07:54)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양아로' 도로를 벗어나 좌측 마을길로 내려간다.
(07:56) 그렇게 '소량마을' 포구로 내려서서
좌측 '소량포구 방파제' 바라보고~
(07:57) 우측으로 '소량마을 노거수'를 바라보면서 진행하다,
해변끝에서 우회전하여 '소량마을'을 빠져나오고~
(08:00) '소량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양아로' 도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소량마을' 표지석을 지난다.
그렇게 급경사의 도로 오르막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양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가슴이 확 트이는 '남해바다' 바라보고~
(08:10) 도로 고개마루인 '오지방고개'를 넘어간다.
이곳 '오지방고개'는 절개지 사면을 녹색 풀이 뒤덮고 있는
'녹색 토공법'으로 시행해 놓았다고 하는데~
도로개설로 인한 절개지역 암반을 녹색지대로 녹화하기위해 암반 녹화 공법인
'녹색 토공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이 토공법은 식물 생육이 거의 불가능한 건조 척박지에
식물 생육과 부착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코팅 철망을 비탈면에 앙카 핀으로 고정을 시킨 뒤,
유기물과 비료 등으로 된 특수 녹생토를 양잔디와 초목본류를 혼합하여 살포함으로써
법면 유실 및 낙석 방지를 겸한 이상적인 식생기반을 조성함과 아울러 식물의 조기 정착과
녹화를 유도하여 훼손된 경관을 자연상태로 재생시키는 공법이다.
좌측으로 '노도'를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08:13) 도로 건너편으로 '양아공원묘원' 표지석을 지난다.
'두모포구'와 '두모마을' 바라보고~
(08:16) '두모 버스정류장' 앞 갈림길에서 '양아로' 도로를 벗어나
급 좌회전하여 '두모포구'를 향해 내려간다.
그렇게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두모포구'로 이어지는
'양아로525번길' 해안도로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좌측으로 '두모포구' 바라보고~
이후 '양아로525번길'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두모마을' 해변 바라보고~
두모(豆毛)마을은 '마을 형태가 콩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두모라 하였다고도 하고,
큰 항아리처럼 담긴 바닷가라는 뜻의 '드므개'라는 이름에서 '두모'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드므개'는 궁전 처마 밑에 둔 큰 항아리를 말하는데, 예전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건물이라 화재에 대비하여 큰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놓았고, 불을 가지고 다니는
화마가 '드므'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을 가면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두모 마을에서는 '드므개 녹색농촌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는데, 농촌체험(노지 시금치·동초 캐기,
친환경 쌀농사체험, 마늘농사체험), 바다체험(개매기체험, 갯벌 바지락 캐기 체험, 정치망 체험),
역사체험(노도 문화체험, 서불과차, 금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특히, 노란 유채꽃이 필 무렵이면 '개매기 체험 행사'를 개최하여 맨손 고기잡기, 조개잡이,
카약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행사를 제공하고 있다.
개매기 체험은 개막이, 갯고랑에 그물을 쳐놓고 밀물 때에 밀려든 물고기를 썰물 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 잡는 고기잡이 체험이다.
(08:23) '두모마을야영장' 앞에서 좌측으로 진행이다.
(08:25) '두모마을' 앞 '두모관광교'를 건너고~
우측으로 '남해금산' 바라보고~
그렇게 '두모관광교' 다리를 건너면
남해바래길 '구운몽길' 이정판이 세워져 있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두모마을'을 빠져나오고~
남파랑길 41코스 이정표를 지나고~
(→시점 10.99km, 종점 4.51km←)
(08:30) '두모마을'에서 '벽련마을'로 이어지는
옛길을 따라 진행이다.
(08:39) 우측으로 '가선대부 밀양손공 묘지'를 지나고~
가선대부는 종 2품 품계이지만, 조선 후기 90세 이상 장수한 뒤
죽은 사람에게 내린 공명첩이기도 했다.
참고로 80세 이상 장수자에게는 통정대부(정 3품의 상계)를,
100세 이상 자에게는 숭정대부(종 1품)의 품계를 내렸다고 한다.
(08:40) '←두모' 팻말을 지나고~
그렇게 '진등산' 좌측 산허리를 감아도는 옛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여전히 1m간격으로 나타나는 '거미줄'을 나무가지로 걷어가며 진행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
환장하겠다. ㅠㅠㅠ~
이후 '송전탑'을 지나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따라 진행하고~
(08:48) 예전에 걸어놓은 예쁜 남파랑길 소형 표찰을 지나고~
(08:54) 돌담 옆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08:55) 저 앞쪽으로 '벽련마을'이 보이고~
(08:57) 파란 물탱크가 있는 시멘트 임도에 내려서서 진행이다.
(08:59) '벽련마을' 골목길로 내려서고~
(09:01) '벽련항 방파제'로 이어지는 '남해대로1299번길' 해안도로에 내려서고,
좌측 '벽련항 방파제' 뒷편으로 보이는 섬이 '노도'다.
'벽련항 도선 시간표' 바라보고~
(09:01) '벽련-노도 도선대합실' 옆에 노거수 3그루가 서 있는데,
'벽련마을 보호수'다.
'벽련-노도 도선대합실' 앞
'노도 문학의 섬 종합안내도' 바라보고~
'남해군'은 '김만중'의 유적과 이야기를 엮어 '노도'를 '문학의섬'으로 조성했다.
'노도 선착장'에 들어서면 먼저 상징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민속체험관, 작가 창작실,
김만중 허묘, 서포 문학관, 서포 초옥과 함께 야외 전시장으로 구운몽원, 생태 연못,
사씨남정기원, 전망 정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노도' 바라보고~
「한양에서 천사십오리《신증동국여지승람》」,
감히 한양을 넘볼 수 없을 만치 아득히 멀기만 한 땅에 불과했던 남해는
때를 잘못 만난 선비들에게는 눈물의 유배지였다.
고려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약 30여명이 넘는 인사가 남해군에 유배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다.
김만중은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숙부로,
한때 공조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을 두루 거친 명필이었다.
1687년 숙종조 때 희빈 장씨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그가 속했던 서인이 실각한 후 선천으로 유배된다.
1년이 지난 1688년(숙종 14) 11월에 선천 배소에서 풀려났지만,
불과 3개월 만인 1689년 초에 다시 남해 끝 앵강만 노도(櫓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노도(櫓島)에 위리안치되어 적막한 유배생활을 하면서 온종일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한숨짓던 노인 김만중을 일컬어 마을 사람들은
'놀고먹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노자 묵자 할배」라 불렀다고 전한다.
노도는 1985년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을 켜고 살았던
오지 중의 오지로, 본디 삿갓처럼 생겨서 '삿갓섬'이라 불렸는데,
임진왜란 때 이 섬에서 노를 많이 만들었으므로 노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김만중은 노도(櫓島)에서 유배생활을 한 3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문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작품을 남겼다.
《구운몽》은 홀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소설로, 여덟 명의 선녀와 함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 부귀영화는 결국은 덧없는 하룻밤 꿈임을 깨닫고
수도하여 마침내 극락으로 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빠져 인현왕후를 폐위시켜
내친 일을 풍자한 내용이다.
노도에서 어머니 윤씨의 부음을 들은 김만중은 「정경부인 윤씨행장」을 쓴 뒤,
1692년(숙종 18) 56세의 나이로 노도에서 생을 마쳤다.
사후인 1698년(숙종 24)에 그의 관작이 복구되었고,
1706년(숙종 32)에는 효행에 대하여 정표(旌表)가 내려졌다.
《구운몽》은 종전까지는 남해 유배생활 중에 쓴 국문 소설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따라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09:03) '벽련해변' 끝에서 남파랑길은 우회전하여
마을 안 길을 따라 진행이다.
(09:06) 좌측으로 '벽련마을회관'을 지나고~
(09:07) '벽련교회' 앞에서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급경사 오르막길을 진행하는데, 양다리는 천근만근 무겁다.
(09:10) 지나온 '벽련마을'과 그 앞쪽 바닷가 '노도' 바라보고~
(09:13) '19번국도'인 '남해대로'로 오르면, 남파랑길 이정표(원천포구 2.3km→)가 서 있고
갓길이 좁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 '노도마을' 표지석과 '벽련마을' 표지석이 서 있다.
그렇게 '남해대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지금 걷는 이 길은 '일반국도 19번'과 '77번' 도로다.
(09:16) '벽련 어촌계' 경고문을 지나고~
(09:18) '상주면'과 '이동면'이 갈리는 표지석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상주면'을 벗어나 '이동면 신전리'로 들어간다.
남해군 이동면(二東面)
경상남도 남해군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8 법정리 ('다정리', '초음리', '석평리',
'무림리', '신전리', '화계리', '용소리', '난음리') 22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삼동면(三東面), 북쪽으로 남해읍·서면(西面), 서쪽으로 앵강만과
남면(南面)에 각각 접하고 남쪽은 남해에 면한다.
금산(錦山:701m)·송등산(松登山:617m)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
초천(草川)·다천(茶川), 남서쪽으로 금평천(錦坪川)·두모천(頭毛川) 등이 흐른다.
690년(신라 신문왕 10) 본 군에 전야산군을 설치한 후 신라 경덕왕 때 와서
남해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때 이동면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1885년(고종 22)에 이동면과 성남면으로 분리하여
다스리다가 1905년 다시 이 2개 면을 통합하여 이동면이라 하고 면장을 두어 다스리게 했다.
다정·초음·양아·상주 등 10개 리를 담당하였는데 1942년 상주리에 상주 출장소를 두어
상주리와 양아리를 담당케 하였다.
1957년 이를 이동면에 다시 폐합하였다가 1970년 이동면 상주출장소를 개설하였다.
또 198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삼동면 난음리(蘭陰里)를 이동면에 귀속시켜 오늘에 이른다.
『여지도서』에 이동면이 "관문에서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에는 이동면현동으로 나타난다.
고지도는 『해동지도』에 이동면이 곡포보와 상주포보 사이 해안가에 처음 기재되어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밭작물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다.
남해~하동을 잇는 국도가 면의 북부를 지난다.
문화재로는 다정리(茶丁里)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3),
보리암전(菩提庵前)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
용문사 대웅전(龍門寺大雄殿:경남유형문화재 85),
용문사 석불(경남유형문화재 138), 곡포보성지(曲浦堡城址) 등이 있다.
다정리 삼층석탑은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다천사(茶川寺)를 창건하고 탑을 건립하였으나
다천사보다 명지(名地)인 용문사에 합사(合寺)하였으므로 이 탑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재는 탑신 2매와 옥개석 2매로 된 2층탑이지만 원래는 3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식으로 보아 신라보다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용문사는 처음 원효대사가 보광사(普光寺)를 지었는데 후에 백월당(白月堂)이
이곳으로 절을 옮기고 용문사라 개칭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을 만들어
외삼출목(外三出目)의 포(包)를 쌓아 올렸다.
이동면 신전리(薪田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대부분의 면적이 평지로 이루어진 반농반어촌 마을이다.
마을 내에 신전들, 신전뒤들, 숲안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남서쪽으로는 남해와 매우 근접해 있다.
자연마을로 신전, 금평, 벅싯골 마을이 있다.
신전 마을은 숲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평 마을은 복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벅싯골 마을은 옛적에 박수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문화재로 기념물 제 154호인 남해장성이 있다.
남해바래길 표시기~
'앵강만' 바닷가 바라보고~
호수처럼 잔잔한 '앵강만'이다.
'앵강'이라 부르는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앵무새'가 들어가 있다.
지형이 '앵무새' 모양이라는 설, 파도 소리가 '앵무새'를 닮았다는 설 등이 있다.
(09:29)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깃대종인
'거머리말'과 '팔색조' 설명패널을 바라보면서 지난다.
(09:30) '앵강만휴게소·편의점'을 지나고~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이!!!
자동적으로 '앵강만휴게소·편의점'으로 들어가 '칠성사이다' 원샷하고
꽁꽁 얼어있는 생수 구입하고, '부라보콘' 하나 입에 물고 나온다. ㅎ~
(09:38) '남해 14km' 교통안내판을 지나고~
(09:45) '원천'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좌측 아래에는 '복진수산' 양식장이 있는 곳이다.
'원천항' 방파제 땡겨보고~
(09:51) '남해 13km' 교통안내판을 지난다.
(09:52)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원천항'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19번국도 남해대로'를 벗어나 '원천항'으로 진행이다.
(09:54) '원천항'을 지나고~
이후 '원천항'을 지나 '앵강만' 안쪽을 향해 계속 진행하고,
예전의 남파랑길은 '원천마을'이 41코스의 종점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더 걸어
'남파랑길 여행자센터'와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가 있는 '신전마을'까지 가야한다.
(09:55) '원천마을 금산횟집'을 바라보며 진행하는데,
남해바래길 안내판과 이정표(앵강다숲길, ←화계 2.8km)가 세워져 있다.
(09:56) '원천어촌계' 노란 경고판을 지나고~
'원천마을'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鶯江灣)’이라 불리는데, 지금은 파도소리는 고사하고 호수처럼 잔잔하다.
(09:57) '원천항 방풍림'인 '느티나무군락'을 지난다.
(09:59) 현대식 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을 지나고~
(10:04) '원천어촌계 방파제를 지난다.
(10:09) '금평어촌계 방파제를 지나는데,
'금평어촌계' 바지락양식장을 알리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10:10) 남해바래길 이정표(앵강다숲길, →화계 1.7km)를 지나고,
우측은 '금평마을'이다.
금평마을은 재골, 솔정이, 벅시골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 이름인 봇골은 옛날 남해 전체가 한해(旱害)로 심한 흉년이 시달릴 때에도
이곳은 물이 좋아 흉년이 들지 않아 '봇골'이라 하였는데,
한자말로 '복곡(福谷)'이라 하였으며, 또한 금산 어귀의 골이 크고 깊어
옛날에는 산삼도 많이 났다고 한다.
벅시골은 금평의 윗뜸으로서 봇골 어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옛날 봇골에 절이 있었을 때 절을 알리는 벅시 장승을 세워 두었다 하여
'벅시골'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재골은 금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내려오다 멈춘 곳에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재골'이라 부른다.
재골을 지나면 아이들이 없어 문을 닫은 선명학원 수련장으로 쓰이는 금평분교가 있다.
분교 주변 뜸을 일제강점기 기름이 없어 소나무를 베어
송탄유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솔정'이라 부른다.
이동면 금평 출신으로 유명한 인물로 소설가 '정을병(1934년 ~ 2009년)'이 있다.
그의 문학세계를 한마디로 말하면 ‘고발문학’이다.
성직자가 되기 위해 1956년 한국 신학대학에 다니다, 학교 근처에 살던 김말봉이라는
여류작가를 통해 김동리 문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는 종교를 신학에서 문학으로
궤도 수정을 하게 되었다.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박정희 정권 시절 국토 건설단을 고발하는 소설
‘개새끼들(1966)’을 발표했다가 미움을 샀다.
유신헌법에 반대해 문인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구속되었다가 5개월 만에
무죄 석방되기도 했고, 석방 후 의사사회를 고발하는 소설 유의촌(有醫村, 1968)을 썼다가
다시 구속 여부가 검토되기도 했다.
평생을 검소한 생활로 일관한 그가 소설가 협회장으로 있을 때 수십억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사무직원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회장에게 덮어 씌웠기 때문이었다.
주요 작품으로 '아테나이의 비명(碑銘, 1968)', ‘말세론(1968)’, ‘받아들인다는 문제(1970)’,
‘도피여행(1971), ‘피임사회(1972) 등이 있다.
단편 《육조지(1974)》에서는 당시의 풍속 세태를 감방에 들어간 죄수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육조지란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라고 하였다.
(10:15) '금평마을 소나무 방풍림'을 지나고~
물이 빠진 '앵강만' 바라보고~
(10:18) '금평천'을 가로지르는 '신전교'를 2개 건너간다.
'앵강만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갯게', '흰발농게', '기수갈고둥'을 설명하고 있다.
신전(薪田)마을은 옛날 밭이었던 이곳에 섶, 즉 작은 나무숲이
있었다 하여 신전이라고 하였다.
주요 지명으로 숲통, 고주랑, 섯밧모 등이 있는데,
숲통은 신전 숲 위에 있는 들로 바닷물이 범람하면 해수가 들어왔다고 한다.
고주랑은 신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고, 섯밧모는 신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전 숲은 400여 년 전부터 약 1만여 평에 상수리나무 등으로
방풍림을 조성하여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온 곳으로
현재는 참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소사나무· 팽나무· 편백 등의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지난 1972년부터 전투경찰대 주둔으로 일반인의 접근 제한뿐만 아니라
주민생활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여 오다가, 신전리 주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07년 군부대가 이전한 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야생화 관광자원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신전 숲의 수려한 풍광과 청정한 생태환경을 활용하여 관광시설을 조성하면서
오늘날 생태관광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10:21) '신전앵강다숲' 야영장을 잠시 진행하고~
'앵강만 석방렴' 바라보고~
(10:22) '신전앵강다숲' 야영장앞 갈림길에서,
우측 '바래길 탐방안내센터' 방향으로 진행이다.
'신전숲 야생화 관광단지 개략도' 바라보고~
신전 숲 야생화 관광단지에는 남해 약초 홍보관과 약초 테마공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수생식물원 및 연꽃테마원, 야생화 군락지, 앵강다숲권역 등이 조성되어 있다.
앵강다숲 권역에는 앵강만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갯벌체험, 선상낚시, 어부체험,
유기농 농산물 수확 등 체험할 수 있으며, 휴양촌, 병영체험 막사 등의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약초 홍보관에서는 약초를 기반으로 조성된 관광시설로 국내 유일의 등록 품종으로
쑥뜸 효능이 좋다는 「섬애약쑥」을 홍보ㆍ체험ㆍ판매하며, 약초 테마공원에는 약초류,
허브류 등을 식재하여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해힐링 여가캠핑장' 안내판을 지나는데,
주위에 '상사화'가 많이 피어있다.
'신전숲 야생화 관광단지 개략도'를 하나 더 지나고~
(10:25) '남파랑쉼터' 표지목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좌화전하여
'바래길 탐방센터' 방향으로 들어간다.
(10:26) '수생식물원' 사이 탐방로를 따라 들어서면,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와 그 우측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건물이 보이고~
(10:27) 남파랑길 남해41코스 종점인,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와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건물앞에 도착이다.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앞에는 '남해바래길 9, 10, 11코스'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 앞에는 남파랑길 남해 42코스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남해바래길 안내판' 바라보고~
남해바래길 안내판에는 남해바래길 9코스 '구운몽길'과
10코스 '앵강다숲길',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는 남파랑길 41코스 종점이자, 42코스 시점이며
남해바래길 9코스 종점이자, 10코스 시점이기도하다.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1차로 목표했던 남파랑길 41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남해바래길 앱 끄고, 남파랑길 남해 41코스를 종료한다.
이후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이곳 직원에게 대중교통편 알아보고, 시원한 냉수 얻어마시고~ ㅎ
도보로 금평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후,
(12:12) 금평 버스정류장에서 남해공용터미널行 버스타고
(12:28) 초음 버스정류장에 하차,
오늘 2차로 계획했던 '남해바래길 지선4 다초바래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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