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8.8
코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시점)-화계마을회관-봉전소류지-용소공동묘지 도로-남서대로
-이동면에서 남면으로-두곡방파제-두곡.월포해수욕장-월포해변 행정봉사실-숙호 숲
-홍현(제1반)버스정류소-다랭이마을.해안숲길-데크전망대-해안산책로.갈림길-다랭이.암수바위
-가천.다랭이마을(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6.15km (남해바래길기준 15.6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5시간21분
▶ 갈때 : 경남 양산.내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후,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行 시외버스를 타고 (08:18) 남해공용터미널에 하차,
남해공용터미널에서 (08:30) 출발하는 미조行 군내버스를 타고
(09:04) 금평 버스정류장에 하차, 시점까지 도보이동후 트레킹 시작
▶ 올때 : 남파랑길 42코스 종점에서 '1024번 남면로' 도로로 올라와
가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다, (14:51) 남해터미널行 버스를 겨우 타고
(15:20) 남면사무소가 있는 홍덕 버스정류장에 하차,
남해바래길 테마지선 남면 만수무강 마을바래길을 이어간다
개통 10주년을 맞아 2020년 새롭게 리모델링 된 '남해바래길2.0'은
총 231km로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 섬 지선 2개 코스,
특별지선 2개 코스로 구성되었다.
본선 코스는 섬 전체를 연결하는 순환형 종주길로 11개 코스가
남해안 전체를 잇는 '남파랑길' 90개 코스 중 36~46코스와 노선이 일치된다.
지선 코스는 코스별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단거리 순환형 걷기여행길로
자가용 이용이 편하게 구성되었다.
남해 바래길 10코스 앵강다숲길 [남해 바래길 홈페이지]
▶ 총거리 : 15.6km
▶ 걷는시간 : 약 6시간 내외(쉬는 시간 포함)
▶ 난이도 : ★★★☆☆(무난해요)
▶ 걷는 경로(단위 km) :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앵강다숲)←1.5→화계←3.3→
미국마을←3.2→두곡.월포해변←3.7→홍현.해라우지마을←3.9→다랭이 마을
▶ 코스개요 : 앵강다숲길은 원천마을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따라 걷는다.
길은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의 앵강다숲을 지나 아름드리 보호수가
마을을 지키는 화계마을을 거친다.
앵강만을 내려다보는 임도와 임도 끝에서 만나는 미국마을은 조금 전과는
다른 느낌의 앵강만 전망이 그윽하다.
홍현마을부터 다랭이마을 잇는 해안 숲 오솔길은 바래길중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은 구간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경관포인트를 여럿 지난다.
(09:04) '금평 버스정류장'
'19번 남해대로'가 지나가는 '금평마을' 삼거리갈림길에서
좌측 '성남로' 도로를 따라 '금평회관'을 지나고~
신전리 금평마을
재골, 솔정이, 벅시골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 이름인 봇골은 옛날 남해 전체가
한해(旱害)로 심한 흉년이 시달릴 때에도 이곳은 물이 좋아 흉년이 들지 않아
'봇골'이라 하였는데, 한자말로 '복곡(福谷)'이라 하였으며, 또한 금산 어귀의 골이
크고 깊어 옛날에는 산삼도 많이 났다고 한다.
벅시골은 금평의 윗뜸으로서 봇골 어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옛날 봇골에 절이 있었을 때
절을 알리는 벅시 장승을 세워 두었다 하여 '벅시골'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재골은 금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내려오다 멈춘 곳에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재골'이라 부른다.
재골을 지나면 아이들이 없어 문을 닫은 선명학원 수련장으로 쓰이는 금평분교가 있다.
분교 주변 뜸을 일제강점기 기름이 없어 소나무를 베어 송탄유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솔정'이라 부른다.
'신전마을' 바라보고~
신전리 신전마을
옛날 밭이었던 이곳에 섶, 즉 작은 나무숲이 있었다 하여 신전이라고 하였다.
주요 지명으로 숲통, 고주랑, 섯밧모 등이 있는데, 숲통은 신전 숲 위에 있는 들로
바닷물이 범람하면 해수가 들어왔다고 한다.
고주랑은 신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고, 섯밧모는 신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전 숲은 400여 년 전부터 약 1만여 평에 상수리나무 등으로 방풍림을 조성하여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온 곳으로 현재는 참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소사나무·
팽나무· 편백 등의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지난 1972년부터 전투경찰대 주둔으로 일반인의 접근 제한뿐만 아니라
주민생활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여 오다가, 신전리 주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07년 군부대가 이전한 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야생화 관광자원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신전 숲의 수려한 풍광과 청정한 생태환경을 활용하여 관광시설을
조성하면서 오늘날 생태관광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09:16)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입구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남해바래길 안내판에는 남해바래길 9코스 '구운몽길'과
10코스 '앵강다숲길',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안내하고 있다.
답사준비를 마치고, 두루누비&남해바래길&트랭글 앱 켜고
(09:22) 남해바래길 10코스&남파랑길 42코스 시작이다.
이후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남해힐링국민여가캠핑장 관리사무실' 방향으로 진행하고~
'남해힐링국민여가캠핑장 관리사무실'과 '지역활성화센터' 사이로 나가서,
철망 쪽문을 통해 '약초테마공원' 사이 탐방로를 따라 진행이다.
(09:27) '약초테마공원' 서쪽 끝 철망 쪽문으로 나가서 좌회전하여,
'앵강만' 방향으로 진행하고~
그렇게 진행하면 '이동면 신전리'에서
'화계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동면 화계리(花溪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 있는 리(里)이다.
남해에 있는 목단도 북쪽에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으로,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 화계, 고개, 진앞 마을이 있다.
화계 마을은 뒤에는 산꽃이 많고 앞에는 시내가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 마을은 고개 밑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진앞 마을은 화계리 옛 진터 안에 있는 마을이다.
(09:29) 그렇게 '앵강만'으로 나가서 우회전하고~
'목단도(몰개섬)' 땡겨보고~
(09:32) 그물을 말리고 있는 곳을 지나면, '화계마을'이다.
화계(花溪)마을
원래 이름은 1522년 축조된 조세 창고인 곡포보가 있었기 때문에 곡포(曲浦)였다.
화계로 불린 이유는 마을 앞바다에 목단 꽃을 닮은 「목단도리」라는 섬 때문에 붙여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섬을 ‘몰개섬’ 혹은 ‘토끼섬’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의 새 잎이 나는 모양으로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새 잎이 한꺼번에 같이 피면 비가 때맞추어 와서 모내기를 한꺼번에 끝내어 풍년이 들 것이고,
위아래로 나누어 피면 모내기 적기에 비가 오지 않아 두세 번에 걸쳐 모내기를 하게 되어
풍년이 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점을 쳤다.
중요 지명으로 성남초등학교 일대 부지가 과거 성터로서 군량미를 저장하고 항시 무관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라 「진앞」이라 칭하였는데, 현재는 성남초등학교가 폐교된 뒤
길현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배선대는 화계 서쪽에 있는 당으로, 밭묻음 같은 축을 쌓아 죽은 소나무 세 그루를 세우고
제를 지내는 곳이었고, 굴강은 화계 동남쪽 마을 가운데로 기다랗게 난 인공(人工) 강으로
배의 정박지(피난처)이다.
(09:38) 그렇게 '화계항' 방파제를 지나는데,
남파랑길 시종점 안내판에는 종점까지 12.79km로 표시하고 있다.
(09:40)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 우회전하여
'화계마을' 안으로 진행하고~
(09:42) 한 해의 농사를 점쳤다는 '느티나무 노거수' 옆을 지나는데,
수령이 벌써 600년이나 되는 고목이다.
정면 좌측으로 '호구산'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09:46) '1024번 남서대로'로 나서서, '곡포식당'을 좌측 편에 끼고
좌회전하여 횡단보도를 건너고~
'곡포식당' 맞은편에 과거 성터로서 군량미를 저장하고
항시 무관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라 「진앞」이라 칭하였던 곳으로,
예전 성남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09:47) 이후 '1024번 남서대로'를 따라 진행하여,
'특산품센터 마실' 앞을 지난다.
좌측으로 '앵강만' 바닷가 바라보고~
(09:49) '화계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화계교'를 건너면 '화계리'에서
'용소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동면 용소리(龍沼里)
비교적 평준한 지대로 이루어진 농촌 지역이다.
마을 북쪽으로 호구산(虎丘山)이 있으며 그 일대는 호구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송등산이 있으며, 남쪽으로 남해 바닷가와 닿아있다.
자연마을로 용소리, 귀환동, 질마재 마을이 있다.
용소리마을은 용소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귀환동마을은 만주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집단 부락을 이루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질마재마을은 용소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형문화재 제85호인 용문사 대웅전과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용문사 석불이 있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진행하고~
용소(龍沼)마을
부락 위 용소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 옛날 이무기[龍]가
나타났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용소 본 부락에서 남면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질마재가 있는데,
옛날 어떤 도사가 이 재를 지나면서 마을 터가 좋다고 한 뒤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마을이 형성된 뒤부터 아직까지 큰 화가 없는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용소마을에는 남해군의 최대 사찰인 용문사가 있는데, 신라 신문왕 6년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세우고 사운이 융성해지자 보광사 근처에 많은 사찰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용문사도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09:54) '봉전소류지'를 지난다.
이후 '호구산' 정상부를 바라보며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서서히 급경사의 오르막길로 바뀌고~
등로 좌우로 '다랭이 밭'을 지나고~
농가 인근으로 사람 손이 많이 간 밭도 있고,
밭 중간에 큼지막한 바위를 미처 빼내지 못하고 그대로 담을 쌓은 밭도 있고,
멀리 농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그냥 방치된 다랭밭들도 보인다.
예전 그 누구가 생존을 걸고 비탈을 깎고 돌을 쌓아 다랭이 밭을 일구었을 텐데
방치된 밭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10:02) '남해 누림채농원' 표지석을 지나고~
(10:04) '성실과 신뢰' 표지석을 지난다.
(10:06) '나주정씨 선산입구' 표지석을 지나고~
(10:10) '용소마을 공동묘지 도로개설' 표지석이 있는곳을 오르고,
이제까지의 급경사 임도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호구산' 정상부를 땡겨보니,
정말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다.
'호구산'은 옛날 '지리산 호랑이'가 이 산으로 건너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호랑이'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호구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좌측의 임도를 따라간다.
이넘!!! 사람을 보고도 짖지도 않고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간다.
그렇게 '호구산' 좌측 산허리를 돌아 나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좌측 아래 '용소마을'과 '앵강만'을 내려다보고~
(10:18) '삼나무' 밀집지역을 지난다.
우리나라의 조림 역사가 길어지면서 국산 삼나무 목재도 시장에 나오고 있는데,
삼나무는 건조도 빠르고 습기에 강하고 가공이 쉽고 저렴해서 목재로 뭔가를
직접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한다.
(10:19) '진양정씨 문중묘원' 입구를 지나고~
(10:21) 우측 위로 '함안조씨 세장지'를 보면서 지나간다.
(10:24) '청주한씨 평장묘원' 입구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용문사길' 도로를 따라 내려서고~
산 아래로 '용소마을'을 바라보면서 진행하는데,
높다란 콘크리트 수로가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은 어렵지않게 모터 펌프로 물을 퍼올릴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수로의 가치는 농민들,
특히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10:30) 고가수로가 도로옆으로 바짝 붙어서 지나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그 옆의 의자는 멍 때리기 참 좋은 장소다.
앞쪽 해안의 '용소마을'과 멀리 '노도'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용문사길' 도로를 버리고
'고가수로' 옆에서 우회전하여 '고가수로'를 따라간다.
(10:32) 좌측 아래로 '미국마을'을 바라보며,
'갓목산' 좌측 사면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지역특화 발전특구법에 따라 자치단체에서 가장 차별화된 시책을 모색하던 중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게 미국마을을 추진하였다.
겨울에도 따뜻하고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 30억 원을 투입하여 약 24,790㎡(약 7,500평) 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 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주택의 경우에는
모두 목재구조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특색 있는 주택을 건설하여 마치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용소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미국의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각 주택에서는 민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문화 및 전통주택 체험을 할 수 있다.
(10:35) '용문사' 진입도로인 '미국마을길' 도로로 내려선다.
(10:36)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미국마을길' 도로를 버리고 좌측 농로로 내려서는데 수로와 함께 가는 길이다.
(10:40) 남파랑길 이정표(↓미국마을 0.8km, 두곡월표해수욕장 2.8km→)가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하고~
(10:42) 고가수로 위에 철제커버를 씌워
보행로로 조성해 놓은 수로 위를 지나간다.
이후 계속 수로 옆으로 연결되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데,
이 임도는 '남서대로342번길' 이름을 갖고 있다.
(10:45) 우측 위로 빈 축사를 지나고~
누구냐??? 넌!!!
그렇게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진행하여, 고갯마루를 넘고~
(10:53) '남해바래길 코스 개략도
(2코스 앵강다숲길)'를 지난다.
(10:56) 콘크리트 수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으로 내려서서 진행하고~
(10:59) '꼭두방 펜션'을 지난다.
(11:03) 다시 '1024번 남서대로'로 내려서고,
우회전하여 '남면' 방향의 도로 우측 보행로를 따라 진행하고~
보행로 중간중간에 어머니가 머리에 짐을 이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남해바래길을 상징한다.
"바래"라는 단어의 의미는 물때를 따라 바다에 나가 해초를 뜯거나
조개를 캐거나 하는 일들을 의미하는데, 채취한 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가족들이 직접 먹을 먹거리, 찬거리를 마련하시는 일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11:06) 이제까지 이어지던 '이동면'을 지나,
'남면 당항리'로 행정구역이 바꿔지는 장면이다.
남해군 남면(南面)
동쪽으로 앵강만(鶯江灣)과 이동면(二東面), 북쪽으로 서면(西面)에 접하고
남쪽으로 남해(南海)에 면하며, 서쪽으로 바다를 끼고 전라남도 여수시에 면한다.
9 법정리(당항리,덕월리,상가리,석교리,선구리,임포리,죽전리,평산리,홍현리),
26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쪽 면계(面界)의 송등산(松登山:617m)을 비롯하여 면내에 응봉산(鷹峰山:473m) 등
산지가 기복하고, 산지 사이를 양지천(陽地川) 등 소하천이 서쪽 또는 동쪽 해역으로 흐른다.
양지, 상가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지석묘군을 통해 687년(신라 신문왕 7)
남해현에 전야산군을 설치하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문왕 때부터 남면이라 칭했으며, 1842년 면수제, 1871년부터는 풍헌제를 실시하였고,
1896년에는 집강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다가 1907년에 와서 지금과 같은 면장제도를 도입 개편하였다.
『여지도서』에 남면이 "관문에서 3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도 남면으로 나와 있다.
고지도에는 『해동지도』에서 평산포진과 함께 남면이 처음으로 기재되어 있다.
『동여도』에도 남면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지명이다.
현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면으로 부른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와 고구마 등이다.
경지면적은 총면적의 27%이고, 주로 식량작물을 재배한다.
남면의 교통은 순환 군도(郡道)에 의해 남해읍 및 인접 서면과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임진성(壬辰城:경남기념물 20), 가천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13),
당항 신흥사 3층석탑(경남문화재자료 43), 설흘산 봉수대(雪屹山烽燧臺:경남보호문화재 5),
고진성(古鎭城), 평산포진성(平山浦鎭城) 등이 있다.
남면 당항리(唐項里)
송등산 남쪽 기슭 바로 밑에 있고, 동남쪽으로 남해와
접하고 있는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이다.
마을 면적의 대부분은 평지이나 비옥한 토지는 아니어서
어업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마을로 당항, 두곡, 우형마을이 있다.
당항마을은 신당이 있는 목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곡마을은 당항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우형마을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11:09) 좌측으로 '꼭두방 주야간보호센터'와
햇빛펜션쉼터, 소나무펜션, 코나하우스 건물을 차례로 지나고~
(11:12) '오페라하우스펜션'을 지나고~
(11:13)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재미들펜션' 입간판이 있는곳에서 좌회전하여 '1024번 남서대로'를 벗어난다.
이후 '펜션 리움'을 좌측에 끼고 해안으로 내려서서,
'두곡방파제'와 그 앞 '꼭두섬' 바라보고~
당항리 두곡마을
월포해수욕장을 절반쯤 끼고 마을 앞뒤로 바다와 산을 공유한 마을로
예전에 쇠를 굽던 곳이라 하여 전동(煎銅)이라 하다가, 조선조 말 고종 때에
두곡이라 고쳐 불렀는데, 주민들이 말(斗)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룡산 정상에는 장군대좌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어떤 장군이 고진성을
중심으로 격파한 곳이라는 유래가 있다.
두곡마을에는 주민들을 한마음으로 묶는 ‘화전(꽃놀이)’가 전해오는데,
주민들은 해마다 청룡산 아래 등성이인 '몰랭이'에서 꽃놀이를 가지다가,
십여 년 전부터 500그루 이상으로 조성된 해변 방풍림에서 열린다.
(11:16) '두곡방파제' 앞에서 우회전하여
'재미들펜션'을 가로질러 진행이다.
백사장이 너무 고운 '두곡해수욕장'
(11:22) 몽돌해변이 이어지는 '두곡해변'을 지나고~
지나온 '두곡해변'과 '꼭두섬' 바라보고~
(11:26) '행정봉사실'을 지나고, 이내 나오는 작은 개천을 지나면
'당항리'에서 '석교리'로 행정구역이 바꿔진다.
남면 석교리(石僑里)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에 있는 리(里)이다.
남쪽으로 남해와 바로 접해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응봉산이 마을 남쪽과 서쪽을 감싸고 있다.
자연마을로 석교, 월포, 비료정 마을이 있다.
석교마을은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월포마을은 바다에 면한 마을로, 객선 기항지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비료정마을은 석교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11:28) '두곡해변'을 지나면 '월포해수욕장'이 시작되고~
이후 '월포해변' 소나무 방품림 그늘진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얼음이 서걱거리는 테라 캔맥주 큰거 1캔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20분 쉬었다 간다.
석교리 월포마을
마을의 형태가 반달처럼 휘어져 있는 모양인데, 옛 이름은 지형을 본따서 지은 '순월개'였다.
조선시대 말부터 지금의 월포(月浦)라 개칭되었다 한다.
월포해수욕장은 월포마을과 두곡마을에 걸쳐져 있어 월포 두곡해수욕장이 부르기도 한다.
크고 작은 몽돌이 해변에 쫙 깔렸으며, 상주해수욕장만 있는 줄 알고 온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멋훗날을 위해서 남해사람들이 감추어 둔 해수욕장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해변에는 방풍림으로 조성한 소나무들이 바람막이를 하고 있으며 매년 4만명의 피서객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가까운 곳에 가족휴양촌 및 청소년들의 수련을 위한 청소년수련원도
쾌적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11:52) '월포마을' 당산목 쉼터를 지나고~
'월포항' 방파제 바라보고~
(11:52) '월포항'으로 흘러나가는 하천을 건너서
우측 위로 오르고~
남면로 진입도로가 갈리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다
볼록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는데, 종점까지 6.82km 남았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와 남파랑길 리본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진행하여, 고갯마루를 넘고~
(12:03) 좌측 아래 해안으로 내려서는 데크 계단길이 있지만,
남파랑길은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그넘 참!!!
인자 좀 그만 짖어라~
(12:08) 남파랑길 시·종점 표지판이 붙어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는데, 저 앞으로 '숙호마을'이 보이고~
석교리 숙호(宿虎)마을
200여 년 전부터 들어와 살던 함안 조씨가 우연히 마을에 들어온 범을 잡아
뒷산에 있는 굴에서 키우니 이 고장에서는 처음 보는 범이라 원근에서
구경꾼이 많이 모여드는 바람에 집집마다 쌀독이 동이 났다고 한다.
이 고을 원님이 확인차 마을까지 와보니 어린 범이 굴에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잘 숙(宿) 자 범 호(虎) 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지으니 이때부터 숙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뒷산 굴을 범호굴 또는 범굴이라 부르고 있다.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소나무 방풍림이 해변의 몽돌과 함께 병풍처럼 길 게 뻗어있으며,
그 해변의 끝 칼성에는 장수가 금산을 보고 건넜다는 장수방이 있고,
선돌이라 부르는 미륵불,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지내는 당산제 등 여러 가지 볼거리와
신기한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는 마을이다.
(12:10) 대해원(大海院)이란 간판이 걸린
'남해상주 학생야영수련원' 앞을 지나서 간다.
(12:11) '숙호마을' 갈림길에서 좌측 해안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진행하고~
(12:15) '숙호숲' 몽돌해변에 도착이다.
'숙호숲 방풍림' 바라보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숙호숲을 보면 참 좋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이후 송림숲은 2백여 미터 가량 이어진다.
그렇게 '남면로' 해안도로를 진행하는데,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2:20) '씨엔스타 펜션' 앞을 지나고,
'석교리'에서 '남면 홍현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지점이다.
남면 홍현리(虹峴里)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에 있는 법정리다.
동쪽과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서쪽은 선구리·임포리, 북쪽은 석교리와 접한다.
자연마을로는 홍현마을·아랫마을·가천마을 등이 있다.
홍현마을은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물지기(勿地基)라고도 불렀다.
아랫마을(아랫모)은 홍현 아래쪽의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다.
가천(加川)마을은 마을 양옆으로 내[川]가 2개 흐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명승 15), 남해 설흘산 봉수대(경남기념물 247),
남해 가천 암수바위(경남 민속자료 13) 등이 있다.
(12:22)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남해전복영어조합법인' 건물 끝에서 우회전하여 '1024번 남면로'로 올라간다.
바다 건너편으로 지난구간 진행했던
남파랑길 41코스 경로 살펴보고~
(12:25) '1024번 남면로' 도로로 올라서서 좌회전하여
'홍현(제1반)'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버스정류장 안에 '홍현마을' 안내 패널이 붙어있다.
홍현리 홍현(虹峴)마을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으며, 아주 옛날에는 바다에서
소라가 많이 나서 소라를 잡아 생활한다고 하여 라라(螺螺), 난날 또는 물직(岉直),
무지기라고 불렀다고 하며, 1895년 조선시대 말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 뒤 소흘산(所屹山)과
도성산(道成山)의 산세가 무지개 모양과 흡사하다 하여 무지개 홍(虹) 자와
재 현(峴) 자를 다사 홍현이라 명명하였다.
홍현마을에서는 특산물인 전복의 우수성을 전국 각지에 홍보하기 위하여 '99년 전국 처음으로
[전복축제]를 개최하여 관광객에게 호평을 받았다.
2001년 4월 15일 제3회 남해 남면 홍현 전복축제가 화려하게 개최되었으며 앵강만을
배경으로 하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특산물인 전복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이 어울린 행사로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
(12:26) 데크전망대를 만나, 지나온 해안선 한번 빙 들러보고~
'홍현'보다는 '무지개마을'로 표시되어 있는 '홍현마을'은 또 다른 이름으로
'해라우지'마을로 안내되고 있는데, 이 말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 해(海)'와
'소라 라(螺)', '가마우지'의 '우지'를 합성한 말이라 한다.
(12:30) '해라우지 홍현마을' 안내판을 지나고,
방파제 앞쪽 물속에 '석방렴'이 잠겨있다.
'홍현마을'에는 '석방렴'이 두 곳에나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밀물 때라
'석방렴'이 물속에 완전히 잠겨 있음에도 멀리서도 그 모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밀물 때 '석방렴'에 들어왔다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석방렴(石防簾)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하는데, 주로 경상도·전라도 연안에서
멸치·고등어·새우·전어 및 기타 작은 잡어를 잡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만입(灣入)한 간석지의 경사가 약간 급한 곳을 골라 반원형이나 ㄷ자형의 돌담을 쌓아,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조수와 함께 고기들이 들어오면, 썰물 때에 돌담의 밑부분에
구멍을 뚫고 밀어 넣어두었던 통발을 들어내어 그 속에 든 고기를 잡았다.
통발을 밀어 넣지 않는 석방렴도 있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석방렴 안의 조수가
절반 이상 줄었을 때 그 속에 갇힌 고기를 자루가 달린 그물로 떠올렸다.
약 2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석방렴을 축조하여 어로활동을 했다고 전해지며
인근 남면 두곡, 용소, 원천마을 등에도 있었지만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한다.
(12:31) '홍현1리 아랫마을 진입로' 표지석 앞에서
'1024번 남면로' 도로를 버리고, 좌측 '홍현항' 방향으로 내려서고~
지나온 두곡해변&월포해변 바라보고~
(12:33) '홍현마을 어촌계 어장출입 안내판'을 지난다.
'홍현항' 방파제 바라보고~
(12:35) 우측으로 '홍현마을 방풍림'이 시작되고~
이후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홍현마을 방풍림'을 두고
'남면로' 해안 길을 따라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나간다.
좌측의 '노도', 우측의 '소치도' 바라보고~
(12:44) '홍현마을 방풍림'이 끝이나고~
잡목이 우거진 절벽 좌측 해안로를 따라 진행이다.
인공폭포???
(12:50) 우측으로 폐 건물 벽면에 그려진
그라피티 작품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2:52) 숲 속에 묻혀있는 '축항기념비'를 지나고~
'홍현 어촌계 집하장'을 지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홍현항 방파제' 바라보고~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와 남파랑길 리본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진행하고~
(13:02) 좌측 아래로 '홍현 황토휴양촌 펜션'을
바라보며 지나간다.
이후 '다랭이마을'로 가는 해안 숲길이 시작되는데,
이 길은 우측 위의 '망산(461m)'과 '설흘산(482m)' 좌측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이다.
(13:14) '여기부터 약 2.5km는 해안 숲길 입니다.'
안내판을 지나고~
(13:16) 등로가 무너져 위험한 곳에는 우회하라는
안내판을 지나고~
낭떠러지 추락 방지용 목책이 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로 깊은 'V자'형 낭떠러지가 보인다.
'추락 주의' 표지판을 지나고~
싫다. 싫어~ 거미줄이...
m간격으로 나타나는 거미줄 때문에 진행이 상당히 지체되고~
그렇게 원목 계단 오르막길을 올라서고,
(13:28) '1024번 남면로'가 바로 보이지만, '남면로'로 오르지 않고 좌측 아래로 진행이다.
'소치도' 바라보고~
(13:32)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는데,
너무 햇볕이라 쉬지않고 곧바로 진행이다.
(13:45) 폐 군초소 위에 설치된 전망대를 만나고,
약간 그늘진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며 에너지바 한개 까묵고간다.
남해바래길 안내도 바라보고~
좌측으로 '노도'와 가운데 멀리로 '소치도' 바라보고~
(13:54) '←가천마을/ 홍현해라우지마을→'
방향 표지판을 지나고~
(13:55) 지금은 이용하지않는 '군경계초소'를 지난다.
(14:01) 평평한 공터에 놓여있는 벤치를 지나는데,
이곳에 벤치를 설치한 사람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잠시 앉았다가 간다.
(14:06) '바래길/ 망수길' 이정표를 지나고~
'망수길'은 해안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형태의 가파른 언덕길이다.
망수가 어부들에게 고기잡이를 지시하던 길이란 의미로 어군 탐지기가 없던 시절
망수가 해안 언덕에서 물고기의 흐름을 파악하여 깃발 두 개로 어선들의 이동 방향과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엄청난 시력과 감각이 필요했던 망수가 이동하며 작업을 지시했을 테니
망수가 바다를 잘 관찰할 수 있고, 바다에서도 망수가 잘 보일만한
해안 절벽길이라는 것을 길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14:07) 통나무 쉼터 벤치를 지나고~
등로가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14:11) 길은 내기 위해 암벽을 굴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암반 등로를 따라 진행하고~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하는 위압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아찔한 절벽길을 어떻게 찾고, 만들었을지, 감탄사만 나온다.
(14:13) 낙석주의 구간을 지나고~
(14:17) 드디어 남파랑길 42코스 종점이 있는
'가천 다랭이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14:18) 어두운 대나무 숲길로 들어서고~
어두운 대나무 숲길을 나서면, 반대편 2.5km 지점에 세워져 있던 것과 같은
'여기부터 약 2.5km는 해안 숲길 입니다.'라는 노란 안내판이 보인다.
(14:20) 첫번째 정자 쉼터를 지나고~
낭떠러지에 돌담을 쌓아 조성한 '다랭이논'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와 남파랑길 리본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진행이다.
바다 저멀리 '소치도' 바라보고~
(14:26) 두번째 육각정자 쉼터를 지난다.
사진 잘 나온다는 '발바닥' 표지가 있는 포토존을 지나고~
포토존에서 바라본 주위 전경
(14:27) 좌측 아래 '구름다리/ 해안산책로'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남파랑길은 우측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14:29) '다랭이논'에는 필수적인 논밭을 가는
'소와 쟁기 모형'을 지나고~
정자 쉼터 앞 삼거리에서 우측 편에 '가천 암수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
성숭배(性崇拜) 신앙의 대상물로, 신격(神格)이 미륵불(彌勒佛)로 변이되어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부르고, 합하여 미륵불이라 일컫고 있다.
숫바위는 높이 580㎝, 둘레 250㎝로 발기한 남자 성기 모양으로 서 있고,
암 바위는 높이 390㎝, 둘레 230㎝로 잉태하여 배가 부른 여인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 27년(1751) 이 고을의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혔는데, 우마(牛馬)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파내어 일으켜 세워 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현몽에 따라
가천에 가서 땅을 파게 했더니 이 암수바위가 나왔다.
이에 현령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봉안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하여 이 미륵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을 기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제사 일이 되면 부정 없는 동민 중에서 제주와 집사를 선정하여 제를 올리는데, 미륵에 대한
제라 어육과 술을 일체 쓰지 않고 과일ㆍ떡ㆍ나물 등을 큰 그릇에 담아 제사를 차리고 지낸다.
제의의 목적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의 기원이다.
전에는 이 미륵불의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미륵계를 만들어 제를 주관하였고,
어부들은 처음 잡은 고기를 이 바위 앞에 얹고 빌면 고기가 많이 잡히며,
해난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기원을 하였다.
이것은 풍요, 다산을 위하여 숭배해 오던 민간의 성기 신앙에 불교가 유합되어 그 신격이
민중 구제의 미래불인 미륵으로 격상되면서 종교적 기능이 확대되고 신체(神體)의 신성성이
계속 유지된 것으로, 한국 성숭배 신앙의 추이를 살피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을 한 남해도에서
여자의 자궁 부위에 해당하는 곳으로, 수바위와 암바위는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암수바위는 이곳에서는 미륵불(彌勒佛)이라고 부르는데,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는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고 알려져 있다.
(14:31) 남해바래길 안내판을 지나고~
남해바래길 안내판에는 이번 10코스인 앵강다숲길부터 11코스 다랭이지겟길,
12코스 임진성길을 안내하고 있다.
(14:32) 첫번째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는데,
남파랑길 43코스 시작점 패널이 세워져 있다.
그렇지만 남파랑길 42코스 종점은
여기서 한 블럭 더 올라간 사거리갈림길이 진짜 종점이다.
(14:43) 두번째 사거리 갈림길에 도착하고,
남파랑길 42코스 종점이다.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1차로 목표했던 남해바래길 10코스& 남파랑길 42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남해바래길 앱 끄고,
남해바래길 10코스& 남파랑길 남해 42코스를 종료한다.
이후 '1024번 남면로'를 향해 올라가는데
'다랭이마을'을 알리는 패널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1024번 남면로' 도로에 오르고,
입구 좌측 편에 '아름다운 다랭이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1024번 남면로' 도로 건너편에
'다랭이마을 관광안내소'와 매점, 화장실이 있다.
'남해다랭이마을' 종합안내판 바라보고~
'가천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었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갈대가 많은
냇가에 자리 잡고 있다 해서 가천(加川)으로 바뀌었다.
'다랑이'는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를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고 불린다.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에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 보니 마을 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깎아지른 듯한 비탈에 곧추 석축을 쌓고 흙을 채워
계단식 다랭이 논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다랑논(국가 명승 제15호)이 108개 층층 계단에,
10㎡ 밖에 안 되는 작은 것부터 1,000㎡에 이르는 것까지 680여 개의 논이 펼쳐진다.
작은 논에 대한 일화로 "옛날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논 한 배미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한 배미가 있었다."
이처럼 작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해 삿갓배미,
삿갓다랑이 또는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 해서 죽배미나 밥배미로도 불린다.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마을이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0년께다.
2002년 환경부는 다랭이마을을 '자연 생태보존 우수마을'로 선정했고, 2005년 문화재청은
명승 제15호로 마을 전체를 포함한 다랭이 논을 지정했으며, 농림수산식품부도
다랭이마을을 '색깔 있는 마을'로 선정했다.
이뿐이 아니다.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는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다랭이마을을 선정했다.
낭떠러지에 돌담을 쌓아 조성한 '다랭이논'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이후 버스출발시간이 촉박하여 가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다,
(14:51) 남해터미널行 군내버스를 겨우 타고
(15:20) 남면사무소가 있는 홍덕 버스정류장에 하차,
오늘 2차로 계획했던 남해바래길 테마지선 남면 만수무강 마을바래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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