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9.23~24 (1박2일)
코스: 남해대교.북단 주차장(시점)-노량항/신노량마을/1박-금남체육공원/금남면사무소
-소송마을.버스정류장-사등마을회관-대송마을-금오단-진정마을.당산목-계항교-객길마을.표지석
-주교천교-선소공원-신방마을-섬진강습지공원-횡천교-하동포구.공원-하저구마을/재첩특화마을
-섬진강수변공원-하동송림공원-섬진교.동단(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28.4km (두루누비기준 27.4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8시간6분
▶ 갈때 : 남해바래길 완주 후 바로 '남해바래길 탐방지원센터'에 가서 완주 확인을 받고
남해공용시외터미널로 이동,
진주行 시외버스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노량버스정류장에 하차, 시점까지 도보이동
▶ 올때 : 섬진교.동단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으로 도보이동,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15:00)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버스정류장에서 16번 버스 환승하여 양산.내송집으로 귀가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궤적
남해대교.북단 주차장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시점)
남해대교.북단 주차장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시점에는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안내판'은 보이지 않고,
'노량 해변'으로 내려서는 데크계단길 입구에
'남파랑길 47코스 시작점' 패널만 부착되어 있다.
하동군 금남면(金南面)
경상남도 하동군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면이다.
동쪽으로는 남해 바다와 접해있고, 서쪽으로 금성면과 이웃한다.
남쪽으로 바다 건너 남해도와 마주한다.
북쪽으로 금오산을 경계로 진교면과 접하고, 서북쪽으로는 고전면과도 연접한다.
금오산에서 발원한 하삼천과 진정리의 용산에서 발원한 진정천이
북쪽으로 흘러 주교천에 합류한다.
면의 동쪽은 금오산으로부터 큰설산,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형성되어 있고
구릉성 산지들이 분포한다.
남해 바다와 접해 있는 해안 일대는 간척된 넓은 평야지대가 있다.
1914년에 곤양군 금양면 지역이 하동군 금양면이 되고, 곤양군(昆陽郡) 서면과
하동군 마전면(馬田面)의 일부를 통합하여 남면으로 하였다.
1933년에 금양면(金陽面)의 일부(노량리·대치리·중평리·술상리)를 편입하며
남면과 금양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금남면(金南面)으로 고치게 되었다.
1986년에는 가덕·갈사·고포·궁항 등 4개 동리를 관할하는 갈사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89년에는 술상리를 하동군 진교면(辰橋面)으로 분리하였으며
곧이어 갈사출장소를 하동군 금성면(金城面)으로 분리·승격시켜
9개 동리를 관할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남면은 (계천리, 노량리, 대치리, 대송리, 대도리, 댁천리, 송문리, 중평리, 진정리)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22개 행정리가 속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참깨·무·배추 등의 생산과 경사지의 산양·소 사육이 활발하다.
수산물 어획량도 많은 편이다.
교통은 남해~원주 간 국도가 면의 북서쪽을 지나고,
노량리(露梁里)를 중심으로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하동 금오산 마애불(경남유형문화재 290),
하동 금오산 봉수대(경남기념물 122),
경충당(景忠堂), 정재운묘(鄭在雲墓), 송문리 민보성(松門里民堡城),
덕천리 지석묘(德川里支石墓) 등이 있다.
금남면 노량리(露梁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남쪽으로 이웃한 남해군 설천면과의
사이에 좁은 통로 모양의 바다 목이 있어 노들 또는 노량(露梁)이라 하였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노량진(露梁津),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노량촌(露梁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노량동(露梁洞)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금양면 노량리가 되었고, 1933년 금양면과 남면(南面)을 합쳐 신설한
금남면(金南面) 관할이 되었다.
노량리는 금남면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다.
구노량(舊露梁)과 신노량(新露梁) 두 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구노량은 신노량이 등장하기 전 중심 마을로 과거에는 남해로 들어가는 도선장이었고,
마을 앞으로 국도 19호선이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군으로 이어진다.
하동의 남쪽 관문인 신노량은 금남면의 행정 중심지로 하동 금남우체국, 금남파출소,
어업인복지회관 등이 들어서 있다.
연대봉 정상에 있는 연봉산성은 왜구를 방어했던 요새 구실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이 노량리 앞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켜고,
(18:25)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시작이다.
'노량해변'으로 내려서는 데크계단길을 내려서며,
'섬진강대로'가 지나는 '노량대교' 바라보고~
(18:29) '노량해안길' 도로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노량(露梁)이란 지명의 뜻은 말 그대로 「이슬다리」다.
옛날 유배지로 유배당해 남해로 오는 사람들의 눈에 노량해협에 파도가 심하게 치면
그 물결이 마치 이슬방울을 뭉쳐 다리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야 시대부터 어선의 주요 기항지였고, 남해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 아래에 위치한 노량항은 참숭어 양식으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이곳 참숭어는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가 배합된 사료를 먹고, 빠른 물살 속에서 키워지다 보니
숭어의 운동량이 많아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매년 11월이면 참숭어 축제가 열린다.
노량항의 서방파제는 목교를 놓아 산책과 낚시의 명소로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선착장은 갯벌체험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대도 어촌체험마을로 가는 여객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남해대교' 바라보고~
(18:30) '노량 투다리 오토캠핑장'을 지난다.
(18:34) '노량대교' 북단 진입로의 '노량대교 홍보관' 바라보고~
노량대교 홍보관
하동군 금남면에 위치한 노량대교 홍보관은 세계 최초의 경사주탑 현수교인
노량대교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노량대교는 높이 52미터에 3.1km로 이순신의 학익진 전술을 모티브로 삼은 다리로,
V자모양 주탑이 8도의 경사각을 이루고 있다.
사업비는 1,600억 원이 들었고, 완공되기까지 9년이 걸렸다.
이처럼 홍보관을 둘러보다 보면 노량대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남해대교의 멋진 풍경도 조망할 수 있다.
또, 홍보관 한쪽에서는 남해군과 하동군의 관광 안내도 받을 수 있는데,
여행 홍보책자와 맛집 가이드북은 물론, 지역 내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또, 특산물마켓에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다.
주차장에 전기자동차 충전소가 마련되어 있다.
'노량대교' 바라보고~
(18:36) '노량대교' 밑을 지나간다.
이후 '노량해안길' 해안도로를 따라 '신 노량항'을 향해 진행하고~
뒤돌아본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뒤돌아 본 '남해대교'와 '노량대교'의 모습은 마치 중년의 성숙함과
청년의 기백으로 대비되는 듯하다.
'남해대교'는 수령 50년을 바라보고 있으나 여전히 남해의 중요한 교통로로
역할을 하고 있고,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노량대교'는 기술과 능력, 경관 등에 있어
신세대 능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18:40) '신 노량항'으로 들어간다.
노량해전(露梁海戰)
1597년(정유년, 선조 30) 8월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일본이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이듬해인 1598년 11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병사(病死)로 철군하게 되었는데,
이때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나라의 수사제독(水師提督)
진린(陳璘)과 함께 철군하는 일본 수군과 벌인 마지막 해전이다.
퇴로가 막힌 고니시는 경남 사천(泗川)에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와
남해의 소시라노부[宗調信]에게 구원을 청하여, 전선 500여 척을 노량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그러자 이순신은 휘하 장병에게 진격 명령을 내려 노량 앞바다로 쳐들어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의 적병을 죽였고, 적에게 포위된 진린도 구출하였다.
이 해전에서 400여 척의 전선을 격파당한 왜군은 남해 방면으로 도망쳤는데, 이 추격전에서
왜군은 다시 50여 척의 전선이 격파당하고 50여 척의 남은 배를 수습하여 도망쳤다.
이순신은 이 추격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는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45) '하동군 수협' 앞에서 좌회전하여 '노량항'을 좌측에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18:48) '노량항 요트계류장' 앞 대형 물고기 조형물 바라보고~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근처에 미리 예약된 숙소로 이동하여 하루를 묵어간다.
9월24일 새벽 (04:30) 눈을 뜨고~
어제 밤 (21:20) 무렵 수면에 들어가 한번도 깨지않고 7시간 10분 푹 잤다.
더 자려고해도 허리가 아파서 못누워 있겠고~ ㅎ
기상하여 샤워를 마치고 (어제 저녁에 미리 배낭정리 해놓았음)
커피한잔 끊여 마시고 (05:20) 숙소(한일여관)를 빠져 나오고~
어제 남파랑길 스톱한 지점으로 되돌아온후
다시 남파랑길47코스를 이어간다.
(05:25) 좌측 어둠속으로 '노량항' 앞의 일몰 명소인 '학섬'과
구멍이 뚫린 '코뿔소바위'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금남체육공원'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금남보건지소'와 '금남면사무소'를 차례로 지난다.
그렇게 진행하면 '금남면사무소'부터 '노량리'에서
'송문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금남면 송문리(松門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곤양군 서면 소송동(小松洞)의 ‘송’자와
수문동(水門洞)의 ‘문’자를 따서 송문리(松門里)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곤양군 서면의 소송포촌(小松浦村)·수문포촌(水門浦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옹기점[일명 수문동]이라는 한글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소송동·수문동·
미법동(彌法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 송문리가 되었고, 1933년 남면과 금양면이
통합되어 금남면이 됨에 따라 금남면 송문리가 되었다.
송문리는 금남면 남부에 자리 잡고 있다.
미법·수문·소송·신기(新基)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미법마을은 송문리 중심 마을로 금남면사무소·금남면 보건소·노량초등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수문마을 앞으로는 남해의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고, 마을을 지나는 국도 19호선의
소송교차로와 금남교차로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 송문리 화석 유적이 있다.
이후 좌측으로 매립지에 세운 '금남체육공원'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05:34) '미법(아랫말)'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우측 '마을 안길'로 방향으로 진행하고~
(05:36) 'Y자' 도로 갈림길에서 좌측이다.
이후 S라인 '미법마을길'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다,
(05:50) 급경사 오르막 마을길을 올라서고~
(05:52) 남파랑길 이정표(←오리골 저수지 5.0km)와
쉼터정자가 있는 소공원을 지난다.
그렇게 소공원 끝의 돌탑을 지나고~
돌탑은 마을 어귀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그렇게 '미법마을' 소공원 언덕을 지나면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우측 멀리로 통신 시설물이 있는 '금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임도 따라 길게 내려서다,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06:03) 전방으로 포장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곳 갈림길에서 급 우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우측 멀리로 통신 시설물이 서 있는 '금오산' 바라보고~
좌측으로 '하동 화력발전소' 바라보고~
그렇게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가만히보니 앞쪽에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멀리 돌아가는 길 대신 질러서 가는 길이다.
(06:10) '송문리 소송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도로 직전 사각정자 앞에서 우회전하여 '소송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고~
(06:14) '소송마을' 앞 길을 지나, 도로로 나서기 위해
좌회전하는데 0.2km 구간 위험 표시가 붙어있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면 '송문리'에서 '대송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금남면 대송리(大松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마을에 큰 소나무가 있어 대송(大松)이라 하였다.
달리 대송개라고도 하였는데, ‘개’는 포구를 뜻하는 말로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
대송포촌(大松浦村)이라는 관련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대송동(大松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송동과 환치동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 대송리가 되었다.
1933년 남면과 금양면(金陽面)을 합쳐 신설된 금남면(金南面) 관할이 되었다.
대송리는 금남면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대송, 사등(砂登), 환치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마을 뒷편의 금오산 정상 남쪽 아래 달바구[月岩]라 불리는 바위굴 암벽에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하동 금오산 마애불(河東金鰲山磨崖佛)[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0호]이 있다.
사등마을은 조선 후기 충주 지씨(忠州池氏)가 남해군에서 건너와 정착한 이래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여러 성씨들이 정착하였다.
환치마을에는 하동군 생활 폐기물 매립장이 있고, 마을 앞으로 남해가 펼쳐져 있다.
조계종 사찰인 금정사(金頂寺)가 있다.
이후 '해안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좌측 바다 건너편으로 '하동 화력발전소' 바라보고~
(06:18)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멀리 '덕오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Y자' 갈림길에서 '해안로' 도로를 버리고 우측 농로로 진행이다.
(06:21) 'Y자' 농로갈림길에서 우측 농로로 방향을 바꾸고,
'대송리 사등마을'을 향해 들어서는데, 마을 뒤에는 '금오산'이 높이 솟았다.
(06:32) '사등마을회관' 앞에서 한국 고유종인
'해마' 조형물 마을 표지석 바라보고~
'대송리 사등(砂登)마을'은 대송천 아래 '손목' 밑에 위치하여,
'대송천'의 모래가 많이 쌓여서 '사등'이라 하였다.
이후 '사등마을회관' 앞에서 좌회전하여 마을 앞 다리를 건너고,
(06:36) '사등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가기 전 'ㅏ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금오산' 방향 직선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06:40) 농로 'T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약간 진행하다 우회전하여,
중앙 정면에 보이는 굴다리를 바라보며 진행하고~
(06:48) '19번 섬진강대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한다.
(06:50) 구 '섬진강대로'로 올라서고,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대송마을' 표지석을 바라보며 우측 마을길을 따라 진행하고~
대송(大松)마을은 옛날에는 '대송개'라고도 불렀으며 마을 뒤 금오산 자락에
위치하여 큰 소나무가 많아서 대송(大松)이라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뒤 북쪽 금오산 자락에는 숙호등(宿虎登)이 있는데 호랑이가 잠자는 형태와
같은 산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퇴봉이 솟아 있고, 앞 남쪽으로는 대송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06:53) '대송마을회관'을 지나면 느티나무 보호수가 보이고,
보호수 우측 마을길로 길이 이어진다.
'대송마을 느티나무'는 2008년에 지정된 보호수로,
수령 330년, 수고 25m, 흉고 4.5m에 달한다.
이후 '대송마을' 안 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좌측 민가 담장 밑에
과거 마을의 식수원이었을 듯한 '우물'이 보인다.
(06:56) '대송마을' 민가를 벗어나면
급경사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뒤돌아보면 '노량' 앞바다와 '대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보이고~
(07:03) '금정길' 도로에 올라서서,
직진 방향 '일자르디노 펜션' 방향으로 올라간다.
'꽃무릇' 바라보고~
(07:08) '사랑초펜션' 갈림길에서 우회전하고,
'일자르디노 펜션'에 올라서 좌측으로 진행이다.
(07:10) 진양 하씨 종중묘원인 '금오단(金鰲壇)'
표지석 옆을 지나고~
'금오단(金鰲壇)' 표지석이 있는 이곳이 오늘 코스 중
가장 고도가 높은 곳으로, 트랭글 고도로 202m로 표시되고 있다.
이후 완만한 임도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지고~
좌측으로 '다랭이논'을 바라보고~
'수까치깨' 군락지를 지난다.
(07:18) 좌측으로 축사 옆을 지나고~
임도 바닥에 밤송이가 수두룩 떨어져 있지만
갈길이 멀어 못본채하고 진행하고~
그렇게 내려서는데,
좌측 아래로 '하동군 미곡종합처리장'이 한층 가까워졌다.
(07:26) '하동군 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앞 '하동포구대로'
도로를 만나 좌회전하고~
(07:27) '하동 미곡종합처리장' 정문을 지나,
'대덕장'모텔과 '대송원', '금정사'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로 나가서~
(07:29)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하동포구대로' 도로를 버리고 우측 '오리골 저수지 930m' 방향의 소로로 진행이다.
'19번 섬진강대로'가 지나는 '덕천교' 고가교 바라보고~
'덕천리'일대 바라보고~
이후 논두렁 옆 수로 옆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햄버거와 테라캔맥주 큰거 1캔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며 8분 쉬었다 간다.
(07:40) '19번 섬진강대로'가 지나는 '덕천교' 고가교 밑을 지나고~
'고마리' 바라보고~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시그널이 가르키는
농로를 따라 진행하고~
(07:48) 느티나무 고목 아래 쉼터정자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면 '대송리'에서 '진정리'로 행정계가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금남면 진정리(眞正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마을에 참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참나무정이·참나무징이·진목정(眞木亭)·진목(眞木)·진정(眞亭)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진목’은 참나무의 한자 표기이다.
1911년 발간된 『구한말지형도』에도 ‘진목’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7년에 발간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과 『조선지형도』에
현재의 한자 표기와 같은 진정리(眞正里)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참나무 정자를 뜻하는 진정(眞亭)의 한자 표기가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목동과 금오동(金午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南面) 진정리가 되었다.
1933년 남면과 금양면(金陽面)이 금남면(金南面)으로 통합됨에 따라 금남면 진정리가 되었다.
금남면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진정리는 금오·진정(眞正)·조금(助琴)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진정리의 중심 마을인 진정은 1933년 남면이 금남면으로 바뀌기 전 면 소재지였을 정도로 번창했으며,
유서 깊은 진정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동북쪽으로 국도 19호선이 지난다.
(07:56) '진정마을' 어귀로 들어서서,
'당산제'를 지내는 느티나무 세 그루와 제단 옆을 지나고~
진정(眞正)마을 당산제(堂山祭)는 금남면 진정리 진정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로, 매년 음력 정월 상순 중 택일한 날에
신체(神體)로 추앙받고 있는 이곳 수령 200 ~ 250년 정도인 세 그루의 느티나무 아래
제단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였다.
신당은 없으나 ‘당산 할아버지’라 불리는 이 느티나무 세 그루를 마을 사람들은
“세 분의 할아버지"라고 여겨왔고, 이 당산은 기가 세다고 하여 무속인들이
이곳 나무에서 몰래 치성을 드리고 기를 받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을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당산나무 아래로 상여가 지나가거나 다른 마을 풍물패들이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동티[땅, 돌, 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하여 재앙을 받는 일 또는 그 재앙]가 난다."라고 한다.
또한 해방 직후에 호열자[콜레라]가 만연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마을에는 모두 창궐했으나
진정마을에는 ‘당산 할아버지’가 막아 주어 아무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07:58) '진정마을'로 들어서기 전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08:01) '진정2길' 도로를 만나 좌회전하고,
'진정마을'을 향해 진행하다 마을 직전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이후 남파랑길은 150여 미터의 '용산' 아랫자락으로 이어진 농로길로
진행하는데, 넓은 평야지대 끝자락을 걷는 길이다.
우측으로 '금오산' 바라보고~
(08:14) '경제산업로' 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에스오일 주유소'와
우측으로 '건강 엑기스 업소' 사이 '조금2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08:16) '조금2길' 도로'ㅏ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진정천' 둑길을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진정천' 둑길을 길게 진행하다,
(08:21) 교각 밑을 통과하고~
(08:26) '진정배수장' 옆을 지나고~
(08:27) '금남 종합가스' 건물 앞에서 우회전하면,
'조금2길' 도로가 시작된다.
(08:29) '←선소공원 4.0km' 이정표를 지나고,
도로 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조금2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그렇게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남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08:33) '조금2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계항교'를 건너간다.
'계항교'를 건너면서부터 '금남면 진정리'에서
'금성면 궁항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하동군 금성면(金城面)
하동군 남서단에 자리 잡은 면으로, 섬진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금성만(金城灣,
일명 갈사만(葛四灣))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동쪽으로 금남면과, 서쪽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태인동과,
남쪽으로 금성만을 앞에 펼치며 남해군 서면과, 북쪽으로 고전면·금남면 일부와 이웃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과 하동군 마전면(馬田面)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면과 마전면의 동리가 합쳐 하동군 남면(南面)에 소속되었다. 1933년에 남면이 하동군 금양면(金陽面)의 일부 동리를 편입하며 금남면(金南面)으로 개칭하여
속하게 되었다.
1986년에 가덕리(加德里)·갈사리(葛四里)·고포리(高浦里)·궁항리(弓項里) 등 4개 동리를 관할하는
금남면 갈사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89년에 다시 갈사출장소를 하동군 금성면(金城面)으로 분리·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덕리·갈사리·고포리·궁항리 등 4개 법정리, 15개 자연 마을[22개 반]을 관할하며,
면 소재지는 궁항리 중심 마을인 '신도마을'로, 금성면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보건지소 등
금성면 공공 기관 대부분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말[馬]처럼 생겨서 모섬· 몰섬· 모우섬 등으로 불렸던 궁항 앞 작은 섬은,
간척으로 농토로 바뀐 뒤 궁항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금성면 궁항리(弓恒里)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위치한 리(里)이다.
들이 넓은 평야지에 자리하며, 궁항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객길, 궁항마을 등이 있다.
객길마을은 옛날에 이 마을에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좋은 일이 생겼고
또 그 손님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마을이기도 하여,
타지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잘 산다는 의미에서
객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궁항마을은 마을 뒷산 정상에서 보면 양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활 테 모양이고 앞으로 연결된 군도는 활끈이 되며 마을 가운데로
뻗어 내린 산능성은 활촉모양을 하고 있어 궁항이라 부른다.
금성면 중앙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법정리로
객길· 궁항· 신도· 가린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지형이 활 모양이어서 활미기· 활목이라 하였는데,
한자말로 궁항(弓項)이 되었다.
궁항은 마을 뒷산 정상에서 보면 양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활 테 모양이고, 앞으로 연결된 군도는 활 끈이 되며,
마을 가운데로 뻗어내린 산 능선은 활촉 모양을 하고 있다.
북서쪽에 솟은 두우산(頭牛山, 191m)에서 북쪽의 객길고개[객길재, 객길현]를 지나
궁항 소류지까지 높이 100~200m의 산지들이 섬진강·주교천과 경계를 이루며 이어져 있고,
그 남쪽으로는 갈사리까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우측으로 '진정천' 표지판을 바라보는데,
'금오산'이 많이 멀어졌다.
이후 전방으로 '계항마을'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남파랑길 표지판 안내 따라 좌측 농로로 방향을 바꿔 전답사이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08:44) 좌측으로 배수시설이 있는 'T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고~
(08:46) '59번 국도 산업로'가 지나가는 '진정천교' 아래를 통과하는데,
'산업로' 도로는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광양 산업단지'로 이어지는 도로다.
(08:47) '계천배수장' 앞을 지나고,
전방 앞쪽으로 '남해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08:53) 좌측 위로 '하동터널'을 바라보면서,
'남해고속도로' 밑을 통과하고~
이후 전방 멀리로 '금오산'을 바라보며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08:59) '←선소공원 2.3km' 이정표가 있는 'T자' 갈림길에서
좌측 둑길로 진행하는데, 앞쪽으로 '주교천'이 흐르고 있다.
주교천(舟橋川)
경상남도 하동군의 양보면, 고전면을 흐르는 하천이다.
양보면 우복리 계봉(548m) 서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장암리를 거쳐
양보면 소재지 일대에서 박달천·통정천·지례천 등을 합류한다.
이후 남서쪽으로 흘러 고전면으로 들어가 고전천을 합류한 이후
섬진강대교 부근에서 섬진강으로 유입한다.
주교 지명은 하천의 중류에 있던 고전면 성평리 죽전 마을 부근에 있던
배다리 장터에서 비롯되었다.
주교는 배다리의 한자 지명으로 일명 배들이라고도 부른다.
(09:02) 데크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고,
에너지바 1개로 원기를 보충하며 10분 휴식이다.
(09:12) 다시 출발하여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주교천' 둑방 수렛길을 따라 진행하고~
미국쑥부쟁이...
(09:20) 좌측의 '진정천'이 '주교천'에 합류하는 곡각지에서 좌회전하여,
앞쪽으로 '진정천'을 가로지르는 '석천교' 앞으로 진행이다.
(09:22) '←선소공원 1.8km' 이정표를 바라보며,
'석천교'를 건너고~
(09:23) '석천교'를 건너면 갈림길 정면의
'머물고 싶은 곳/ 客吉' 표지석 우측 길로 직진해 나가서~
좌측으로 '객길마을'을 바라보며 길게 진행이다.
객길마을은 궁항리 4개 마을 중 한마을이며,
객길과 회목을 합하여 행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좋은 일이 생겼고
또 그 손님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마을이기도 하다.
타지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잘 산다고 하여
'객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객길은 '깨꺼리'라고 부르는 어원도 갖고 있다.
(09:30) '객길마을' 쉼터 전망대가 있는 소공원을 지나고~
(09:31) '선소공원 1.3km→' 이정표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09:34)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태양광발전소'를
뒤돌아 바라보고~
(09:37) 우측으로 '주교천 산책로'를 바라보며 직진해 나가는데,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저 길을 누가 진행하겠나 싶다.
좌측 편 위로는 '남해고속도로'가 나란히 지나는데,
'섬진강', '섬진강 휴게소', '섬진강교' 교통 표지판이 차례로 보이고~
우측 건너편으로 '주교천교'를 바라보고~
(09:43) '객길마을' 입구 정자 쉼터를 지나,
'객길마을' 표지석, 이정표, 볼록거울이 있는 삼거리에서 급 우회전하여~
'주교천'이 '섬진강'에 합류하는 합수점에 놓인
'주교천교'를 건너간다.
좌측으로 '섬진강교' 바라보고~
순천, 부산 간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는 섬진강교는
1992년에 새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리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간이라는 특성이 있다.
1973년에 세워진 다리를 두고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섬진강(蟾津江)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 1,151m)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역 면적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다.
지리적으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 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 지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왜군의 침입 경로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정유재란 때의 구례 사람들의 처절한 옥쇄가 벌어졌고, 조선 말
동학농민전쟁과 해방 전후의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의 격전지 등으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아픔이 있는 지역이다.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기문화· 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캠핑장으로 유명하다는 '조개섬' 바라보고~
(09:49) 그렇게 '주교천교'를 건너면 '고전면 전도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하동군 고전면(古田面)
경상남도 하동군 남부에 있는 면(面)이다.
동쪽으로 양보면(良甫面), 북쪽으로 하동읍·적량면(赤良面), 남쪽으로 금남면(金南面)·
금성면(金城面), 서쪽으로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津月面)과 접한다.
북단부에 정안산(鄭晏山:448m)이 낮게 자리잡고, 서쪽으로 전라남도·경상남도의 경계를
섬진강이 흐른다.
참깨·무·배추 등을 생산한다.
섬진강 유역을 따라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남해고속도로가 남동부를 가로지른다.
문화재로는 하동읍성(경남기념물 217), 범아리(泛鵝里) 성지, 고현성(古縣城),
고하리(古下里) 성지 등이 있다.
8개 법정리(고하리,대덕리,명교리,범아리,성천리,성평리,신월리,전도리)와
27개 행정리[31개 반]를 관할하며, 면 소재지는 범아리이다.
조선시대 하동군 고현면(古縣面)· 마전면(馬田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현면의 ‘고’자와 마전면의 ‘전’자를 따서 고전면(古田面)으로 통합되었고,
1916년 팔조면 신월리(新月里)가 편입되었다.
고전면 전도리(錢島里)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마을 앞들 가운데 섬처럼 생긴
조그만 산이 있어 앞섬·전도(前島)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전도촌(錢島村)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전도동·월진동(月津洞)·선소동(船所洞)·신방동(新芳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가 되었다.
섬진강(蟾津江)이 마을 서쪽 경계를 이루고, 주교천(舟橋川)이 서남쪽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하천 일대에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었다.
북쪽에는 높이 약 200m 산지가 나타난다.
전도리는 고전면 서남부에 자리 잡고 있다.
섬진강 동쪽과 주교천 위쪽에 신방, 선소, 월진, 전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마을 서쪽 섬진강 변으로 국도 19호선이 지나고, 남쪽 주교천 건너편에 남해고속도로가 지난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신방에는 하동군의 명물인 재첩 식당들이 여럿 들어서 있고,
고전면 입구에 해당하는 전도에는 고남초등학교가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인 전도리 고분과 전도리 유물 산포지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성터인 전도리 성지가 있다.
이후 남파랑길 이정표(하동포구공원 6.4km→)를 보면서
데크 탐방로로 진행하고~
(09:53) 좌측 아래 강변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
'파크골프장'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0:00) '섬진강 피크닉광장/ 파크골프장' 입구에서
좌측 아래의 아치교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선다.
(10:01) '하동포구교'란 이름붙은 화강석 아치교를 건너고~
'선소공원'으로 들어서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데크길을 진행하다,
운동시설물과 팔각 정자 옆을 지나고~
(10:05) 다시 도로로 올라서면 입구에 '선소공원'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앞쪽으로 '선소마을'이 보인다.
'선소마을'은 '섬진강' 강둑을 경계로 위치한 마을로
예부터 배가 들고 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0:08) '선소마을' 포구를 지나고~
이후 '섬진강'을 바라보며, 강변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10:17) '신방마을' 표지석을 바라보며
다시 도로로 올라서서 '전도리 신방마을' 앞을 지나는데~
이 마을은 하동의 특산물인 '재첩식당'이 밀집된 마을이다.
(10:19) '섬진강' 표지판를 지나 데크탐방로를 진행하고~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지리산 동쪽으로
흘러내려오는 강으로 고운 모래가 많아서 다사강, 사천, 모래내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섬진강, 즉 "두꺼비 나루강"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고려말 왜구가
섬진강 하구로 침입했는데 수많은 두꺼비가 울어서 왜구들이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10:21) '섬진강 하구부터 7km 지점' 자전거길 안내판을 지나
좌측 수렛길로 내려서서 진행하다 잠시 뒤 우측 데크 계단길을 통해 도로 위로 올라선다.
(10:25) '재첩길' 도로로 올라 '19번 섬진강대로' 상·하행선 아래를 지나면,
'전도리'에서 '신월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전면 신월리(新月里)
고전면 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법정리로, 마을 뒷산 모양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신월리라 하였다.
사막(沙幕)· 신월(新月)· 시목(柿木)· 노화(蘆花)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막은 하동읍을 지나 고전면이 처음 시작되는 마을로 국도 19호선을 경계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 마을이고,
신월은 예부터 효자가 많은 마을로 영조 시대 파주 염씨(坡州廉氏)
가문의 효자비가 남아 있다.
시목은 마을 앞의 넓은 뜰을 이용하여 수박 등 하우스 농사를 많이 하고 있는 마을이고,
노화는 섬진강 강변을 마주 보고 위치한 마을로 배를 이용한 재첩잡이 등을
주로 생업으로 하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높이 200~400m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고, 신월 뒤에 있는 고개인
갈록치(渴鹿峙)가 고전면 사무소가 있는 범아리로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횡천강(橫川江)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시목 앞에서
섬진강(蟾津江)으로 흘러든다.
횡천강과 섬진강 변에는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산지와 평야 경계 지대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10:30) 우측 위로 육각정자가 있는 소공원을 지나고~
(10:33) 다시 좌측 아래에 있는 옛길로 내려서서 진행하고~
(10:40) '로터리 동산' 입구에 세워진
'로터리 클럽의 네 가지 표준' 표지석을 보면서 진행이다.
네 가지 표준이란 로터리 클럽의 행동 기준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1. 진실한가?
2. 모두에게 공평한가?
3.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4. 모두에게 유익한가?』
(10:42) '신월교차로' 앞으로 진행하다 좌측 아래 '신뱅 재첩회식당'
포구 앞으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신월습지 데크탐방로' 입구로 들어간다.
데크탐방로 입구에는 갈대와 붉은발 말똥게에 대한 설명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습지에 서식하는 붉은발 말똥게는 멸종 위기 2등급으로 바다에서 자라면서
변태를 거쳐 육상에서 생활하는 게라고 하는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신월습지 데크탐방로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고전면 신월리
섬진강변 3350㎡ 규모에 이르는 신월 생태습지공원 갈대밭 사이로
폭 3.8m, 길이 842m의 산책로가 2012년 말에 조성됐다.
(10:54) 데크계단길을 올라 '19번 섬진강대로' 도로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길게 진행하는데 봄철 벚꽃이 만발하였을 때는 이 길은 환상적이겠다.
(11:02) '구례 43km, 하동 6km' 교통 표지판을 보면서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로 대나무 숲길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 하구의 하동읍 목도리 목도공원과 고전면 신월리 신월습지 사이에 있는
신월리 대나무밭의 관광 자원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대나무 숲길 조성 사업에 들어가
2021년 3월에 완료했는데, 2억 2600만 원이 투입된 섬진강 대나무 숲길은
총연장 2.5㎞로, 산책로와 보행 매트 및 대나무 의자 등을 설치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조성되었다.
특히 대나무 숲길은 길이 1.7㎞의 목도공원과 길이 1.5㎞의 신월습지 중간에 위치해
총연장 5.7㎞의 섬진강변 탐방로로 연결됐다.
(11:09) 그렇게 '횡계교'를 따라 '횡천강' 중간지점을 지나면,
'고전면 신월리'에서 '하동읍 목도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하동읍(河東邑)
하동군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하동군의 중심지로,
읍내리 등 8개 법정리 35개 자연 마을을 관할하며,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동쪽으로 적량면(赤良面), 북쪽으로 악양면(岳陽面), 남쪽으로 고전면(古田面)과 접하며,
서쪽으로는 섬진강을 경계로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과 접한다.
군내에서는 넓은 농경지를 차지하는 편이어서, 섬진강 동안(東岸)의 광평리(廣坪里)·
목도리(牧島里)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식량작물 외에 특용작물로 참깨·들깨·저마가,
채소로는 무·배추·우엉·토란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은 하동꿀배와 재첩, 매실, 솔잎 한우 등이며, 천연기념물 제445호 하동 송림과
하동공원, 하동포구공원 등이 있다.
북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칠성봉과 구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뻗어 있고,
서쪽으로 백운산 줄기인 억불봉과 매봉이 우뚝 솟아 있다.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서북쪽에서 흘러들어 하동읍을 에워싸고 흐르면서 동남쪽으로 빠져나간다.
하동읍 목도리(牧島里)
완만한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서쪽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동쪽으로 횡천강이 흘러 토질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알맞은 고장이며, 선진 농업기술을 도입하여 하우스 경작 농가가
주를 이루며 주민소득이 높아 동양의 덴마크라 자랑하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하저구, 목도, 구통, 문도마을 등이 있다.
목도 마을은 조선시대 때 말을 놓아먹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구통 마을은 목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11:12) 그렇게 '횡천교'를 건너 좌측 아래
'하동포구공원 1.8km'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거리 표시가 오류다.
이후 '하동포구공원'으로 들어서서 소나무 숲길을 지나
잘 조성된 공원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꽃무릇' 군락지 바라보고~
(11:23) 이 지역 '고전면' 출신 작사가 '정두수 작사',
'송운선 작곡', '하춘하 노래'의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 바라보고~
'정두수 작사가'의 대표작으로 '박춘석 작곡', '나훈아'가 노래 한 '물레 방아 도는데'가 있다.
나훈아의 출세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 / 서울로 떠나간 사람...』이란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인다.
이 외에도 '마포종점', '공항의 이별', '흑산도 아가씨', '목화 아가씨', '우수', '삼백리 한려수도' 등이 있다.
이후 잘 정비된 강변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섬진강대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
'섬진강대교'가 보이는 강변 탐방로를 따라 진행이다.
(11:30) '섬진강대교'가 잘 보이는 목교를 건너고~
그렇게 잘 정비된 강변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다,
(11:39) '섬진강대교' 밑을 지난다.
(11:42) '하동포구공원' 끝 지점의 이정판 앞 갈림길에서,
직진방향 데크산책로를 따라 데크산책로 끝에서 계단길을 올라서고~
(11:47) 데크계단길 위로 올라,
'남파랑길 이정표(하동송림공원 4.3km→)'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진행이다.
(11:48) '현대오일뱅크주유소'를 지나고~
(11:51) 남파랑길 이정표(하동송림공원 3.9km→)를 지나고~
'섬진강대로' 좌측 '부두길' 도로를 따라,
(11:52) 우측 위의 '목도교' 밑으로 진행이다.
(12:00) '목도리 하저구마을'로 들어서서
대형 '선양기' 옆을 지나고~
(12:03) '목도리 하저구마을'의 '재첩마을' 음식점 앞을 지나면,
마을입구에 '국내 최대 재첩산지/ 하저구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렇게 '하저구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신기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하동읍 신기리(新基里)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리(里)이다.
섬진강 주변의 평지에 자리하였다.
하동의 특산물인 재첩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기, 당산골, 중골마을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신기리가 시작된 마을로서, 새로운 곳에 터를 잡고
형성된 마을이란 의미에서 지어진 지명인데, 지금은 100년 전부터
이어 온 짚신을 만드는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당산골마을은 당산나무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중골마을은 옛날에 중이 살았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12:10) '상저구마을' 해변 광장으로 들어서니,
새끼를 등에 업고있는 황금 두꺼비 조형물이 반기고~
김남호 시인의 시 '섬진강' 읽어보고~
'상저구마을 포구' 바라보고~
(12:16) 우측의 '상저구마을' 표지석을 바라보며,
부두길' 도로를 따라 '강변타운' 아파트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12:18) 좌측의 '상저구 간이펌프장'과 우측 '신기교' 사이
아치형 데크 다리를 건너는데, '하동송림공원'까지 2.3km 남았다.
이후 '섬진강 수변공원'으로 들어서서 좌회전하여,
'보행로와 자전거 길'로 나누어진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12:30) 아치형 데크 다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섬진강 수변공원 운동장' 체육시설이 시작되고~
행정구역이 '하동읍 광평리'로 바뀐다.
하동읍 광평리(廣坪里)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리(里)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역이 되며, 섬진강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다.
자연마을로는 광평, 원동, 서당골마을 등이 있다.
광평마을은 광평리가 시작된 마을로서, 넓고 평평한 들에 자리한 마을이기에
광평이란 지명이 붙었다.
원동마을은 천마동 또는 진부촌이라고도 불리우며, 원집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전에 서당이 있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광평리의 하동송림(河東松林)은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방으로 '경전선' 철교가 두 개가 보이는데~
앞에 있는 것이 새로운 '경전선' 철로가 지나는 '섬진철교'이고,
뒤에 있는 것은 지금은 기차가 지나지 않고 사람들만 건너고 있는 일명 '하모니 철교'다.
(12:36) '경전선' 철로가 지나는 '섬진철교' 밑을 지나고~
'구 경전선 철로'인 일명 '하모니 철교' 바라보고~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철도라 하여 경전선이라 이름 붙여졌다.
1968년 첫 개통 이래 약 50년간 이어져오다 2016년 7월 14일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그 역할을 섬진철교에 넘겨 주었다.
그리고 폐 철교로 남아있던 이곳을 2017년부터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개발,
복합레저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름도 '하모니 철교'로 바뀌게 되었는데,
야간 조명이 환상적이라 한다.
(12:41) '하동송림공원'으로 들어서고,
주위에 피어있는 '꽃무릇'이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12:42) '하동송림의 유래' 비석 바라보고~
이후 송림 사이를 지나고~
(13:00) '하동송림 주차장' 앞으로 나가서 뒤돌아보고~
하동 송림 (河東 松林)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소나무숲으로 2005년 2월 18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해를 막기 위해서
심었던 소나무숲으로 소나무 약 900여 그루가 서있다.
심은 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나무의 수령은 50~300년 된 노송들인데 나무의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이 솔숲을 찾는 사람들은 옛날 장군들이 입은 철갑옷을 연상하게 된다.
소나무와 모래는 흔히 백사청송(白砂靑松)이라 불리며 평화스럽고 고결한 풍광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은빛 모래벌판과 검푸른 솔숲의 모습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에 투영될 때 이곳을 지나는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숲속에는 궁도장이 있어 하동지방 궁사들의 단련장이 되고 있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모여 맑은 공기를 만끽하면서 쌓였던 생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린다.
주차장 입구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동 도호부사 전천상 기적비' 옆에 살짝 기울어져 지주목에 기대고 있는
관리번호 1번이자 송림공원에서 가장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적송은,
수령 약 130년, 수고 13m에 달한다.
'섬진강변' 바라보고~
이번 코스의 종점인 '섬진교' 바라보고~
이후 '송림공원' 물놀이장을 지나고,
섬진교로 올라가는 원형 철제 계단길을 올라간다.
(13:07) '섬진교' 회전교차로 앞에 오르니,
'섬진강'의 상징인 '두꺼비' 조형물이 반기고~
(13:08)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종점인 '섬진교' 남단에 도착이다.
남파랑길 하동 47코스 안내판 바라보고~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목표했던 남파랑길 47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남파랑길 하동 47코스를 종료한다.
이곳 좌측 '섬진교'를 건너가면 남파랑길 광양 48코스가 시작되며,
'경상남도'에서 '전라남도'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제는 정말 남파랑길 90코스중 반타작은 한 것 같다. ㅎ~
이후 섬진교.동단에서 도보로 구.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하동사우나 목욕탕으로 가서 칼끗게 땀냄새 제거하고~
하동시외버스터미널로 도보이동,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15:00)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버스정류장에서 16번 버스 환승하여 양산.내송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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