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5.10.7
코스: 대전해수욕장.버스정류장(시점)-송정마을.뒷동산-예회마을.버스정류장
-두원운석길-용산천방조제-와룡교-용산제.저수지-두원.금성리사무소-동촌마을.입구
-노일방조제-노일방조제.배수갑문-내로마을회관/노일.보건진료소(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7.48km (두루누비기준 16.7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5시간26분
▶ 갈때 : 경남 양산.사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후,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05) '순천行' 시외버스를 타고
(09:42)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 하차,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09:50) '녹동行' 시외버스를 타고
(10:48) '고흥.버스터미널'에 하차,
터미널근처 CU24시편의점에서 간식 구입하고...
'고흥.버스터미널'에서 (11:02) '대전行' 고흥군내버스타고,
(11:26) '대전해수욕장 버스정류장'에 하차,
답사준비를 마치고 (11:52) 트레킹 시작
▶ 올때 : '내로마을'에서 (18:35) '과역行'(과역-도야) 고흥군내버스를 타고,
(18:48) '과역버스터미널'에 하차하고...
과역터미널 인근에 있는 '진영각모텔'에서 현지 숙박
남파랑길 고흥 73코스 궤적
'대전해수욕장입구.버스정류장'

남파랑길 고흥73코스 안내판 살펴보고...

'대전해수욕장' 바라보고...

'양갱'과 '단백질바' 1개로 원기회복하며 답사준비를 마치고,
(11:52) 두루누비 앱을 작동한 뒤 출발이다.

이후 약 500여 그루의 소나무 방풍림이 줄지어 서 있는
'대전해수욕장' 해변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진행하고...

등로 우측에 세워져있는 '대전해수욕장 종합 안내도' 바라보고...

(11:56) '대전해수욕장' 중간즈음 포토존을 지나는데,
이곳은 '숲속의 전남 만들기' 조성 사업에 선정되어 관리되고 있는가 보다.

(11:59) 해수욕장 화장실을 지난 취사장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대전해수욕장'을 빠져 나가고...


이후 좌측 정면의 '용등산(40.7m)'을 바라보며,
빨간화살표 남파랑길 방향표시를 따라 해변으로 진행이다.


(12:08) 해변 방조제로 올라서서 우회전하여,
방조제길을 따라 진행하고...


좌측 멀리에 있는 '서도/서목섬' 바라보고...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서도/서목섬'

(12:20) 방조제 끝 갈림길에서 남파랑길 이정표는 우측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만,
직진하여 언덕 위로 오르는 길이 정상적인 방향이다.


지나온 '대전해수욕장' 방향 바라보고...

이후 '진주정씨' 묘지와 감나무 과수원 사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서고...


(12:25)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송정마을'

대전리 송정((松亭)마을
옛날 마을 아래쪽 산기슭에 소나무가 정자와 같이 우거져 있어
마을 이름을 '송정(松亭)'이라 하였다.
이후 '송정마을' 입구로 내려서고...

(12:28) 입구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완만하게 오르고...
(남파랑길은 송정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12:33) 은근한 오르막길을 올라 고갯마루를 지난다.

그렇게 고갯마루를 지나면 지금까지 이어지던 '대전리'에서
'두원면 예회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두원면 예회리(禮會里)
고흥군 두원면의 리(里)로 언안들, 영수들 등이 넓게 펼쳐져 있고,
자연마을로는 예회와 상예가 있다.
고려 말엽 축문방(丑問方)에 배씨와 이씨가 살았다 하여 '배이동(裵李洞)'이란
소지명이 있었으며, 지형이 싯돌과 같으므로 '여호'라 칭하였다.
이후 조선 1880년(고종 17)에 예조판서(禮曹判書)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이곳에서 쉬어 가는 중에 마을 사람들의 예의범절에 감탄하여 마을 이름을
'예회'라 고쳐 불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예(上禮)마을은 옛 지명이 '웃여우'로 '윗예회'를 부르는 이름이며,
훈차하여 '상예'로 명명하였다.
이후 '예회리' 해변으로 내려서고...


(12:38) '예회리' 방파제 길에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예회리' 앞바다와 '서도/서목섬' 바라보고...


그렇게 좌측으로 '예회리' 앞바다를 바라보며,
방파제 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고...



(12:49) 잠시 해변을 벗어나 우측 밭지대로 등로가 바꿔지더니,
또 다시 좌측 해변 방향으로 진행이다.




이후 '예회리' 앞바다 갯벌을 지나는데, 웬일인지 흔하게 보이던
'칠게'나 '짱뚱어' 등 갯벌 생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의아스럽다.

(12:54) 그렇게 진행하면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이 나면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시작되고...

(12:56) 잠시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예회마을'이 보이는 입구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멀리에 있는 독립가옥 방향으로 진행하고...


(12:59)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 'ㅏ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예회마을'로 내려간다.


그렇게 '예회2길' 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여...



(13:05) '830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연강예회길'을 만나고...


우측으로는 '예회 버스정류장'이 있고,
좌측에는 정면 세 칸의 전통 한옥 형태의 마을 정자 쉼터인
'東樂亭(동락정)'이 자리한다.
이후 좌측으로 마을 공동 주차장을 지나고...
(13:06) 우측 정면위에 있는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와
아래로 '효열부 성산이씨 실적비'와 '열부 신씨 기적비'가 위치한다.

(13:08) 우측으로 '예회다목적회관'을 지나고...



(13:09) 좌측으로 '효자 김해김공 기적비'를 지난다.


(13:10) 그렇게 마을 어귀로 나가다 'Y자' 갈림길에서
'830번 지방도로/연강예회길' 도로를 버리고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13:12) 해안 길과 우측 임도가 갈리는 삼거리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진행이다.


'예회마을'앞 바다인 '득량만'을 뒤돌아보고...

그렇게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선 삼거리갈림길에서
직진 방향 임도를 따라 진행이다.


(13:19) 농로 'T자' 갈림길을 만나고,
좌회전하여 방조제 방향으로 진행하고...


(13:22) 방조제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방조제 아래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허기를 느끼고, 농로 적당한 곳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햄버거'와 '테라 캔맥주' 큰거 1캔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며
10분 쉬었다가 간다.
가을의 전설...

(13:44) 방파제 우측 농로 끝에서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그렇게 해변 길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정면 좌측 바다 건너편으로 '팔영산' 봉우리들이 가늠된다.

(13:52) '배수 갑문'이 있는 또 다른 방조제 길을 만나고...

갯골 바라보고...

(13:54) 방조제와 농로가 갈리는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긴 제방길을 따라간다.


(14:00) 긴 제방 길 끝 지점에서 뻘밭 안으로 들어가는
경운기 길을 바라보고...


이후 비포장 임도길에 간간히 이어지는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시 시그널을 따라 진행이다.




(14:06) 또 다른 '배수 갑문'을 지나고...

그렇게 진행하면 지금까지 이어지던 '예회리'에서
'두원면 성두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두원면 성두리(城頭里)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리(里)로, 대동들 등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농촌 지역이다.
마을 우측에 금성산의 산세가 마치 백호형국(白虎形局)으로 호랑이 머리 지점에
마을이 생겼다 하여 한때 마을 이름을 '호두(虎頭)'라 부르다가,
옛날 두원현의 현치소에 속한 마을로서 당시의 성의 흔적이 마을 주위에 남아 있어
마을명을 ‘성머리’라 하였다가, 한자로 음차하여 성두(城頭)라 칭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진목, 차수, 성리가 있다.
이후 간간히 나타나는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시
시그널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14:16) '830번 지방도로'인 '두원운석길' 포장도로와 만나고...


이곳에서 우측 도로 따라 약 600m 정도 진행하면
'두원 운석' 낙하지점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패스하고 후일을 기약한다.
두원 운석(豆原 隕石)
국내 최초로 낙하 위치가 확인된 운석으로, 1943년 11월23일 이곳 두원면 성두리 야산
(성두리 186-5번지)에 떨어졌다.
운석 최초 발견자는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송규현 외 2명이며 송규현씨 집에 보관하던 중
해방이 되어 두원공립보통학교장(일본인 아타찌 쓰가네)이 일본으로 반출하여,
일본국립과학박물관에 판매되었다.
이후 두원 운석은 56년간 일본에 보관되어 오다가 1990년대 말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관의
이민성 교수에 의해 한국 반환이 추진되어 오다가 1999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 시
영구임대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반환되어, 현재 대전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 보관하고 있고,
낙석 위치에는 모조 운석이 전시되고 있다.
이 운석의 크기는 가로13cm, 세로 9.5cm, 높이 6.5cm, 무게 2.117kg이며,
모양은 동그랗고 길쭉한 형태이다.
표면에는 운석이 낙하하면서 녹았던 부분이 굳으며 생가는 막인 용융각이 많이 남아 있다.

운석 낙하지점에 전시되어 있는 '두원 운석' 모조품
[고흥 관광 공식 블로그인 '고흥관광' 블로그에서 퍼 온 사진임]
이후 좌회전하여 '830번 지방도로/두원운석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신설 교량을 건너고...


이후 남파랑길은 '830번 지방도로/두원운석길'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길게 진행된다.

(14:25) 직진방향 '고흥.두원,
우회전방향 '오수' 도로표지판을 지나고...

(14:28) 우측으로 갈라지는 '오수' 갈림길을 지나고...

그렇게 '오수' 갈림길을 지나면 지금까지 이어지던 '성두리'에서
'두원면 영오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두원면 영오리(永梧里)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리(里)로, 삼면이 야산에 둘러싸여 있어
산수가 수려하고 동쪽은 바다에 접하는 고장이다.
자연마을인 영동과 오수에서 첫머리 글자를 따 온 지명이다.
오수마을은 원래 지형이 까마귀 집 모양이라 하여 '오소(烏巢)'라고 부르다가,
마을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나무골'이라고 고쳐 불렀고,
이를 한자화하여 '오수(梧樹)'라 하여 현재에 이른다.
(14:32) 남파랑길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갈림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830번 지방도로/두원운석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진행이다.


이곳 이정표에는 73구간 시점 10.1km, 종점 7.8km로 표시하고 있는데,
실제 진행해 온 거리가 7.92km이므로, 시·종점 거리 표시가 서로 뒤바뀐 듯하다.
(14:33) 그렇게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라서는데,
입에서는 곡소리가 나고... 이놈의 저질체력이 한스럽다. ㅎㅎㅎ

(14:38) 이후 오르막길이 끝이나는 임도 갈림길 정점에서 한숨돌리고
우회전하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그렇게 내려서면 우측은 대규모 '태양열 발전 단지'다.

(14:44) 'T자' 포장 농로를 만나 좌회전하여 진행하는데,
이곳의 태양열 발전 단지는 '메인에너지 선진 3호'라 적혀있다.

이후 간간히 나타나는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시
시그널을 따라 진행하고...


그렇게 바닷가로 나서면 정면은 넓은 '용산천' 기수역이다.

(14:49) 이후 넓은 '용산천' 기수역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이어지는 제방 길을 따라 진행하고...


그렇게 진행하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영오리'에서
'두원면 용산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두원면 용산리(龍山里)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리(里)로, 마을 앞으로 용산천이 흐르고,
자연마을로는 와룡, 대산, 신월, 금계가 있다.
와룡마을은 원래 마을 앞까지 바다여서 배가 드나드는 선창이 있어
‘선창개’라 칭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당시 주산(主山)이
용(龍)의 형국이라 하여 와룡(臥龍)이라 고쳐 불렀다.
어느순간 갈대가 '용산천'을 장악해 버렸다. ㅎ

(15:04) '830번 지방도로/두원운석길'을 다시 만나고,
도로 건너편은 '와룡마을' 표지석과 '와룡마을 버스정류장'이 위치한다.


(15:05) 이후 좌회전하여 '와룡교'를 건너다가,
좌측으로 '용산천'을 내려다보고...


용산천(龍山川)
전라남도 고흥군의 두원면에 있는 하천인데, 두원면 풍류리 일대 산지에서 시작한다.
이후 남쪽으로 흘러 두원면 면 소재지에 이르고, 이후는 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삼태봉에서 내려오는 학곡천이 중간에 유입된다.
여러 옛 지도에는 용산천이 생략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흥양)에 두원면 외신리(外新里, 현 신송리 외신 마을)에 있는 하천 이름,
'우천(牛川)'과 그 한글식 명칭, '쇠냇'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에 용산천을 부르던 명칭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명칭 용산천은 행정리 명칭, 용산리(龍山里)에서 유래하였다.
용산리는 1914년 새로 만들어진 행정리 명칭이다.
따라서 용산천이란 명칭도 이 무렵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5:06) 그렇게 '와룡교'를 건너 좌회전하고,
이후 남파랑길은 반대편 '용산천' 둑길을 따라 기수역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배롱나무' 맞제???

이후 좌측으로 '용산천'을 뒤덮고 있는 갈대밭을 바라보면서 진행하는데,
우측으로 습지가 나타나고... 바로 '용산제 저수지'다.


'용산제 저수지' 건너편 산 아래에는 '신월마을'이 위치하고...
용산리 신월(新月)마을
원래 대산(垈山)마을 아래쪽에 있다 하여 '아랫대산'이라 불러왔으나,
1992년 대산에서 분리될 때 마을 이름을 '새롭게 뜨는 달'이라는 뜻의
한자 말인 '신월(新月)'로 바꾸어 정하였다.
(15:16) '용산제'저수지를 우측에 두고,
농로를 따라 남파랑길은 이어지고...


(15:21)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잠시 진행이다.

(15:22) 농로 'T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이후 포장 농로길에 간간히 이어지는,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시 시그널을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면 지금까지 이어지던 '용산리'에서
'두원면 용반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두원면 용반리(龍盤里)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리(里)로, 1914년 부군폐합 시
용두리, 금성리, 반산리, 지등리를 합쳐 용반리로 하였다.
용두마을의 옛 지명은 "용머리"로 마을 지형이 용머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졌고 훈차하여 용두로 쓰였다.
반산마을은 약400년 전 조선조 명종 때 밀양박씨시조 혁거세55대손 응진(應愼)이
이곳에 터를 마련하고 약30년 후 여양송씨 시조14대손 운림(雲霖)이
동강면 마륜에서 이곳에 정착하여 박, 송 양성(兩性)이 거주 마을 이름을
망동(望洞)이라 하였다가 후기 김영김씨, 안동김씨, 고령신씨, 창녕조씨 등
6개 성씨가 살아오다가 조선말에 마을 이름을 “반산(盤山)”이라 고쳐 불러 오던 중
1965년 작은 마을 지등(池登)이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성마을은 1717년에는 취용동(聚龍洞)리로 표기되었고
1789년에는 금성(金城)리로 기록되었다.
금성마을의 옛 지명은 “쇠재”, “안쇠재”로 마을 뒷산 구절산이 소형국으로
구절산 재를 소재라 하고 마을이름을 쇠재로 발음하였다.
지등(池登)마을은 용반리에 편입되었으나 정부수립 후 1956년 리동행정구성 개편에 따라
예부터 마을 등너머로 옥녀봉(玉女峰) 못(현 안양제)에 비추므로 못 지(池)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지등(池登)”이라 하였다.
(15:38) 우측으로 '화신축산'을 바라보면서,
직진하여 진행하는데 이곳은 악취때문에 정신이 몽롱하다.

이후 간간히 나타나는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시 시그널을 바라보며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좌측 아래 왕새우 양식장인 '금성수산'과
간간히 나타나는 '득량만' 절경을 바라보면서 진행이다.



(15:51) '금성수산' 입구 옆을 지나고...

이후 '금성마을' 뒷산인 '구사산(九寺山, 133.5m)'
우측 산허리 방향을 향해 계속 진행이다.


(16:01) 언덕 위 고목 옆을 지나 내려서면,
앞쪽에 재실이 보이는데 어느 가문의 재실인지 확인치 못했다.


(16:03) '용반리 금성마을'로 내려서고...


(16:05) '느티나무' 고목 보호수와 또 다른 고목 한그루 옆을 지나
'두원 금성리사무소' 앞을 지난다.

금성(金城)마을
마을 서북쪽에 있는 두리봉 지맥으로 이루어진 마을 뒷산 구절산이
마을을 옹호하고 있는데,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므로
이 '구절산재'를 '쇠재'라 하였고, 마을명도 '쇠재', '안쇠재'라 불러오다가,
쇠재를 훈차하여 '쇠 금(金)'과 '재 성(城)'으로 바꾸어
금성(金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금성리사무소' 앞 '느티나무' 고목은
수령 340년 이상의 보호수로, 수고 19m, 수폭 4.7m이다.


(16:07) '금성마을 공동 주차장' 앞 갈림길에서
좌측 마을 안길로 진행하고...

마을 안길인 '금성 1길'을 따라 마을 뒤 고갯길로 올라간다.



(16:11) '여산 송씨 납골당'이 있는 고갯마루에 오르고,
물 한잔하며 잠시 전열을 가다듬은 뒤 내려서서 진행하고...





(16:18) 농로 사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은근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16:19) '동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갈림길에서,
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좌회전하고...


용반리 동촌마을
옛 지명은 마을 지형이 용머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머리'라 불렀고,
이를 한자말로 훈차하여 '용두(龍頭)'라 불렀다.
이 용두란 마을 이름이 1920년경 용반리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촌'으로 개칭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구사산' 방향으로 오르고, 대나무 사잇길을 지나,
(16:24) 'Y자'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진행이다.



(16:25)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고...

이후 '동촌마을' 앞바다로 내려서는데,
'득량만' 맞은편에 오늘 코스 종점인 '노일리 내로마을'이 바라보인다.

(16:28) '두원천'이 바다와 만나는 다리 앞에 도착하고,
근처 적당한 공터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간식털이하며 15분 휴식이다.

좌측 기수역으로 흐르는 '두원천' 물길을 바라보고...


(16:43) 다시 출발하고...
'두원천' 다리를 건너 '노일방조제' 초입에서 직진 '노일방조제' 길 대신
우측아래 방조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이후 농로 우측으로 수차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왕새우 양식장'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6:52) '노일방조제 배수갑문'으로 올라서고,
배수갑문 우측 아래로 '사정천(沙亭川)'이 길게 펼쳐져 흐르고 있다.

그렇게 '사정천'을 건너는 '배수갑문'을 올라서면 지금까지 이어지던
'두원면 용반리'에서 '과역면 노일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흥군 과역면(過驛面)
전라남도 고흥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의 대부분이 300m 미만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여자만(汝自灣), 서쪽으로 득량만(得粮灣), 남쪽으로 점암면(占岩面)에 접한다.
1441년(세종 23) 행정구역 개편 때 남면(南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호구총수』,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14년 점암면 백일리를 편입하였다.
1931년 남양면 도천리를 편입하고, 과역면(過驛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과역리(過驛里) 지명에서 빌어다가 사용하였다.
과역리는 조선 시대에 현 북쪽 15리의 금모연원(今毛淵院) 도로변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현재 면 소재지인 과역리를 비롯 8법정리 32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역리의 원등(院燈) 마을은 흥양원의 5개 역원 중 하나인
복제원(卜梯院)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 역은 남양면의 양강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과역(過驛)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면의 동·서 해안에 간석지가 발달되어 굴·꼬막·조개 양식이 활발하다.
면의 특산물로 조개가 유명하여 면 소재지에 참살이조가비촌, 조가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간척 사업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벼농사를 주로 하고,
비닐하우스 재배에 의한 원예농업도 이루어진다.
고흥군의 특산물인 유자 재배가 이루어지며 그 밖에 특용작물인 잎담배를 재배한다.
여자만에 면한 동쪽에는 섬이 많은데 크고 작은 섬 약 30개가 있다.
백일도가 가장 크고 원주도, 진지도, 해하도, 미덕도, 좌도 등이 있는데, 진지도(陳地島)는
수심이 깊어 연안수역의 어류가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관광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15번 국도가 면내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벌교를 경유하여 광주광역시와
순천시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고흥읍과 도양읍으로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고흥도천리 지석묘군(支石墓群:전남문화재자료 197),
고흥과역리 민등지석묘군(전남기념물 161), 선사유적(先史遺蹟),
이백남의사(李伯南義士) 기념비 등이 있다.
학교는 고흥영주고등학교, 고흥과역중학교, 과역초등학교가 있다.
과역면 노일리(老日里)
고흥군 과역면에 있는 리(里)다.
내로(內老)마을은 당초 남양면과 합병시 마을 명을 흥양군 남면 '노나리'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 한일합방 당시 과역면 2代면장 조방호(趙芳浩)가 마을 명을 노일리(老日里)의
중심 마을이라 하여 '안 내(內)' 자를 써서 내로(內老)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집단 주택지가 4군데로 분리되어 지금도 골몰, 양짝, 세돔, 음짝 등으로 부른다.
외로(外老)마을은 당초 마을명 “흥양군 남면 노나리”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 한일강제병합과
동시 분리하면서 안쪽마을을 내로(內老)라고 하였고 본 마을은 노나리 북쪽편 밖에 있다하여
외로(外老)라고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호곡(虎谷)마을은 마을 뒷산 복호산이 호랑이의 발(足) 형국이며 호랑이 발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명을 “족소리(足所里)”로 불리어오다가
설촌(設村)당시 류영택(柳榮澤)이 호랑이가 살았던 복호산 밑 골짜기의 마을이므로
마을 명을 호곡(虎谷)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수역으로 흐르는 '사정천' 물길을 바라보고...


(16:54) 그렇게 '배수갑문' 끝에서 우회전하고...

이후 남파랑길은 앞쪽 산허리를 역 C자 형태로 진행하게 된다.
좌측 정면으로 '늬늠산'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16:59) 남파랑길 73코스 위치 표지판 옆을 지난다.



(17:03) '왕새우 양식장'을 좌측으로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7:07) 농로 'Y자' 갈림길에서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길 안내가 되고 있다.
멀리 '노일리 내로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17:09) 농기계 창고 건물 앞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과역로' 도로에 올라서서...


(17:11) 남파랑길 이정표 방향 따라 좌회전하여,
'과역로' 도로 벚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내로마을'로 향한다.

(17:14) '노일리 여성복지회관'이 바라보이고...
남파랑길 73코스도 끝이난다는 말이다. ㅎ

(17:16) '노일리 내로마을회관' 앞 넓은 광장으로 들어서고...

노일리 내로(內老)마을
당초 남양면과 합병 당시 마을 명을 흥양군 남면 '노나리'라고 불러오다가,
1910년 한일합방 당시 과역면 2代면장 조방호(趙芳浩)가 마을 명을 노일리(老日里)의
중심 마을이라 하여 '안 내(內)' 자를 써서 내로(內老)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집단 주택지가 4군데로 분리되어 지금도 골몰, 양짝, 세돔, 음짝 등으로 부른다.
'내로.남자경로당' 앞에는
'福景壽連'(복경수연: 복이 넘쳐나고 수명이 길게 이어지는 곳)
글귀가 새겨진 대리석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7:18) '여성복지회관'의 건강관리실 앞에 세워져 있는
'남파랑길 고흥 74코스' 안내판 앞이 남파랑길 73코스 종점이자 74코스 시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두루누비 앱 꺼고 '남파랑길 고흥 73코스'를 종료한다.
이후 '노일 보건진료소' 쉼터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부근에 있는 주민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과역'으로 가는 버스는 막차인 18시 30분경에 있다고 한다.

'노일 보건진료소' 맞은편 마을가게에 들려
션한 막걸리 1병으로 갈증 해소하고...
그렇게 거의 1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18:35) 도착한 '과역行'(과역-도야) 고흥군내버스를 타고,
(18:48) '과역버스터미널'에 하차하고...
과역터미널 인근에 있는 '진영각모텔'에서 하룻밤 묵어간다.
(1박:3만5천원/ 현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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