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13.8.3
답사코스: 영도대교~남항대교~절영해안산책길~하늘전망대~75광장~중리해변~중리산삼거리~감지해변~태종대
gps거리: 15.4km 널~널 5시간40분
부산지하철2호선을 타고 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바꾸고, 남포동지하철역에서 6번출구로 빠져나와 영도대교에 도착,
부산의 해안을 잇는 “갈맷길(263.8km)”의 제3코스 제3구간을 걸어본다.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
중구와 영도구 사이에 위치하며 1934년 11월에 길이 약 214.63m, 너비 약 18m로 준공되었다.
부산광역시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며, 일제시대와 전쟁의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리이다.
개통 당시는 다리 이름이 부산대교였으나, 1980년 2월 부산대교가 개통되어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로 건설된 연륙교이며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 형식의 다리인데,
개통 당시에는 다리가 하늘로 치솟는 신기한 모습을 보기 위하여 부산을 비록 인근 김해· 밀양 등지에서
6만 인파가 운집했다고 한다.
1935년2월부터 영도에 전차가 개통되면서 교량위로 전차가 다니기도 했으나,
교량이 고정된 이듬해 1967년5월 2일 폐쇄되었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당시 부산제일의 명물이었던 도개식 영도대교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와
6.25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대중가요”‘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 “현인노래비” 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예전 모습이 이렇답니다.
지난 구간 지나온 길을 가늠해 보고~
뒤돌아본 영도대교는 지금 한창 공사중 입니다.
남항의 전경
부산항 국제 선용품 유통센터를 지나고~
이제 남항대교도 지척이다.
남항 앞바다/ 뒤로 낙동정맥 마루금이 조망된다.
잘 말려가 쪄 무면 그맛이 지기삐는데~
남항대교 (南港大橋, Namhang Bridge)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연결하는 해상다리.
강상형교 1,015m, 강합성교 832m, 램프 94m 등 총연장 1,941m의 교량으로 1997년 10월 착공하여 2008년 7월 개통되었다.
폭 25.6m이며 왕복 6차로이다.
부산 신항과 북항 간의 물동량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명지대교-남항대교-북항대교-광안대교-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부산 해안순환도로의 한 축을 이룬다.
추후 천마터널, 구평터널을 통하여 명지대교와 연결되는 고가도로가 이어서 건설될 전망이다.
이 다리로 인해 부산 서부지역에서 영도구를 오가는 거리가 종전보다 8㎞ 단축되고 운행시간도 30분 정도 줄었다.
다리에 너비 3m의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고, 진출입 구간에는 3~5m, 교각에는 1m 간격으로 1,628개의 조명이
‘신세기를 열어가는 관문’을 주제로 설치되어 있다.
강태공의 후예들(1)
이곳 남항대교 밑에서 또 다른 갈맷길이 시작된다.
든든한 길잡이/ 갈맷길 표시
절영 해안산책로 입구
진입로에 들어서면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꽤 넓은 해안 길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책로 좌측으로는 벽화가, 우측으로는 바다가 있어 걷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영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40여 편의 테마로 꾸민 모자이크 벽화가 길게 이어지며,
영도 문인회 소속 향토시인들이 만든 시비동산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과거 군사지역이라 접근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153개의 피아노계단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색깔을 달리해 계단 오르는 지루함을 달래준다.
피아노 계단에 올라서면 수평선 위에 아스라한 그림처럼 선박들이 정박해있는 모습이 보인다.
보기좋다.
해안 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드넓은 바다와 자갈길이 나온다.
인공적으로 만든 우레탄 길을 걷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자갈길을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다.
대마도와 송도 쪽 바다풍경을 배경 삼아 해안 산책로를 굽이 굽이 거닐 때마다 경치가 달라지고 파도와 자갈소리가 합창을 한다.
석성(石成)
무지개다리
하늘전망대 갈림길에서 갈맷길을 잠시 멈추고, 하늘전망대로 오른다.
하늘전망대
함지골 공원에 위치한 하늘전망대는 전체적으로 철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으나 전망대 끝 부분으로
나아가는 길은 투명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걷으면 오금이 저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늘전망대의 사랑의 자물쇠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몰운대 방향의 전경
다시 갈맷길로 복귀후, 해안길로 내려서면 대마도전망대가 나타난다.
대마도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잠시후 만나는 출렁다리는 걷는 사람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꿈과 낭만이 가득한 해안 산책로, 절영 해안산책로의 우측은 바다요,
좌측은 봉래산 자락이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절영도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 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붙여
절영도라 불려졌다.
영도의 육지와 인접한 섬으로써 말을 방목하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열전」김유신의 조항을 보면 신라 33대 선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되새겨
김유신의 적손(嫡孫) 김윤중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서도 후백제의 왕인 견훤이 절영도 명마 한 필을 고려 태조인 왕견에게 선물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영도를 「마키노시마(牧島)」라고
했는데 일본말로 말 먹이는 목장의 섬이란 뜻이다.
영도는 신석기시대의 동삼동패총, 영선동패총 등으로 보아 부산지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라 추정된다.
패총이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 껍질이 쌓여 생긴 것인데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 쓰던 유물이 썩지 않고
잘 남아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노래미낚시터
강태공의 후예들(2)
절영전망대
절영로를 따라가다 보면 목장원 앞의 해안 쪽으로 돌출된 작은 광장이 나온다.
75년도에 조성되었다 하여 75 광장으로 불리며, 정자 놀이공원 등이 있어 절영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인데,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맑고 푸른 남해의 아름다운 만끽 할 수 있다.
75광장에서 바라본 봉래산 손봉의 전경
75 광장에서 85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숲속 오솔길이다.
산책로 중간마다 샛길이 있어 걷다가 힘들면 언제라도 빠져 나갈 수 있다.
장미터널을 지나고~
중리해변의 전경
걷다보니 산책로 바닥과 계단에 물고기, 꽃 해, 달, 등 수많은 몽돌로 분양을 넣은 바닥이 인상적이다.
절영도진
중리 선착장에는 제주도 해녀들이 육지에 와서 섬의 근성을 잊지 못해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해녀들이 직접 물질하여 직접 잡은 싱싱한 참소라, 멍게, 개불, 해삼, 등 해산물을 팔고 있다.
멍게.소라 해삼 한접시를 시켜 시원한 맥주와 함께 휴식하고~
중리마을 해녀촌 끝 지점에서 산으로 갈맷길이 이어진다.
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니 중리산 삼거리를 만나고~
이곳에서 승마장과 감지해변길로 나누어진다.
보기좋은 넘들
이후 산책로 곳곳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생도(生島, 주전자섬)
영도의 절경인 태종대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바위섬들이 솟아있다.
그중 유독 섬하나가 주전자처럼 생겼다고하여 사람들은 주전자섬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이 섬에서는 용변을 보거니, 불을 피워서도 안되고, 남녀가 정을 나누어도 안 된다는
세 가지 금기사항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 어부가 주전자섬에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용변이 마려워 어구를 설치해 놓은 채 용변을 보았더니
그 날 이후부터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어구만 계속 잃자 화병으로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또 같은 마을에 사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매서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주전자섬에서 불을 피웠는데,
이 때 근처에 있던 늙은 어부가 이 섬은 옛날부터 불을 놓으면 큰 재난을 당한다는 말이 있어 당장 불을 끄도록했으나
어부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상하게도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으며, 그 날 밤 꿈속에서 어부들은
주전자섬이 불덩어리로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후부터 이들이 하는 일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끝내는 원인 모를 병으로 앓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한다.
또 하나는 남녀가 정을 일으키면 벼락을 맞거나 큰 봉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로서 이 곳 주전자섬에 낚시꾼이 많이 오가지만 이 세 가지 금기사항으로 섬이 깨끗하게 보호되고 있다.
감지해변 전망대에서 감지해변으로 내려서는 길은 야생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범부채
감지해안 자갈마당
감지해변 자갈마당은 영화 친구의 촬영지였고, 1박2일 이승기 가 찾았던 곳이다.
감지해안에서 뒤돌아본 중리산의 전경
감지해변을 돌아나온후 갈맷길은 태종대유원지 입구로 연결된다.
태종대(太宗臺, 국가지정 명승 제17호)
부산광역시 영도구(影島區) 동삼동(東三洞)에 있는 명승지.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애와 해식동, 울창한 난대림과 굽이치는 창파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54만 2천평의 면적에 해발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송을 비롯한 120여종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지금의 등대에서 남쪽으로 돌아 절벽 비탈로로 10m쯤 가면 해안가 쪽에 암석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낮아진 반반한 넓은 자리를 태종대라고 한다.
특히 영도등대 아래에 발달한 융기파식대인 바위의 괴석들은 태종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그 형성 시기는 약 12만 년전 신생대 제4기 최종 간빙기에 해당된다.
옛 문헌인『동래부지(東萊府誌, 1740)』산천조에 태종대는 “동래부 남쪽 30리 절영도 동쪽 바닷물이 돌아가는데
서쪽에 돌다리가 하나 있어 놀이 오는 사람들이 겨우 통할 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던 중 이곳에 들러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절경에 심취되어 잠시 머물며 활을 쏜 곳이라고 하여 태종대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가뭄이 있을 때에는 음력 5월 초열흘날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태종대의 전망대에서는 해안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았다.
1607년(선조 40)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통신부사(逋信副使) 경섬(慶暹)의『해사록(海槎錄)』과『동래부지(1740)』에는
태종대의 밤바다 풍경을 노래한 시(詩)들이 전해오고 있다.
한편, 이곳에는 난대계 상록활엽수인 후박나무, 참식나무, 해송 등 약 120여종이 자생하고,
숲 속에는 노루, 산토끼, 다람쥐 등 사람과 친숙한 동물들이 살고있다.
태종대는 전에 몇번 다녀온터라 태종대 순환열차인 다누비를 탈려고 했으나
워낙 많은 인파들로 붐비는 바람에 결국 도보로…
남항조망지
가덕도. 다대포. 송도. 남항대교까지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자살바위 있던곳에 세워진 전망대에는 모자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케하여 자살을 방지하려는 뜻에서 세워진것이라고…
자살바위
생도(주전자섬)을 바라보고~
전망대 2층에는 탈랜트 최지우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부산홍보대사라 하네요.
바다헌장 조각상
태종대의 상징이 된 금속조형물 빨간색은 태양을, 파란색은 바다를,
그리고 날카롭게 생긴 것은 빛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영도등대
1906년 대한제국 당시 만들어진 영도등대는 부산에 세워진 첫 유인등대다.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설치한 이 등대는 선박들의 안전항해를 위해 야간에는 약 18초 동안 3번 빛을 발하며
뱃길을 유도하고, 안개가 짙은 날에는 소리를 내어 뱃길을 지켜주고 있다.
당시 석유 백열등이었으나 지금은 120V-1000W 할로겐램프를 사용하고 있다.
등대 불빛은 18초마다 3회씩 깜박인다.
그 불빛이 가 닿는 거리는 24마일, 자그마치 44㎞에 이른다.
또한 등대는 소리를 통해서도 항해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전기신호에 의해 소리판을 진동시켜
나팔을 울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람이 종을 울려서 알리는 경우, 공기압축기로 사이렌을 통해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
영도 등대는 에어사이렌을 통해 안개나 눈비가 자욱한 날에 신호를 보내게 된다.
통상 안개가 많은 해역에 설치된 등대 옆에 바로 이런 사이렌이 설치돼 있다.
안개가 발생하면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 그 방향을 향해 소리를 울려서 선박의 눈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 신호음이 울리는 거리는 5해리. 1해리가 위도 1분, 즉 60분의 1도. 보통 일상의 거리로 계산해보면
1.852km. 9km를 조금 넘는 거리인데, 이 거리 안에 있는 모든 선박의 파수꾼이 되어주는 것이다.
또한 관광객들에게는 등대 건물의 안팎은 물론, 옥상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며 감상할 수 있는
바닷가 전망대로도 사랑 받고 있는데, 2004년 새롭게 단장해 바다와 등대에 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합해양문화공간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저 멀리 오륙도가 보이고~
등대 우측의 평평한 바위는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 하여 신선바위라 불리웁니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하였다는 망부석
망부석 뒷편에 우뚝 솟아 있는 태운암
태종대 순환열차인 다누비가 지나간다.
멀어지는 영도등대
태종사 대웅전
태종사의 수국
수국이란 중국에서 수구(繡球) 또는 수국(水菊)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보며, 옛날에는 자양화(紫陽花)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학명은 Hydrangea macrophylla for. otaksa (S. et Z.) WILS.
이 어렵고 긴 학명에 "물을 담는 그릇 - hydragea"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동, 서양의 차이를 막론하고 수국을 보는 관점이 비슷한데~ "수국(水菊) - 물의 국화", "물을 담는 그릇 - hydragea"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물보(物譜)』에 기록되어 있는 수구화가 바로 수국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중국에서 들어왔고, 사찰 등지에서 많이 길렀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약재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찬 성질이 있어 열을 식혀주는 효능으로 학질(瘧疾) 같은 병에 치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꽃 색깔이 무척 다양한데~
하얀 꽃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파란색, 또 정열적인 빨강색 꽃도 보이고, 연한 홍색, 짙은 홍색, 짙은 하늘색 등
화려하게 종을 개량시킨 것도 있고~
수국꽃 자체가 토양에 민감하게 반응해 그렇다고 하는데 처음엔 흰색으로 피어나다,
자라난 토양이 산성이면 산성 성분을 흡수, 안토시안과 결합하여 푸른색 계열의 꽃이 피고,
반대로 토양이 염기성이면 알루미늄 성분이 부족한 원인으로 붉은색 꽃이 핀다고 한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백반으로 푸른색 꽃을, 달걀 껍질과 석고로 붉은색 꽃을 인공적으로
피우기도 한다고~
수국의 꽃말은 "변덕과 진실"인데~
같은 꽃이 온갖 색깔로 피우는 터라 "변덕" 일 것이고, 온갖 색깔로 피어도 같은 수국이니 "진실"일 터이고~
그렇게 태종대 유원지를 한바퀴 돌고나서 갈맷길3코스3구간이 종료된다.
차로 다니는 여행이 머리와 눈만의 여행이라면,
갈맷길은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 맡고, 귀로 듣고, 발로 느끼는, 오감 만족의 여행이다.
시원한 냉커피 한잔으로 오늘구간 답사 마무리를 하고~
66번 시내버스타고 부산역으로 이동, 67번 버스를 타고 개금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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