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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맷길

갈맷길4코스-1구간 (남항대교-감천항)

일자: 2013.9.21

답사코스: 남항대교-송도해수욕장-암남공원-감천사거리~감천항

gps거리: 13.5km  ~널 4시간40

 

부산지하철2호선을 타고 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바꾸고, 남포동지하철역에서 6번출구로 빠져나와 택시타고 남항대교에 도착,

부산의 해안을 잇는 갈맷길(263.8km)”4코스 제1구간을 걸어본다.

 

 

남항대교 아래 방파제 지점은 갈맷길 제3코스3구간의 도착지점 이며,  

4코스 1구간의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남항대교 (南港大橋, Namhang Bridge)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연결하는 해상다리.

강상형교 1,015m, 강합성교 832m, 램프 94m 등 총연장 1,941m의 교량으로 1997 10월 착공하여 2008 7월 개통되었다.

25.6m이며 왕복 6차로이다.

 

부산 신항과 북항 간의 물동량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명지대교-남항대교-북항대교-광안대교-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부산 해안순환도로의 한 축을 이룬다.

이 다리로 인해 부산 서부지역에서 영도구를 오가는 거리가 종전보다 8㎞ 단축되고 운행시간도 30분 정도 줄었다.

다리에 너비 3m의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고, 진출입 구간에는 3~5m, 교각에는 1m 간격으로 1,628개의 조명이

신세기를 열어가는 관문을 주제로 설치되어 있다.

 

남항대교에서 바라본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건물이 갈매기가 바다에서 박차고 날아가는 형상이다.

 

하얀등대와 빨간등대를 땡겨보고~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하여 GO.GO.GO~

 

송도해수욕장의 거북섬

 

 

 

지금은 송림공원의 연맥(連脈)이지만, 이 섬은 낮고 작은 섬이긴 해도 맞은 편의 장군산 끝에 있는 두도처럼

소나무가 그 섬에 자생하고 있어 송도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송도를 중심으로 일본 거류민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송도에 수정(水亭)이란 휴게소를 설치하면서

송도의 실체는 허물어지고 바위만의 거북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거북섬에는 둘레에 남은 반석으로 옛날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지만, 일본인이 지금의 거북섬에 수정을 짓고

넓은 백사장을 이용하여 해수욕장을 개발하자, 넓은 백사장과 잔잔한 물결, 얕은 수심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송림은

전국 명소인 해수욕장이 되었다.

지금은 먼 옛날의 경치와 송림, 백사장은 개발이란 이름아래 송도라는 옛 섬의 자취는 없어지고 그 이름만 전할 뿐이다

 

송도해수욕장/ 우리나라 제1 (공립)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 공식 홈페이지에 나오는 선전 문구인데 현재보다 과거에 관해 더 자랑할 거리가 많은 곳인 듯하며,

역사가 긴 만큼 세대별로 서로 다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부산의 명소이다.
행정구역상 부산 서구 암남동에 속하는 송도는 워낙 이름이 알려져 암남동은 잘 몰라도 송도는 대부분이 알 정도이다.

송도라는 명칭은 '소나무 섬'이라는 한자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소나무가 섬처럼 우거진 숲에서 유래한다.

 

일설에 의하면, 작은 반도모양으로 바다를 향해 튀어나와 있는 현재의 송림공원 자리에 예부터 노송 수만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소나무 송()과 반도의 도()가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명칭의 유래가 확실한 것은 아니며 다양한 설이 회자하고 있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암남동 일대(송도)가 유원지로 개발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1913

송도에서 가까운 남포동, 광복동 지역에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형성되고 부터이다.

이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인근에 남빈해수욕장이 있었지만, 항만 기능이 확충되면서 점차 오염되었고,

따라서 맑은 물과 절경을 찾아 송도를 유원지로 개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시내에서 송도를 오가는 방법이 산길이었던 현재의 송도 윗길이나 남포동 해안에서의 배편밖에 없어 불편하였지만,

일본인 민간 유지들은 송도의 풍광을 그냥 두지 못해 앞장서 송도를 행락유원지로 개발하고자 하였다.

 

1922년 이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개발은 본격화되었는데, 이후 구름다리, 여관, 휴게소, 다이빙대 등의

부대시설이 갖춰지면서 1930년대에 이미 성수기에는 하루 수만 명이 찾는 전국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1934년 근대적 숙박시설인 송도호텔이 개업하고, 언덕 위에 많은 요정이 들어서면서 송도는 해수욕장으로서만이 아니라

경치와 풍류를 즐기려는 자들이 사시사철 들르는 유원지이자 각종 모임과 야유회가 개최되는 장소였다.

당시 요정에서 내려다보는 송도의 경관은 조선 제일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송도는 신혼여행지로 명성을 날리던 이른바 국민관광지였다.

잘 빼입고 송도 구름다리 앞에서 찍은 인증 사진은 지금은 노년이 된 세대의 오래된 사진첩 속에 단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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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전쟁 당시에는 살던 자도 아니고 구경 온 자도 아닌, 억지로 밀려온 피란민들이 이곳에서 나름의 추억을 만들었다.

부산에 임시수도가 마련되면서, 당시 정계, 재계, 문화예술계의 저명인사들이 송도에 거처를 마련하거나

삭막하고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송도를 자주 찾았다.

정치인 이승만, 이기붕, 박순천이나 시인 모윤숙 등의 별장이 송도에 있었고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여기서 고교를 다녔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송도의 추억은 대중가요의 가사 속에서 자주 재현되었다.

'부산 부르스(1949)'에서 서수남 하청일이 부른 '팔도유람(1971)'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에 송도가 등장하던 시기는 곧 송도의 전성기였다.
송도를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들이면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케이블카, 구름다리, 다이빙대, 포장유선 등

이곳의 명물들을 잘 기억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귀한 광경이나 시설은 장소성과 관련하여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925 7월에 설치된 바다 다이빙대는 실내 수영장이 거의 없던 시절 부산 지역 유일의 다이빙대였다.

4, 5m 높이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쾌감에다 해변에서 150m가량 떨어져 있어 오가며 수영실력을 자랑하기에도 좋았다.

거북섬과 송림공원을 잇는 150m의 구름다리, 일명 출렁다리와 해수욕장 위를 가로지르는 420m의 케이블카는

1964년에 부산 최초로 설치되어 송도의 명물이 되었다.

해상을 지나는 케이블카를 타보고 마음마저 출렁이는 출렁다리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다이빙대는 1987년 태풍 셀마로 크게 파손된 뒤 사라졌고, 케이블카는 적자누적으로 1988 10월에 운행이 중단된 후

철거되었으며, 구름다리도 연륙교로 대체되었다.

송도해수욕장의 명물들이 사라지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 급격한 오염이 진행되면서이다.

맑은 물과 푸른 숲으로 부산시 지정 문화재(기념물 제30)로까지 선정되었던 송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경관을 찾아

모여든 횟집들과 언덕 위의 고급주택들 때문에 무너졌다.

 

무분별한 개발과 주택에서 배출하는 생활폐수로 해수욕장의 수질은 똥이 둥둥 떠다녀 '똥도'라고 불릴 정도로 나빠져

해수욕장의 기능은 상실되고 회집타운으로 전락했다.
1982
년에는 문화재 지정도 해제되었고, 여름철 하루 수만 명이 찾던 명소가

1990년대에는 불과 천 명 남짓 들르는 곳으로 급격히 퇴락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송도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어 다행히 새롭게 태어나고 있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에 의해 옛 명성이 몰락한 만큼 이전의 아름다움 풍광과 진귀한 명물들에 얽힌 추억은 더욱 깊어진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어디로 갈까?

 

새로 복원된 신형 다이빙대.

 

고래 조형물

 

지금 송도해수욕장에는 바다미술제가 한창이다.

 

 

 

 

 

 

 

부산출신 현인가수의 동상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흘러나온다.

 

 

송도100주년 기념공원

 

송도해안볼레길

 

볼레길의 볼레는 볼가치가 있어 들러 본다는 의미를 지닌 '볼레와 둘레의 합성어'라는 말과

혼자보기 아까워 많이 보러 오라는 뜻의 '보러 올래?'라는 말을 줄여 부른말이기도 하다.

 

깍아 놓은듯한 해안절벽에 철재다리로 연결된 송도해안 볼래길(800m) 구름다리 2, 전망대 5곳이 있고

바로 아래는 살아 꿈틀대는 듯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절경을 감상 할수 있다.

 

 

절영도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고~

 

갈맷길은 볼레길 끝자락에서 암남공원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조선시대 말까지 동래군 사하면(沙下面) 암남리(岩南里)였다.

암남반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천마산(324m) 남쪽 기슭에서 해변까지의 송도(松島)가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 아미동의  유래가   아미골의  남쪽이란  의미

 

장군산 일대의 자연공원으로 군사적 요충지로 軍이 관리해오다가 1972년 부산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되고, 1996년에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17만평 그대로 남겨진 해양식물의 寶庫이다.

암남공원 입구에서 감천 혈청소까지  해안의 소나무숲 너머로 펼쳐진 바다풍경과 그 위에 떠있는 배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도심공원이다.

 

 

묘박지를 아시나요?

 

 

곳곳이 절경이다.

 

 

포구나무쉼터

 

 

두도

 

 

두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몰운대

 

암남공원 內에 있는 조각품

 

인간 존재를 위하여 버리는 것은 가능한가?

가공된 철재와 자연석재를 사용하여 물성(物性)을 강조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조각품으로 인간과 법칙과 같은

동양적 불교사상의 통합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 토다 유스케, 일본

 

암남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혈청소가 자리잡고 있다.

'혈청소'는 동물의 혈청을 검사하는 곳으로 공식명칭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다.

 

모지포 삼거리에서 직전하면 감천부두로, 우측으로는 암남공원입구이다.

삼거리에서 직전 하지말고 갈맷길 표시판을 따라 포장된 2차선 도로로 가야한다.

 

장군산 언저리 임도길을 따라 갈맷길이 이어진다.

 

 

위쪽은 산이고 아래쪽은 감천항으로 주로 냉장창고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지점을 지나는데, '서구환경종합단지' 주변으로 냉장창고들이 들어서 있다.

 

갈맷길은 다시 마을길로 이어지고, 내려서면 감천마을이다.

 

감천마을의 당집과 보호수

 

고인돌

 

현재위치?

 

감천사거리에서 남부발전소 담벼락을 따라 진행하고~

 

하늘아래 첫 동네 감천동 이야기 

 

그렇게 진행하면 부두길이 끝나는 곳,

YK스탈(한보철강)앞에서 갈맷길4코스1구간이 종료된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 맡고, 귀로 듣고, 발로 느끼는, 오감 만족의 여행 갈맷길

션한 캔맥주 한캔으로 오늘구간 답사 마무리를 하고~

61번 시내버스타고 부산역으로 이동, 67번 버스를 타고 개금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