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등산객, 탐방객의 차이는?
‘산악인’은 누구인가?
인터넷산악회를 통해 등산을 시작한 지 3개월 된 회원이
“나는 산악인이다”라고 한다면 맞는 것인가
아니라면 왜 아닌가?
그럼 등산객인가? 산꾼인가? 탐방객인가?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산에 오래 다닌 사람들도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국어사전에는 산악인을 ‘등산을 즐기거나 잘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 산에 다닌 지 3개월밖에 안 됐어도 등산을 잘한다면 누구나 산악인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렇게 통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원로산악인 김영도 선생이 본지에 쓴 특별기고문
‘산악인이란 누구인가(2009년 7월호)’가 설명하고 있다.
보통 산에 가는 사람을 산악인이라고 하지 않으며,
거기에는 조금 다른 뜻, 달리 보는 관점이 있다.
-중략-
등산은 원래 알프스의 고산지대를 무대로 서구에서 시작되었고,
그 기원에는 독특한 의식과 행위가 있었다.
그것은 알피니즘으로 그 주체를 알피니스트라 불렀다.
이것이 등산의 원형이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알피니스트는 보통 산에 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등산 전문가를 산악인이라 부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알피니스트가 서구사회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도 산악인이란 이름에 그런 비중이 있어야 한다.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은 ‘산악인(山岳人)’이란 말은 일본에서
쓰이던 말로, 일본의 알피니스트를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산악인의 어원을 파고 들어가면 ‘알피니즘’과 연관되는 것이다.
이 교장은 그의 저서 <등산상식사전>에서 알피니즘을
‘눈과 얼음이 덮인 고산에서 행하는 알프스풍의 모험적인 등산’을 뜻한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알피니즘은 다양한 의미로 발전해 지금은 초기의 높이를
추구하는 의미는 퇴색하고, 어려움을 추구하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등정주의보다 등로주의가 현대의 알피니즘이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국내산에서 워킹산행으로는 산악인으로 불리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해외 고산을 노멀루트로 많은 셰르파를 써서 고정로프를 깔아서 오르는 것이 아닌,
어려운 루트로 고정로프를 깔지 않고 가는 이들이란 답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그렇게 엄밀히 편을 갈라 산악인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꼭 해외 고산등반을 하지 않더라도 알피니즘의 의미를 이해하고
산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지칭한다.
산꾼 역시 비슷한 뜻이지만 엄밀히 보면 다른 뉘앙스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꾼’을 ‘어떤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정의했다.
‘산꾼’은 본인 스스로 산악인이라 부르기엔 거창하여
스스로를 낮춰 그리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겸손이 미학인 우리 전통문화에서는 익숙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말이 갖는 어감이 신분적으로 낮은 건 분명하다.
▲ 설악산 마등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등산인들.
등산인, 등산객, 등산가는 한 글자 차이지만 담긴 의미가 다르다.
등산가는 등산객, 등산인보다 깊은 뜻 담고 있어
등산객은 ‘운동이나 놀이를 목적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 국어사전에 써 있다.
한자를 보면 오를 등(登)에 멧 산(山), 손님 객(客)을 쓴다.
‘산을 오르는 손님’이란 뜻이다.
비슷한 말로 등산인과 등산가가 있다.
이 세 가지 명사를 비교하면 훨씬 뜻을 이해하기 쉽다.
국어사전의 ‘운동이나 놀이 목적’에서 알 수 있듯
산에 대한 애정이 깊다기보다는 가벼운 의미다.
손님, 즉 어쩌다 산에 오는 사람,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 산에 놀러 다니는 사람인 것이다.
등산인은 좀더 깊은 뜻을 담고 있는데, 등산을 자주 즐기고
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등산이란 행위에 사람 인(人)을 더했으니 ‘손님 객(客)’보다 관여도가 더 높다.
등산가는 이 중 가장 수준이 높다.
어떤 행위에 가(家)를 붙이는 건 무술이나 어떤 분야에 있어
지도자급 고수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말로 등반가가 있는데 사실 의미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워킹산행을 다녀와서 ‘어느 산 등반을 다녀왔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심지어 매스컴이나 기사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등반(登攀)은 영어의 클라이밍(climbing)을 말한다.
발로 걷는 그 이상의 난이도, 두 손으로 지면을 잡고 험난한 곳을
오르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로프가 필요한 모험적인 것을 뜻한다.
해발 3,000m가 넘는 해외 고산의 경우 걸어서 다녀왔더라도
그만큼의 위험 요소가 있었다면 등반이라 말한다.
일반인이 쉽게 하기 어려운 등산도 등반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기준으로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국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거나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것을 등반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등반가는 암벽등반, 빙벽등반, 믹스등반, 인공등반 등
클라이밍의 고수를 뜻한다.
탐방객이란 말도 있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쓰는 표현이다.
산을 찾은 사람을 다 그리 부르는 것이다.
찾을 탐(探)에 찾을 방(訪)을 쓰는데, 국어사전에는
‘명승고적 따위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손님’이라 적어놓았다.
대체 산에 명승고적이 전체의 몇 퍼센트가 되기에 이런 단어를
새로 만들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등산객과 비슷한 뜻이지만 ‘산을 오르는 행위’를 빼고
정해 놓은 길로 관광지를 돌듯 얌전히 다니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렇듯 산에 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말도 살펴보면 음절 하나에
의미와 뉘앙스가 크게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산을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등반가나 산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을 사랑하고 등산을 좋아한다면, 상식적으로 기본 의미는 알고 있어야겠다.
백패킹과 야영과 비박의 차이는?
▲ 산에서 야영하며 해돋이를 반기는 산꾼들.
야영과 비박, 백패킹은 비슷하면서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사진 김영선 객원기자-
야영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당일산행을 하던 이들이 산에서 하룻밤 묵으며 산행하는가 하면,
오토캠핑하던 이들이 배낭을 메고 산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 자는 이들이 늘었다.
과거에는 등산을 먼저 시작해 야영 경험을 쌓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 요즘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비박이나 야영을 하는 이들이 늘었다.
이 때문인지 인터넷을 보면 출처 불명의 단어들이 마치 전문 용어인양 쓰이곤 한다.
비박과 야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며,
‘박산행’, ‘박짐’ 같은 새로운 은어도 생겼다.
박산행은 1박 이상의 야영이나 비박산행을 말하며,
박짐은 비박이나 야영배낭을 꾸린 것을 말한다.
인터넷에서 이들이 올린 글을 보면 ‘비박산행 다녀왔다’고 해놓고선,
온통 텐트 친 사진 일색이다.
비박은 텐트를 치지 않고 산에서 잠을 자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비박과 야영을 통틀어 비박이라 부르는 풍조가 되었다.
텐트를 메고 산 속에 들어가서 자는 것은 박산행이 아닌 야영산행,
박짐은 야영짐을 꾸린 배낭으로 정확하게 부르는 것이 옳다.
설사 그렇게 지칭하는 추세라 하더라도 기본상식으로 알고는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하고 가벼운 별의별 야영장비들이 나오고 있다.
비싼 장비로 더 가볍고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야영의 즐거움이겠지만,
기본을 알고 즐긴다면 훨씬 개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비박이란 독일어의 비바크(Biwak), 프랑스어의 비부악(Bivouac)이 어원으로
‘Bi(주변)’와 ‘Wache(감시)’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비박이라 하면 긴급 상황에서 텐트 없이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절벽 상의 좁은 턱에 걸터앉거나 혹은 눈밭에 쪼그리고 앉든지
혹은 설동을 파고 들어가 하룻밤을 견디는 등의 험악한 상황을 연상케 마련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지금은 그런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텐트를 치지 않고 산에서 잠을 자는 것을 뜻한다.
영어사전에는 ‘Bivouac’이 ‘텐트를 치지 않고 야영하다’는 뜻이라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텐트를 치지 않는 것이 비박인 것이다.
그렇다고 장비 없이 누워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건 아니다.
매트리스와 침낭 같은 기본 침구류를 갖추고 텐트가 아닌
타프와 비비색을 이용하는 것이 요즘 통념의 비박이다.
짐은 줄이면서도 안락하게 자는 것이다.
여기서 법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국립공원 내에서의 비박과 야영이 모두 금지되었지만
과거에는 비상 시 비박과 대피소 주변 비박이 허용되었다.
이때 공단직원들의 단속 기준은 ‘폴을 세웠는가 아니냐’였다.
폴을 세운 것은 텐트이므로 단속 대상이었다.
막영이란 말도 간간이 쓰이는데 야영은 들 야(野)에 경영 영(營)자를 쓰고,
막영은 장막 막(幕)자에 경영 영(營)자를 쓴다.
들여다보면 야영은 산이나 들 같은 야외에서 잔다는 의미고,
막영은 천막 같은 것을 둘러치고 잔다는 의미이므로 비슷한 뜻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야영이란 말 안에 비박과 막영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백패킹(Backpacking)을 우리말로 바꾸면 ‘배낭여행’이다.
필요한 물건을 배낭에 지고 다니는 여행의 모든 형태를 의미한다.
백패킹도 1박 이상 잠을 자는 여행을 뜻한다.
그러므로 비박과 야영은 모두 백패킹의 범주 안에 있는 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박과 야영은 산에서 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강한 반면,
백패킹은 자연의 모든 범주가 포함된다.
또한 굳이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계곡을 따라 걷는 등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하이킹(hiking)이라 하는데 비슷한 의미지만,
하이킹은 야외로의 도보여행이다.
오토캠핑은 오토모빌(Automobile)과 캠핑(Camping)의 합성어로
자동차에 텐트와 취사도구 같은 장비를 싣고 자연 속에서 야영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이며,
차를 세워놓고 바로 곁에 텐트를 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막영, 야영보다 백패킹, 오토캠핑, 글램핑으로 표현
글램핑은 ‘화려하다’는 뜻의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합성어로 일반 캠핑보다 호화로운 캠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캠핑장에서 캠핑장비를 모두 준비해 둔 곳에 몸만 가서 즐기고 오는 것이다.
과거에는 ‘막영’이나 ‘야영’이란 말을 많이 썼지만
요즘은 ‘막영’이란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박이나 백패킹, 오토캠핑, 글램핑 같은 단어가 요즘 아웃도어의 대세다.
그러나 이런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거 야영이나 비박은 산꾼들의 전유물이었다.
대학산악부나 등산학교, 전통적인 산악회를 통해
등산의 기초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야영과 비박을 했다.
산을 이해하는 산행과 등반이 우선이고 야영과 비박은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산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산을 잘 모르는, 등산을 차곡차곡 하지 않고
야영의 낭만만 보고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오토캠핑으로 아웃도어를 시작한 이들이, 점점 캠퍼들이 늘어나면서
캠핑장이 시끄러워지고 장비 자랑이 심해지는 것에 염증을 느껴
백패킹으로 전환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시대적인 흐름이므로 이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산에서 야영하고 잠을 자고자 한다면, 등산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감당할 체력이 있어야 사고를 예방하여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또 산을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산에서는 자연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좋다.
_월간 “산” 2015.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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