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제15 (2)-
如來가 爲發大乘者說이며 爲發最上乘者說이니라
여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여래는 대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대승(大乘)은 불도를 깨달아 저 혼자만 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일체 중생까지 제도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큰 수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만을 제도하겠다 하는 소극적인 사람에게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남도 함께 태워가려는 큰 마음을
낸 사람에게 이 금강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상(相)을 떠난 자유자재한 나의 참다운 지혜가 바로 부처다 하는 것을
깨달아 무궁무진한 삶의 길을 중생들과 더불어 열어가는 보살들을 위하여
최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대승에는 권교 대승(權敎大乘)과 실교 대승(實敎大乘)으로 구분합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樂小法者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則於此經에 不能聽受讀誦하야 爲人解說하리라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게 되므로 곧 이 경을 능히 받아듣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서 해설하지 못하느니라."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란 자기 한 몸만 수행을 잘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겠다는 소승(小乘)을 닦는 자입니다.
소승은 대승가 대립되는 생각으로 '있다'는 관점에서
사상(四相)에 대한 주견(主見)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상에 대한 생각, 인상에 대한 생각, 중생상에 대한 생각,
수자상에 대한 생각에 집착하여 작은 과(果)만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과(佛果)에는 이르지 못하므로
최고의 법을 설하는 이 『금강경』을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읽고 외우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남에게는 더 더욱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한 공덕보다
더 큰 금강경의 공덕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則爲是塔이라 皆應恭敬作禮圍繞하야
소응공양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작례위요
以諸華香으로 而散其處하리라
이제화향 이산기처
"수보리야, 어느 곳이던지 만약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응당 공양하게 되리니,
마땅히 알라.
이 곳은 탑이 됨이라.
모두가 공경히예배하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흩으리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이 금강경으로부터 나오고, 부처님께서는
큰 마음과 가장 높고 바른 마음을 구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이 금강경을 설했습니다.
따라서 이 경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정골(精骨)을 모셔 놓은 사리탑과 같은 곳이 될 것 입니다.
탑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모든 하늘 나라의 신들, 인간 세상 사람들, 아수라들이 와서 공경합니다.
불공의 순서로는 공손히 절을 하고 합장하여 탑 주위를 빙빙 돌면서 존경의 뜻을 나타냅니다.
예배의 뜻으로 주위를 돌 때는 오른쪽 옆구리를 예배 대상으로 향하여 세 번 도는 법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탑돌이 행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꽃을 올리고 향을 사룹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공양을 올릴 때는 하늘에서도 천우사화(天雨四華)라 하여
청(靑), 황(黃), 적(赤), 백(白)의 네가지 꽃과 향을 흩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 분(分)에서는 『금강경』을 지니는 공덕과 금강경에 대한 예배를 가르칩니다.
경에 대한 집착과 상을 버리지 못하면 안 되지만 이 도리를 가르치는 것도 바로 이 금강경입니다.
그러므로 이 금강경은 존중되고 예배의 대상도 되는 것입니다.
권교 대승은 방편을 가지고 있는 대승으로 유식법상종(唯識法相宗)과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의 삼론종(三論宗)이 있습니다.
실교 대승은 방편을 배재한 가르침으로 법화사상(法華思想),
선종사상(禪宗思想)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분별이 없어졌지만 절을 창건할 때 각자가 터득한 가르침을
펴기위해 권교 대승의 법상종 계통의 사찰은 대개 미륵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법주사, 동화사, 금산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특히 해인사(海印寺)는 화엄 사상에 의거하여 건물을 안치하여
그 경전의 세계를 형상화시켰습니다.
『화엄경』의 주불 '비로자나불'은 아홉 번 방광(放光)을 놓고
대적광토(大寂廣土)에 거한다고 합니다.
최상승(最上乘)이란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함께 성불하자는
대승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법(正法)에 마음을 내는 보살들을 위해 이 경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하고 올바른 법을 남김없이 다 설했건만,
아직도 방편으로만 설하는 사찰이 있기도 합니다.
대학생에게 "밖에 호랑이가 왔다, 울지말아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웃음이나 사게 되고 통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중생의 필요와 근기에 맞추어 방편에 치우쳤다가도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그것을 배제하고 정법(正法)을 구현하리라고 믿습니다.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야 廣爲人說하면 如來가 悉知是人하며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하야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은 則爲荷擔如來阿縟多羅三藐三菩提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
이런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니라."
남과 더불어 함게 깨어 있는 사람, 그것도 최고의 바른 법을
구해 가는 사람을 부처님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부처님뿐만 아니라 바르게 눈을 뜬 사람은 모두 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꼭 남의 축하가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의 무한한 보물을 바르게 알게 되어
언제까지나 캐내어 쓸 것이므로 크나큰 공덕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과 바로 통해져서 경계가 없고 부처님이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부처의 짐은 져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만큼 세세 생생 태어날 중생들의 모든 짐은
감당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능력만큼 짊어지면 됩니다.
일 킬로그램의 힘이 있다면 일 킬로그램만큼 지고서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하는 마음에서
“나는 부처님의 빛나는 깃발을 든 선도자로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차츰차츰 더 많은 짐을 지게 되고
나중에는 부처님만큼의 짐을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 모두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불자(佛子)는 절대로 회피하면서 소극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도 부처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일도 굳세게 이겨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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