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제16 (1)-
불교의 삶을 간단 명료하게 나타내면 업장(業障)을 소멸하는 일과
지혜(智慧)와 복덕(福德)을 갖추어 가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간단하면서도 투철하게 다 구족시켜 주는 것이 바로 이『금강경』입니다.
'혹(惑), 업(業), 고(苦)'를 끊고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의 삼공(三공空)
자리로 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업장 소멸 입니다.
그리하여 단지 괴로움이 없다는 무기력한 상태를 지나 적극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금강경을 통해서 '단혹(斷惑)'과 '성덕(成德)'을 이루는 복덕을 누려야 합니다.
아무리 선세(先世)의 죄업이 두텁고 또 지금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 이 모든 죄업은 즉시로 소멸되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경은 참으로 위대한 경이고 최상의 경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금강경의 뜻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과보 또한 불가사의합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잘 믿지 않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금강경도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금강경을 금강경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復次須菩提야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호대 若爲人輕賤하면
부차수보리 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是人이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언마는 以今世人이 輕賤故先世罪業이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 경천고선세죄업
則爲消滅하고 當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다시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더라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김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흔히 우리 중생들은 덜 떨어진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절에 열심히 다녀도 소용없다.", "금강경 읽고 외워도 소용없다."하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금생(今生)에는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로 다행히 불법을 만나 참다운
길을 가고 있지만 과거생(過去生)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과거생에 저질러 누적된 업장은 살아가면서 밖으로 모두다 표출됩니다.
만약 지금 현재 심한 병을 앓거나 여러 가지 불행을 겪는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것입니다.
과거생에 훈습(熏習)된 부정적인 씨앗이 밖으로 나가는 과정입니다.
많이 겪을수록 업장 소멸도 빨리 될 것이므로 자기에게 닥치는 불행 또한 멀리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생의 업장이 너무나 두터워 금생에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업보를 다 갚지 못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업신여기면 업장 소멸이 더 빨리 된다는 것입니다.
단,『금강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는 사람에 한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금강경은 업장 소멸에 아주 좋은 것입니다.
만약 금강경을 읽고 배우더라도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 우리의 업장을
곱으로 소멸할 수 있으니 이것도 금강경의 공덕이라 하겠습니다.
공자(孔子)님께서도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은 군자(君子)가 갈 바가 아니고
무근(無根)한 비난을 받는 것이 군자가 갈 바이다."라고 하여 과분한 칭찬보다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훨신 낫다고 하였습니다.
공연히 남으로부터 칭송을 받아 업장을 다 소멸하지 못하고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보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업장 소멸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참회(懺悔)입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이 있습니다.
이참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에 입각하여 이치에 맞는 참회, 마음의 원리에 맞는 참회입니다.
그래서 「초발심 자경문」에 보면 "이참과 사참으로 모름지기 녹여서
없앨 둘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의 선도리에 맞는 최고의 지견으로서 이치적으로 하는 참회대로 하고
또 육바라밀을 닦는다든지 하여 무릎에 피가 나도록 절을 한다든지
목이 터지도록 염불을 한다든지 하여 불전에서 꾸준히 노력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덕을 닦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조금 기도해 놓고, 조금 경 읽고서는 무엇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의 바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나의 과거생의 업장이 소멸되는구나,
이것도 『금강경』공덕이고,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다 하는 믿음으로
우리들의 신심을 다시 한번 다져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須菩提야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하니 於燃燈佛前에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 어언등불전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야 悉皆供養承事하야 無空過者호라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수보리야,
내가 과거 무량 아승지 겁을 생각하니 연등불을 뵙기 전에도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어 섬겼으되 헛되이 지냄이 없었느니라."
아승지(阿僧祗-Asamkhya)는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를 나타내는 범어입니다.
겁만 해도 한없이 긴 세월인데 겁의 수가 아승지이니 생각할 수도 없는 긴 세월입니다.
나유타(那由他-Nayuta)는 천만억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대체로 많은 수를 나타낼 때에는 어떤 수 단위 앞에다 팔과 사의 수를 덧붙입니다.
그러니 팔백 사천만억 나유타의 부처님을 만났다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부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리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갖가지가 다 부처님처럼 소중하게 느껴져
'구름 부처님', '난초 부처님', '이웃 부처님'하는 말이 저절로 나와 지극하게 공양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등불 회상에서 공양을 올리고 수기받은 줄 알고 있는데
그 이전 무량 아승지 겁 동안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부처님을 만나 그냥 가르침만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많은 부처님께 한 분도 빠뜨리지 않고 정성껏 불공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부처님을 지성껏 섬겼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받을 공덕도 매우 클 것입니다마는
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은 이보다도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若復有人이 於後末世에 能受持讀誦此經하면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
약부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百分에 不及一 이며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
백분 불급일 천만억분내지산수비유 소불능급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는 공덕은 내가 여러 부처님게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과 내지 산수와 비유로 미칠 수 없느니라."
앞에서 말한 항하사보다도 많은 부처님께 아득한 시간 동안에 공양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공덕에 어떠한 수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복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금강경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업장을 소멸하고 복덕을 누려가는 것은 철저하게 공의 도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천수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죄의 성품이라는 것이 본래로 없습니다.
오직 마음따라 일어났다가 마음이 사라졌을 때 죄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공적한 자리인데 마음따라 일어난 죄의 본성도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뿌리가 공적한데 죄라는 가지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팔십 먹은 노인도 마음을 찾아내지는 못합니다.
죄와 마음 둘다가 공한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때서야
진정한 참회가 되고 업장 소멸도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가르쳐 주는 천수경에서
가장 공의 도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리 바깥 경계에서 물질적인 보시를 많이 하고 인정을 베풀더라도
한 순간에 공(空)의 도리를 깨치는 이 공덕과는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의 알음알이를 떠나보내고 영원토록 정견(正見)에서
사물을 바로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복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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