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15.7.11
산행코스: 빼빼재/원통재~서래봉~1172.9봉~백운산~1.243봉~상연대~묵계암~백운교(대방마을)
인원: 부산산하산악회
GPS거리: 9.7㎞ 널 널/4시간30분
예전 빼빼재에서 괘관산 방향으로는 올라봤고, 반대쪽인 서래봉, 백운산 능선이
미답으로 남아있는데, 마침 부산산하산악회에서 그쪽으로 간다하길래 한자리 부탁했다.
부산 서면에서 08:00 출발하고~
10:50 빼빼재(810m 원통재)에 도착한다.
빼빼재에 대한 유래는 도통 알길이 없고...
백전면청년회에서 설치한 표지석은 후해령(後海嶺)이라고 적혀있다.
옛날 천지가 물바다였을 때 이곳에 배를 매어놓고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뒷바다재(후해령, 後海嶺)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역사가 기록된 이후에 천지가 물바다였다는 기록이 어디 있나???
그냥 “빼빼재”라고 하면 될낀데…
백운산 들머리
급경사 계단이 시작된다.
허걱! 백운산이 더 멀어졌잖아. (4.9km → 5.5km)
일월비비추
부드러운 가는그늘사초군락이 계속 이어진다.
지도에 표기된 대방령(大方嶺)인데…
고개 흔적이 없다.
털중나리
흔적/ 누구의 정성인가???
조망이 열리는 전망대
계관산/대봉산
거망산, 황석산…
서래봉×1,075.7m, 삼면봉×1,172.9m…
1.243봉/ 일명 끝봉이다.
화과원(華果院)갈림길
화과원(華果院)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백용성 선사가
선 수행과 생산적 근로활동을 병행하여 나간다는 선농불교사상을 실천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929년 개간한 농장이다.
최근에 국가사적지로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백용성 선사는 1879년 16세 때 출가해
승려로 살아오면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분으로, 3·1 독립선언서에
네 번째로 서명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1921년 일제 강점기 한글 보급을 위해 한글판 금강경을 출간한데 이어
1928년에는 한글판 화엄경을 펴내기도 하는 등 일평생을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선각자이기도 하다.
용성(龍城, 1864~1940)선사께서 하루는 제자 고봉스님에게 물었다.
“고봉아, 화과원(華果院: 용성 스님이 함양 백운산에 세운 농장)의
도리원(桃梨園: 복숭아밭) 소식을 한 마디 일러라.”
“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그대로가 화장세계(華藏世界)입니다.”
용성선사께서 그 말을 듣고, “네, 이 놈.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이 공부 깨나 하여 안목이 열렸는가 했더니만,
순전히 밥이나 축내는 밥도둑 놈이 아닌가” 하고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고봉스님이 생각하기를, ‘내가 혹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했나?’ 하고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했다.
그리고는 곧 스승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화과원에 도리가 만발하니, 그대로 화장세계로구나.”
화과원의 도리원 소식, 즉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스승과 제자가 한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 차이점이 있을까.
이 문답에서 제자는 이미 나름의 안목을 갖춘 공부단계였지만,
스승이 던진 낚시밥을 냉큼 물고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바둥대는
가련한 물고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자는 바로 대답을 했지만, 스승의 시험에 걸려 자신의 견처(見處)에 대해
순간적으로 확신을 잃은 것이다.
결국 용성선사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몽둥이질로 고봉스님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은 경지가 역대 조사의 견처와 같은지를 점검하는 말에
‘신득급(信得及)’이란 말이 있다.
대혜선사 어록에 나오는 이 말은 증오와 해오를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신(信)’이란 확신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며,
‘득(得)’은 그 경지까지 다 체험했느냐는 것이다.
의심과 확신, 그리고 회의, 절대확신으로 이어지는 신득급의 여정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까치수염
서래봉(西來峰 ×1,075.7m)
지형도에 표기된 서래봉인데 정상석은 물론, 그 흔한 종이명찰도 없다.
서래봉에서 바라본 삼면봉(×1,172.9m)
돌탑지대가 나타나고…
폐헬기장을 지난다.
반듯한 돌계단이 시작되고…
삼면봉(×1,172.9m)
서상, 서하, 백전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돌무덤만 있을 뿐, 이곳 역시 어떤 정상표시도 없다.
아까 이정표가 가르키는 “돌탑지대”가 이곳인지…
날이 좋으면 지리산도 보인다카던데…
돌양지꽃
며느리밥풀꽃
거참! 묘한 나무일세???
백운암 갈림길
좌측으로 “백운암”을 가리키고, 내려온 쪽으로 “하산길(원통재)”라 가르키는데…
후해령, 대방령, 빼빼재, 원통재… 참 따로따로 논다.
등골나물
노루오줌
물레나물
단풍취
짚신나물
박새
가는잎장구채
긴산꼬리풀
꿩의다리
지나온 능선
계관산/대봉산이 많이 멀어졌다.
하산할 능선
1.243봉/ 일명 끝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큰골계곡
얘. 니이름은 뭐니…
이제 백운산도 지척이다.
백운산 (△1,278.9m)
함양305로 보이는 삼각점은, 아마 용도가 폐기된 모양이다.
정상석 바로 아래 넓은 헬기장 대형 정상석에서 추억을 남기고…
뱀무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정상에서 50여m 내려온 지점 우측으로 백두대간길
(중재~월경산~봉화산)이 갈라지고…
상연대로 갈려면 중봉 방향으로 가야된다.
하늘말나리
중봉에서 바라본 1.243봉/끝봉이 뾰쪽하다.
백두대간 중재, 월경산…
날만 좋으면 지리산 주능선(천왕봉에서 반야봉 노고단까지...)이 병풍처럼 펼쳐지는데…
금남호남정맥 장안산…
지나온 백운산
박새
1.243봉/끝봉
계관산/대봉산…
급경사 로프지대
묵계암/상연대 갈림길
고도가 뚝, 뚝 떨어진다.
등로는 상연대로 곧장 떨어지지않고 주차장으로 떨어지게끔 되어있다.
상연대(上蓮臺)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백운산(白雲山)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기도 하던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연대라 이름짓게
하였다는 유래가 내려오는 청정 관음기도도량이기도 하다
이곳은 신라 말의 구산선문 중 한 곳인 실상선문이
이곳으로 옮겨와 마지막 선문의 보루라고 전한다.
천여 년 동안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했다는 상연대.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1953년경에 재건을 했다고 한다.
상연대 “원통보전”
원통보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456호)
조선중기에 조성되었으며, 만든 연도(1612년), 중수연도(1677년)가 정확하여
조선시대 중 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모셔져 있는 곳이 대웅전이 아니라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는 편액이 붙어져 있다.
크기는 높이가 60~70cm 정도로 작았고, 화려한 관모를 쓰고 있으며,
긴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으며, 오른손에는 약병을 들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지 않고 두터운 법의를 걸쳤으며 입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고 있어 신비감을 주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유리통 안에 들어 있어 사진으로 남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이 엄청 시원하다.
상연대 위에 있는 염화실과 응진전
고목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준다.
멀리 산그리메가 펼쳐지는데…
갑자기 하늘이 새까매지면서 굵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등골나물
묵계암 대웅전
묵계스님이 창건한 암자로 우리나라 유일의 절 마당에 무덤이 있는 곳이다.
묵계암 안내석
미끼골
날이 안좋아 미끼골 계곡을 버리고 임도를 따라 간다.
좀작살나무꽃
이곳에서 하루동안 젖은 땀냄새 제거하고…
백운리 대방마을이 잘 보인다.
백운암 갈림길
백운리 백운교/37번 지방도(420m)
산행마무리하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미곳에서 뒤풀이를 못하고, 모처로 이동하고...
돼지두루치기를 안주삼아 뒤풀이를 마치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하여 개금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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