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해 7-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이후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함을 보고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났다’는
이것이야말로 반야심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뽑아놓은 부분입니다.
나머지 뒷부분은 이 사실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부분은 관세음보살이 일체의 고통과 액난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장면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실천함으로써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한 것임을 보았고,
그로 인해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주요 실천 덕목이 바로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를 실천함에 있어, 단순한 실천이 아니라 완벽하고도 치우침 없이,
그리고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깊은[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대승보살의 주요한 수행 덕목인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어떠한 수행을 말하는 것일까요?
반야바라밀이란,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깊고도 수승한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공의 도리, 연기의 이치, 무아, 무자성, 중도의 이치를
올바로 조견(照見)할 수 있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진리를 밝게 깨칠 수 있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공은 곧 연기(緣起)이며, 중도의 가르침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연기이기에 무자성이고, 무아라는 사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공, 연기, 무아, 중도, 무자성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공이고, 연기된 존재이어서
어떤 것에도 집착할 바가 없으므로 무집착(無執着)이며,
어떤 대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분별을 지을 필요가 없으므로 무분별(無分別)이고,
그러므로, 공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며,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이 여실히 녹아 있음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을 유심히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무집착, 무분별, 무소득, 무소유’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온갖 대상에 ‘집착’하고, 머리속으로 사량(思量)하고,
‘분별’하며, 보다 많이 얻으려는 ‘소유’의 관념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로 공의 이치, 연기의 도리를 모르는 데에서 오는 어리석음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공, 연기의 이치를 올바로 비추어 봄[조견]으로써,
우리는 확연한 지혜[반야]를 얻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생사가 없는 열반의 저 언덕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것[바라밀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입니다.
즉, 반야바라밀다 실천 수행의 핵심은, ‘무집착, 무분별, 무소득’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반야바라밀다 수행의 요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것에도 집착할 바가 없다는 공의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수행, 마음 공부는 집착을 놓아버리는 방향으로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적인 실천방법이 바로 ‘방하착(放下着)’입니다.
일체의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야말로 공의 세계, 연기의 세계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는 수행입니다.
반야바라밀다 수행의 핵심이 바로 ‘방하착’인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반야심경을 설하면서 몇 번이고 언급될 것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도록 하고, 이제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전에서는 반야바라밀다 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입니다.
이 육바라밀이야말로 반야지혜를 닦아나가는 수행자가 공의 실상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실천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육바라밀에서 바라밀은 ‘바라밀다’와 같은 의미로서, 범어‘파라미타’를 한역(漢譯)한 것입니다.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을 지칭하는데,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육바라밀의 실천을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대품반야경』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비유컨대, 나[아(我)]라는 소견 가운데에 예순 두 가지 소견을 낱낱이 포섭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낱낱이 포섭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사람이 죽으면 명근(命根)이 없어지는 까닭에 다른 감각기관이 전부 따라서 없어짐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바라밀이 전부 따르는 것이다.
『대품반야경』 등학품 제 63
이처럼 『대품반야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이 일체 모든 바라밀을 모두 포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또한 관세음보살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올바른 지혜가 열리고,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반야바라밀다, 즉, 육바라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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