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해 5-관자재(觀自在)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 ‘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불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어렵고 힘들 때면 의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명호(名號)를 부르는 것이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명호의 의미는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사바세계의 중생이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해 주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 부르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시느니라.”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 과연 어떤 분이기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부르고 신앙하고 있는 것일까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 바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입니다.
천수경(千手經)에서의 관세음보살이 반야심경에서는 바로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 두 이름 모두 범어 ‘아바로키테 스바라 보디사트바’를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 들어와 번역되면서, 처음에는 관세음보살로 불리었으나,
이후에 관자재보살로 바꿔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원어를 살펴보면‘아바’는 지킨다는 뜻이고, ‘로키테’는 본다, 관조한다는 의미로,
이는 ‘지켜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스바라"는 ‘자재하다, 자유롭다"는 의미이므로 이름 그대로 ‘자유자재하게 지켜본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과 액난에 대해 자유자재하게 지켜보고 살펴서
그들의 괴로움을 소멸시켜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님께서 자식을 가만히 따뜻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지켜보듯이
그렇게 중생들을 지켜보시는 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린 관세음보살의 어원에 담긴 속뜻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관세음)’는 의미는 나[我]라는 주관과
객관계의 일체의 경계를 온전히 바로 관(觀)함을 말하며,
‘보살’이라고 함은 우리 내면의 본래자리, 깨달음 보살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하는 의미는 나와 내 밖의 일체 경계를 관하여
본래면목 깨침의 보살자리에 온전히 방하착(放下着)하고,
경계를 공양 올린다는 자기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비롯한 일체 세간의 음성, 다시 말해 온갖 경계를 바로 관하고 그러한 모든 경계를 녹이고자
온전히 자기내면의 보살자리인, "참나" 본래자리에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밝은 방편 수행인 것입니다.
세간의 음성, 즉 온전히 자신과 바깥 경계를 관하고 녹여 보살,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염불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염불(念佛)이라고 할 때, 염(念)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서 경계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 마음의 조각들을 말하며
불(佛)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 저마다 갖추고 있는 본래자리,
근본성품, 참나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염불은 우리마음‘ 염’과 부처님 마음‘ 불’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하는 밝은 수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의 공덕을 살펴보기 위해,
『관음경』[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온갖 괴로움에 마땅히 몸을 나투어 안락을 주신다고 합니다.
굳은 믿음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면 어떠한 일도
모두 성취할 수 있다고 관음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어떠한지 관음경의 구절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염하면 곧 얕은 곳을 얻게 되며,
또, 도적으로부터 해를 입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그들이 가진 칼과 무기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모두 부서지고 끊어져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어떤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음욕을 여의게 되고,
만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며,
만일 어리석은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어리석음을 여의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명호를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였을 때 이렇게 되는 도리 말입니다.
다만 이러한 경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형상을 가진 관세음보살님께서 하얀 선녀복을 입고 나타나셔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바를 주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그런 형상을 가진 분으로써의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관세음보살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내면에 있는 ‘참나’를 의미합니다.
다만 가만히 내면 깊은 곳에 숨어만 있는 참나 주인공이 아닌 적극적으로 세간의 음성을 관하여
온갖 경계를 밝게 녹여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 참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관세음보살을 염불한다 함은 ‘관세음보살님 어서와서 내 괴로움 좀 가져가 주세요’ 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 스스로 세간의 음성, 온갖 경계를 관하여 내면의 본래면목 보살자리에 공양 올려 밝게 닦아가겠다는
자기 수행에의 철저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며, 내 안의 관세음보살님을 굳게 믿어
내면의 주장자 밝게 세우겠다는 철저한 대장부 수행자의 정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염불하라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력, 수행력과 보리심이 없고서는 결코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염불수행입니다.
그러니 염불수행 또한 온전한 자력입니다.
보살님의 명호를 염불하며 보살의 마음을 연습하는 일이니 자력과 타력이 동시에 하나가 되는
참으로 밝은 방편수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방하착 염불수행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참자성’을 향한 일심염불입니다.
괴로움(苦)의 원인인 일체의 모든 끄달림, 애욕과 집착(執)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비워버려(道)
해탈(滅)로 안내하는 사성제의 실천행인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관세음보살의 명호로 돌아와 관세음보살 이외의 다른 명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은 참으로 많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본다면 중생에게 일체의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을 베푼다고 하여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하고,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라 하여
‘대비성자(大悲聖者)’라 하며,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합니다.
또한 이 보살은 세상을 교화함에 중생의 근기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법화경』 보문품(法華經 普門品)에서는
삼십삼화신(化神)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삼십이응신(應身)이라고 합니다.
이는 모두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변화신(變化身) 입니다.
이러한 변화신에는 부처님, 성문, 연각 등을 비롯하여 범천, 제석, 장자, 거사, 스님, 신도,
동자, 아수라 등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모습으로도 우리 곁에 기꺼이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이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입니다.
방편따라, 중생들의 각기 처한 입장에 따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대상으로
마땅히 몸을 바꾸어 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의 좌우 보처보살(補處菩薩) 중
한 분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우보처보살이 대세지보살이시고, 좌보처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십니다.
또한 수많은 부처님을 출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불모(佛母)]’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비’를 그 근본행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비의 화신이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慈)라는 것은 ‘베푼다’는 뜻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말하며,
비(悲)는 본래‘슬프다’는 뜻인데, 불법 문중(門中)에서는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자비의 실천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아무리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두는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둘이 아닌 연기(緣起)의 관계 속에서 나온 즐거움이므로 마땅히 나 혼자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함께 베풀어주려는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를 알기 때문에, 베풀어주었지만
베풀었다는 상(相)을 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라면 자연히 자비를 실천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렇게 연기의 이치를 깨달아 ‘지혜롭고 ‘자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는 따로 관세음보살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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