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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한시.법어

어느 산으로 가나

어느 산으로 가나   -백곡 처능(白谷 處能)선사-

 

 

運水搬柴久(운수반시구)   물 긷고 나무하기 오래였으니

勞筋苦骨頻(노근고골빈)   괴로운 근육 뼈마다 쑤시겠지

砧傭經一臘(침용경일랍)   방아찧기로 지낸 한 해이고

柴役過三春(시역과삼춘)   마굿간 청소도 세 해 봄이었지

此夕還辭我(차석환사아)   오늘 밤 나와 이별하고서

何山欲訪人(하산욕방인)   어느 산에 누구를 찾아 가나

途中善爲去(도중선위거)   나그네길 조심조심 가거라

臨別倍傷心(임별배상심)   이별에 다다라 갑절되는 상심

 

 

백곡선사께서 해심(海心)이라는 사미승에게 준 시이다.

이 시는 이별을 둔 사제간의 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깔끔한 시 인데 함께 있었던 몇 해의 일을 열거하는

수법이지만 그 자체로 두 사람의 정이 흠뻑 배어 있다.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 일상의 선이라 하듯이

이 시는 이러한 면에서 일상의 선을 노래했다 할 것이다.

선사를 모시면서 사미승으로서의 궂은 일을

다해왔던 처지였던 것 같다.

 

물 길어 오고 나무해 나르기가 이상의 삶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직책으로 맡겨지면 그 또한 고역이다.

그 일을 해 내느라 너의 근육이나 뼈마디가 얼마나

고단했겠느냐고 안타까이 여기는 스승의 자상함이다.

 

어찌 그것뿐이랴.

먹거리를 장만하느라 방아찧기에 어깨는 얼마나 아팠겠느냐.

그 고된 일도 한 해를 견뎌내었구나.

그뿐이랴.

마굿간의 궂은 일도 너의 몫이지 않았느냐,

 

이 모든 괴로운 일을 용하게도 참아냈거늘

이제 왜 어디로 가려하느냐.

떠나보내려는 이 순간 그저 마음이 상할 뿐이다.

끝 구에서 배나 상하는 마음이라 표현해 전편에 배어 있는

애정을 한 말로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