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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반야심경 강해 24-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반야심경 강해 24-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위에서『반야심경』은 일체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존재를 모두 부정하고 있으며,

이어서 그 현상계를 조견(照見)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인 사성제와 십이연기까지도

차례로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부정의 논리를 통해서 공의 세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지혜, 즉 반야바라밀을 체득하기 위함이며, 그 지혜에 의지해서 모든 보살은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긴 ‘근본’에 대한 부분까지 모두를 부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는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될 지혜,

, 반야바라밀과 그 지혜를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 열반까지 모두를 부정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반야심경』이 부정의 논리를 통해 공의 세계를 드러내는

마지막 부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혜()란 우리가 현상계의 조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안목이며,

얻을 것[]이란 그 바른 지혜에 의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의 세계, , 해탈이며, 열반입니다.

 

, 이와 같은 두 가지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며,

최후의 목표인데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지혜를 닦아 나가는 것입니다.

, 깨달음의 피안으로 가기 위해 고해[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배의 이름이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길이 지혜라고 하니, 모두가 이 지혜에 집착을 해 버립니다.

지혜를 증득하는 것에만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이 지혜조차도 부정해 버립니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배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지혜라고 했을 때

분명 지혜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다가 이것이 꿈인 것을 올바로 알아 [지혜] 꿈을 깼다고 했을 때,

꿈을 깨고 나면 꿈을 깨는 최상의 열쇠인 지혜마저도 없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우리가 바라 볼 것은 오직 깨달음, 열반의 기쁨뿐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득(無得)이라고 하여 반야심경에서는 궁극의 깨달음마저도 부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와 궁극의 깨달음까지도 모두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 모두가 공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 사상은 현상계의 본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상세계 즉 해탈,

열반의 본질이기도 한 것입니다.

 

일체가 공이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그 속에 지혜는 있다던가 해탈은 있다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공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반야심경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혜나 열반에도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