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05
“개경게(開經偈) 경을 펼치는 게송이다.”
모든 분들이 잘 외우시고 뜻을 잘 아시는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가장 높고 매우 깊은 미묘한 법, 부처님의 법은 보통 얻은 법이 아니죠.
선과 악을 나누는 법도 아니고요, 무슨 도덕적인 그런 법도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정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도를 성취한 큰 깨달음을 이루신 그 법입니다.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깨우쳐줬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역시 법이죠.
우리가 사람으로서 제대로 그 의미와 보람을 한껏 누리고 살려면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어떤 자그마한 기구를 하나 사도요,
그 기구가 갖고 있는 기능을 다 알 때 정말 한껏 그 기구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랄까요,
묘미를 누릴 수 있듯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우리가 사람이 갖고 있는 그 능력, 그내용, 그 의미,
그런 것들을 우리가 십분 이해했을 때 그것을 한껏 발휘하고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무상심심미묘법”이라고 하는 이 법은 바로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깨달으시고,
또 그 실상을 깨달으신대로 가르치신 그런 법입니다.
그런 것을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隅) 라 ~정말 길고 긴 세월 동안에 만나기 어려운 것을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修持 ), 내가 지금 저희들이 지금 문(聞)듣고, 또 見(견) 보고, 또 얻고, 수지하게 되었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지한다는 게 물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해야 됩니다마는
내 마음에 자리 잡기까지는 경전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수지입니다.
받을 受(수)자, 가질 持(지)자, 아닙니까.종이로 된 경전을 가지고 다니는거죠.
수지 독송이라는 말 있잖습니까. 가지고 다니면서 독송하는거에요.
너무 차원 높게 마음 속에 다 아로 새기는 것이 수지다.
물론 좋은 뜻입니다만 그건 그 다음의 문제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일단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책을 지니고 다니면 든든하지요. 안 읽어도 든든합니다.
조금이라도 짜투리 시간이 나면 한 구절이라도 낱말 하나라도 펼쳐서 이렇게 보고,
딱 닫고, 주머니에 넣고, 그 낱말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머리 속에 그리면서 차를 타고 간다든지,
길을 건넌다든지 할 때 얼마나 든든하고 좋습니까.
이게 불자들의 일상 생활의 모습이지요. 그게 수지입니다.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修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그 다음에 우리가 바라는 바는, 원하는 바는 여래의 진실한 뜻,
부처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를 잘 이해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고, 우리의 과제죠.
우리몫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은 정말 크나큰 희생을 치루시고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으셨고,
그 깨달음을 조금도 남김없이 다 펼쳐서 가르쳤는데, 이제 우리는 그것을 받아 지니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그것을 열심히 정진하고 공부하고 사유해서, 그것을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거,이게 우리 몫이고 우리가 바라는 바고, 우리의 서원이고,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정진하면서 해야할 일이다 그렇습니다.
우선 우리가 천수경 공부를 하니까 천수경이 담고 있는 그런 중요한 뜻을
우리가깊이 공부해서 이해하기를 일단 바라야 되겠죠.
그 다음에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이죠.
원해여래진실의 해 놓고, 개법장진언, 법장을 연다,
경전이 법장입니다. 법이 담겨있는 창고죠, 또 우리 마음이 법장이기도 합니다.
마음 속에 온갖 경이 다 담겨 있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이 있죠.
“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하니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이라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라 “
나에게 한 권의 경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먹으로 된 게 아니다.
그러니 종이나 먹으로 된 게 아니므로 펼쳐보아야 글자 하나 없지만 항상 광명을 놓고 있더라,
참 근사하죠. 깨달으신 분 아니면 이런 표현 못 합니다. 항상 광명 놓고 있잖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고, 컴퓨터 켜고, 듣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글자도 이렇게 올리면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이게 광명 놓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어디서 갑자기 전화라도 울리면 신경질 팍 낸다든지,
또 아니면 반가운 전화같으면 법문이고 뭐고 덮어놓고 그 반가운 전화를 받는다든지, 이 얼마나 큰 방광입니까.
이 광명을 놓는거에요. 이 보다 더 큰 광명이 또 어딨습니까.
기쁜 일 있으면 기뻐하고, 슬픈일 있으면 슬퍼하고, 화낼 일 있으면 화내고, 화 낼줄 아는 능력이 보통 능력입니까.
참 신기한 존재죠,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전을 우리가 잊지 않고 따라서 또 종이와 먹으로 된 이 천수경도
우리가 공부할 줄 알아야, 그게 이제 안팎이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
理(이)와 事(사)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말하자면 理(이)는 뭐겠습니까,
우리 마음의 경전, 누구에게나 다 있는 한 권의 경전이라면 事(사)적인 경전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경전이다.
이렇게 우리가 볼 수도 있죠.
종이와 먹으로 된 이런 경전을 우리가 잘 이해함으로 해서 정말 불가사의 하고 무상심심한
그런 여러분들 다 함께 가지고 있는 그 진정한 마음의 경전도 이해하고 깨닫게 되지 않겠나 그렇게 봅니다.
그게 법장이라는 것이죠. 법장, 법의 창고, 장경을 모셔 놓은 데라든지 이런데를 법보장 그래요.
법의 보물을 갈무리해 놓은 창고다,
법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법보장法寶藏·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 법의 창고를 연다 이거죠.
법의 창고를 열 때 어떤 자세가 바람직 하겠습니까.
그게 개법장진언입니다.
법장을 여는 진언인데 “옴아라남 아라다” 그랬어요.
옴자는 앞에서 누누히 설명했으니까 옴! 극찬 귀의 온갖 좋은 말들이 많이 있죠.
또 목숨바쳐 귀의한다, 경찬한다, 경례한다, 경각한다, 섭복한다, 공양한다, 그런 의미가 다 포함 돼 있습니다.
그 다음 아라남은 무쟁삼매입니다.
무쟁삼매 아라남, 무쟁이라 하는 것은 갈등이 없다,
두 가지 생각이 없다 하는 것을 무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경전을 읽을 때 딴 생각이 있으면 그게 경전이 제대로 머리에 들어가지 않지요.
이럴까 저럴까 한다든지, 그 사이에 친구 만난 일이 생각난다든지,
다음에 할일이 생각난다든지, 그러면 무쟁이 아닙니다,
쟁이죠, 다투는거죠. 마음 속에서 다투는 것입니다,
경전을 읽을 때에는 한마음이 돼야 되는거죠.
그래서 무쟁이라는 말이 여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아라다는 만족이라는 뜻입니다.
무쟁삼매의 법열 속에서 만족하여지이다. 좀 보완해서 해석을 하면 그렇죠.
무쟁삼매의 법열 속에서 만족하여지이다. 무쟁삼매
아무런 갈등이 없는 두 마음이 없는 잡념이 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만족하여지이다,
법열이죠, 그러한 법열 속에서 만족하여지이다.
이게 법장을 여는 경전을 펼쳤을 때 가장 바람직한 자세, 마음자세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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