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08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
진실한 말과 密(밀), 비밀스러운 말, 아주 중요한 말이란 뜻이죠.
‘밀’이란 말은, 예를 들어,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말, 요긴한 말.
이것을 밀어로 사용하죠.
그러나 그것은 진실한 말이어야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진정한 밀어는 진실한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는 거짓이 있을 수 있지만 , 정말 진실한 말은 밀어이고,
밀어야말로 진실한 말이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대비주를 밀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진언, 주문, 다라니라는
의미로서 밀어라 표현하는데 그런 밀어야말로 진실한 말이다.
그래서 진실한 말 가운데 밀어를 드날린다.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어떤 조작이 없고, 억지가 없고, 인위적이지 않고, 너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마음.
그런 마음 안에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킨다.
우리는 한 마음 내려면 억지로, 한 쪽에는 일어나지 않으려는 것을 옆에서 권한다든지,
이를 악문다든지, 내가 해야 된다고 하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마음을 써서 비로소 어떤 일을 하고, 그 마음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은 그런 것이 아니죠. 무위심(無爲心)입니다.
무위심 안에서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
‘아이구, 이거 내가 중생을 보살펴야지. 성인으로서 내가 중생을 잊어버려서 되겠나?’
하는 인위적인 마음을 우정 일으켜서 내는 그런 자비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불교의 자비를 이렇게 이해해야 되는 거죠.
이런 크나큰 자비와 지혜의 마음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저 깊은 곳에 다 갖추어져 있는데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계기가 되지 않아서 발현 하지 못할 뿐이죠.
무위심無爲心안에서 비심悲心을 일으킨다.
정말 우리가 눈여겨 두어야 할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자비스런 마음은 억지의 마음이 아니라 참으로 바람 불듯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
또 자비심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좋은 자비심이지, 누굴 위한다든지 베푼다든지,
우리가 마음 내키지 않는 경우에 억지로 하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안해야 돼요. 그럴 경우에는. 왜냐면 그런 경우에는 해도 마음의 갈등만 생기고 크게 복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도연초>라고 하는 일본 스님이 쓰신 책에
“할까 말까 하는 경우에는 대개 안하는 것이 낫다.” 이런 말이 있어요.
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할 때 그 말로 기준을 삼아 행동할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뜻 흔쾌히 일어나지 않는 것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게 낫죠.
여기 <천수경>에서는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이라는 말 속에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다음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그러한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을 속히 만족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 어떤 희구도, 어떤 바라는 바도,
어떤 구하는 것도 다 만족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계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충족시켜서 만족시키는 경우도 있고,
더 이상 구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이해시켜서, 깨닫게 해서 만족하게 하는 경우도 있죠.
불교에서는 대개 예를 들어 ‘내가 돈을 만 원 구해야 되겠다’ 면 그 만 원을 집어줘서
그 마음을 만족시키는 경우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만 원이라는 돈이
필요치 않게 되어버리는, 필요치 않게 이해시켜주는 그런 경우로 만족을 시켜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걸 우리가 잘 이해해야 돼요.
말하자면 중생들이 불교에서 또는 부처님께 바라는 바는, 내가 바라는 바를 설정해놓고 그것만 채워지기를 원하죠.
그것 때문에 기도를 하는데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채워지면 또 그 다음, 또 그 다음.....
머지않아 또 그런 식의 욕심과 희망심이 자꾸 불어나니까
근본적으로 그것마저도 필요치 않는 깨달음을 통해서 만족시켜주는 거죠.
그런 만족은 영원한 만족이 되죠.
중생은 어떤 한계를 설정해놓고 “그것만 채워주십시오!” 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 채우고 나면 또 그 다음 채워야 되고, 또 그 다음 채워야 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비움으로서 만족을 주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라면,
중생은 채움으로서 만족을 바라는 마음이죠.
어쩌면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어요.
모두 부처님 앞에 와서 자기가 설정해 놓은 것을 채우려고 달려드는데
“부처님은 그런 마음마저 없애라. 그런 마음마저 쉬어라.
놓아버려라. 방하착(放下着)하라."
이렇게 했을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되고, 그 만족은 상당히 오래 가고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가르침입니다.
내용 알고 보면 참 힘 풀리죠. 불교 믿고 싶지 않죠.
사실은. 우리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은 영 다르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 그대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는 마음은 뛰어나지만 중생들이 바라는 고것 가지고는 부처님 마음에 차지 않거든요.
그렇게 채워서는 부처님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마음으로는 그걸로 채울 수가 없죠.
중생 마음도 만족해야 되고, 성인의 마음도 만족해야 되는 길입니다.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
영원히 모든 죄업들, 모든 업장들을 멸죄하게 하여지이다.
우리 <염화실> 기도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죠.
“기나긴 겁 동안에 쌓고 지은 죄 홀연히 한 생각에 없어지이다.
불꽃이 마른 풀을 태워버리듯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지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湯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죠.
<천수경>에서도 곧 뒤에 나옵니다.
우리의 모든 업장과 죄업이 다 소멸하여지라고 하는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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