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13
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南無大勢至菩薩摩訶薩(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南無千手菩薩摩訶薩(나무천수보살마하살) 南無如意輪菩薩摩訶薩(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南無大輪菩薩摩訶薩(나무대륜보살마하살) 南無觀自在菩薩摩訶薩(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南無正趣菩薩摩訶薩(나무정취보살마하살) 南無滿月菩薩摩訶薩(나무만월보살마하살)
南無水月菩薩摩訶薩(나무수월보살마하살) 南無軍茶利菩薩摩訶薩(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南無十一面菩薩摩訶薩(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 南無諸大菩薩摩訶薩(나무제대보살마하살)
南無本師阿彌陀佛(나무본사아미타불) 南無本師阿彌陀佛(나무본사아미타불)
南無本師阿彌陀佛(나무본사아미타불)
☆神妙章句大陀羅尼☆(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 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 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게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 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 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 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 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
자라 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시미 나사야 호로 호로 마라호로 하례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칸타 가사마 날사남
바라 하라 나야 나막 사바하 싣다야 사바하
마하 싣다야 사바하 싣다 우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칸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 싱하 목캬야 사바하
바나마 하다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
섭나녜 모나다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 다라야 사바하
바마사칸타 니사 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이바 사나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3번)
천수경 지난 시간에 육향이야기를 했습니다.
불교 수행을 하고, 불교를 믿고, 불교 공부를 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온갖 불교라고 하는 간판 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장 좋다고 하는 일은 우리 불자들이 많이 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겪기 쉬운 이런 저런 나를 상처 입히는 칼산과 같은 환경,
그런 말씨, 그런 분위기, 그런 사람, 이런 사람,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사례들이 너무나 많죠.
부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천수경 사상을 잘 마음에 잘 새겨서,
우리들 마음 씀씀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다 이해되고, 소화되고, 무르녹고,
이렇게 해서 안정되고, 평안한 마음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 그것이 공덕이고,
복이고, 영험 이지, 그 외 다른 것이 없습니다.
결국에 불교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의 근본인 마음의 문제를 잘 이해해서
마음관리를 잘 하자는 것,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에 달렸으니까 내 마음관리 잘 하면 다 해결이다.
그런 이치를 배우고 잘 실천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어요.
화탕지옥, 도산지옥이니 하는 것은 도처에 늘려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화탕지옥, 도산지옥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치 마음을 너그럽게 쓰고,
넓게 쓰고, 잘 이해하고, 어리석고 못난 사람은 욕하고, 핀잔추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처럼 연민의 정으로서 어여삐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내가 가르쳐야 되겠다. 내가 저 못난 마음을 깨우쳐 줘야 되겠다.
하는 그런 심정이 되도록 하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대게 우리는 잘못한 사람을 보고 덩달아 잘 못을 범하죠.
비난 한다든지, 핀잔을 준다든지, 미워한다든지 하는데,
불자들은 그럴 때 연민의 마음을 품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 저 사람이 이해를 못해서 그렇다. 오해를 해서 그렇다. 잘못 알아서 그렇다.
하는 그런 마음 가지고 감싸주고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 하더라도 풀어지도록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불자가 부처님에게서 배우고 관세음보살님께 배우는 마음 씀씀이입니다.
마음씀씀이 잘하자고 불교 믿는 것에요. 다른 것 없습니다.
그 외 다른 온갖 가르침들 온갖 의식이나 기상천외한 세상 삶을
화려하게 펼쳐놓은 것 같지만 헛것이고 환상이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현재 우리 처한 이 삶, 이 순간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잘 쓰느냐
그래서 나를 해치려는 칼과 같은 상황들도 불타듯이 타오르는 그런 입장에서도 내가 다 그것을 이해하고
소화하고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상대를 연민의 정으로 감싸주는 그런 마음 이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천수경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일이고
또 불교공부 하면서 깊이 새겨야 할 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세상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고 특별한 삶이 있겠습니까?
그야 말로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가상공간에서도 말 한 마디 실수하면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오해를 하고 삐치고, 그래서 나가버리고 들락날락하고, 뭐 별별 그런 상황들이 많이 벌어지죠.
그런 것을 보면서 참 우리가 조그마한 그야말로 허망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것 하나 우리가 소화를 못하는구나.
얼마나 많은 세월을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를 배워야
저런 하찮은 그런 오해를 제대로 소화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참 자주자주 해봅니다.
오늘은 별귀의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
전부 관세음보살에게 특별히 귀의하는 것죠.
총귀의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저 뒤에 가면 발원이귀명례삼보(發願已歸命禮三寶) 나무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
나무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 나무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 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전체적으로 불법승 삼보에게 전체적으로 귀의한다 그런 뜻이고요.
여기는 이제 특별히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는 그런 뜻으로서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
관세음보살마하살에게 귀의하면 받드옵니다.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南無大勢至菩薩摩訶薩)
대체적으로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이제 그렇게 되어있죠.
아미타불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의 한 일부분이고, 역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도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의 일부분입니다.
깨달은 마음속에 그러한 무량광 무량수의 아미타불적인 그런 면이 있기에 그것을 인격화 시켜서
불격화, 보살격화시켜서 확연히 드러내서 어리석은 중생들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아미타불을 설정하는 거죠
그래서 경전이 펼쳐지고 불상이 있고 또 그것을 부처님의 선정력으로 확연해서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걸 이제 의성불이라 말할 수 있죠.
부처님의 의식으로써 나타내 보이는 부처님 그런 뜻입니다.
“의성천” 부처님의 의식의 능력으로써 나타내 보이는 하늘 그러죠, 법화경 같은 데서는 그런 하늘이 보이죠.
그래서 다보부처님도 나타내 보이고 거기서 능력이 뛰어나면 제 3자를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대중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일도 가능하죠. 선정력이 뛰어나면 그렇습니다.
의성신이라고 해서 의식이 만들어낸 몸이라고 해서 온갖 부처나 보살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정력이 뛰어난 수행자는 그런 것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거든요.
스스로도 수행하고 제3자를 그 당신의 의식이 만든 사람, 의식이 만든 부처님,
의식이 만든 보살, 의식이 만든 세계에 동참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힘인데 그런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뭐 그렇게 마음 쓸 일이 아닙니다.
어째거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이나 모두 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으신
마음의 능력으로 나타낸, 그 마음속에 그런 사실들이 있기에 그것을 부각시켜서 나타내 보인
성인들이라고 하면 뭐 제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들일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라고 그렇게 설정을 하지만 역시 관세음보살의 한 면이에요.
천수보살마하살 역시 만찬가지 관세음보살을 나타내는 거죠.
“여의륜보살마하살(如意輪菩薩摩訶薩)”
여의륜 이라는 것도 뜻대로 되는 그런 의미니까 관세음보살의 다른 면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수경에서는 최소한 그래요.
다른 경전에서는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특별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은 여기서는 모두가 관세음보살의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무대륜보살마하살(南無大輪菩薩摩訶薩)”도 그렇죠.
대륜보살마하살 큰 법의 바퀴죠.
그런 보살마하살에게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표현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관자제보살마하살(南無觀自在菩薩摩訶薩)”
이런 것만 보드라도 쉽게 이해 할 수 있죠.
관세음보살은 구역이라면 관자재보살은 신역이다 이렇게 표현이 되죠.
정취보살(正趣菩薩)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천수경 안에 정취보살이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만은
정취보살도 역시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만월(滿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월이 뭐입니까? 환하게 밝은 달빛을 말하는 거죠.
캄캄하게 어두운 천지에 아주 둥글고 둥근 만월이 떠서 세상을 훤하게 비춘다면 그 모습이 어떻하겠습니까?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지혜를 그렇게 나타내 보이는데 참 근사하기도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그렇죠.
때로는 이제 그렇게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가을 하늘에 둥근 달이 떠서 세상을 환하게 비출때
그 아주 밝은 모습 그 특별한 정취는 뭐라고 말할 수 없죠.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또는 깨달으신 분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수월보살마하살(水月菩薩摩訶薩)”
그렇죠. 물에 비친 달과 같은 보살
저희들이 가상공간인 인터넷상의 세상을 수월도량이라 제가 이제 그렇게 말하는데,
물에 비친 달그림자 같은 세상,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월이라는 말은요, 실재하지 않으면서 또 그렇게 있습니다.
그렇게 있으면서 또 알고 보면 실재하지 않고 이것은 이러한 위치를 미루어서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주변, 우리의 살림살이, 내가 쌓아올린 모든 현실들,
이런 것들도 수월도량과 같이 가상공간과 같이 그렇게 이해하자고 하는데 뜻이 있는 것죠.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보면 전부 헛것이고 공하고요, 그야말로 눈병이 났을 때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에 텅 빈 하늘에 꽃이 아주 화려하게 피어서 그 꽃이 막 쏟아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데 그게 어디 실재합니까?
눈병이 나서 그런 거죠. 잘 못 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이제 보인다는 거죠.
그랬을 때 집착이 없고 당당하고 시원스럽고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삶의 길이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큰 나로써 보다 큰 나로써의 삶이 펼쳐진다는 거죠.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南無軍茶利菩薩摩訶薩)”
군다리는 아밀리다 군다리 이렇게 이제 되어있는데 감로병 이라는 뜻입니다.
불사의 감로수를 손에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결국 이런 뜻입니다.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南無十一面菩薩摩訶薩)”
열한가지의 얼굴을 머리에 이고 있죠.
석굴암 불상 뒷면에 바로 정 뒷면에 십일면관세음보살이 참 아름다운 조각되어 있죠.
역시 관세음보살의 한 다른 모습이죠.
“나무제대보살마하살(南無諸大菩薩摩訶薩)”
제대보살이라는 것이 무슨 따로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앞에서 열거한 관세음보살의 이런 면 저런 면 이런 여러 가지 이름으로서
관세음보살님이 내포하고 있는 좋은점 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열 가지 이름으로 그 덕과 지혜를 표현했듯이 또 세상사람도 좀 뛰어난 사람들은
이런저런 여러 가지 능력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뭐도 할 줄 알고,
뭐도 할 줄 알고 하는 무슨 작곡가요, 작사가요, 가수요, 화가요, 교수요, 학자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많이 붙여서 표현할 수 있는 것와 같습니다.
제대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모든 능력을 표현한 전체 관세음보살
여러 관세음보살 마하살에게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이런 뜻이고,
관세음보살이 모시는 소위 본존불은 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그렇게 되어있죠,
아미타불인데, 본사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본 스승은 아미타불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로서 옆에 계시는 것으로 그렇게 되어니까
관세음보살의 근본스승은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근본스승은 누구죠,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부터 아마타불이 또 아마타불로부터
관세음보살이 이렇게 발전되었다 라고 이해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라니를 우리가 외우기 전에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의 면면마다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며 받든다 하는 그런 내용이 별귀의,
소청이라고도 표현하는 소청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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