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16
그 다음에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이건 앞에 있었던 글 그대로죠.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삼보께 귀의합니다. 귀의하여 받드옵니다.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성관자재존께 귀의하여 받드옵니다 사바하.
그리고 범어로 된 다라니는 그 다음에 우리 보통 외우는 데는 거기까지 입니다.
그걸 3번 외우죠
옴 시딴뚜 만뜨라 바다야 사바하
이게 있어요. 옴 시딴뚜 만뜨라 바다야 사바하.
이건 무슨 말인가 하면
옴 그 다음에 시단뚜 위에서 이야기 돼 온 진언구에 대해서
사바하. 성취 있으소서. 이런 뜻이죠.
시딴뚜 만뜨라 바다야 사바하 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본래 범어 경전은 경전 제목이 어떤 경전을 막론하고
앞에 있지 않고 경전 맨 뒤에 있습니다.
다라니도 경전 맨 뒤에 끝에 이런 말이 있어요.
마하가로 니가야 하리다야 다라니
요게 경전 제목이 됩니다. 마하가로 니가야 하리다야 다라니 뭐죠
대비심 총지, 그렇습니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가로 니가야는 자비라는 뜻이고,
흐리다야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다라니는 총지니까,
대비심 총지, 대비심 다라니, 이렇게도 표현할 수가 있지요.
이것이 범어로 된 다라니의 원형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범어로 된 끄트머리에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이걸 세 번 외움으로 해서 다라니 외우는 것을 끝냅니다.
근래 다라니를 외우는 기도를 많이 하는 그런 사찰도 간혹 있는가 보더라고요.
무엇을 가지고 하든지, 어떻게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철저히 정진하느냐,
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지, 이게 꼭 좋다, 저게 좋다, 관세음보살이 좋다,
지장보살이좋다, 그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편으로 그런 우열을 말하기도 하지요.
방편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좋은거라 하더라도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그야말로 옛날 화두 이야기에서 아주 웃지 못할 설화가 있듯이,
'즉심시불'을 잘못 알아듣고 '짚신이부처다' 라고, 그렇게 알아듣고는
'짚신이 부처다' 라고 잘못 알아듣고도 열심히 함으로 해서 일념으로 해서
결국 나중에 견성을 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듯이,
심지어 화두까지도 또 그게 온전한 화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열중하느냐, 혼신을 다해서 열중 하느냐 안 하느냐, 거기에 모든 성패가 걸려있고,
거기에 정신력과 수행력이 거기서 나타나는 것이지
뭘 가지고 하느냐 하는것은 정말 그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리고 어디서 하느냐, 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어요.
기도처 찾아 다닌다고 법석을 떨어 사치요.
글쎄요... 초보자들에게야 그런 것도 하나의 도움이 될런지 모르지마는
늘 초보자로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기회에 그런데 대한 것도 바르게 이해를 해서 어디에 있든지,
뭘 가지고 하든지, 자기 체질에 맞고 자기 취향에 맞으면 그냥 열심히 하는거에요.
금강경도 좋고, 독송도 좋고, 사경도 좋고, 그렇습니다.
또 이런 다라니를 해석하는 김에 또 어느 사찰에는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라고 해서
이게 '대일 여래 진언'이라고 하는 이걸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는 그런 분들도 있지요.
옴은 워낙 앞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극찬도 되고, 귀의한다는 것도 되고, 섭복도 되고, 최고 아주 좋은 진언이 옴자 한 자죠.
아는 지입니다, 비는 수이고요, 라는 화고, 훔은 풍이고, 캄은 공이고,
그렇습니다. 지수화풍공이에요,
이건 뭔고 하니 비로자나 부처님이 스스로 깨달은 것을 표현하는 진언이다,
그래요. 이거는 내용이 그렇습니다.
우주일체의 생성 요소입니다.
우주 일체의 삼라만상이 요 다섯가지 요소에 의해서 생성하는거지요.
지수화풍 그리고 공간, 지수화풍과 공간이 있음으로 해서 모든 삼라만상이
거기에 생성할 수 있고, 소멸하고, 안주할 수 있고, 하는 그런 내용이다,
그래서 그것이 일체법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 다음에 옴 아비라 훔캄 사바하 하면 사바하는 성취라는 뜻이니까,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러니까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으신그런 깨달음을 표현하는 진언이 되죠.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법을 다 표현하는 것이고, 일체법은 지수화풍공 속에 다 포함돼 있고,
이런 뜻이 됩니다. 이건 또 간단하죠.
능엄주보다 간단하고 다라니보다 간단하고 이걸 또 많이 권장해서, 어떤 스님이 말하면
그 스님 때문에 무조건 맹신하고 따라서 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다 그게 근기에 따라서 근기에 알맞게 가르치는 그 선지식의 아주 한량 없는 방편이죠.
그 선지식은 보면은 자신과 상좌들은 경전을 가르쳐요.
자신은 경전을 많이 보고요. 책만 많이 봅니다.
거의 다른 대중들에게는 참선을 권하고, 평신도하고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주문을 권해요.
지금도 그 풍습 그대로 내려 오는데 보니까, 그야말로 참 현명하신 선지식이라
근기 따라서 적절하게 잘 가르친다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통 일반 신도하고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그냥 능엄주나 아비라 기도나 이런 것을
상당히 많이 권하는데 경전이나 어렵게 복잡하게 알면 골치 아프죠.
또 알면 신심 떨어진다고 이런 경우도 없지도 않고, 그런 것도 있고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여튼 일반적으로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자신이나 상좌들은 경전과 어록을 열심히 보기를 권했어요.
아주 경전 보고 어록 보고 심지어 일어 공부까지 시켜 가면서,
일본의 논서같은 것들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그런 것을 옆에서 지켜 봤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중들은 그 많은 대중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참선 일변도로 몰아부치면 제일 관리하기도 쉽고, 또 분위기가 선방 분위기가
참선 일변도로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하고, 지금 와서 그런 것들을 가만히 정리해보면
현명하게도 근기에 따라서 근기에 맞춰서 잘 분배를 해서 가르쳤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래 대다라니 기도를 많이 하는데 이렇게 뜻을 설명해 놓고 보니,
더 관세음보살에 대한 그런 믿음과 존경심이 가죠.
진언에 대해서 내가 얼핏 말씀 드린대로, 진언은 모르고 해도 효과가 크다고 했죠.
예를 들어서 거지가 외국에 가서 자기 거지 신분을 감추고 밥 투정을 하는데,
그 사람에게 제일 좋은 진언은 '거지인 주제에 ' 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외우는 사람이 모르고 해도 그 거지는 혼비백산해서 바로 그 날 밤에 도망을 가 버렸지요.
그러나 그 뜻을 만약에 알았더라면 아마 그 거지는 목숨이 붙어 있지 못했을거에요.
그와 같이 근기 따라서 모르고 하는 것이 더 잘 될 수도 있고,
또 알고 함으로 해서 더 마음이 많이 실릴 수도 있고, 그건 사람 따라서 근기 따라서 다 다릅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잘 참고 하셔서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정진하는데 뜻이 있는 것이지 뭘 하든지 상관 없습니다.
'즉심시불' 하든지, '짚신이 부처다' 하든지 그건 사실 관계가 없는거에요.
내가 얼마나 거기다가 마음을 싣고,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정진하느냐 하는데 의미가 있다,
이걸 이 기회에 말씀드리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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