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41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심을 떠나는 것
앞에서 번뇌의 문제를 강의하다가 미진한 부분이 많아서 이어서 좀 더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실로 번뇌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유의해서 공부해야 할 내용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삼귀의 중에 '귀의법 이욕존' 이라하여 부처님의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탐욕심을 위시한 온갖 번뇌를 떠나는 것을 그 대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탐욕심은 모든 번뇌의 대표입니다.
경문: 부루나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세존은 매우 특별하시고 하시는 일이 희유하며 세간의 여러 가지 성품을 따라
방편과 지견으로 법을 말씀하여 가는 곳 마다 탐하고 집착함에서 빼내어 주나니,
우리는 부처님의 공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거니와,
오직 부처님 세존께서는 우리의 깊은 마음으로 소원함을 아시리라.'
"너희는 이 부루나를 보느냐?
그는 불국토를 청정히 하기위해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
중생들을 교화하여 점차 보살도를 갖춘 다음 한량 없는 아승지겁을 지나서
마땅히 이 땅에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리라.
이름은 법명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라 하리라."
강의: 이렇게 하여 부루나도 실명을 거론하며 부처님이라는 수기를 받기에 이릅니다.
사실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으나 형식을 취하여
다른 사람들의 수기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뒤에 가서는 5백 명의 제자들에게 동시에 보명여래라는 같은 이름으로 수기를 줍니다.
상불경 보살은 예배를 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라는 수기를 주기에 이릅니다.
[임제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수행자가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한다면
이는 벌써 자신을 그르친 꼴이 되고 만다.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없다.
그대는 진정 문수보살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대들의 눈앞에서 작용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지도 않고
공간적으로는 도처에 의심할 곳이 없이 작용하는 자가 바로 살아있는 문수보살인 것이다."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없다.
문수보살을 찾으러 가는 당신이야말로 진정 살아있는 참문수다."
이 얼마나 통쾌한 설법입니까.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이처럼 명료하게 지적하여
가르치신 어록도 드물 것입니다.
법화경에서 장황하게 인연과 비유를 이끌어서 고구정녕하게
설명하는 것과는 참으로 그 맛이 다릅니다.
그러나 궁적으로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그 한결같은 사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똑같은 생각이며, 같은 눈을 가지셨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부루나가 불교에 귀의해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수행결과를
'탐하고 집착함에서 벗어난것'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교를 믿고 수행하여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탐하고
집착하는 번뇌가 얼마나 제거되었는가의 문제입니다.
번뇌가 얼마나 제거되어서 일상생활에서 마음에 거슬리는 역경계(逆境界)나 또는
마음을 유혹하는 순경계(順境界)를 만났을 때 얼마나 흔들지 않고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과제입니다.
자신을 비방하고 헐뜯거나, 모함하거나, 음해(陰害)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당하고도 마음이 상하지 않고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아야
공부가 조금도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명예나 재산상에 손해를 보이거나,
불이익을 입히거나 하는 역경계를 당하고도
전혀 마음이 상하지 않아야 비로소 불교인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재산상으로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나, 마음에 드는 명예를 얻거나,
칭찬을 받거나, 공덕을 찬탄하거나, 잘한 일을 높이 칭찬하는 순경계를 당하고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수행자라 할 수 있고 불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라는 환경 속에서 수백 년을 살더라도 경계를 만나서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다면
불교는 저 스스로 불교이고 나는 스스로의 나일 뿐 서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결코 불교인이 아닙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를 하고 활불활조(活佛活祖)를 하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늘어 놓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사기요, 거짓일 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를 흔히 백팔번뇌, 또는 팔만사천번뇌라고 하여 무한히 많은 것을 말하지만
10가지 근본 번뇌와 20가지 근본번뇌에 따라서 일어나는 수(隨)번뇌를 듭니다.
첫째, 재물과 이성(異性)과 먹고 마실거리와 명예와 잠자는 일 등
마음에 드는 온갖 것을 욕구하면서 집착하고 탐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많은 것을 손에 넣어도 그 이상을 바라면서 더욱 더 탐합니다.
탐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상대를 누르고 음해를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고자 합니다.
둘째,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령 그것이 좋은것이라 해도 화를 내는 마음 입니다.
진심(嗔心)은 맹렬한 불꽃보다 심하며, 공덕을 빼앗는 도적으로 성냄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셋째, 어리석은 마음으로서 다른 이름으로 무명(無明)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사물의 이치에 어두운 어리석은 마음이란 여러가지 요소로 거짓 화합된 몸인데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든지, 몸이나 명예나 사람과의 관계나
모든것이 인연이 있을 때 함께 하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입니다.
그외에도 교만한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과 잘못된 소견들과
분과 한과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는 일입니다.
남의 이익과행복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등등
스스로 사람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제거하고 떨어버려야 할 번뇌들입니다.
스스로 불교인이며 수행자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부루나처럼 탐욕과 집착 등의 온갖 번뇌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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