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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42


 

사람은 본래 무가보(無價寶)의 부처님

 

오백제자 수기품에는 법화칠유(法華七喩) 중에서 다섯번째에 해당하는

의리계주유(衣裏繫珠喩)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열반은 진정한 열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일불승(一佛乘), 사람은 오로지 한결같은 부처님이므로 다른 차원으로 살지 말고 

본래로  갖추고 있는 부처님이라는 보배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내용입니다.

 

경문: 그때 5백명의 아라한들이 부처님 앞에서 수기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참회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수기를 받고 환희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모든 허물을 뉘우칩니다.

부처님이라는 한량없는 보물 가운데서 작은 열반을 얻고서는 어리석게 만족하였나이다.

비유하자면,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가니 그 집은 매우 부유하여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무가보(無價寶)의 구슬을 잠이 든 사이에

옷속에 넣어주고 새벽에 일찍 떠났나이다.

그 사람은 잠이 들어 알지 못하고 일어나서

예전처럼 객지로 떠돌면서 옷과 밥을 구걸하였습니다.

어려움이 극심하여 조금만 얻어도 만족해 하고는 더 이상 좋은것을

바라지않고 옷 속의 무가보는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뒷날 보배구슬을 넣어준 친구가 이 가난한 친구를 만나

간곡하게 책망하며 넣어준 구슬을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크게 환희하고 부자가 되어 많은 재물로써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저희들도 이와 같아서 세존께서 오랜 세월 항상 불쌍히 보고 교화하시어

일불승이라는 최상의 서원을 심게 하셨으나 저희가 무지하여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여

작은 열반을 나누어 얻고서는 만족히 여겨 더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깨우치시어 이것은 참된 열반이 아니니

부처님의 최상의 지혜를 얻어야 진실한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이제 부처님께서 수기 하시는 장엄한 일과 차례차례 있을

수기에 대하여 듣고 몸과 마음이 크게 환희하옵니다."

 

강의: 이 비유에서 가난한 사람은 중생을 뜻하고, 부자는 부처님을 뜻합니다.

무가보는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일불승의 이치를 뜻하는데 그 무가보를 모른채

밥이나 옷을 구걸하는 작은 소득에 만족한다는 것은 불교를 믿으면서

불교의 참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집안이나 가족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나 불공을 올리는 것으로 불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자신이 실은 부처님인데 못난 중생이라고 생각하거나, 성문이나 연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편(和氏篇)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 전국시대때, ()나라에 화씨(和氏)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발견하여 여왕에게 바쳤습니다.

여왕이 옥을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하게 하였더니, 보통 돌이라고 했습니다.

여왕은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해 그는 왼쪽 발을 잘렸습니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습니다.

무왕이 옥을 감정시켜보니 역시 보통 돌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무왕이 역시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는 오른쪽 발을 자르게 하였습니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습니다.

나중에는 눈물이 말아 피가 흘렀습니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

"천하에 발 잘리는 형벌을 받은자가 많은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느냐?"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화씨가 "나는 발을 잘려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寶玉) 돌이라고 하고, 곧은, 선비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벌을 준것이 슬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문왕이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후 이 화씨지벽은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들어갔는데,

()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이를 탐내 15개의 성()과 맞바꾸자고 하는 바람에

양국간에 갈등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고  불렸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은 마치 보옥(寶玉)을 하찮은 돌로 오인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경전의 말씀처럼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무가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무가보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맙니다.

수억만금의 가치가 나가는 보물을 두고 거지가 되어 구걸생활을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부처님은 그와 같은 가치를 몰라주는 중생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은 부처님입니다.

하루 빨리 부처님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해서 부처님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전에서는 성문과 연각의 삶을 꾸짖고 있으나 성문과 연각은 고사하고

자신이 당당한 부처님인데 그 사실은 잊어버리고 작은 명예나 이익에 눈이 멀어

온갖 지옥의 업을 지으면서 업을 짓는 줄도 모르고 불교에 누를 끼치는 일도 허다합니다.

심지어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인 인연과보(因緣果報)의 도리까지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부처님의 재산을 사유화하느라고 밤낮 없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면서 불제자가 된 큰 소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작금의 불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면 인과를 믿는 최소한의  불교상식마저 사라진 지도 오랩니다.

어찌 성문과 연각을 논할 수 있겠습니다.

성문과 연각을 논하기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법화경의 가르침이 하루빨리 우리나라의 불제자들에게 깊이 이해되고 법화경의 이치를 실천하며

사는 풍토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한국의 불교는 구제의 길이 없습니다.

인과의 도리는 인천인과(人天因果敎)라고 하여 실은 불교안에도 드러가지 못하는

저급한 가르침이지만 인과만이라도 믿고 실천하는 한국의 불제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 입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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