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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52

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52

 

♧세존의 고통♧

 

제바달다품의 내용과 더불어 금강경 제14분에서는 부처님께서

직접 경험하신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나는 옛날 가리왕에게 이 몸을 칼로 베이었을 때

신체가 마디마디 잘리는 아픔을 겪었노라.

그때도 나는 나와 남이라는 상대적 대립을 떠났었노라.

만약 그 때 상대적인 대립으로 갈등하였더라면

얼마나 큰 아픔과 쓰라림으로 분노하였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인즉, 세존은 도덕과 문화는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국토는 작고 병력은 턱없이 모자라는 카필라국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토는 넓고 병력은 강하여 폭력으로 이웃의 작은 나라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코살라국의 유리왕이 세존의 모국인 카필라국을

침범하러 가는 길목에서 세존을 만나서 그 위엄과 자비 앞에

차마 더 나아가지 못하고 두 번이나 회군하였습니다.

 

그때 세존은 바싹 마른 나무 밑에서 유리왕을 만났습니다.

유리왕은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옆에 잎이 무성하여 나무 그늘이 매우 시원한 곳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늘도 없는 바싹 마른 나무 밑에 계십니까?"

"그대가 나의 고국을 침범하여 나의 형제들과 살육하는데 나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내 가슴은 마치 이처럼 타들어 가는 나무의 모습 그대로일세."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세존도 그 길에 나아가지 않고 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 가장 교화활동이 왕성하여 인도 전역에

법력(法力)이 미치었으나 지난 세월의 원결을 풀지 못한 유리왕은

끝내 석가족들을 무참히 살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카필라국은 유리왕의 손아귀에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눈으로 확인하시고

그 친척들의 죽음과 고통들을 몸소 체험하신 세존의 마음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아픔을 함께하신 세존은 "이 몸을 칼로 베이었노라.

신체가 마디마디 잘리는 아픔을 겪었노라."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시로 심장을 칼로 저미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사지를 마디마디 잘라내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지혜로 모든 일의 전후를 알고, 오랜 원결을 되갚음하는

도리를 꿰뚫어 보신 부처님으로서는 "나는 아무런 갈등도 없었노라.

나다, 남이다 하는 대립의 마음도 없었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실로 그 누구도 겪기 어려운 경험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체험하신 분입니다.

태어난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으니 젖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아이의 가슴에 어머니 없이 자란 그 상처가 오죽하였겠습니까?

성장하면서 주변의 강대국들의 등쌀에 나약하기만한 카필라국의 앞날을 책임져야 할

태자로서의 고뇌 또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국제적 정세를 볼 때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카필라국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영민하기 이를 데 없는 태자로서는 출가의 길을 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출가를 하고 고행을 하고, 성도를 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인도 전역에 그 명성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러나 카필라국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석가족은 태반이 죽고 남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그의 쓰라림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의 고독과 슬픔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자신을 키워준 교담미, 즉 양모였던 마하파사파제와 아내였던 야수다라는

어린아들 라후라를 앞세우고 세존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의지할 데라고는 세존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친지와 권속들이 나라를 잃고, 집을 잃고, 모두가 세존 앞에 와서

어쩔수없는 출가를 했을때 부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제바달다라는 천하에 무도한 사촌이 있어서 태자 시절에나 출가를 해서나

늘 방해를 하고 심지어 죽이려는 시도를 수차에 걸쳐 저질렀던 일을 생각한다면

그 분의 아픔은 차마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우리가 세존이시며,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라고 추앙합니다.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 세존이라고 그 높으신 덕을 찬탄합니다.

 

그리고, 또 찬탄합니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이 없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도 또한 비교할 이 없어라.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있는 것 내 모두 보았지만

일체무여불자(一切無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 같을 이 없어라.

이 이상의 찬탄은 없습니다.

 

그 외에도 무수한 찬불송이 팔만대장경에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찬탄을 받을 만한 위대하신 분입니다.

왕 중의 왕이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성인중의 성인이십니다.

그런 아픔과 그런 고독과 그런 쓰라림을 겪으신 분이기에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그래서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 모든 것을 아울러 함께 가지고 있어서 더욱 더 부처님이십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 분의 불행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사람. 사람들도 또한 기쁨과 슬픔을 갖고 있습니다.

괴로움도 아픔도 갖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도 무한한 능력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부처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부처님이십니다.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때 나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세상이 모두 행복합니다.

세존은 제바달다를 스승으로, 또는 부처님으로 수기하셨습니다.

제바달다도 실은 부처님이기에 부처님으로 수기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누가 부처님 아닌 분이 있겠습니까.

모두들 부처님처럼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사람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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