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5.20
코스: 거진항(시점)-거진해맞이봉-화진포해맞이교-응봉122m-김일성별장/화진포의성
-화진포해변-화진포생태박물관-화진포호수-화진포교-화진포해양박물관-초도항-초도해변
-대진항해상공원-대진항-대진등대-대진1리해변-마차진버스종점-금강산콘도-마차진해변
-최북단 GS주유소-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통일안보공원(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4.17km (두루누비기준 12.3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5시간
▶ 갈때 : 고성 48구간 마치고, 현지 숙박으로인해 49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고성 49구간 마치고, 50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49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5월20일 새벽3시30분 즈음 눈을 뜨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오지않고~
오늘은 해파랑길 50코스를 완주하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웬지모를 설레임에 기분이 업되고~
그렇게 40분을 뒤척뒤척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후, 숙소를 나와
근처 24시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간식과 식수 구입하고~
'거진항' 內 '거진수협'과 '바다마트' 맞은편에 세워져있는
해파랑길 48코스 종점이자 49코스 출발지에 도착후 하루일과 시작이다.
해파랑길 48-4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해파랑길 49코스 출발 스탬프찍고, 두루누비&트랭글 앱켜고
(05:10) 해파랑길 고성 49코스 시작이다.
이후 '거탄진로' 도로를 따라 20m가량 올라서서,
(05:11) '거진리'와 '거진항'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조성된 소공원을 지나고~
거진리(巨津里)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리(里)이다.
약 500년 전에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클 '거(巨)' 자와 같은 형국이며 거부장자(巨富長者)가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기에 거진리(巨津里)라 부르게 되었다.
전설이 뒷받침하듯 거진항은 백두대간 줄기의 구름이 해안을 에워싸고 있어
오래전부터 천혜의 어항으로 발달해왔다.
거진항의 최대 인구는 오징어가 가장 호황이던 1970년대로, 당시 25,000명이었다.
옛 기록에는 거탄진리(巨呑津里)라 하였으며, 구 수외리(현 거진 10,11리) 앞에 있는
자산천이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서 양분(兩分)되어 이 부락 앞에서부터
해안 안쪽에 있는 원래의 국도 옆을 따라서 거진 1리 선착장까지 약 1km를
길게 돌아서(우회) 흘렀기에 수회리(水廻里)라고도 불렀다.
예부터 자산천이 두 갈래였던 것을 곧바로 바다로 흐르게 고친 후로는
넓은 하천부지와 해안 매립 부지를 택지로 조성하여 마을이 생겼다.
농산물과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거진항
1930년대엔 120호의 작은 어촌으로 현재의 항구는 긴 백사장이었으며,
어선은 소향 전마선으로 연안 2마일 내에 당일 출항하는 1일 어업으로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았다.
겨울에는 명태, 여름에는 연안에서 등잔불을 켜고 오징어를 잡았고,
가을에는 멸치잡이가 흥행했었다.
거진항에서는 해방전 많은 양의 정어리가 잡혀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 사람의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개소나 있었으나 해방 후
갑작스러운 정어리 흉어로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다.
당시 어민의 생활은 영세했으며 잡아온 고기는 판로가 없어 인근 농촌으로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곡식과 교환하는 생활방식을 취하였다.
거진항의 발전은 명태가 유도했다고들 말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명태 어획량의 60~70%를 잡는 국내 제일의
명태 주산지로, 이 지방에서는 신선한 명태 아가미만을 따내 무채와 함께 버무린
'명태 서거리', 차좁쌀로 버무린 '명란식혜' 등 별미 음식이 다양하다.
어선 출어 때마다 만선을 기원하는 성황굿은 특유의 별미 음식을 차려놓고
무사고와 풍어를 빌어오면서 풍어제로 바뀌었으며, 예나 지금이나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주요 어종은 명태, 문어, 광어, 전복, 해삼, 멍게 등이 많이 잡혔으며,
자연 성게의 알인 운단은 90년대까지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현재 명태는 잡히지 않으며, 방어와 도루묵 등이 잡히고 있다.
요약하자면 1970년대 오징어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인구가 2만 5천까지 늘었고,
'거진리'는 '거진10리'까지 분할되었고, 1980년대 초에는 '거진11리'까지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화진포'의 관광 배후지역으로 인기가 있지만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한다.
(05:14) 커다란 벽화 위에 "거진미항"이라 적혀있는 언덕 위로 오르는
데크계단을 따라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05:16) '햇살품은 거진항' 포토존이 세워져 있는
데크전망대를 지나고~
조금 더 올라선 전망대의 한켠에는 '사랑합니다' 글씨 조형물과 함께
'거진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을 올라
(05:20) 멋진 노송과 함께 '거진항 성황당'을 지난다.
거진항 성황당
거진마을의 수호신 성황신을 모셔놓은 신당으로
고기잡이를 나가기전에 풍어를 기원하기도 하였고,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기도 했던 장소이다.
아득한 옛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사망한
젊은 여인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데크전망대 꼭대기 한켠에 조성된 포토존 조형물 바라보고~
'거진읍내 동네한바퀴 구경길' 안내판
'거진읍내 동네한바퀴 구경길'은 거진읍행정복지센터 마중광장을 출발해
거진11리 해변 방파제·빛거리→거진9리 실향민역사사료관→거진7리 거진전통시장
→거진6리 명태어등 체험·명태빵 시식→거진2리 빨래골길 벽화마을→거진1리 등대길
→거진1리 거진항수산물판매장→거진1리 백섬경관해상데크를 거쳐
거진읍행정복지센터로 돌아오는 약 10㎞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백섬경관해상데크에서 거진등대를 거쳐 응봉,화진포로 이어지는
화진포해맞이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후 데크전망대 뒷편 '등대길' 도로에서 '거진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주먹벽돌이라고도 부르는 '화강암 사구석'으로 포장해 놓았다.
(05:26) '거진 해맞이봉산림욕장 안내판' 앞을 지나고~
(05:27) '거진등대' 갈림길에 도착하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거진등대'는 패스하고 좌측으로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거진등대
거진항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하얗고 우뚝 솟은 거진등대는,
과거에는 유인등대였지만 어로한계선의 북상으로 북쪽의 대진등대가
유인화되면서 1991년부터 무인등대로 전환된 등대이다.
이 등대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등대 주변으로 체육공원과
해맞이공원 등 각종 체육 시설, 산책로, 해안 자전거도로,
벤치와 전망대 등이 설치되어 있어 주민들과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이
산책 겸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자주 드나들고 있다.
이후 우측으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 능선길이 시작되고,
(05:29) '등대, 소원의 등불'이란 작품명의, 대리석 작품 앞을 지난다.
전면에 'FARO'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FARO'는 스페인어로 등대(燈臺), 전조등(前照燈),
항로나 항공로 표지(標識) 또는 표지등(標識燈)을 말한다.
(05:30) 강원도 명품길 표지판을 지나는데,
이 길은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로 명명된 코스이다.
강원도 명품길 코스는 거진항~응봉 정상~화진포의 성으로 이어지며,
해파랑길 49코스에 해당된다.
2019년 5월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 1.9km(40분), '응봉 숲길' 0.7km(20분),
'화진포의 성 숲길' 1.7km(40분) 총 4.3km(1시간 40분)의 트래킹 코스가
강원도에서 공모한 '강원도 명품길'에 선정되었다.
이 길을 걸으며 동쪽으로는 거진항, 백섬, 해안 도로, 기암절벽 등이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화진포, 백두대간, 향로봉 등 호수와 산악지형이 형성되어 있어
바다·산·호수의 경치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응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화진포의 경치는 말 그대로 명품이다.
주변의 관광지로 응봉, 화진포, 화진포의 성,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 생태 박물관, 화진포 해양 박물관, 거진 전통시장,
거진항, 백섬, 금구도 등이 있다.
우측 숲사이로 약간 늦은 일출을 바라보고,
어쩌다보니 일출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을 따라 진행하다,
(05:32) 샘터갈림길에서 좌측 직진의 윗길로 진행하고~
(05:33) '일출, 안녕하세요'란 대리석 작품 옆을 지난다.
'BUON GIORNO(봉 쥬르노)'는 Good morning,
Good day의 이태리어 인사이다.
(05:35) '강인의 미덕'이란 복어 형상의 대리석 작품을 지나고~
지금 걷고있는 이길은~
(05:36) '거진해맞이봉'의 2층 전망대 도착이다.
2층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숲이가려 시원하게 트이지 않는데,
아래 공터에 조각작품이 있어 보러 내려간다.
(05:38) '그리움'이란 인어 형상의 작품을 바라보고~
거진의 바다정원 '백섬'이 잘 조망된다.
예전에는 잔돌이 많아 '잔철'로 불리다가 이중 제일 큰 바위가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보인다하여 지금의 '백섬'이 되었다.
'거진항'에서 해안가 '거탄진로' 도로를 따라 해안가 커브를 돌면 위치해 있으며,
'백섬해안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후 '거진해맞이봉'의 2층 전망대로 되돌아 올라와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을 따라 내려서서 운동시설이 있는 '빨래골 체육공원'을 지난다.
(05:43) 등로 우측에 '기다림'이란 대리석 작품을 지나는데~
눈의 위치에 따라 '좌광우도'
즉 눈이 좌측으로 쏠려 있으면 광어(넙치과)이고,
우측으로 쏠려 있으면 도다리(가자미과)라고 하는데,
이 고기의 종류는 뭐지???
(05:44) '희망의 빛'이란 등대 형상의 작품을 지나고~
(05:45) '거진 해맞이 12지신상'
신전 형태의 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고
의관정제 다시한후 출발이다.
(05:48) 등로 위 벤치쉼터에 '행복을 전합니다'라는
'도치' 형상의 작품을 지나고~
우측 아래로 해안도로가 지나고, 그 좌측 위에 군부대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좌측에 '응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05:51) 내려서서 안부 사거리갈림길을 지나고,
잘 다듬어진 산책로 원목계단길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05:55) 조망이 조금 트이는 능선이 시작되는데,
조망이 좋은 명당이어서 그런지 등로 좌우로 묘지가 연달아 나타나고~
(05:58) 쉼터가 있는 Y자 삼거리에 도착하니 포장된 도로가 시작되는데,
우측은 군부대로 내려가는 길이고 해파랑길은 좌측으로 진행이다.
(06:00) 우측으로 헬기장을 지나면,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가야할 '응봉' 바라보고~
지나온 해파랑길 '고성앞바다' 뒤돌아보고~
(06:03) 좌측 오르막길인 '거진전통시장 가는길'을 지나는데,
해파랑길은 우측 내리막길이다.
(06:06) '거진해맞이봉, 화진포소나무숲산림욕장 종합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숙부인 영해박씨 묘'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거진해맞이봉, 화진포소나무숲산림욕장 종합안내판' 바라보고~
(06:09) '응봉(정상)' 이정표를 지나고~
이제까지는 산책이었다면, 이후로는 산행에 가까운데
두루누비 앱을 확대해보니 위치도 '거진리'에서 '화포리'로 넘어가고 있다.
어느순간 등로 좌우로 작은 돌탑이 함께한다.
(06:10) 벤치있는 '돌탑봉'을 지나고~
(06:13) 다시 내려서서, 포장도로를 건너
'경고문' 옆 나무계단으로 올라서고~
누구의 정성인가???
등로 좌우로 작은 돌탑이 계속 이어진다.
이후 작은 봉우리에 오르고, 두루누비 앱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저 아래로 구름다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06:19) 국가지점번호 안내판을 지난다.
국가지점번호는 국토 및 이와 인접한 해양을 격자형으로 일정하게
구획한 지점마다 부여된 번호를 말한다.
도로명주소가 없는 지역(산악지대, 해안가등)을 좌표로 표시하여 대형산불,
태풍과 같은 재난안전사고, 범죄대처 또는 구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 할 수 있다.
국가지점번호의 표기 방법은 국토 및 이와 인접한 해양을 격자형으로 구획한
지점(10×10m)마다 부여한 위치표시 번호로, 100km 단위는 문자를 사용하고
그 이하부터는 가로와 세로를 각각 10,000으로 나눈 정수를 연결한
10자리 번호로 표기한다.
(06:20) '화진포 해맞이교'를 건너고~
아래 도로는 '거진리'를 한 바퀴 도는 '거탄진로'인데, '거탄진'은 '거진'의 옛 이름이다.
'고성 대진등대'에서 '울진 월송정'까지 330여㎞의 도보길을 조성하는
'관동팔경 녹색경관길'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에 완공된
'화진포 해맞이교'는 폭 2.4m, 보행교 34m의 사장교다.
그렇게 '화진포 해맞이교'를 지나면 입구에서 만나는 강원도 명품길,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 안내판이다.
'화진포 해맞이교'를 지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 1.9km를 지나,
'응봉 정상'까지의 '응봉숲길' 0.7km가 시작되고 있다.
(06:24) 그렇게 '강원도 명품길' 중 '응봉숲길'로 들어서면
꾸준하게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06:35) 내용을 알수없는 삼각점과 나무평상이 있는
무명봉우리를 지난다.
이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진행하다,
오늘구간 최고봉에 오른후 약간 내려서면~
(06:43) 전방으로 조망이 확 트이는 '매봉(응봉, 122m)에 도착이다.
옛날부터 화진포(花津包) 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고 하여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이라고 불렀다.
'응봉' 정상의 위치 표시도
'응봉' 정상의 위치 표시도 맞춰보기 놀이중!!!
날씨가 맑고 좋으면, 좌측 멀리로 '금강산 비로봉'이 조망된다는데
날이 안좋아서 많이 아쉽다.
가야할 해파랑길 땡겨보고~
'평화 바람길' 안내판
'응봉'의 사각정자 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에너지바 1개 먹으면서 에너지와 당 보충하고~
'화진포'와 '응봉' 일원을 2015년 12월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 부부가 방문하였다는 안내판 바라보고~
(06:57)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휴식하다
통나무계단으로 내려선다.
이후 이어지는 등로는 '응봉'에서 '화진포의 성'까지는 '강원도 명품길' 중
세번째인 '화진포의 성 숲길' 1.7km 구간이다.
(07:00) 탐방로 무인계수대를 지나고~
(07:01) '화진포길'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이정표가 가르키는 '화진포의 성' 방향으로 직진이다.
이 포장도로는 얼마 전에 지나왔던 '화진포 해맞이교' 인근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군용도로로 일반 차량은 들어올 수 없다.
(07:02) 데크 전망대를 지나고~
데크 전망대에서 '화진포' 바라보고~
'경포호'나 '영랑호'와 같은 동해안의 다른 석호와 달리 '화진포'는
호수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하천이 전혀 없다.
그래서 염도도 높고 호수지만 민물고기는 없고 바다 물고기만 잡힌다고 한다.
그렇지만 화포리, 원당리, 죽정리, 초도리 등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과
농경지에서 흘러드는 오염 물질을 막지 못하면 청정한 화진포를 지키지 못하므로
마을마다 습지를 만들어 오염 물질이 바로 호수로 가지 않도록 하고
호수의 물과 바닷물이 섞이도록 하여 수질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화진포호 둘레길을 걸으면 금강 습지, 화포 습지, 죽정 습지, 초도 습지를 차례로
만날 수 있는데, 고기들의 대피소 역할을 하는 생태습지의 역할과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07:06)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데크탐방로를 만나고~
좌측 아래로 '화진포길' 포장도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07:08) 포장도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고~
데크탐방로를 벗어나 이름하여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으로 진행이다.
(07:11) 사각평상과 소파형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07:14) '↑화진포의 성 500m' 이정표를 지난다.
(07:18) '↑화진포의 성 300m' 이정표를 지나고~
이후 완만한 소나무 숲길 능선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다,
(07:23) 벤치가 있는 봉우리에서 데크 계단길을 길게 내려서면~
(07:25) '화진포의 성' 서편 입구 도착이다.
화진포의 성(城) -김일성 별장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길 280(거진읍 화포리 606)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당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대신해 100마일 남쪽인 화진포를 대체 휴양지로 제공했다.
선교사로서 당시 휴양지 이전 실행위원이었던 셔우드 홀(Sherwood Hall) 박사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건축가인 베버(H. Weber)에게 바다에 면한
절벽 위에 작은 별장을 짓게 했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베버는 1938년 회색 돌로 지은 원통형 2층 건물을
현 위치에 지었는데, 마치 유럽의 작은 성(城)을 닮은 멋진 건축물이었다.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렸으며,
이곳은 한국 전쟁 이전에 북한 지역으로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운영하였고, 1948년부터 6.25남침 이전까지는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하계휴양을 했던 곳으로써 당시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화진포의 성 건물은 1938년에 건축되었다가 6.25전쟁 중 훼손되어 1964년 육군에서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였으며, 1995년 육군 복지단에서 개·보수하여 장병 휴양 시설로
운영해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을 용도 변경, 개보수하여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새롭게 단장된 화진포의 성은 내부에 김일성의 정체, 독재체제 구축 과정, 한국전쟁 도발,
그리고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도발 만행 등 북한 관련 자료를 패널식으로 게시하고 있으며,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 등 관련 자료 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화진포의 성'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소련군 제25군 정치 사령관
리베데 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김정일(당시 6세 미만)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은 09:00부터 시작되는데, 지금시간이 07:26
남은 1시간30분을 기다릴수가 없어 오늘은 패스하고 해파랑길 숙제로 남긴다.
'화진포해변' 앞 바다의 '금구도'를 바라보고~
금구도(金龜島)
고성군 현내면(縣內面) 화진포(花津浦) 앞바다에 위치한 무인도이다.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섬의 형상이 거북이와 같이 보여 금구도(金龜島)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섬에는 화강암으로 축조된 2중 구조의 성벽과 보호벽 · 방파성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려 연대기에 의하면 394년(광개토대왕 3)에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하였으며,
광개토대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축조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414년(장수왕 2) 9월 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광개토대왕릉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계림(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문자명왕 2년에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望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구려의 지명 중 '홀(忽)'이 붙은 곳은 왕릉 혹은 왕비릉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 더해져
과거 '가라홀(加羅忽)'과 '달홀(達忽)'로 불리었던 이 지역에 광개토 대왕 릉이 있다는 설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현재 있는 거북섬 성의 구조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섬의 정상부인 약 45m 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하여 석축으로 축조하고, 성벽 상단은
삭토하여 환도를 개설한 흔적이 200m 가량 뚜렷이 남아 있으며, 산정 부근의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는 사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 북쪽의 암벽 저지대는 잔돌 끼움 쌓기의 협축법으로 석축한 보호벽(城)과 방파성(防波城)이
약 60m, 높이 170~230cm 3개 구간이 남아있다.
앞으로 고성군에서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관계 전문가의 고증을 통해 사실이 확인되면
원형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
(07:31) '화진포의 성'에서 내려서면 주차장 입구 좌측 편에
'화진포' 안내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해파랑길 안내 표시가 붙어있다.
'사랑의 열쇠' 포토존
고성의 명물이었던 '명태' 조형물 포토존 & 명태 안내판
예전 '고성'의 '거진', '간성' 해안은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가득할 정도로 '명태'가 많았는데,
치어 방류 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바다에서 '명태'는 멸종 위기종이다.
원양산 '명태'와 구별하여 '진태', '간태'라고도 불린 '고성 명태'의 명성답게 고성에서는
매년 '명태 축제'도 열린다.
황금거북 포토존
'화진포 해변' 바라보고~
그렇게 '화진포해변'의 각종 조형물들을 살펴본 뒤,
'이기붕 별장'도 보러갈려고 했으나 09:00부터 관람이 시작되므로
남은 시간을 기다릴수가 없어 오늘은 패스하고 해파랑길 숙제로 남긴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길 280(화포리 530-1)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서, 해방 이후에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후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며,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개수해 운영하고 있다.
박마리아는 생전에 인근 고성군 대진읍에 대진교회를 세우고
자주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별장 내 집무실과 응접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주전자, 촛대, 문갑 등이 보관돼 있다.
이기붕(李起鵬, 1896 ~ 1960)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송(晩松), 효령대군(孝寧大君) 보(示甫)의 17대손이다.
1896년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출생,
2년 후 서울로 이주하여 종로구 사직동에서 살았다.
부친은 이낙의(李洛義)이며 증조부는 이회정(李會正)으로 예조판서를 지냈다.
부인 박(朴)마리아와의 사이에 강석(康石)·강욱(康旭) 두 아들을 두었다.
1915년 서울의 보성학교(普成學校)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를 다녔지만 중퇴하였다.
학창 시절 염상섭, 김도연 등과 친분이 있었으며 그의 종고모부인 조규수의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이 강했다.
선교사 무스(J.R. Moose)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성서 번역에 참여하다가
당시 그의 지인과 동기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이에 자극받아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1916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식당과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대한인국민회 민족 광복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고학으로 아이오와 주(州) 주립대학인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하였다.
시카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뉴욕으로 이주하여 허정(許政) 등과
미주 교포신문인 《삼일신보(三一新報)》 발간에 참여하였고, 유미 한인 산업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인들의 산업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4년 귀국하여 미국에서 만난 박마리아와 결혼하였다.
이후 허정과 조선흥업주식회사를 설립, 충북 영동의 광산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사업은 실패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보수적 성향의 우익 정당인
한국국민당에 참가하여 정치활동에 가담하였다.
이후 조선민족당과 통합하여 한민당을 창당하는 발기인이 되었다.
미 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청에 들어가 군정 재판장의 통역관으로 활동하였다가
민주의원 의장 이승만의 비서로 발탁되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승만이 국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승만의 신임을 받았다.
1946년 대한 기독청년회·대한적십자사 등의 이사를 역임하면서 사회적 발판을 다졌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비서로서
정치적 기반을 굳혔고, 1949년 서울특별시 시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1951년 4월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 신성모(申性模) 국방부장관 시절에 발생한,
군부 고급장교들의 부정부패로 군인 약 90,000명이 사망하는
‘국민방위군(國民防衛軍) 사건’을 수습했다.
1951년 12월 이승만의 지시로 이범석(李範奭)과 함께 자유당(自由黨)을 창당,
세칭 발췌 개헌안 통과에 일역을 담당하였다.
2년 후 세력을 축출하고 중앙위원회 의장에 취임, 실권을 장악하였다.
1952년 대한체육회장이 되었고, 1953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진출하였으며, 한미재단 한국사무소장 직도 역임하였다.
1953년에는 이승만의 자유당 내 이범석의 족청계(族靑系) 제거 지시에 따라
자유당 총무부장을 맡아 박용만 조직부장 등과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같은 해 12월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올라 자유당의 제2인자가 되었다.
1954년 3월에 개최된 제5차 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자기중심의 당편제(黨編制)를 완료,
5·20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무소속을 포섭하여 재적 3분의 2를 넘는 137석을 확보하였다.
같은 해 제2대 민의원 의장에 선출되었다.
자유당의 헌법개정선 확보를 바탕으로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초대 대통령의
중임(重任) 제한의 철폐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 개헌선에서 1명이 미달되어
일단 부결되었으나, 바로 다음날에 사사오입(四捨五入)을 통해 이를 번복,
가결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같은 해 인하 공과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56년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부통령에 입후보하였다가 낙선하였고,
그 해 제3대 민의원 의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경기도 이천 선거구에서 제4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고 제4대 민의원 의장이 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공천으로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4·19혁명으로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붕괴되고, 이기붕 일가는 경무대(景武臺) 관사
36호실에 피신하여 있다가 4월 28일 당시 육군 장교였던 장남 강석이 권총을 쏘아
전 가족이 자살하였다.
그가 살던 서대문의 집은 4·19혁명 학생 도서관이 되었다.
'화진포의 성'에서 내려선 방향에서
좌측의 '생태박물관' 방향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07:34) 넓은 주차장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보면, 고성군 종합관광 안내도와 화진포 안내도,
지나온 '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07:37) '화진포 생태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고~
화진포 생태 박물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길 278
강원도 고성지역의 최대 지정관광지인 화진포 국민관광지에
부지 1,354㎡, 연면적 1,487.6㎡, 지상 3층 규모로 2013년 6월 개관되었다.
고성 화진포 국민관광지 내에 위치한 화진포 생태 박물관은
층별 3개 전시관에서 각종 동물의 박제와 골격, 화석류와
영상·실물모형 등을 통해 화진포호의 생성과정, 동·식물 생태계 등을
관찰할 수 있으며 신재생 에너지와 지구환경 관련 영상도 관람,학습할 수 있다.
1층의 지역 생태관은 동해안 석호 생태계의 특징과 석호 형성 과정,
화진포에 서식하는 동물, 어류, 천연기념물을 소개하고 있다.
2층의 생태계 체험관은 각종 동물(척추동물) 골격 전시, 포유류 박제물 전시,
조류의 서식지와 특징을 전시하고 있다.
3층 기후 환경관·기획 전시실에는 기후 변화 영향 및 생태계 변화-해수면 상승,
가뭄 및 사막화, 지구 온난화-,100여 종의 화석 및 별에서 온 운석 전시,
기념품 및 고성 특산물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다.
'화진포 생태 박물관'은 09:00부터 시작되는데, 지금시간이 07:37
남은 1시간23분을 기다릴수가 없어 오늘은 패스하고 해파랑길 숙제로 남긴다.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황우루 작사·작곡, 이 시스터즈 노래-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
꽃구름이 흘러가는 수평선 저 너머 / 푸른 꿈이 뭉게뭉게 가슴 적시면 /
조개껍질 주워 모아 마음을 수놓고 / 영원토록 변치 말자 맹세한 사람
은물결이 반짝이는 그리운 화진포 / 모래 위에 새겨놓은 사랑의 언약 /
흰 돛단배 흘러가는 수평선 저 멀리 / 오색 꿈이 곱게곱게 물결쳐오면 /
모래성을 쌓아놓고 손가락 걸며 / 영원토록 변치 말자 맹세한 사람
고니와 털게, 명태. 괭이갈매기, 산양 등 생태조형물 바라보고~
(07:46) '화진포길' 도로를 만나고,
해파랑길은 우회전하여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방향으로 진행이다.
'화진포' 호수 바라보고~
화진포(花津浦)
바다와 접해있는 호수로서 둘레 16km, 면적 72만평의 동해안 최대의 석호(潟湖)로
중평천(仲坪川)과 월안천(月安川) 등이 호수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이룬다.
호수와 바다 사이의 백사장이 화진포해수욕장인데, 바다의 기암괴석은 태고의
신비스런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얕은 수심과 쪽빛 바다, 수천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의 백사장은 모래 빛이 하얗고 감촉이 부드러운 명사(鳴砂)로 연중 많은
피서객이 찾는 동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호수와 바닷물이 교차하여 연어, 숭어, 도미 등 각종 담수어족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호수 주위에 여름이면 고성군의 군화(郡花)인 해당화가 만발하여 예전에는 '화담'으로 불렸는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담은 맑은 물에 달이 빠진 듯하다"라고 읊었으며, 1631년 당시
간성현감이었던 택당(澤堂) 이식(李植)은 화진팔경으로 제1경 월안풍림(月雁楓林)으로부터,
제2경 차동취연(次洞炊煙), 제3경 모화정각(茅花亭閣), 제4경 풍암귀범(楓岩歸帆),
제5경 장평낙안(長平落雁), 제6경 평사해당(平沙海棠), 제7경 구룡치수(九龍治水) 혹은
모운종성(茅雲鐘聲), 제8경 금구농파(金龜弄波)를 청사에 게첨, 주민들에게 알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안내판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호수의 빼어난 경치에 심취하여 죽정(竹亭),
모연(慕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화진팔경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화진포 설화-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질이 고약했다.
어느 날 금강산 건봉사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곡식 대신
소똥을 퍼 주었고 스님은 소똥을 받아들고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에게 시주하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나를 따라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꽝"하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가 나자 그만 뒤를 돌아 보고 말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시아버지가 살던 집과 전답이 전부 호수가 되고 말았다.
스님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애통해 하던 며느리는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 그 고을에는 큰 홍수가 나고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 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는 이화진의 화진에서 유래되었다.
이 설화를 형상화 한 '화진포 설화 여인상 동상'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입구 아래 호숫가에 세워져 있다.
그렇게 '화진포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화진포' 건너편으로 '역사안보전시관' &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바라보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화진포 별장 및 기념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길 33(현내면 죽정리 47-1)
화진포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재임 시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에 신축된 뒤 1961년에 폐허가 되었다가,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단층 석조 건물로 면적은 89.25㎡이다.
1999년 전시관으로 복원되었다.
별장의 내부는 침실과 집무실로 쓰이던 방 두 개와 거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대통령 부부가 사용한 침대·낚시 도구·의복·안경·장갑·여권·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단출한 가구와 소박한 물건들 그리고 생전의 사진들로
그 당시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승만 별장은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별장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한데 어우러진 화진포 두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까닭에 화진포의 세 별장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용히 바깥 풍광을 즐기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평온하고 조용한 별장이다.
별장 뒤로 새로 지어진 건물은 이승만의 친필 휘호와 의복, 소품, 관련 도서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다.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넓은 호수, 명사십리와 청정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및 기념관,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등 세 곳을 포함한다.
동해안 최 북단인 이곳은 주변 경관이 수려해 과거 분단 이전과 이후 남과 북의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이 별장으로 이용한 자취가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과 박마리아, 북한의 김일성 등 한국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요 정치가들이 별장을 지어 여름을 지낸 곳으로 유명하다.
역사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 재건을 거듭해 지금은 역사 안보전시관으로 개축,
그들의 발자취와 생활상을 전시·관리하고 있다.
주변에 화진포 해수욕장 및 호수, 등산 코스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매우 많은 곳이다.
'역사안보전시관' &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은 09:00부터 시작되는데, 지금시간이 07:48
남은 시간을 기다릴수가 없어 오늘은 패스하고 해파랑길 숙제로 남긴다.
(07:53) 폭 12m, 길이 60m인 '화진포교'를 좌측으로 보면서 우측으로 진행하는데,
'화진포교'를 건너 250m 거리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이 있다.
'DMZ 평화의길' 패널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화진포' 호수 바라보고~
그렇게 '화진포'를 바라보니 아까 '매봉'에서 보는 풍경과 다르게
아래에서 보는 '화진포'는 규모가 광대한데, 서울 여의도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08:02) '화진포해수욕장 캠핑장 주차장' 입구를 통해
'화진포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들어가니 두루누비 앱이 코스를 벗어났다고 맹렬하게 울어댄다.
'화진포해수욕장' 백사장 포토존
(08:08) 다시 '화진포해수욕장' 캠핑장 주차장 입구로
되돌아나와 '금구교'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거진읍 화포리'에서 '현내면 초도리'로 바뀐다.
'금구교' 교량 머릿돌 위에는 '화진포'에 겨울에 찾는다는 천연기념물 제201-1호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 급으로 지정된 '큰 고니'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금구교'를 건너면서 좌측으로 '화진포' 호수 바라보고~
'금구교'를 건너면서 우측으로 '화진포' 해변의 기수역 바라보고~
화진포 해변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해변 중의 하나로 백사장은 길이 1.7km,
넓이 약 70m, 수심 1~1.5m이다.
오랜 세월 동안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나자이트 성분의 화진포 해변은 눈부시도록 희다.
파도가 해변을 쓸고 지날 때마다 ‘차르륵 차르륵’하는 맑은 소리를 낸다.
'모래가 우는소리를 낸다'라고 해서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진포 해변을
「명사(鳴砂)」라 명명했는데, 명사십리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고성군의 시범 해수욕장으로 샤워·급수·주차 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렇게 '금구교'를 건너자마자 해파랑길은 '화진포길' 도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방향이 바꿔지는데, 앞쪽에는 '화진포 해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화진포해양박물관(Hwajinpo Oceanographic Museum , 花津浦海洋博物館)
조개류와 갑각류·산호류·화석류·박제 등 해양 관련 유물 1,500여 종 4만여 점을
전시하는 패류박물관과 수중생물 125여 종 3,000여 마리를 각각의 서식 환경과
컨셉에 따라 보여주는 어류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패류박물관과 어류전시관은 해저터널을 뚫어 연결했다.
3층 규모의 수량 300톤이 들어가는 대형수족관을 비롯해, 중, 소규모 수족관 등
모두 34개의 수조를 갖추고 있다.
주요 볼거리로는 ①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② 생태를 자연 그대로 재현한 자연 석호 ③ 고성군의 명물 명태 전시
④ 살아 있는 산호섬과 열대어의 세계 ⑤아쿠아리움 관람의 하이라이트인 180도의 해저터널
⑥ 화진포, 바다의 하루, 신비한 바닷속 여행을 테마로 한 입체영상관 등이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94-1 화진포관광지구 안에 있으며,
김일성별장·이승만별장 등이 있는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과 통일전망대가 근처에 있다.
'화진포 해양박물관' 도로 건너기전 좌측 소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품과 '화진포에서 맺은사랑' 노래비 바라보고~
(08:14) '화진포 해변' 우측 해안가로 들어간다.
(08:16) '화진포 광장' 끝 '화진포 해변' 데크전망대 옆에는 '화진포의성'아래
'화진포 해변'에서 본 '금구도에 광개토대왕릉이 있다'라는 똑같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7번국도' 노래비
'화진포 해변에서 하늘로 이어주는 문' 포토존
'화진포 해변 사랑마크' 포토존
(08:19) '화진포 해변'에서 '초도항길' 도로를 따라 '초도항'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초도항'은 '성게' 주산지로 조형물도 '성게' 모양이다.
'금구도' 바라보고~
어렴풋이 거북 형상으로 가늠되기도 한다.
지나온 '화진포 해변' 뒤돌아보고~
'초도항' 방파제 바라보고~
'초도항길' 도로는 인도가 없고, 길도 구불구불하므로 주의해서 걸어야 하는데,
사각지대에서 걷지 않도록 주의해서, 차들이 보행자를 잘 볼 수 있는 위치로 걸어야 한다.
(08:33) '초도항' 입구를 지나는데,
해파랑길은 '초도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초도항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 위치한 아주 작은 어항으로 성게 주산지로 유명하다.
초도어촌계가 개최하는 축제는 지역 특산품인 성게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성게 맨손 잡기를 비롯해 성게 높이 쌓기, 성게 무료 시식 등 성게를
활용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
또 축제 기간에 한해 개방되는 초도항 앞 무인도인 금구도에 들어가 광개토 대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성곽을 살펴보고 해변의 해양생물을 관찰해 보는 금구도 체험을
비롯해 가두리 낚시와 배낚시 체험, 어선 무료 승선 체험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준비되고 있다.
(08:33) 진행 방향으로 '초도해변'이 눈에 들어오고~
(08:37) '초도1리 해변'이 시작된다.
초도1리 해변
화진포 해변과 인접한 간이해수욕장으로, 길이 500m,
넓이 21,487m²(6,500여 평)의 깨끗한 백사장을 끼고 있다.
지난 1995년도에 개장된 이곳은, 조용한 가족단위 피서를 원하는
피서객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곳으로 마을의 민박 등
각종 숙박시설을 이용하기 편리하고 인근 초도항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활어회와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이후 '화진포 정보센터'와 '송파농협 가족쉼터'를 지나고,
좌측 위 '한나루로' 도로에 위치한 '초도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08:41) '초도2리 해변'이 시작된다.
초도2리 해변
초도1리 해변과 인접하고 있는 해변으로, 길이 200m,
넓이 5,950m²(1,800여 평)의 아담하고 깨끗한 해변이다.
평상시에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관할 군부대의
협조로 한시적으로 개장된다.
초도1리 해변과 마찬가지로, 지난 1995년도에 개장된 이래
가족끼리 조용한 피서를 원하는 피서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이제까지 이어오던 '초도항길'이
'현지사 고성분원' 사찰 도착전에 '대진항길'로 도로명이 바뀌고~
(08:50) '현지사 고성분원' 사찰을 지난다.
이후 '대진항길'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08:56) '대진항 등대'가 어느듯 지척으로 다가온다.
(08:59) '대진어촌계 활어회센터' 앞을 지나고~
(09:02) '대진항 해상공원'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대진항'으로 이어지지만
잠시 해파랑길을 멈추고 '대진항 해상공원'을 보러간다.
대진항 해상공원
우리나라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에 있는 바다위 공원이다.
별빛은하 해상공원라는 별칭이 있는 이곳은 2016년에 조성된 공원으로,
입구에는 고성에서 많이 잡히는 문어를 테마로 조형물이 서 있다.
그 옆으로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테트라포트가 바다에 떠 있고,
바다를 향해 Y 자 형태로 뻗어나간 해상데크가 있다.
해상데크 입구쪽은 바닥이 뚫린 철망 형태로 아찔한 재미를 선사한다.
중간에 돔 형태의 그늘막 쉼터가 있고 양쪽으로 데크가 갈라진다.
왼쪽으로 가면 빨간 방파제 등대를 마주하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잔교를 지나 포토존이 나온다.
포토존에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돋이 조형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조형물뿐만 아니라 뒤로 보이는 대진항과 마을 풍경이
최고의 사진 배경이 되어 준다.
문어를 테마로 한 조형물 포토존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테트라포트가 바다에 떠 있고~
바다를 향해 Y 자 형태로 뻗어나간 해상데크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돋이 조형물 포토존
'대진항 방파제' & '대진등대' 바라보고~
그렇게 주마간산 식으로 '대진항 해상공원'을 살펴보고 되돌아나가
(09:15) '대진항' 방풍 패널 벽 옆으로 진행하고~
'대진항'을 우측에 두고 'C자' 형태로 길게
부두길을 따라 진행이다.
(09:24) '대진항' & 방파제 바라보고~
대진항(大津港)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縣內面)에 있는 1종 어항으로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항구이다.
화진포해변에서 초도항과 초도해수욕장을 지나 북쪽으로 2km 정도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진항을 만난다.
대진항은 북 위 38°30′. 그러니까 삼팔선이라 부르는 휴전선이 곧게 그어졌다면
북한 땅이 되었을 곳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세로로 접으면 서해 최북 단 섬인 백령도에서 북쪽으로 50km나 떨어진
황해남도 과일군이 대진항의 대칭점이 된다.
대진리(大津里)의 남쪽은 초도리(草島里)·철통리(鐵桶里)와, 북쪽은 마차진리(麻次津里)와
접하는데 현내면의 면 소재지이다.
1920년에 처음으로 어항(漁港)이 축조되었고, 1935년 동해 북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원활해짐에 따라 명태·청어·정어리 등을 잡는 큰 어항으로 발전하였다.
1종 어항으로서 특히 명태가 많이 잡히는 항구로 유명하다.
지금은 예전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70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드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어항이다.
인근 바다에서는 넙치·문어·청어·명태·정어리·석게류가 많이 잡히고,
가리비·멍게·전복 양식도 활발하며, 미역·다시마 등 해조류도 많이 생산된다.
아침이면 밤새 잡은 수산물을 실은 어선들이 항구로 들어와 위판을 하는데, 싱싱한 활어를
싼값에 구입해 즉석에서 맛보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주변 볼거리로는 남한 최북단 마을 명파리(明坡里), 고성 통일전망대, 명파해수욕장·
마차진해수욕장·화진포해수욕장·초도해수욕장, 역사안보전시관, 화진포 생태 박물관·
해양 박물관 등이 있다.
(09:26) '대진항 수산시장'을 지나고~
(09:27) '속초 해양경찰서 대진출장소' 앞을 지난다.
(09:28) 이후 해파랑길은 '대진등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입구 '소공원'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며 배낭안 남은 음식 떨이하며 7분 쉬었다가 간다.
(09:37) '한나루로4길' 도로가 시작되는
'대진등대' 갈림길에 도착하고~
'대진등대' 갈림길에서 해파랑길 이정표는 좌측 '한나루로4길'
도로를 따라 내려가라고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대진등대'를 안 가볼 수가 있나???
우측 오르막길 도로를 따라 '대진 항로표지 관리소' 정문으로 간다.
(09:38) '대진등대' 바라보고~
(현재 '대진등대' 주위가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입구가 통제되어 전망대에 올라갈 수가 없다.)
대진등대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고, 불빛은 12초 간격으로 깜빡이며,
약 37km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또한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며
환상적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시야가 좋은 날에는 멀리 해금강은 물론이고 북한 지역까지 바라볼 수 있다.
대진등대는 설치 당시 1개의 유인등대와 또 다른 보조 등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대진등대가 설치된 목적이 어로한계선을 표시하는 도등
(2개의 등대를 연결하는 선이 어로한계선)의 역할을 하기 위해 1973년 1월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1년 어로한계선을 북쪽으로 5.5㎞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도등의 역할을 마치고 1993년 4월 1일 일반 등대로 전환되었다.
대진등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동해안 최북단의 무인등대인 '저진도등'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저진도등은 2개의 등대를 연결한 선이 어로한계선임을 표시하면서 어선들이
월북 조업하지 않도록 안전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저진도등의
전도등은 35m, 후도등은 20m의 높이로서 홍백 사각의 콘크리트 등대이다.
현재 군사, 안전상의 이유로 전망대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09:41)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한나루로4길' 도로를 따라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09:42) '대진1리' 해수욕장이 시작되고,
진행 방향으로 '마차진리'에 위치하는 '고성 금강산콘도'가 잘 조망된다.
(09:45) 등대 형상의 환기구를 단 화장실을 지나고~
(09:47) '마차진리'의 '고성 금강산콘도'가 점점 가까워진다.
(09:52) '무송대' 바라보고~
무송대(茂松臺)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바닷가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으니
전에는 송도(松島)라고 하였으며 송림이 무성하고 모래길(沙路)로 육지와 이어지고
바닷물이 불으면 섬에 들어갈 수 없으며 파도가 치면 모래가 스치는 소리가 난다(沙鳴).
현재 이 섬 주위는 자정에 자연적으로 움직여 갈라진다는 자마석(子磨石)이 있다.
무송정(茂松亭) 또는 무선정(舞仙亭)이라고도 부르는데 뱀이 없다고 하며
주위에는 잡어, 해조류와 방게가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09:54) '마차진 버스종점'을 지나는데,
도로명이 '금강산로'로 바뀐다.
'대진1리'에서 '마차진리'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고성군 시내버스' 종점이 있다.
'마차진 버스종점'에서 '속초'까지 왕복운행하는 버스종점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까지는 약700m의 거리이기 때문에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갔다가 대중교통으로 '거진' 및 '속초'까지 돌아갈수가 있다.
또 이곳에서 '명파리'로 가는 미니버스도 운행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09:55) '마차진해변 300m' 전방을 알리는 교통 표지판을 지나고,
'금강산콘도'가 지척이다.
2003년 2월부터 '금강산' 육로 관광을 시작했는데 육로 관광을 위한
집결지가 바로 '금강산 콘도'였다.
2008년 북한군에 의한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2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금강산'에 다녀왔다고 한다.
캄캄한 새벽, 통제선을 넘어선 한 여성의 죽음은 나비 효과를 일으켜
북을 통하는 모든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 공단이 폐쇄되고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남북이 으르렁 거리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랴!!!
이후 해파랑길은 '금강산콘도'를 우측으로 한바퀴 빙돌아
해변길로 이어간다.
그렇게 '금강산콘도'를 지나는데,
앞쪽의 '무송대' 섬까지 백사장이 이어져 있다.
마차진 해변(麻次津海邊)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에 있는 해변으로 화진포 해변에서
북쪽으로 1.5km, 통일전망대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있다.
7번 국도변에 있어 쉽게 눈에 띄며, 백사장 길이는 240m이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간이해변으로 수심이 얕고 주변 경치가 뛰어나다.
해수욕장과 백사장이 사계절 운영되지만 군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저녁 8시 이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북쪽 해안이 무송대라 불리는 섬으로 이어지면서 활처럼 휘어져
무송정해수욕장으로도 부른다.
해안에 솟아 있는 무송대는 예전에는 송도라 불리던 곳으로 군작전 지역이라
들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오솔길이 있고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는 바위섬이다.
주변에 통일전망대와 화진포해변·대진항 등이 있다.
(10:03) 다시 '금강산로'로 나가서
'마차진리 버스정류장'을 보고 우회전하고~
'마차진해변'을 바라보고~
(10:08)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GS주유소'를 지난다.
그렇게 'GS 주유소' 앞을 지나 좌측으로 휘어지면
해파랑길 49코스 종점인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통일안보공원)' 앞에 도착이다.
(10:10)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통일안보공원)' 정문 우측에 세워져 있는
해파랑길 4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오늘 1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49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고성 49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해파랑길 고성 49코스를 종료한다.
이후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내부 살펴보고,
꿀떡 2개 구입하여 에너지와 당 보충하고~
잠시 휴식후 연이어 해파랑길 50코스 종점을 향해
도보로 갈수있는데까지 갔다가 ('제진검문소' 앞까지)
미리 예약되어있는 택시기사와 만나,
다시 이곳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로 와서
신고서를 작성하고 통일전망대로 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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