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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남파랑길 고성32구간

답사일자: 2023.5.27

코스: 부포리.부포사거리(시점)-선동.버스정류장-무선저수지-보현식당-수태산.등산로 입구

-수태재-자란만.조망쉼터-충주석공.가족묘-학동마을.최영덕 고가-아천.최재호 선생 생가

-하일초등학교-임포항(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4.35km (두루누비기준 14.1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

▶ 갈때 : 경남 양산.내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후,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성行 시외버스를 타고

남마산, 진동. 배둔을 거쳐 고성여객자동차터미널에 하차

봉발行 농어촌 버스를 타고 부포사거리/내부포버스정류장에 하차, 트레킹시작

▶ 올때 : 고성 32구간 마치고, 33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32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남파랑길 고성 32코스 궤적

'부포사거리'

'내부포마을' 바라보고~

'내부포마을' 입구 한켠에 선체로 준비해온 단팥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답사준비를 한 후 두루누비&트랭글 앱 켜고 (08:45) 남파랑길 32코스를 시작이다.

남파랑길 고성 31·32코스 안내판

남파랑길 고성 31·32코스 안내판은 '부포사거리'의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

'고성군 지정게시대' 우측에 세워져 있고~

32코스 시작점 나무패널은 고성군 지정게시대 좌측 전신주에 부착되어 있다.

'33번 상정대로' 우측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진행하다,

좌측으로 '내부포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08:49) '문수암 ←600m 전방' 교통안내판을 지난다.

(08:51) '상동천'을 가로지르는 시멘트다리를 지나고~

상동천(上東川)

경상남도 고성군 상리면 부포리의 대곡산(524.9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상리면 일대를 흐르다가 사천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낙동강 권역 낙동강 남해권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사천강의 제1지류이며,

소하천인 서정골천·새땀천·평땀천·무선천·안시골천·오산천 등을 지류로 포함한다.

하천의 연장은 5.08㎞, 유로연장은 6㎞, 유역면적은 22.98㎢이다.

상동천(上東川)이라는 이름은 하천이 상리면(上里面)의 동쪽에 위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하천은 대체적으로 수지상(樹枝狀)의 형태를 띠며, 동쪽으로는 고성천과 대독천,

북서쪽으로는 사천강, 북쪽으로는 영천강 유역과 경계를 이룬다.

하천을 따라 국도 제33호선이 지난다.

(08:53) 합천 91km, 진주31km, 사천18km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계속해서 '33번 상정대로' 우측 아래로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08:54) '구미마을 200m ↗'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좌측으로 '33번 상정대로' 밑을 지나는 굴다리를 보면서, 계속 직진하면,

'부포리'에서 '망림리 구미(龜尾)마을'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망림리(望林里) 구미(龜尾)마을

앞산의 형세가 거북이와 같고 마을의 위치가 거북이의 꼬리 부분이라 하여

거북 구(龜), 꼬리 미(尾) 자를 붙여 구미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의 위치는 고성읍에서 진주, 사천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1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미마을은 옛날에 산 정상(頂上)에 깃발을 꽂았다는 "깃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마을이다.

마을 앞들은 경지정리가 되었으며 수원도 풍부하고 토질도 비옥한 지대이다.

(08:57) 좌측 '33번 상정대로' 도로변의 '서나무정→' 표지석과

'구미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우측 논 일대에 모내기가 끝난 모습이 참 보기좋은데,

내 피에 농사꾼의 DNA가 흐르고 있는가보다. ㅎ~

(09:03) 또 다른 '구미마을 200m ↗'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잠시후에 좌측으로 '33번 상정대로' 밑을 지나는 굴다리를 하나 더 지난다.

(09:07) '구미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정면 우측에 '고성 패밀리 캠핑장'이 위치하고 있다.

(09:08) '구미마을' 입구 갈림길에서 남파랑길 이정표(←무선저수지 1.4km)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구미마을 이야기' 패널이 세워져있다.

(09:11) 횡단보도를 통해 '33번 상정대로'를 건넌뒤,

'선동 버스정류장'과 '선동마을' 표지석 앞을 지나 좌측 '무선리 선동마을'로 들어간다.

(09:12) '무선3길' 도로를 따라 새 고성농협 '선동마을' 창고 건물을 지나는데~

 

앞쪽의 '무이산(武夷山, 545.6m)' 정상부에 구름이 가득하다.

(09:15) '2차선' 아스팔트 '무선2길' 도로와 만나고,

앞으로 3.7km에 이르는 인도가 없는 위험 구간을 지나게 된다.

(09:17) 우측으로 '선동마을 경로당'을 지나는데,

'성동마을 유래' 패널이 세워져 있다.

무선리(武仙里) 선동(仙洞)마을

옛날 무이산(武夷山) 덕디로 되어 있었다.

청량산(靑凉山, 무이산을 불가에서 부르는 이름) 밑 마을에서 신령님과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신선 선(仙) 자를 따서 선동이라 하였으며,

마을 뒷산이 무이산이라 "무리산 마을"이라고 고을 원님이 지어 주었다고도 전하고 있다.

선동마을은 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무이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토질은 비옥하지 못하나 인삼 재배의 적지로 1980년대부터 고성 인삼을 재배하고 있으며,

신라 성덕여왕 때 창건된 문수암이 이 마을의 무이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09:18) 좌측의 '이정자' 사각 정자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며 의관정제 다시하고~

(09:23) '무선1교'를 건너가는데,

오늘따라 이 도로에 차가 많이 지나 다닌다.

가만히보니 아!!! 오늘이 석가탄신일이다.

아하~ 산위에 있는 '보현암' & '문수암'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차량이구나.

(09:29) '무선저수지'

저수지 앞에는 '저수지 개보수 사업'을 약 3년에 걸쳐 진행,

2000년 말에 완공하였다는 기념비가 서 있다.

(09:31) '이련정가든'과 '문수식당'을 지나는데~

우측 '문수식당' 앞 '무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에,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녀석... 바위틈새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았다.

(09:36) 호반그린모텔 입구 'ㅓ자' 갈림길에서 남파랑길은

'무선2길'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고~

이후 '보현식당'이 있는 고갯마루까지는

계속해서 '무이산' 좌측 산허리를 따라 돌아 오르게 된다.

 

 

 

(09:46) 좌측으로 '수류운재관(水流雲在館)'이란 음식점 입식 간판을 지나는데,

좌측의 계곡은 '무수골'이다.

(09:48) 도로 우측으로 '보현식당' 선전 간판을 지나고~

'백화등' 이 녀석!!! 오랫만에 보네~ ㅎ

(09:55) 도로 좌측으로 돌탑2기를 지나고,

이후 급경사의 지그재그 '무선2길' 도로가 시작된다.

그렇게 진행하다 뒤돌아보니 이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동양 최대의 금불상이라는 '보현암 약사여래불'이 조망되고~

'보현암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상'은 동양최대의 금불상이라고 한다.

'무이산'과 '수태산'아래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약사여래불상'이다.

 

(10:11) 남파랑길 사각 패널이 달려있는 전봇대 옆을 지난다.

(10:14) 좌측으로 '보현암'과 우측으로 '문수암'이 갈리는 입구를 지나는데,

'南無文殊菩薩(나무문수보살)'과 '南無普賢菩薩(나무보현보살)' 지주석이 서 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불타(佛陀)의 이(理), 정(定), 행(行)의 덕(德)을 맡아보는 보살(菩薩)이다.

(10:15) '문수암 보현식당' 앞을 지나고~

이곳 '보현식당'은 '사찰 된장찌개'가 유명하여 여러 방송 채널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곳으로 '무이산', '수태산' 등산객이나 '문수암', '보현암'을

들리는 불자들이 애용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이후 '보현식당' 앞을 지나 막다른 'T자' 갈림길에서 우측 '문수암' 방향으로

몇 발자국 진행하면 좌측으로 '수태산'과 우측으로 '무이산'이 갈리는 갈림길인데,

(10:17) 남파랑길은 '수태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아닌

가운데의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좌측의 '수태산' 우측 산허리를 감아도는

임도를 따라 길게 이어간다.

찔~~레 꽃 향 기 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10:24) 우측 건너편으로 '무이산' 정상이 잘 조망되는 곳인데,

오늘은 날씨가 영 안좋아~ ㅠㅠㅠ

하늘에서 별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곳을 지나고~

이후 은근히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우측 아래 나뭇잎 사이로 '무선리 무선마을'이 가늠되고,

이후 임도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면서 임도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10:36) 수태산 5번 등산로 이정표(←수태산 1.0km, 상리 연꽃공원 1.9km→)와

사각정자 쉼터를 지나고~

그렇게 좌측으로 휘어지며 길게 내려서면,

(10:54) 또 다른 '←수태산 0.5km' 등산로 들머리를 지난다.

(10:55) 벤치가 놓여있는 '수태재'에 도착하고~

'수태재'를 지나면서 부터 지금까지 진행해 온 '상리면'에서

'하일면 학림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하일면(下一面)

경상남도 고성군 남부에 있는 면이다.

북쪽으로 수태산(秀泰山:570m)·산성산(山城山:154m) 등을 경계로 상리면(上里面)·

삼산면(三山面), 서쪽으로 하이면(下二面)에 접하고, 남·동부는 남해에 면한다.

학림천(鶴林川)·계룡천(溪龍川) 등 많은 소하천이 면의 중부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면서

일대에 면의 중심부를 이루는 침식평야를 발달시킨다.

남부에 좌이산(左耳山:392m)이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어례향(魚禮鄕)과 보령향(保寧鄕)에 속하였다.

『여지도서』에는 "하리일운면(下里一運面)은 관아에서 37리이다."라고 수록하였고,

『호구총수』에는 하일운면(下一運面), 『광여도』, 『조선지도』 등에는 하일면으로 기록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하일면으로 기록하였고, 1914년 이후 같은 지명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면 소재지인 학림리를 비롯한 '동화리' '송천리' '수양리' '오방리' '용태리' '춘암리'

7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면에는 좌이산(左耳山) 봉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수군(水軍)의 군사 활동과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송천리에 유적이 남아 있는 좌이산 봉수와 함께 번계(樊溪)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원래 현 서쪽 33리에 있었지만 현 남쪽 47리에 있는 당포(唐浦)로

번계 만호(萬戶)의 병선(兵船)을 옮겼다고 하였다."라고 수록하였다.

그 밖에 소을비포(所乙非浦) 성지가 동화리에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을비포는 현 서쪽 47리 지점에 있다.

석성이며 둘레 825척, 높이 14척이다. 권관을 차임하여 방수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여지도서』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변동을 기록하여 "선조 37년(1604)

거제의 수영(水營) 옛터로 옮겼다가, 선조 39년(1606)에 이곳에 소모진(召募鎭)을

다시 설치하고 그대로 구소을비포(舊所乙非浦)라고 이름 했다."라고 한다.

소을비포, 솔비포, 구소을비포, 구소비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이와 관련된 『1872년지방지도』(구소비진지도)가 남아 있다.

두 개의 만이 있고 앞에 안마도(鞍馬島, 현재 안장섬)가 해문(海門)을 막고 있어

수군의 기지로서 매우 유리한 지형이며, 성은 많이 훼손되어 성문들이 없어진 상태로 그려져 있다.

성안에는 동헌, 객사 등의 건물과 별장이 기거했던 내아(內衙)가 그려져 있다.

성 밖에 선소(船所)가 있으며 그 앞바다에 거북선으로 추정되는 함선을 비롯하여

다양한 배들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여지도서』(통영)에는 구소비포진에

귀선(龜船)이 한 척 있다고 기록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좌이산 봉수 남쪽에 번계를 고진보(古鎭堡)로 표시하고,

그 서쪽에 구소을비포를 표시하였다.

취락은 학림리(鶴林里) 일대와 동부의 자란만(紫蘭灣)을 중심으로 해안선을 따라 발달하였다.

쌀·보리 중심의 주곡 이외에 감·복숭아·참깨가 생산된다.

지방도가 면의 중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인접한 각 군과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오방리 지석묘(梧芳里支石墓:경남기념물 36),

고성 좌이산봉수대(佐耳山烽燧臺:경남기념물 138), 고성 소을비포성지(所乙非浦城址:경남기념물 139), 고성 학림최영덕씨고가(鶴林崔泳德氏古家:경남문화재자료 178), 육영재(育英齋:경남문화재자료 208),

서비정(西扉亭), 서비비(西扉碑), 송천리 봉수지(松川里烽燧址), 솔섬 석관묘(石棺墓) 등이 있다.

하일면 학림리(鶴林里)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에 있는 리(里)이다.

골짜기 안에 있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좌이산, 뒤로는 수태산이 솟아 있고, 그 맥을 이은 성지산에서

양맥으로 갈라져 병풍처럼 둘러싸인 골짜기에 있다.

골짜기 안 들판은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 도동, 임포 마을이 있다.

옛날 성지산 깊은 골짜기 바위 틈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그 샘에서 도승(道僧)이

등잔불을 켜놓고 도를 닦았다 하여 그 샘을 등잔샘이라 불렀다.

또 도를 닦았던 골이라는 뜻에서 지금의 도동 마을 지명이 유래하였다.

임포 마을은 수 백년 전부터 풍치림이 조성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현종 9년에 고성이 고성현으로 개칭될 당시 하일운면(河一運面)의

고연(古延)·학동(鶴洞)·도동(道洞)지역이었으며,

1914년 고성군의 면을 병합할 때 하일면으로 개칭되면서 고연·학동·임포·도동을 병합하여

학동과 임포의 이름을 따서 학림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임포(林浦)·도동(道洞)·학동(鶴洞)·금단(琴丹)의 4개 마을이 있다.

이후 완만한 내리막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가,

서서히 은근한 임도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11:12) 좌측 잡목 사이로 '수태산'과 '보현암 약사여래불'이 보이지만

날씨가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

그렇게 임도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좌측 숲사이로

'하일면 용태리'와 함께 '자란만'이 펼쳐지고~

 

 

 

(11:15)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끝 지점에

'사각 쉼터정자'와 '자란만'과 '자란도' 설명 입간판이 서 있다.

자란만(紫蘭灣)과 자란도(紫蘭島)

청정해역의 대명사격인 자란만은 고성군 하일면 다랑말과 삼산면 두포리 포교말을 연결한

선내에 있는 해역으로 유인도인 맏형 격인 자란도를 비롯하여 무인도인 늑도(勒島), 송도(松島),

만호도(灣戶島), 마안도(馬雁島) 등이 있다.

자란도는 붉은 난초가 섬에 많이 자생하였다 하여 자란도(紫蘭島: 붉은 난초섬)

또는 섬의 생긴 형세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자란도(自卵島)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은 자란도(紫蘭島)라고 쓰고 있다. [안내판 내용]

자란도는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동남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용태마을 하중촌 선착장에서 1.1km 정도 떨어져 있고, 배를 타면 5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자란도는 정기 도선이 없기 때문에 배를 빌려서 타고 가야 하므로,

비록 가깝지만 배편이 없으면 먼 섬일 수밖에 없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당시 소가야국 사람들이 자란도에 일시 피난한 게 최초로 사람이

거주하게 된 것이라 전하고 있으며, 자란도에는 읍포[고을개]와 사포[모래치]의

두 개 자연 취락이 있는데, 두 마을간 거리는 약 1.2km 정도로 예전에는 배로

많이 이동을 했으나 지금은 도로가 잘 나 있다.

옛날 고을 원님이 귀양 와서 살았다고 하여 '고을개[읍포]'라 이름하였다고 하며,

모래사장이 있었다 하여 사포라 하였다고 한다.

섬 정상에는 성이 있었다고 하며 이 성에서 말달리기도 하고 또 말을 사육하였다고 전해진다.

'자란만'과 '자란도' 바라보고~

'사량도' 바라보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터라 벌써부터 허기가 져서,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햄버거와 테라 캔맥주 큰거 1캔으로 일찍 점심을 해결하며

10분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고~

(11:30)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남파랑길 이정표가 가르키는 좌측 숲길로 내려선다. (주의 요 지점이다.)

초반 완만하게 선명한 등로가 이어지고~

남파랑길 리본이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붙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노루발풀' 이녀석!!!

올해는 못보고 지나가나 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만났다.

이후 좀 더 내려서면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숲이 등로를 막고있어 조심하면서 내려서야 한다.

(11:39) 봉분이 많이 훼손된 '전주최공' 묘지를 지나고~

(11:44) '파평윤씨 쌍분묘'를 지난다.

오!!! '백화등' 이녀석...

(11:49) 묘지 관리가 잘 되어있는 '충주석공' 가족 묘원 안으로 들어서고~

묘원 우측 사면 길로 내려서서,

(11:50) '전주최공' 묘지와 '함안이씨' 쌍분묘를 지나고~

좌측으로 진행하여, 대나무 사잇길을 따라 나가

(11:52) 열십자 농로에 내려서서 직선의 농로를 따라 남파랑길을 이어간다.

(11:54) 그렇게 '학동마을' 뒤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방향이 바뀌는 곳에는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잘 붙어있다.

(11:57) '학동마을'로 들어서서,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개천 둑에

비스듬히 뿌리를 박고 있는 고목을 지나고~

고성 학동마을

서기 1670년경 전주 최씨(全州崔氏) 선조의 꿈 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수려(山水秀麗)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로 전해진다. ​

현재 마을 뒤에는 수태산 줄기가, 마을 앞에는 좌이산이 솟아 있는

소위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이며, 마을 옆으로는 학림천이 흐르고 있어

전통마을의 배산임수형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가옥은 상당부분 새마을운동 당시 슬레이트 기와로 개량되었으나,

'육영재(문화재 자료 제208호)', '최영덕씨 고가 (문화재 자료 178호)' 등

일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학동마을의 약 2.3km에 달하는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층으로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며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황토빛 돌담길을 따라 걷노라면 아련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1:58) '팽나무' 고목이 있는 마을쉼터에서 해파랑길은 우회전이다.

그렇게 우측 '학동마을' 안 길로 들어서서,

옛 담장을 살펴 보면서 진행하고~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고성군 하일면(下一面) 학림리(鶴林里)에 있는 옛 담장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258호이다.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길이 약 2,300m의 돌담(납작돌), 토석담으로 다른 마을의 담장과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을 주변의 대숲과 잘 어우러져 고유의 풍경을 이룬다.

마을 뒤 수태산에서 채취한 2~3cm 두께의 납작돌과 황토를 섞어 바른 층쌓기로 세운 돌담은

같은 방식으로 석축을 쌓은 마을 건물의 기단 등과도 잘 어우러진다.

담장 아래와 위는 쌓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아랫부분은 돌로만, 그 위로는 납작돌과 황토를 섞어 쌓아올렸다.

한여름 홍수와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바닥에 흐르는 물과 황토가 만나면

담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다.

담장 위에는 넓적하고 큰 납작돌을 따로 얹었다.

쏟아지는 비로부터 담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조상의 반짝이는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담장이다.

(12:00) '고성 최필간 고택'과 '학림 최영덕 고가' 팻말이 함께 붙어있는 고택으로 들어서서,

입구에 있는 무인 금전함에 문화재 관람료 1,000원을 넣고 잠시 외양을 구경한다.

고성 최필간 고택(崔必侃 古宅) - 구/ 최영덕 고가(별칭/ 학동 최승지댁)

-경남 문화재자료 제178호-

이 가옥은 영남 남부지역 전주 최씨 집성촌 선비마을의 부자가옥 규모를 갖춘 집으로,

고려 충숙왕조 문하시중 최아(崔阿)의 20세손이며, 임진왜란 창의공신인

의민공 최균(義敏公 崔均)의 9세손인 성화 최필간(聖和 崔必侃) 공이

1809년(순조 10년)에 지은 옛집이다.

모두 5동의 건물이 건물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전후로 평평하게 배치되어 있다.

중문을 지나 아녀자들의 공간인 안채에 이르는 과정에서 안마당이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선차단벽(내외차단벽)은 선비가옥의 품격있는 구조로 보인다.

안채는 앞면 5간의 우진각 지붕이고, 서익랑채는 4간의 팔작지붕,

곳간채(동익랑)는 5간의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7간의 팔작지붕에 처마 4귀에 활주를

설치하였고 구한말에는 이고을 사도(使道)인 통영통제사의 향소(鄕所)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판 학림헌 鶴林軒). 대문간채는 5간의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다.

담장은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자연석을 쌓아 지붕을 기와가 아닌 판석으로 마감한 것이

특이하며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풍토성을 보여 준다.

(학동마을 옛 담장 국가 문화재 제258호)

구한말 재신축된 후원의 우물은 샘 정(井)자를 형상화하여 뚜껑을 화강암으로 만든 것은

전국에서 유일하며 이 집의 재력과 운치를 엿볼 수 있다.

후원 우물 앞의 별당채 사랑마당 우측 정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새사랑채는 해방후

토지 개혁 등의 영향으로 헐어내고 빈터로 남아있다.

최필간 고택(崔必侃古宅)은 "매사고택(梅史古宅)"으로도 불리는데, 1809년 큰댁에서 분가하여

지은 고택으로 최필간(崔必侃)은 최씨 고가의 중시조에 해당하며, 손자인 매사(梅史) 최태순(泰淳)이

현재 규모의 주택으로 확장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랑채인 학림헌(鶴林軒)은 당시 지방 수령이 있는 통영 통제사의 관아와는 너무 먼곳에 있어,

민초들이 관청에 드나들기 힘든 시절에 통제사의 명으로, 지방의 유력자인 최영덕(泳德)의

선조들에게 행정권을 위임해준 향소(鄕所)역할을 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담장에는 또 다른 담 구멍이 있는데, ‘구휼구’(救恤口)라는 구멍이다.

매사 고택 양쪽 담장에도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다.

이 구멍은 담장 밖에 사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곡식을 갖다 놓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바깥사람들이 집안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고픔을 달래라는 배려의 구멍이다.

마당에 있는 고택의 굴뚝은 배고픈 바깥사람들이 음식을 하는 불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담장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다.

 

 

 

(12:05) '학림리 최씨 종가' 앞을 지나고~

(12:08) '아천 최재호' 선생 생가 앞을 지난다.

지난 31구간 진행시 '고성 남산공원 문학동산'에 세워져 있는 최재호 시인의 초춘 시비.

初春(초춘) –학동마을을 생각하며- -최재호-

가랑비 멎은 뜰에 새움이 돋는 기척,

하마 수유 꽃은 그 집에도 피올 것을

오늘쯤 消息(소식) 오려나?

映窓(영창) 절로 열어라.

내 고장 鶴洞(학동) 마을 봄 안개에 잠겼는가…

늙은 柚子(유자) 등걸 담장에 기대서고,

그날에 건너던 도랑

물도 찰찰 흘러라.

진주 삼현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아천(我川) 최재호(崔載浩, 1917~1988) 선생은

1917년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

동대학 대학원 문학석사 및 미국 골든 주립대학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시조집 ‘비취단장(翡翠斷章, 1962)’, 번역시집 ‘하정시집(夏亭詩集, 1979)’,

시집 ‘아천시집(我川詩集, 1986)’, 유작집 ‘아천번역문집(1997)’ 등이 있다.

최재호 시인의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으로는 '석굴암'을 들 수 있다.

시조집 ‘비취단장' 및 시집 ‘아천시집'에 함께 실려있는 이 작품은 이수인 작곡가가 곡을 붙여,

오늘날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 곡은 1976년 이수인 작곡가가 37세 되던 해에 마산에서 제일여고 교사 생활을 할 때

서점에서 최재호의 시집을 읽고 ‘석굴암’에 진한 감동을 느꼈는데, 후일 서울에서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고교시절 석굴암 여행을 떠올리면서 그 시조 작품을 결부시켜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석굴암 - 최재호 시, 이수인 곡

토함산 잦은 고개 돌아보면 쪽빛 동해 / 낙락한 장송 등걸 다래 넝쿨 휘감기고 /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

한고비 또한 고비 올라서면 넓은 한계 / 쓰러진 신라 천년 꿈도 서려 감도는가 /

막달아 아늑한 여기 굴이 하나 열렸네 //

칡뿌리 엉긴 흙을 둘러막은 십육나한 / 차가운 이끼 속에 푸른 숨결 들려오고 /

연좌에 앉으신 님은 웃음마저 좋으셔라

학동 노인정 앞 안내패널

(12:11) '학동마을' 입구로 나오고~

(12:12) 마을 앞 '학동로' 도로가 지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12:15) '고성공룡박믈관 7km'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세워진 갈림길에서

'학동로' 도로를 버리고 좌측 '학림2길' 농로로 진행이다.

좌측 멀리로 '자란만' 앞바다를 바라보고~

(12:17) 정면으로 '하일초등학교'를 바라보며 진행하다,

'하일초등학교' 뒷편의 낮은 담장 길을 따라서 남파랑길은 이어진다.

(12:20) '금단(琴丹)경로회관'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하일초등학교' 정문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임포'에서 '삼천포터미널'로 운행하는 '거창고속버스'가 정차해 있다.

여기는 버스정류장도 아닌데???

좌측 민가담장 아래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12:24) '하일복지관' 건물을 지나고~

(12:25) 우측으로 '하일면 보건지소'를 지난다.

(12:27) '금단마을' 표지석이 있는

'금단 버스정류장' 앞에서 좌회전하여~

'경남 고성 음악고등학교' 정문을 지난다.

(12:28) '77번국도 공룡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하일복지문화센터'를 지나고~

(12:29) '학림천'을 가로지르는 '학림교를 건넌후, '하일 119지역대' 앞 갈림길에서

'77번국도 공룡로' 도로를 버리고 우측 '학림천' 둑길로 들어선다.

'학림천' 바라보고~

학림천(鶴林川)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의 수태산에서 발원하여 남동방향으로 흐르다

학림저수지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남해안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하천 수계는 본류와 3개의 소하천인 학동천, 금단 1,2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2km, 유로연장 2.5km, 유역면적 5.61㎢이다.

하천의 북쪽 및 동서쪽으로는 해발 200~400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유역 상류부에는 금단소류지 및 금단저수지가 있다.

하천의 상류지역에는 조선시대 전주최씨 문중에서 후손들을 육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인

육영재가 있으며, 육영재의 남동쪽으로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8기가 남아있다.

하천의 경사도는 상류부가 1/46, 중류부가 1/53, 하류부가 1/84로 유역 전반에 걸쳐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하류지역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진다.

하천 중류부에는 77번 국도가,

하류부에는 1010번 지방도로가 하천을 가로지르며 지난다.

그렇게 '학림천' 둑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우측 논에 보리가 아직 수확전이다.

(12:37) 각종 재난 발생시 사용되는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건믈을 지나고~

(12:38) '1010 자란만로' 도로가 지나가는 '삼오 횟집' 앞에서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12:40) 도보여행자의 오아시스 'CU편의점이 있는

'임포사거리'에서 남파람길은 우측 '임포항' 방향으로 우회전하는데~

도로 건너편 '임포식당'앞에

'수산자원보호구역안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2:42) 좌측으로 '임포횟집' 간판이 있는 '학림5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12:45) '남파랑길 고성 32·33 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임포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이 남파랑길 32코스 종점이자 33코스 시점이다.

남파랑길 고성 32·33코스 안내판

오늘 1차로 목표했던 남파랑길 32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임포항' 앞에 선채로 물 한잔하고, 호흡 조절한 후

곧바로 남파랑길 고성 33코스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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