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8.12
코스: 복곡 2주차장/복곡 탐방지원센터-전망대-보리암.매점(지선3코스시점)-보리암
-해수관음상/삼층석탑/탑대-음성굴-쌍홍문/만장대/장군암-제석봉-금산.산장-좌선대-상사암/구정암
-헬기장-부소암(비.바래길)-헬기장-단군성전-보리암갈림길-금산.701m/망대/문장암-보리암갈림길
-보리암매점(지선3코스종점)-전망대-복곡 2주차장/복곡 탐방지원센터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4.25km (남해바래길 공식기준 2.0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1시간55분
▶ 갈때 : 남해바래길 지선 1코스 읍내바래길을 마치고,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점심 해결하고
잠시 대기하다가 (12:50)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뚜벅이버스를 타고 (승객은 나혼자 전세냄 ㅎ),
이후 1시간이나 넘게 드라이버를 즐기다 (14:20) 복곡1주차장에 하차,
다시 복곡2주차장으로 왕복하는 전용버스를 타고 (14:35) 복곡2주차장에 하차,
보리암매점으로 도보이동후 트레킹 시작
▶ 올때 : 남해바래길 지선3코스(금산바래길)을 마치고,
(16:35) 복곡1주차장으로 왕복하는 전용버스를 타고 (16:47) 복곡1주차장에 하차,
잠시 대기하다가 (17:22) 도착한 뚜벅이버스를 타고
이후 1시간이나 넘게 드라이버를 즐기다 남해공용터미널에 하차,
남해공용터미널에서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택시타고 양산.내송집으로 귀가
(14:20) '복곡1주차장'
'복곡2주차장'으로 왕복하는 전용버스를 타고
'복곡2주차장'으로 간다.
왕복 버스비 3.400원
(14:35) '복곡2주차장'
'복곡탐방지원센터' 매표소(입장료 1,000원)를 통과하고~
'보리암매점'으로 도보이동후
남해바래길 지선 3코스(금산바래길)을 이어간다.
남해 바래길 지선3코스 금산바래길 [남해 바래길 홈페이지]
▶ 총거리 : 2.0km
▶ 걷는시간 : 약 1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 난이도 : ★★★☆☆(무난해요)
▶ 걷는경로(단위 km) : 보리암 매점 ←0.1→ 보리암 ←0.3→ 쌍홍문 ←0.2→ 금산 산장(제석봉) ←0.4→ 상사바위 전망대 ←0.4→ 단군성전 ←0.4→ 금산 정상 ←0.2→ 보리암 매점
▶코스개요: 금산바래길은 남해 금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는 절경 포인트를 잇는 코스다.
금산산장 직전의 제석봉에 올라서 바라보는 금산산장이 아름다우니 들럿다 가보자.
SNS 이색 컵라면 사진으로 인기를 얻은 금산산장을 관통한 길은
금산 전망의 절정에 있는 상사바위 전망대에 닿는다.
특히 상사바위에서 보는 보리암과 남해바다는 금산의 진수라 할 만하다.
*금산바래길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운영방침에 따라 바래길 안내사인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바래길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여 금산바래길 길찾기 및 탐방을 진행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지선3코스인 금산바래길은 '보리암매점'에서 출발하여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안내되어 있지만,
실제는 '복곡2주차장'에서 '복곡탐방지원센터'를 들어서면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복곡2주차장'에서 '보리암매점'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로 0.8km 정도의 거리다.
(14:35) '복곡탐방지원센터'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표 1,000원 낸 뒤 입장하여 '보리암매점'으로 진행하고~
(14:45) '보리암매점' 도착전
탐방로 좌측의 전망대에 도착하고~
저멀리 '남해바다'와 중앙 아래의 '삼불암' 바라보고~
삼불암(금산 제9경)
조선 태조기단 왼쪽 깎아지른 높은 곳에 바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 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의 좌상 같다고 해서 삼불암 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모두 일어나 앉았다.
만약 세 개 모두 일어났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후 '보리암매점'으로 향하는데,
진행 방향 앞쪽으로 '남해금산'의 기암괴석이 감탄을 자아낸다.
(14:48) '보리암매점' 도착하고~
'금산 사진명소 안내도' 바라보고~
'보리암' 안내패널 옆에,
소형 '남해바래길 지선3코스 금산바래길 안내도'가 부착되어 있다.
트레킹은 복곡탐방지원센터(복곡2주차장)에서 시작했지만,
남해바래길 지선 3코스는 이곳 '보리암 매점'을 출발후 '보리암' 방향으로 진행하여
시계 방향으로 빙 둘러본 뒤 다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14:50)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따라 내려간다.
그렇게 돌계단 길을 내려서다 우측으로 보면, 금산 3경인 '대장봉'과
그 앞에 제4경인 '형리암'이 보이는데, 역광이라~
'네이버 이미지'에서 온전한 사진을 퍼 왔다.
대장봉(금산 제3경)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형리암(금산 제4경)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있으며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 바위라고 한다.
보리암(菩提庵)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
(14:53) 그렇게 '보리암'으로 내려서면 좌측에 '극락전(만불전)'이,
우측에 종무소로 쓰이는 '간성각'과 '보광전' 및 '예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해수관음성지 보리암(菩提庵)
한국의 해수관음성지는 예로부터 남해 금산 보리암,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를 흔히 '3대 관음 성지'라 한다.
각각 남해와 동해, 서해의 관음 도량을 대표한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보태어 4대 관음성지로 말하기도 한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 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즉 관음보살은 곤경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소원을 들어주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바다와 인연이 깊기 때문에 관음 도량 대부분이 바다를 끼고 있는데,
중국과 인도의 관음보살도 바닷가에 있다.
바다에 계신 관음보살상이라 하여 「해수관음상」이라 하며, 보리암 관음상도 해수관음상이다.
관음보살을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하는데,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경(經)의 한 대목 ‘나무 관세음보살’은 꼭 소리를 내어 읊어야 한다.
그래야 관음보살이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보리암 극락전' 처마 끝은 '일출'시 사진명소로 이름나 있는데,
웬일??? 아무도 없네!!!
보리암 극락전(極樂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각지붕으로 보리암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좌·우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으며,
1996년부터 원불을 조성하여 2000년에 완성하였다.
많은 원불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만불전(萬佛殿)이라고도 한다.
'보리암 간성각' 바로 옆의 '보광전' 앞으로 들어서고~
보리암 보광전(普光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건물로 보리암의 주법당으로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초창이래 여러 번의 중건 중수를 거쳤으며,
현 보광전은 1968年에 중건하고, 2000年에 중수하였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서천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고 전하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왕) 삼존상(三尊像)이며,
목조 관음보살 좌상 불감은 2015년 1월 15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보광전' 앞을 지나 맞은편의 설법전인 '예성당(禮聖堂)'을 지나서,
'해수관음상/ 삼층석탑/ 화장실' 가는 길로 내려서다 우측으로 '상사암' 바라보고~
상사암(금산 제27경)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으로 바위 위에서 보는 남해 다도해의 풍광은 천하일품이다.
과수댁이 상사병에 걸린 한 젊은 남자를 이 바위에서 상사를 풀어주었다는 전설도 있고,
부잣집 주인의 딸을 사랑한 머슴이 상사병으로 죽은 뒤 뱀으로 변해 딸의 몸을 감아 떨어지지 않자
이곳으로 딸을 데려와 굿을 한 뒤 뱀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 좌측 아래에 '상주 은모래비치' 바라보고~
'상사암' 우측 편의 '일월봉'과 그 우측의 '화엄봉' 바라보고~
화엄봉(금산 제31경)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일월봉(금산 제32경)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 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 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화엄봉'과 '대장봉' 사이 뒤쪽에
특이한 형상의 바위가 보이는데, 바로 '농주암'이다.
농주암(금산 제30경)
대장봉 왼편에 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두 바위의 한복판 위에
한 개의 구슬처럼 서 있는 것이다.
왼편에 용(龍), 오른 편에 호(虎)가 있어 용호가 농주(弄珠) 하는 모양이어서
'용호 농주암'이라고 한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바라보면, 좌측에 화엄봉이,
관음상 뒤편에 '대장암'이, 대장암 앞에 설법전인 '예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해수 관세음보살상(海水觀世音菩薩像)
보리암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으로, 금산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과
남해에서 불어오는 기운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곳에 나침반을 갖다 놓으면 바늘이 정북 쪽을 가리키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춘다고 한다.
이 관음보살상은 1991년 한 기업가의 원력으로 세워졌는데, 당시 지형이 험하여
육로로 운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헬기를 이용하여 탑대에 안치했다.
좌대는 연꽃 문양으로 하좌대와 상좌대로 이루어져 서로 마주 보게 포개져 있다.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에 두었다.
의습은 양 어깨를 감싸고 각각의 팔을 휘감으며 아래로 흘러내렸으며,
흘러내린 옷깃은 그 끝이 살짝 들려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다.
한 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고 가는 이 해수 관세음보살상은
보리암의 제1명소로 알려져 있다.
'탑대'에서 좌측으로 보면, '극락전' 옆쪽에 '조선 태조 기단'이 보이고,
기단으로 오르는 철계단 길이 보인다.
조선 태조 기단(금산 제7경)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에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으로
탑대에서 바로 건너다 보이는 '삼불암' 아래에 있다.
천하를 잡으려는 이성계는 전국 명산을 찾아 기도를 드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금산에서의 백일기도로 등극하게 되자,
'비단으로 두른다'라는 뜻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수관음상 앞의 '탑대'와 삼층석탑 주변 바라보고~
탑대(금산 제5경)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이 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으며 전망이 좋아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자리다.
보리암전 삼층석탑(菩提庵前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재질은 화강암이고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높이는 2.3m이며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고,
상륜부(相輪部)에는 귀한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건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세우기도 한다.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이 약한 곳을 채우기 위해 세우는 비보탑(裨補塔)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탑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683년(신문왕 3) 원효(元曉)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두꺼운 지붕돌과 3단으로 된 지붕돌 밑면 받침 등을 보아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15:02) '상주/ 쌍홍문/ 좌선대→' 안내 패널 방향으로 진행하고~
이후 불규칙적한 돌길을 따라 내려서서,
(15:04) 좌측으로 '음성굴'을 바라보며 진행이다.
음성굴(금산 제5경)
만장대(萬丈臺) 바로 위쪽[북쪽]의 높이 2m, 길이 5m의 바위굴로
성음굴(聲音窟)이라고도 불린다.
음성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봉강 조겸(1609년)은 이 굴에서 북을 울리면 그 소리가 청아하고 웅장하며
잘 퍼져서 1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또한 미수 허목은 1638년에, 음성굴에 들어가 돌 북을 치니 북소리가
온 골짜기에 메아리쳤다고 전했다.
(15:04) '금산 입구' 갈림길 이정표 앞에서,
좌측 아래에 있는 '쌍홍문'을 보러간다.
'쌍홍문'은 산 밑 '금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보리암'으로 올라올 때 지나게 되는 관문인데, 나는 역으로 돌계단길을 따라 내려간다.
(15:06) '장군암' 바라보고~
장군암(將軍岩)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하였으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쌍홍문(雙虹門)
쌍홍문(금산 제15경)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이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옛날 석가모니가 금산에 와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인도로 돌아갈 때
돌배를 타고 이 문을 통과해 내려가다 금산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인
세존도(금산 제36경)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 동굴이 생겼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에 천양문(天兩門)이라 불려왔으나,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라고 해서
쌍홍문(雙虹門)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15:07) '만장대' 바라보고~
만장대(萬丈臺, 금산 제12경)
탑대 서남쪽 깎아 세운 듯한 천인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을 말하는데,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홍문의 오른쪽에 있다.
'사선대' 바라보고~
본인이 찍은 '사선대' 사진이 많이 흔들려 '네이버 이미지'에서 온전한 사진을 퍼 왔다.
사선대(금산 제16경)
쌍홍문 바로 아래 좌측에 서 있는 네 사람 모습으로 생긴 바위를 말하는데,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사선대라고 한다.
이후 내려선 '쌍홍문' 계단길을 역으로 되돌아 올라가고~
'금산 입구' 갈림길 이정표 앞에서, '상사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다
(15:09) '백명굴'을 지난다.
백명굴(금산 제17경)
사선대 북쪽에는 입구는 그다지 넓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100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굴이 있다.
정유재란 때 100명 내외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피난한 곳이라
백명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에 방을 놓았던 아궁이 흔적이 남아있고 굴의 드나드는 문은 적으나
들어가면 놀랄 만큼 넓은 굴이다.
이 굴은 찾기가 어려워 사람의 발길이 끊인지 오래되었다.
이후 대나무 사잇길을 따라 진행하고~
(15:14) '제석봉'에 올라선다.
제석봉(帝釋峰, 금산 제19경)
천구암 왼쪽에 있는 바위로,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다 갔다 하여
제석봉(帝釋峰)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神)을 말한다.
금산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15:17) '금산산장'을 지나고~
'금산산장'은 남해금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상사암' 옆을 지킨 쉼터다.
옛날에는 손수 담근 막걸리도 팔았는데, 요즘엔 국립공원에서의
음주금지에 따라 컵라면과 부침개 등 간식류만 판다.
'금산산장'은 요즈음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인기 장소로 떠올랐다.
'금산산장'에서 컵라면 먹는 인증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면서
젊은 연인들의 인증 사진 촬영 장소가 되었다.
(15:18) '좌선대' 밑을 지난다.
좌선대(坐禪臺. 금산 제20경)
옛날 신라의 원효대사ㆍ의상대사ㆍ윤필거사 등 삼사가
좌선 수도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 이들 삼사가 앉았던 자리가 뚜렷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후 '상사암'을 향해 암릉길을 진행해 가는데,
아무런 안내문이 없이 지나다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고~ ㅎ
(15:22) '상사바위'와 '단군성전'이 갈리는 갈림길에서
좌측 '상사바위' 방향으로 진행이다.
이후 '사고위험지구' 안내 패널과 이정표,
위치표시목(한려 02-01)을 지나고~
(15:24) '구정암' 도착이다.
구정암(금산 제28경)
상사암에 이어진 바위에 아홉 개의 확(홈)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 개의 샘처럼 보인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어보면 실제 동글동글한 구멍이 아홉 개도 더 되는 듯싶다.
구정암의 물은 바로 상사풀이할 때 썼던 물이라고 한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숙종 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 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하고 감탄했다.
'상사바위' 안내패널 바라보고~
상사암(금산 제27경)
설화는 조선 선조 봉강(鳳岡) 조겸(趙㻩, 1609년)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아래로 굽어보면 너무 높아 땅이 보이지 않아 사신암(捨身巖)이라 부르고,
"속세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상사자(相思者)가 오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상사암이라 붙인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한 젊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려 여인과 바위에서 사랑을 맺었다는 전설도 있고,
부잣집 주인의 딸을 사랑한 머슴이 상사병으로 죽은 후 뱀으로 변해 딸의 몸을 감아 떨어지지 않자
이곳으로 딸을 데려와 굿을 하자 뱀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5:25) '상사바위 전망대' 도착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內 다도해'와 '상주 은모래비치' 방향 바라보고~
'팔선대' 바라보고~
팔선대(금산 제26경)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덟 개의 바위를 말하는데,
서 있는 모습이 여덟 신선들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팔선대라 한다.
'남해금산' 정상부와 '보리암' 바라보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15:31) '단군성전'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단군성전' 방향의 데크계단길로 올라간다.
(15:36) 갈림길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하고~
'헬기장'에서 '단군성전'은 우측 방향인데, 좌측 300m 아래에 있는 '부소암'을 보러간다.
(예전에 한번 가봤지만, 오늘아니면 언제 다시 가보겠나???)
부소암(扶蘇岩) 안내패널 바라보고~
이후 '부소암' 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인데,
다시 올라오려면 죽었다~ ㅎ
(15:42) '부소암(扶蘇岩)' 바라보고~
부소암(금산 제26경)은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로 법왕대라고도 한다.
사람의 뇌를 연상케하는 바위다.
문득 엄청나게 큰 바위가 하늘로 해처럼 솟았다.
그럴듯한 이름 하나 주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으니, 이름하여 "부소암"이다.
"부소"는 중국 진시황의 태자 이름이다.
남해 외딴섬 바위에 어이하여 진나라 시황의 큰아들 이름 부소가 붙었을까?
누가 붙인 이름일까? 유배객이 붙인 것은 아닐까?
이 금산에 올랐던 류의양이 붙였을지도 모르고, 남구만이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신배의 참소로 억울하게 이 고독한 외딴섬에 귀양 온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임금이 콩과 보리를 가리듯이 충신과 간신을 가리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말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진나라 시황의 태자 부소이다.
진시황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덩한 호해가 그 두 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다.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으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다.
신령스러운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
역사에서 부소는 진시황이 보낸 사약을 받고 변방에서 죽고,
둘째 아들 호해가 임금 자리를 계승하였다.
호해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움막이 지금도 있다. 부소가 살았던 그 움막일까?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속세 사람의 집이 아니다.
도 닦는 사람일까, 부소처럼 쫓겨와서 숨어사는 사람일까?
예나 지금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이는 끊이지를 않는구나.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이후 암자인 '부소암(扶蘇庵)'에 가려면 좁은 협곡사이의 철다리를 건너
부소암(扶蘇岩)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소암(扶蘇庵)
헉!!!!!
현재 부소암(扶蘇庵)은 공사중이라 산문을 닫아 놓았다.
공사중
출입금지
할수있나!!!
후일을 다시 기약하며 헬기장으로 다시 올라간다.
부소암(扶蘇庵)... 공사중 맞네!!!
그렇게 '헬기장'으로 올라가는데 기암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제이야!!!! 제발 좀 쉬었다가거라~ 이 더위에 쓰러진다.!!!!! ㅎ)
(15:55) 헬기장에 도착하고~
헬기장 한켠에 있는 데크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션한 얼음물 한잔과 에너지바로 기력을 되찾으며 7분 쉬었다 출발이다.
(16:02) 좌측으로 '단군성전' 갈림길인데,
예전에 가봤으므로 오늘은 생략이다.
단군성전(檀君聖殿)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할아버지를 모시고
전하여 내려오는 성역으로, 성전에는 환인하느님, 환웅천왕, 국조단군왕검의 천상과 천진,
삼신미륵을 봉안하고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이후 대나무로 펜스를 길게 친 곳
우측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16:06) '금산' 정상과 '보리암 갈림길'에서 좌측 정상으로 향하는데,
나중에 정상에서 이곳으로 되돌아나와 '보리암' 방향으로 내려서게 된다.
줄사철나무...
이 줄사철나무는 기암괴석에 붙어 기이한 모양으로 자생하는
줄사철나무 중 국내에서 가장 큰 나무로,
흉고 둘레는 28cm, 수고 5m로, 전북 진안 마이산의 천연기념물 제380호로
지정된 줄사철나무 군락지의 개체보다 큰 것으로 추정된다.
줄사철나무(Euonymus fortunei var. radicans)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식물로 바닷가 산지 능선 및 바위지대에 자라는 상록성 덩굴나무다.
이 나무는 줄기 곳곳에서 ‘공기뿌리’가 나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줄사철나무는 사철나무와 닮은 모양이지만 줄기가 덩굴지며 가지에 있는 볼록한 검은 점
등으로 구분한다.
꽃은 5~7월에 피고 열매는 10~12월에 붉게 익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이제 이 암릉만 지나면 '금산 정상이다. ㅎ~
(16:09) 드디어, '남해금산' 정상이다.
남해금산(南海 錦山, 701m)
남해군 상주면(尙州面)에 있는 산으로,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명승 제39호로 승격되었다.
원래는 신라의 원효(元曉)가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웠던 데서
보광산이라 하였는데,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 자를 써 금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금산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南嶽)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닷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산이 작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 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금산은 다도해에서 유일한 큰 체적의 화강암 산임에도 불구하고 토산 성격이 강해
남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마치 오색 자수판을 보는 듯하며 대규모의 낙엽수림이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 갔다는 서불의 이야기가
담긴 ‘서불과차암’과 춘·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
老人星 또는 壽星)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스러운 전설이 많은 곳이며,
전국의 3대 기도 도량인 보리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
망대 앞쪽에 거대한 나막신 형상의 '문장암'이 위치하고 있는데,
측면에는 주세붕 선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문장암(금산 제2경)
남해 금산의 정상에 있다.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로, '명필 바위'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내고 1543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소수서원)을 건립한 한림학사 주세붕(1495-1554)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이는 "홍문을 경유하여 금산에 올랐다"라고도 하고,
"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은 최고의 명산이 되었다"라고도 해석한다.
(16:10) '금산 망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고~
금산 망대(금산 제2경)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그 광활한 경치가 황홀하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금산 삼십팔 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한 눈으로 굽어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다.
'천구봉'을 내려다보고~
천구봉(금산 제2경)
일월봉 아래쪽에 있는 바위로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천구봉이라 하며, 일월봉을 마주 보고 있다.
'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앞바다 '한려수도'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긴후,
(16:14) '보리암'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오고~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긴 데크 계단길을 내려간다.
(16:17) '보리암매점' 앞으로 내려서고~
'보리암매점' 앞에서 남해바래길 앱 끄고,
남해바래길 지선 3코스(금산바래길) 트레킹은 마친다.
이후 약 2시간 전에 지났던 등로를 따라,
(16:30) '복곡탐방지원센터'가 있는 '복곡2주차장'에 도착하고~
'복곡2주차장'에서 '남해금산' 트레킹을 종료하고,
(16:35) 전용버스를 타고 '복곡1주차장'으로 내려간다.
(16:47) '복곡1주차장'에 하차하고~
(17:22) 도착한 '뚜벅이버스'를 타고~
(독일마을까지 승객은 나혼자 또 전세냄 ㅎ, 독일마을에서 이쁜 처자 4명 탑승)
이후 1시간이나 넘게 드라이버를 즐기다 '남해공용터미널'에 하차,
터미널 4층에 있는 사우나로 입장하여 땀냄새 칼긋게 제거후
남해공용터미널에서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인근 합천돼지국밥집에서 소주1병하며 늦은 저녁을 해결후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택시타고 양산.내송집으로 귀가한다.
'남해바래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바래길 12코스 (1) | 2023.09.02 |
---|---|
남해바래길 11코스 (1) | 2023.08.22 |
남해바래길 지선1코스 (1) | 2023.08.15 |
남해바래길 테마지선1-남면 만수무강 마을바래길 (0) | 2023.08.15 |
남해바래길 10코스 (0) | 2023.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