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郊閒步(춘교한보)
-봄들에서 한가롭게 걸으며-
無私天地春 (무사천지춘) 사사로움 없는 천지에 봄이 오니
風日更淸新 (풍일갱청신) 바람과 해 다시 맑고 신선하다.
隔水看飛鳥 (격수간비조) 물 건너 날아가는 새 바라보고,
渡橋逢野人 (도교봉야인) 다리 건너 들 사람들도 만나본다.
冥搜物像富 (명수물상부) 그윽함에서 물상의 풍부함 찾으니
卽忘生涯貧 (즉망생애빈) 곧 삶의 궁핍함조차 잊어버린다.
遇勝藉芳草 (우승자방초) 경치 좋은 곳 방초위에 자리를 펴니,
却思塗炭民 (각사도탄민) 문득 도탄에 빠진 백성이 생각난다.
-耘谷 元天錫(운곡 원천석)-
운곡 원천석 (耘谷 元天錫 1330~?)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이다.
원주(原州) 아전 층의 후손으로 종부시령(宗簿寺令)을 지낸
윤적(允迪)의 아들이다.
문장과 학문으로 경향간(京鄕間)에 이름을 날렸으나,
출세를 단념한 채 한 번도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은사(隱士)로 지냈다.
1360년 이숭인, 정도전 등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2년 후에는 진사시에도 합격을 하였다.
그는 고려국을 멸망시킨 태조를 인정하지 않고 조선 개국 초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과 혼탁한 나라 사정에 실망을 크게 느끼고
정계를 떠나 낙향한 후 치악산에 은거하여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봉양하고
목은 이색과 세상사를 교류하며 성리학의 보급에 큰 노력을 하였다.
왕자 시절에 운곡에게 학문을 익힌 태종 이방원은 보위에 올라 스승께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며 모셔가기를 원했지만, 두 나라,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굳은 충의심을 지닌 운곡은 오히려 치악산의 깊은 곳
변암(똥바위)부근으로 피하였다고 전해진다.
후일 태종 이방원이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특명으로
운곡 선생을 뵙기 청하자 기어이 소복을 입고 왕을 찾아감으로
굽히지 않는 선비정신을 후대에도 높이 추앙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향촌에 있었으나 여말선초의 격변하는 시국을 개탄하며
현실을 증언하려 했다.
만년에 야사(野史)를 저술해 궤 속에 넣은 뒤 남에게 보이지 않고
가묘(家廟)에 보관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증손대에 와서 사당에 시사(時祀)를 지낸 뒤 궤를 열어 그 글을 읽어보았는데,
멸족(滅族)의 화를 가져올 것이라 하여 불태웠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운곡시사(耘谷詩史)가 전한다.
이 문집은 왕조 교체기의 역사적 사실과 그에 관한 소감 등을
1,000수가 넘는 시로 읊은 것으로 제목도 '시사'(詩史)라 했다.
야사는 없어졌으나 이 시가 하나의 증언으로 남아 있어
후세의 사가들은 모두 원천석의 증언을 따랐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로 시작하는 고려왕조를
회고하는 시조 1수가 전한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붙였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손이 눈물겨워 하더라.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유학자적인 곧은 충절은 시류에 부동하는
무리들의 경박한 처신에 비교하게 되어 더욱 고절(孤節)을 돋보이게 한다.
이는 바로 논어(論語)>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라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에 가면 태종 이방원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전해지는데
태종 일행이 노파에게 운곡이 있는 곳을 묻자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어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깊은 물속에 뛰어들어 죽었던 장소라고 하여 노고소란 지명도 있다.
또 태종 이방원이 치악산 깊은 곳을 바라보며 올랐던 계석이 있는데
주필대라는 글씨를 볼 수 있고 후일 태종대라 이름 하였다.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치악산을 향해 절을 했다는 장소인 배향산도 있으며,
구룡사 가는 방향에서 왼쪽 강림면으로 치악산 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산길이 있는데,
야트막한 고개를 태종이 탄 수레가 넘었다 하여 수레너미재라고 부른다.
묘소는 원주시 행구동에 있고 비석에 고려국이란 글씨에 지조와 절개를 느낄 수 있으며,
묘의 방향이 개성의 고려궁터 방향으로 향해 있어 운곡선생의 충절에 숙연해 진다.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며 당리당략을 쫒고 富를 축적하느라
民意를 돌아보지 않는 현세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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