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7)
-법성게 강의 (5)-
15)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발심할 때에 바로 깨달음을 이루며
16)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 생사와 열반이 함께 하네
이 대목은 수도의 단계에 의하여 법을 분별하는 내용이다.
일체의 법에는 자성이 없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의 고유성을 지니는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으로
이것이 화엄철학의 요지이다.
이것은 모든 시간적 상황과 공간적 상황의 한계를 벗어버린 원융무애한
법성의 당체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다.
이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의 선후나 공간의 원근이 모두 한 점에서 만난다.
또 인과가 동시에 갖추어지며, 상대적 차별이 하나 속에 합쳐지는 것이다.
처음 발심할 때는 수도의 시작이며, 정각은 완성된 결과인데
이것이 동시라는 것이요,
생사의 경계에서 발심하여 정각을 이루면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인데,
이는 수행의 시작과 끝의 선후가 상대적으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그 실은 생사에 처하면서 열반에 머물며 열반에 머물면서
생사에 노니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자성이 없는 이치에서 보면 생사도 공한 것이요, 열반도 공한 것이다.
생사의 정체나 열반의 정체가 같다는 것이며, 같으므로
동일한 선상에서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고래의 해석에서 무엇이 생사이고 무엇이 열반이냐 물어놓고
생사도 너의 몸이요 열반도 너의 몸이라고 한 말도 있다.
어떤 개념으로 조립된 대상으로서의 생사나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대승의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생사를 버리고 열반을 구하는 취사선택적인 수행이 소승이라면,
대승은 모든 것을 회통하여 하나로 보는 수행의 가풍을 가지고 있다.
생사와 열반이 하나인 것이 대승이 된다는 말이다.
17) 이사명연무분별 (理事冥然無分別)
- 이(理)와 사(事)가 명연하여 분별이 없으니
18) 십불보현대인경 (十佛普賢大人境)
- 십불(十佛)과 보현, 대인의 경지로다.
위의 두 구절은 연기분(緣起分)의 결론에 해당되는 대목인데,
이(理)와 사(事)가 통일된 경지를 부처의 경계와 보현의 경계로 설명하였다.
본질적 차원에서 보는 이치적인 면을 이(理)라 하고
현상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사실적인 면을 사(事)라 한다.
화엄교의에 나오는 사법계설(四法界說) 가운데 이법계, 사법계,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의 이(理)와 사 (事)이다.
「탐현기」 금사자장(金獅子章)에 나오는 이(理)와 사(事)의 설명을 예로 들어보면
순금으로 만든 사자를 사자의 모양으로 보면서 머리와 다리 등
몸의 각 부분을 구별해 보는 것은 사(事)이고,
머리든 꼬리든 모두 순금인 줄 알고 금사자 전체를 순금으로 보는 것은 이(理)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와 '사'의 설명인데, 불법 수행의 과정에서 살펴본다면
깨달음의 진리를 체험한 내면적인 경계가 이(理)가 되고
외향적인 교화활동의 구체적 사실들은 사(事)가 되는 것이다.
「법기(法記)」에서는 생사와 열반의 성(性) 없음이 '이'이고,
이처럼 성(性)없는 생사와 열반 자체는 곧 '사'라 하였다.
곧 일체법이 무자성(無自性)이라는 성(性)없는 면은 '이'요,
이 성(性)없는 무자성(無自性)에서 연기되는 제법의 현상이 '사'이다.
또 십불(十佛)은 '이'에 해당하고 보현(普賢)은 '사'에 해당한다.
십불이란 화엄경에서 부처님의 경계를 10가지 면으로 나누어 의인화(擬人化)시켜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 해경십불(解境十佛0과 행경십불(行境十佛)이 있다.
지엄스님이 쓴 「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에 의하면, 해경십불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진리를 지혜로써 관조할 때 온 법계가 모두 부처로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열 가지로 나누어 중생신, 국토신, 업보신,
성문신, 벽지불신, 보살신, 여래신, 지신(智身), 법신, 허공신 등으로 든다.
또 행경십불은 수행이 완성된 뒤 얻는 부처님의 경계를 열 가지로
분류하여 말하는 것으로 정각불, 원불, 업보불, 주지불, 화불, 법계불,
심불, 삼매불, 성불(性佛), 여의불 등이다.
이는 해경의 여래신을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다.
이 십불설은 모두 부처님의 깨달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한다면, 중생제도를 위한 이타행으로 실천화될 때 나타나는
자비의 덕용 이를 화엄경에서는 보현의 행원으로 설명한다.
이것이 곧 '사'이다.
이사(理事)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지혜와 자비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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