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經典講解

반야심경 강해 17-불생불멸(不生不滅)

반야심경 강해 17-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태어남과 죽음, 만들어짐과 사라짐의 양극단을 부정한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연기의 법칙에 의해 인()과 연()이 화합하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인연이 다하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예컨대, 나무와 나무가 있다고 했을 때, 이 나무와 나무[]를 인위적으로

비벼줌[]으로써 우리는 여기에서 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래 나무와 나무 사이에 불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기 중에 불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비벼주는 손에 불이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라는 인()에 힘을 가하여 비벼주는 연()으로 인해

결과인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불이 만들어 진 것은 나무 때문만도 아니고, 공기 때문도 아니며,

비벼주는 손 때문만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나무와 공기와 손, 그리고 습도며 주변여건 일체가 인연 화합하여

모일 때에만 불이란 결과를 생()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젖은 나무를 아무리 비벼도 불을 얻을 수 없으며,

공기가 없는 곳에서 나무를 비벼도 불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정한 시간이 지나 나무가 모두 타게 되면,

인과 연이 소멸하였기에 불은 자연히 스스로 꺼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인연생기(因緣生起)하여

인연 소멸(消滅)하는 것일 뿐입니다.

, 불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인연따라 생멸하듯,

존재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생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생멸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범부의 눈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실재적 생멸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러므로 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기 위해,

가장 먼저 `생과 멸`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부정이 아니라 생멸이란 고정된 실체적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이란 부정의 개념을 도입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불()이란 부정의 의미라기 보다는 ‘연기’의 의미로 이해함이 옳을 것입니다.

인연생기하여 인연소멸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 ‘불생불멸’은 우리에게 존재 본성의 영원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생겼다고 해도 그것이 어떠한 고정된 것이 아니며,

멸해 없어졌다고 해도 완전한 단멸(斷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인연 따라 다른 모습으로 겉모양을 바꾸었을 뿐인 것입니다.

 

누군가 죽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슬퍼하며 인생이 허무함을 한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이 육체가 인연이 다해 쇠해졌기에

겉껍데기를 갈아치우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새롭고, 보다 젊고, 건강한 몸을 받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나름대로의 업에 걸맞는 껍데기를 찾아 다시 태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선업의 과보는 천상이요, 악업의 과보는 지옥이며, 탐욕의 과보는 아귀,

성냄의 과보는 수라, 어리석음의 과보는 축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일 뿐이지 그 본성에 있어서는 죽고 사는 것이 아니며, 영원성을 지닌 것입니다.

 

처음 금목걸이가 좋아 보여 10 돈이 되는 금목걸이를 샀지만,

이것을 1돈 짜리 금반지로 바꾸어 여럿이 함께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고 해 봅시다.

금목걸이는 필요성이 다했기에 없어졌지만, 새로운 필요성에 의해 금반지 10 개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금목걸이는 죽고, 금반지는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인연 따라 겉모습을 바꾼 것일 뿐입니다.

 

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 것입니다.

또한, 그 수많은 세포들은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반복하며, 노쇠한 세포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는 사실도 요즘 과학에서 모두 밝혀진 사실입니다.

 

일본 동경 대학 의학부에서 임상실험을 통해 말하기를,

인간은 7년 사이에 몸의 전체 세포가 바뀐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살인가, 피인가, 뼈인가, 손톱인가 등 단단한 정도 등에 따라 세포가 바뀌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바뀌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육체와 7년이 지난 후 내 육체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모든 세포는 그 동안 생사를 수없이 거듭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고, 7년 전이나, 7년 후나 모두 같은‘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다만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까 말까한 정도의 미세한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본래 생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본성은 불생불멸이기 때문입니다.

세포는 죽고 살지만, 좀 더 크게 인간을 놓고 보니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자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입자 소립자(素粒子)라 일컬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소립자들은 다시 수많은(300여개) 소립자들로 상호 형성되어

서로 의존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는 우주의 신비를 밝혀 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어떤 존재라도 고정된 실체는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수많은 인과 연들이

상호 의존함으로써, 즉 인연 화합함으로써 비로소 생멸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인연화합으로 인한 모습의 변화가 있을 뿐이지 본래 자성에서는 생멸이 따로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는다고 했을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본성을 철견(哲見)해 보면,

죽고 사는 것은 우리의 분별심일 뿐이며, 다만 인연의 가합(假合), 가멸(假滅)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를 바라볼 때, 생과 사, 유와 무를 초월하여 인연 따라 다만

흐르는 것이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공성(空性)의 올바른 이해인 것입니다.

, 연기된 존재이기에 불생불멸이며, 그렇기에 공()인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 모든 존재의 본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하여 본래 생()과 사()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