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산행.여행

2016.1.9 경주/ 남산

일자: 2016.1.9

산행코스: 경주/인왕동.경주박물관~상서장~해목령~금오산~이영재~신선암마애불

~봉화대~새갓골주차장~노곡2

인원: 홀로

GPS거리: 14.6  널 널/5시간40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근처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600번 버스를 타고

경주박물관 버스정류장 하차후 산행 시작이다.

 

박물관 입구를 지나고

 

경주박물관

 

월성교를 건넌뒤 곧바로 좌틀이다.

 

.남산안내판

 

굴다리를 통과하고

 

상서장 이정표

 

상서장(上書莊)

 

신라 말기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나랏일을 걱정하여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의 글을 진성여왕에게 올린 곳이다.

지금은 그의 영정을 이곳 영정각에 모시고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순조 이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상서장 주차장에서 우측 길로 올라 드디어 산으로 올라간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탐방객수 조사시스템(출입시설) 계수대를 통과한다.

 

전삼화령 40m 갈림길

 

전삼화령 터

 

1920년대에 석조삼존불이 발견되면서삼화령으로 추정된다는 뜻으로

()’자를 붙여 명명한 것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1층에 전시된삼화령 삼존불상본존불이 이곳에서 출토됐는데

발굴 당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묘지터로 여기고 지나칠 곳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남산산성 안내판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바윗길이 시작된다.

 

낙동정맥, 단석산, 망산, 벽도산, 경주 율동일대

 

여기가 해목령 맞나?

 

경주 반월성에서 보았을 때 게()의 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목령(蟹目嶺)이라고 하는 곳이다.

 

남산산성의 흔적인가

 

포석정 갈림길

 

널찍한 임도가 시작되는데, 일명 동남산 순환도로라고 한다.

어찌됐던 룰루랄라~

 

분재 같은 소나무

 

돌길이 시작되는데...

나는 이런 자연적이지 않은 돌길이 너무 싫다.

 

금오정갈림길

 

등로에서 잠시 떨어져있는 금오정을 다녀오기로 한다.

 

금오정

 

콘크리트로 만든 현대적인 작품으로 땅바닥과 공간을 띄운 1층의 기단 위에

12개의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 지붕 꼭대기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기둥을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했다.

그리고 지붕 꼭대기 장식은 4각형으로 연꽃 장식을 하고 그 위에 표주박 모양의

상륜부를 만들었는데, 초기 불교 양식 같기도 하고 국적 불명의 양식 같기도 하다.

 

함월산, 동대봉산, 추령, 토함산일대

 

망산, 벽도산, 경주 율동일대

 

금오봉이 가까워졌다.

 

다시 금오정 갈림길로 되돌아 나온후 임도를 따라간다.

 

상사바위

 

상사바위의 전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토함산, 호미지맥, 삼태지맥

 

삼태지맥이 분기되는 토함산목장일대와 풍력발전소

 

헬기장을 지나고

 

금오봉갈림길

 

임도를 벗어나 우측 나무테크 계단으로 올라간다.

 

금오봉(金鰲山, 467.9m)

 

지도상에는 없는 산, 경주 남산

국토지리정보원의 1/25,000지도에는 남산이라는 이름은 아예 없고,

고위봉을 '금오산 ×495.1'이라 할 뿐금오봉은 '467.9'로 높이만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위봉에는 고위산, 금오봉에는 금오산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고,

국립공원에서는 경주 남산을 금오봉과 고위봉을 잇는 남북 9km, 동서 4km의 타원형 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금오봉과 고위봉, 두 개의 봉우리와 주변 산등성이를 모두 통틀어서 남산이라 하는 것이다.

 

남산과 망산의 유래

 

금오봉은 나무에 가려서 조망도 없고, 물 한잔 한 뒤

정상석 뒤 좌측 통일전주차장·용장사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비파골의 전설

 

다시 임도로 내려선후 통일전 주차장 방향으로 진행한다.

 

용장사지 갈림길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 삼화령 연화좌대를 보러간다.

 

삼화령 연화좌대

 

삼화령(三花嶺)은 신라 시대의 화랑(花郞)이 기예를 닦던 장소이자,

미륵 사상이 융성했던 곳이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 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또한, 이 곳이 미륵의 성지였음을 밝혀주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3 3일에 경덕왕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의 누각에 나가서 이르기를,

뜻과 예절을 갖춘 승려를 데려 오라고 하였다.

이 때 검소한 옷을 입은 승려 한 사람이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각 위로 불러 영접하였다.

승려가 들고 있는 삼태기 속에는 다구만이 가득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소승은 3 3일과 9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삼화령이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곳임이 밝혀졌으며, 경주 남산성 부근에서

삼화령과 관련된 석불 3존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 세존이 있었다는 삼화령의 위치와 석불 3존에 대한 존명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이를 추측하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고위봉, 태봉능선, 이무기능선, 용장골일대

 

다음에 남산을 찾을때에는 용장골에서 이무기능선으로 한번 올라봐야겠다.

다시 임도길로 내려서고,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이영재

 

급경사의 바위길이 나타나고

393봉에 오르면 봉화대 능선이 시작된다.

 

 

지나온 금오봉일대

 

경주시 내남면 일대

 

바위석문 통과하고

 

무장산. 동대봉산, 토함산일대

 

무장산을 땡겨보고

 

고위봉

 

안부에 내려서니 용장계지곡삼층석탑 갈림길이다.

 

칠불암 갈림길

 

신선암 마애불을 보러 칠불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신선암 갈림길

 

신선암 마애불

 

절벽 위 바위에 새겨진 불상인데,

정식 이름은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다.

 한 사람 겨우 통행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니 바로 신선암의 마애보살상이 그 자리에 새겨져 있다. 바로 밑에 절벽 있어 조심스럽게 마애불 앞을 지나니 여유 있는 공간에 작은 마애불 안내판이 있다. 한 사람 겨우 통행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니 바로 신선암의 마애보살상이 그 자리에 새겨져 있다. 바로 밑에 절벽 있어 조심스럽게 마애불 앞을 지나니 여유 있는 공간에 작은 마애불 안내판이 있다. 한 사람 겨우 통행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니 바로 신선암의 마애보살상이 그 자리에 새겨져 있다. 바로 밑에 절벽 있어 조심스럽게 마애불 앞을 지나니 여유 있는 공간에 작은 마애불 안내판이 있다. 한 사람 겨우 통행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니 바로 신선암의 마애보살상이 그 자리에 새겨져 있다. 바로 밑에 절벽 있어 조심스럽게 마애불 앞을 지나니 여유 있는 공간에 작은 마애불 안내

 

산꼭대기 바위암벽에 남쪽을 향해 새겨진 관음보살상

너른 평야와 산줄기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산 정상에 구름무늬 위에 유희좌(遊戲坐)

앉아 있는 보살상이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듯 신비로움을 안겨준다.

통일신라 석불 가운데 유희좌의 관음상으로는 유일한 불상이다.

머리에 삼면보관을 썼고, 풍만한 얼굴에 몸매는 다소 비만해 보인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얼굴로 구름 위 세계에서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

오른손으로 꽃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수인을 짓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고 옷자락들은 대좌를 덮으며 길게 늘어져 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에 3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했는데, 광배 자체가 감실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신선암 바위 아래에 위치한 칠불암

 

호미지맥&삼태지맥

 

삼태지맥, 풍력발전소

 

다시 칠불암 갈림길로 되돌아 나오고

 

고위봉 갈림길

 

473봉에 오르고

 

바람이 불지않는 곳에 자리잡고 점심을 해결하며 20분가량 쉬었다 간다.

 

고위봉

 

바위암봉을 지나고

 

봉화대 이정표에서 몇 걸음 올라서면 좌측 위에 축담이 보이는데 출입금지 줄이 처 있다.

 

봉화대다.

 

친절한 안내판(1)

 

직진하는 능선이 평탄하지만 좌측길로 내려서야 한다.

 

친절한 안내판(2)

 

묘지를 만나면 등로가 우측으로 꺾어진다.

 

열암곡 석불좌상 일대

 

무너지고 깨어진 석불좌상을 경주시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함께 복원한 것이다.

열암곡석불좌상은 8~9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어 조선시대 전기까지 유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불상이 도괴되어 불두(佛頭)는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으며

광배(光背)는 불상 뒤편으로 넘어져 크게 파손된 상태였다.

2005. 10. 25일 우연히 남산을 답사하던 한 시민에 의해 불두가 극적으로 발견된 후,

경주시는 이를 정비하기로 하고 문화재 보존정비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하였다.

2007 4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 실시, 이후 1년 간 석불좌상의 불두,

깨어진 광배 및 하대석 편()들에 대한 접합 복원, 그리고 관계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대좌 부재 중 유실된 중대석(中臺石)을 재현함으로써 마침내 보수된 3단 대좌 위에

열암곡석불좌상을 안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비된 열암곡석불좌상은 당당하고 풍만한 몸체에 광배와 대좌를 제대로 갖추고

높이 4m의 장대한 모습으로 남향(南向)하여 정좌한 모습이다.

 

대좌는 지대석(址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이 한 몸돌로 되어 있는

3단의 팔각 연화대좌(蓮花臺座)이다.

결실된 중대석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불상 형식에 따라, 불좌상과

대좌의 높이 비례 및 대좌 각 부분의 비례 등을 고려하여 신재(新材)로 만들었다.

떨어져 나간 불두는 보존처리 후 불신(佛身)에 접합하고 10여 조각으로 깨진 광배는

구조보강 작업을 거쳐 완전하게 접합하였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아우르는 거신광(擧身光)으로서 연화문(蓮華文), 화불(化佛)

불꽃무늬(火焰文) 새김 등으로 장엄된 광배는 그 크기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깨달음의 손갖춤〔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열암곡석불좌상은

몸체의 양감과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진 법의 차림새 및 조각수법 등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새로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입상

 

철조망 사이로 불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경주 남산의 불상 가운데 가장 최근에 '새로 발견된' 불상이다.

2007 5월 복원 발굴 과정에서 석불좌상 옆 산 사면의 마애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아쉽게도 보존을 위해 울타리와 차양을 둘러 발견되고 5년이 넘었지만

아직 발견 당시의 상태에서 큰 변화가 없다.

이는 높이 5m의 마애불이 새겨진 암석이 앞으로 130도 각도로 넘어져 있는데다

추정한 무게가 70t에 이르고,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해 헬기가 접근하기도 어렵고

도로에서 멀어 크레인이 접근할 수도 없는 곳이다.

1300년의 세월을 딛고 온전한 형태의 마애불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하루속히 마매불입상이 일어서서 참배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경주 국립공원 남산지구 새갓골 주차장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노곡2/백운대 버스정류장

 

노곡2리 버스정류장은 계속 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노곡교를 건너고

 

노곡2/ 백운대 입구

 

노곡2리 버스정류장

 

정류장에는 ‘용산-노곡2-명계’로 표시되어 있다.

산행마무리를 하고,

 

경주 506번과 508번 버스가 이곳을 지나는데

506번 버스는 종점인 명계에서 오후 2, 45, 65, 8(막차)에 출발하고,

종점에서 노곡2리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508번 버스는 종점인 입실에서 오후 315, 535, 750(막차)에 출발하는데,

종점에서 노곡2리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잠시후 오후 210분경 도착한 506번 버스를 타고 경주터미널로 이동하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부산집으로